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소녀 혹은 키스 사계절 1318 문고 109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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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쓰는데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기대이상으로 포만감을 느꼈다. 

청소년 소설이라더니 의외로 작품마다 온갖 불행과 장애와 비극이 펼쳐진다. 
그런데 문체는 경쾌하고 간결하고 밝고 따듯하다. 
잘난체하거나 가르치려들거나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퐁당퐁당 얕은 개울 건너듯 인간심연을 묘사하는 작가를 발견했다. 
대단히 좋다. 

방주. 
1년에 한번 방주에서 만찬. 이라지만 사실은 유통기한 넘은 통조림을 와구와구 먹어치우는 일. 방주는 엄마가 돌풍에 떨어진 간판에 맞아 죽은 다음 만들어졌다. 학교에서는 나를 정신과 치료받게 했지만 아무 것도 치료되지 않았다. 그림실력만 늘었을 뿐(20쪽). 사람들은 방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내게 접근할 뿐이다. 그럴수록 방주는 더욱 꼭꼭 숨겨진다. 나만큼 외로워 보이는 아이. 외계도 우주도 아닌 온세계(23쪽)를 만나기 전에는. 온세계와 만나면서 굳건한 방주처럼 내안에 견고하게 숨겨둔 두려움과 슬픔이 터져나온다(37쪽). 예상과 달리 내 안의 방주가 허물어진 다음에도 멸망은 찾아오지 않았다. 눈부신 빛 속을 두 손을 꼭 잡은 채로 우리는 나란히 걸어나갔다(39쪽). 

키스장면은 없는데 첫키스처럼 달콤하고 풋풋한 향내가 진동한다. 표지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작품. 

잘자요, 너구리
나와 여자애의 만남. 그 계기는 야생 너구리. 나는 사고로 10년간 누워있다 깨어났다. 여자애는 10년간 발레를 하다 그만두었다. 10년.쯤 인생에서 사라져도 살아갈 수 있겠구나... 

도시 한복판에서 야생너구리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렵겠지만. 누군가의 현실. 그저 안부를 물어본다. 잘자요...

한밤의 미스터 고양이. 
첫사랑.은 짝사랑. 민트 향 숨결. 과감한 상상력과 세밀한 심리묘사가 진부한 소재를 돋보이게 한다. 

굿바이, 지나
학교에는 폭력과 악의가 넘쳐났고 교실은 비정한 생태계 축소판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선택한 생존 방식은 포식자도 피식자도 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96쪽. 우리는 부족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외로웠던 것이다. 105쪽. 뒤에서 담임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지금은 멈추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달리고 싶었다. 막, 우리는 이별을 했으므로. 굿바이, 지나. 143쪽. 

게이의 외로움. 명왕성의 외로움. 왕따들의 외로움... 생각해 본 적 없는 내가 몰랐던 외로움들... 단편영화로 똭. 재기발랄한 대사는 그대로 갖다 써도 되겠다. 

아이슬란드
전학생. 호기심은 증오심으로 변하지만 그 아이는 그대로. 오란디. 섬나라 어머니에게서 났다는 아이. 갑작스런 사고로 전교1등에서 똥오줌도 못가리게 된 나. 포도송이를 들고 매일 나를 찾는 그 아이. 마치 아무도 듣지 못하는데 혼자 노래하는 고래처럼. 그 아이가 중얼거린 아이슬란드어. 어릴적 엄마의 자장가와 같이. 오로라처럼 아련한 꿈속으로. 어쩌면 다시는 깨지 못할. 

무나의 노래
환상시. 

수영장
기적이란 조롱거리를 가리킨다. 215쪽. 기적을 바라던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백
비명과 괴성, 으르렁거림, 흐느낌 등 인간보다는 유인원에 가까운 소리를 내던 5년 만에 최초로 문명의 언어를 구사한 나는 다시 익숙한 침묵으로 돌아갔다. 230쪽. 해파리 이후로 처음으로 나는 문장을 말한다 너를 본 순간부터 하고 싶었던 고백을. 나는 너를 좋아해.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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