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책하다 우연히 보게 된 소극장입니다.
안똔체홉극장이라는 곳인데 <벚꽃동산>을 한다기에 보고 왔습니다. 평일인데도 관람석이 꽉꽉 차서 놀랐는데 미리 예매를 해서 앞줄 두 번째인 가까운 자리에서 봤어요.

거의 2시간 반이 넘는 긴 공연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끝나다니 싶었을 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 봤습니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확실히 연극 무대가 주는 매력이 참 큰 것 같아요. 큰 무대만큼 무대 미술 설치는 좀 떨어질지 모르지만 코앞에서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어 저는 소극장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중간중간 라녜프스카야의 대사에 눈물도 그렁그렁해지기도 했을 만큼 주인공의 연기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예전에 배우 활동도 하신 적 있는 권민중님이었는데 출연한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연극 무대가 너무너무 좋아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쳐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연기를 좀 더 다른 곳에서도 많이 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연극 무대는 그때뿐으로 사라지니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얼핏 비극적인 내용 같지만 체호프는 <벚꽃 동산>을 희극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거침없이 변해가는 시대에 부딪히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고전이 주는 즐거움과 묵직함이 있구나 싶었어요.

모든 게 변해버린 시대에 그래도 앞으로의 삶을 찾아 꿋꿋이 나아가려는 모습을 밝게 그린 <벚꽃 동산>은 참 매력적입니다. ‘벚꽃 동산’은 누군가에겐 아름답고 그리운 추억이지만 또 누군가에겐 그립지만 눈물 어린 추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내 속절없이 베어지는 나무를 보며 다들 지나간 추억을 가슴에 품지만, 곧 또다시 새로운 삶을 향해 웃으며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왠지 가슴이 따뜻해져요.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을 미소 지으며 볼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계급과 배경이 달라도 결국은 모든 인간이 지닌 공통된 모습을 볼 수 있어서예요.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이고 사랑만이 삶의 전부인 것 같은 라녜프스카야지만 불쌍한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어요. 농노였던 로빠힌은 어린 시절 겪은 주인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이나 원망이 있지만 그럼에도 곤궁에 빠진 주인을 구하려고 온갖 노력를 다합니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기에 인간적이라는 눈을 통해 바라보면 용서하지 못할 인간도 없고 이해하지 못할 인간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누구도 미워할 수 없고 다 사랑스럽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때와는 또 다른 계급과 차이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런 우리에게 나와 다른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찾아주는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자연히 다자이의 <사양>이 떠올랐습니다. 일본의 <벚꽃동산>으로 만들 겁니다, 라고 했던 다자이의 <사양>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한없이 가슴이 아린 <사양>에 비해 <벚꽃동산>은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사랑, 밝은 희망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좋은 대사가 많았지만 그중에 하나 로빠힌의 문장입니다.


우리는 서로 잘난 체하지만 시간은 가고 있고 인생은 멈추지 않고 덧없이 흐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엇엔가 몰입해서 열심히 일을 한다면 마음은 편해지고 내가 존재하는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고 시간만 낭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연극 다 보고 나와 걷는데 담벼락 위에 너무 예쁜 장미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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