이번 도쿄 여행 때 책 쇼핑을 많이 못 했습니다. 진보초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았고 숙박한 기치죠지에도 아기자기한 서점이 좀 있으니 동네 책방을 돌아다닐 생각이었어요. 여행할 때 책방은 꼭 들르지만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울 만큼 정신이 팔려서 요즘은 꼭 가고 싶은 곳만 들어가려고 해요. 지금은 한국에서 구하기도 쉬워서 온라인으로 구하기 힘든 책을 보려고 헌책방에 갑니다.

이번에 대여섯 곳을 돌아봤는데 작은 동네서점은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아무래도 관심 가는 책이 많지는 않아서 좀 아쉬웠는데, 숙소 바로 근처에 검색하지 않고 우연히 들어간 곳이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예쁘게 꾸민 책방이 아니라 그냥 책들을 엄청 쌓아놓은 헌책방인데 이런 곳을 워낙 좋아해서 시간도 없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구경했어요. 보니까 안으로 쭉 들어가 꽤 넓은 공간이었는데 앞쪽만 구경했어요.
S는 독일어로 번역된 프루스트의 작품집을 샀습니다. 벽돌책에 완전 새 책인데 너무 싸다며 호들갑을 떠네요.



저는 1978년에 나온 호리 다쓰오 작품집을 샀습니다. 일단 장정이 맘에 들고 커버도 있고 완전 새 책 같아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 관련 흥미로운 책도 샀습니다. <그녀들의 미시마 유키오>라는 책인데 미시마와 그의 작품을 둘러싸고 작가, 배우 등의 회고록, 인터뷰, 산문 등을 엮은 책인데 내용도 흥미롭지만 희귀한 사진이 많아 넘 맘에 듭니다.




아래 사진은 여배우 아오이 유우의 사진입니다. 이 책을 읽고 알았는데 예전에 아오이 유우가 미시마의 희곡 <사드 후작 부인>의 주인공 르네역을 맡은 적이 있어 그때의 사진과 인터뷰가 실렸네요.



사실 시와서가 미시마 유키오의 희곡 대표작 몇 편을 낼 예정이라 이 글을 보고 참 반가웠습니다. 인터뷰 내용도 흥미로웠는데 나중에 책 준비할 때 소개해드릴게요. 이 작품은 전후 일본문학의 걸작이라고 칭해질 만큼 유명한 작품이어서 소개할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이 희곡은 세계적으로, 특히 프랑스에서 연극으로 자주 상연되는데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연극 연출한 버전이 유명합니다.
사실 올해 1월에 도쿄에서 이 연극이 상연되었는데 정말 보고 싶었어요. 정말 독특하게도 이 희곡의 등장인물 6명이 전부 여자인데 이번 연출에는 6명 전부 남자가 등장했거든요. 의상 같은 건 사진으로도 봤지만 발성을 어떻게 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미시마의 <문장독본>에서도 그렇고 <소설가의 휴가>를 작업할 때도 희곡에 대한 미시마의 깊은 조예와 정열에 무척 감탄해 그의 희곡 작품이 정말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아주 솔직히 저한텐 소설보다 더 매력적이었어요.
올해는 다른 책 출간이 밀려 있어 좀 있다 차차 소개할게요.



이 사진은 매서운 눈빛의 미시마입니다. 

무슨 사진인가 했는데 <사드 후작 부인> 연극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진이에요. 앞의 배우가 사드 후작 부인의 어머니 역 배우예요. 

원작자가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잘 될 연기도 안 될 것 같은...


어쨌든 이번엔 책방에 많이 못 가서 책을 세 권밖에 못 사와서 좀 아쉽지만 즐거운 책 쇼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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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의 와세다 대학 근처에 있는 소세키산방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소세키 서재를 그대로 복원해놓은 것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이곳도 다자이 기념관쳐럼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곳이 많아 좀 아쉬웠지만 서재랑 몇몇 곳은 찍을 수 있었어요.

소세키산방은 소세키가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신문사에 입사해 세상을 뜰 때까지 약 9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던 집입니다. 그러니까 소세키의 대부분의 대표작은 거의 1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여기서 쓰인 것들입니다.




밖에서 바라본 건물입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등신대의 소세키 사진과 소세키산방의 입구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습니다. 지금은 이 입구는 없고 소세키 서재와 일부를 복원해놓았어요.


서재는 사진으로 자주 봤는데 이번에 직접 봐서 참 좋았습니다. 

시와서의 <나쓰메 소세키 인생의 이야기> 표지 그림도 소세키가 그린 자신의 서재예요.


이 표지 만들 때 근대문학관에 직접 연락해서 사용 허락을 받았는데 그때 열심히 책 만들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림 속 붉은 테이블이 서재 사진 오른쪽에 보이네요.





<꽃을 묻다>에는 아쿠타가와가 스승의 소세키산방을 추억하며 쓴 수필 2편이 실려 있는데 제가 참 좋아하는 글입니다. 이제는 없는 스승을 그리워하는 제자의 마음이 글에서 하나하나 느껴져서 역시 아쿠타가와의 문장은 좋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서재를 보면서 아쿠타가와의 문장을 떠올려봤습니다. 다섯 마리 학이 그려진 붉은 카펫, 서양 서적으로 가득한 책장, 살풍경한 철제 격자문... (아쿠타가와는 선생이 왜 이런 감옥 같은 느낌의 철제문을 달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해요).



서재 옆쪽에는 소세키의 인형이 의자에 앉아 있고 툇마루였던 부분을 복원해둔 복도가 나옵니다. 그 툇마루에서 찍은 소세키의 사진도 있어요. 1914년이네요.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동선을 따라 검은 고양이가 안내해줍니다. 올라가면 벽면 가득 소세키의 문장이 적힌 판들이 걸려 있어요. 거의 대부분 <소세키의 말>에 제가 실은 문장들이라 반가워서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풀베개>의 유명한 첫 문장이 보여 사진 한 장.



이지로 행동하면 모가 난다. 감정에 이끌리면 휩쓸려간다. 고집을 부리면 갑갑해진다. 어쨌든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기념품이랑 책자를 많이 샀는데 미니 가방이랑 북커버도 샀어요. 일본 문고판을 들고 다닐 때가 많아서 샀는데 천이 탄탄하고 맘에 듭니다. 책을 끼워놓으니 더 예쁘네요.

여기 카페에서 양갱을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없어졌나 봐요. 내년에는 다바타에 아쿠타가와 기념관이 지어진다니 기회 되면 가보고 싶습니다.





<꽃을 묻다>에 실린 아쿠타가와의 <소세키산방의 가을>의 한 구절입니다. 서재 사진을 보면서 음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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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판에는 작은 자단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책상 맞은편에는 방석이 두 장 겹쳐져 있다. 구리 도장이 한 개, 돌 도장이 두세 개, 펜 접시 대신으로 쓰던 찻잎 스푼, 그 안에 만년필, 그리고 옥으로 만든 문진을 올려놓은 원고지 한 묶음. 책상 위에는 그 밖에 노안경이 놓여 있을 때도 종종 있다. 그 바로 위에는 전등이 환하게 빛을 비추고 있다. 옆에는 도자기 화로 위에 쇠 주전자가 벌레 울음소리처럼 보글보글 끓고 있다.
... 그 책상 맞은편, 두 장을 겹쳐 놓은 방석 위에는, 어딘지 모르게 사자를 연상케 하는, 키 작은 반백의 노인이, 때로는 편지 위에 붓을 놀리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의 시집을 뒤적이면서, 단정히 홀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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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마차를 타고>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따뜻한 이야기가 하나 실립니다. 시로라는 하얀 개가 주인공인 <시로>라는 작품으로 며칠 전 피드에서 한번 소개했어요.

그리고 사토 하루오라는 작가의 작품이 두 편 실리는데 사토 하루오와 아쿠타가와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사토 하루오는 다자이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아쿠타가와상을 타고 싶었던 다자이가 찾아가 읍소하고 몇 미터나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사람이 사토예요.

사토 하루오는 고양이와 개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이번 책에 실린 작품에도 개가 등장합니다.
<시로>는 동화풍의 따뜻한 작품인데 아쿠타가와의 동화풍 단편 6편을 묶어 단행본으로 나오게 됐어요. 하지만 아쿠타가와의 죽음으로 본인은 이 책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사토 하루오가 서문을 썼습니다.
그 서문이 <어느 바보의 일생>에 아쿠타가와를 애도하는 동료 작가들의 글 중에 실려 있습니다.



이 서문을 읽었을 때, 사토 하루오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니자키와의 인연이나 그의 에피소드를 접하며 사토 하루오에 대한 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를 좀 차갑게 생각했는데 그 인상이 확 바뀌었고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글이 좋았고요.

아쿠타가와의 <시로>에 등장하는 남자 아이의 이름이 하루오입니다. 아쿠타가와가 개를 사랑하는 사토 하루오의 이름을 빌려 지은 건데 사토는 그걸 정말 기뻐합니다.

<어느 바보의 일생>에 실린 <아쿠타가와를 추억하며>라는 제목으로 사토가 쓴 서문의 일부입니다.



아쿠타가와 군.
자네의 훌륭한 작품집이 만들어질 것이네. 자네는 이 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 않았나. 자네는 왜, 하다못해 이 책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주지 않은 건가.
...
자네는 이제 우리에게 볼일이 없을지 몰라도, 나는 한 번 더 자네를 만나고 싶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는 —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눈 딱 감고 자네에게로 갈 수는 없네. 그러니까 자네가 한 번 와주면 좋겠네 — 꿈에든 현실에든. 자네가 싫어했던 개는 침실에 못 오게 할 테니까. 자네는 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도련님에게 내 이름을 붙였지. 자네가 글을 쓰면서 한순간 나를 생각해준 기록이 남은 것 같아 나는 그게 이상하게 기쁘다네.

...




<봄은 마차를 타고>에는 사토의 사랑스러운 단편 <스페인 개가 사는 집>과 <장미를 사랑하는 이야기> 두 편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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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문학 기행 2

미타카에 있는 다자이 기념관 중 하나인 다자이 문학살롱입니다.



시티갤러리공간 보다 훨씬 작아서 전시품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자이 굿즈도 있고 커피랑 과자를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북카페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다자이 커피랑 <쓰가루> 책 표지 모양의 사과 쿠키랑 연필을 샀습니다. 쓰가루가 사과 산지로 유명하거든요.




이 공간은 그 시절에 다자이의 단골 술 가게였다고 합니다. 술집이 아니라 술을 파는 곳인데 그곳을 개조해서 이렇게 만들었어요. 다자이가 살던 집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데 집 뜰에 심겨 있던 백일홍 나무는 딴 데로 옮겨 심었다고 해요. 그 나무가 다자이 작품 속에 나와서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시티 갤러리도 여기 문학살롱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찾아왔는데, 문학살롱은 특히 외국인들이 많았어요.


문학살롱을 나와서 찾아간 곳은 젠린지라는 절입니다. 이 절은 다자이와 모리 오가이 두 문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해 문학 애호가들이 끊이지 않고 찾는 곳이에요.



무덤만 생각하고 갔는데 입구부터 어마어마하게 큰 은행나무랑 벚나무 등 고목을 보고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역시나 문화재로 지정된 나무였네요. 마침 바람이 쌩쌩 불어 벚꽃잎이 회오리바람처럼 뱅글뱅글 돌며 날아다니는데 그게 너무 멋져서 입구에서 한참 꽃을 보며 즐겼습니다.







이 날은 살짝 흐려서 무덤이 왠지 더 애처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자이와 아내 미치코의 묘가 오전에 살짝 흩뿌린 비에 젖어 촉촉합니다.



다자이의 기일이 있는 6월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데 이 날도 묘 앞에 꽃이 가득 놓여 있었어요. 다자이가 사랑한 술이랑 앵두가 놓여 있는 게 웃겼습니다.





다자이 묘 바로 맞은편이 모리 오가이의 묘입니다. 



다자이가 이 절에 묻히게 된 이유는 다자이가 쓴 소설의 한 구절 때문이에요.


... 근처의 젠린지에 가 본다. 이 절 뒤에는 모리 오가이의 묘가 있다. 어째서 오가이의 묘가 이런 도쿄 미타카에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 묘지는 청결해서 오가이 문장의 자취가 남아 있다. 내 더러운 뼈도 이런 깨끗한 묘지 한구석에 묻힐 수 있다면, 사후에 구원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썼을 때는 정말로 오가이 묘 앞에 묻힐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죠. 왠지 묘한 기분입니다.

외국에서 온 청년 하나가 무척이나 진지하게 서 있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왔는데 다자이를 너무 좋아해서 찾아왔대요. 자기는 영어로 읽었는데 인도네시아에는 작년에 처음으로 번역이 되어 나왔다고 합니다. 앞으로 인도네시아 팬들도 많아질 거라면서요. 좀 있다가 소세키 산방 기념관에 간다고 해서 웃으며 헤어졌습니다.

예술이란 이렇게 먼 훗날의, 문화도 정서도 언어도 다른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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