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3  

 '그들'에게 맞서기 위한 좀 더 강력한 평화의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받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와, 죽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으로 똘똘 뭉친 그런 평화의 연대를 제안한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일만큼 힘든 여정이겠지만 그것만이 전쟁을 막을 답이라고 생각한다. ....  

p45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유대인이다. 그리고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유대인이다." 마찬가지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보 마테- 캐나다 의사인 그는 트라우마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 도 이스라엘이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최장 기간의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잇다고 비판한 바 있다.

p46 

자신의 절대 권력에 사로잡혀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그 절박한 존재는 한때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채찍이나 총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열등한 종족'을 길들이는 일이 조건반사적으로 진행된다고 믿게 된다.(장폴 사르트르)

p66 

...문화 인류학자이자 죽음학의 대가인 어니스트 베커는 신경증이 삶의 진실을 나타내는 증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앞서 미네타가 야전 정신병동에서 만났던 군인들의 절규처럼, 삶의 위기에서 요동치는 우리의 신경줄도 거짓 이나 과장을 연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을 말하고 있는 쪽은 극도의 안정이 요구되는 전쟁신경증 환자들에게 '마약성 각성제'를 투여하면서까지 전쟁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들의 잔혹한 심성이야말로 진정 치료받아야 할, 심각한 정신질환이자 병증이라고 생각한다.

p116

 ...그럼에도 나는, 아주 약간, 의문이다. 전쟁의 어두운 면을 보지 않고서 무려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평화에 대한 진정한 희구는 "전쟁은 지옥이야"로 시작하는 우리의 대화 속에 진심 어린 '혐오'를 담아내는 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 몰느다. 비록 그 과정이 썩 매끄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p120

 그러나 전쟁의 언어는 고통이라는 붓과 먹물로 쓰여야할 당위가 있다. 전쟁은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데" 온 역량을 집중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반대로 온 역량을 다해 고통을 표현한다고 해도 늘,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 명백하게도 세계는 전쟁이 제공하는 엄청난 규모의 감각적 고통을 천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가끔 새롭게 태어나는 표현이 있지만 대개는 정치적이다. 그래서 일레인 스캐리도 절망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고통이라는 최초의 사실 외에 모든 말은 고통을 사소화한 것이며, 핵심을 놓친 것이고, 고통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p211

..."전쟁은 사악한 인간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악한 인간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그 말대로다. 일단 적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면 그 형상은 시간이 갈수록 혐오스럽게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적으로 지목된 인종이나 민족 전체를 절멸해야 한다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해나간다. 저 악명 높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난징 대학살, 관동 대학살, 여타 식민지 종주국들이 제3차세계 민족들을 상대로 자행했던 대량학살은 그러한 망상이 현실화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p216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저기 우리를 죽이려 드는 놈들이 있다!""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p222

...어덕서니가 엄연한 도깨비이면서도 허깨비라는 조롱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운만 있을 뿐, 자기 고유의 실체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p227

 이렇게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음에도 어덕서니처럼 타인의 공포를 탐닉하며 이득을 얻는 'ㅇ;ㄴ긴- 어덕서니'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인간과 어덕서니의 관계가 단순한 기생- 숙주의 수준을 넘어 공생관계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이러한 '인간- 어덕서니'들은,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힘을 잃고 사라지는 민담 속 도깨비 어덕서니와 다르다.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위협을 끌어들이고 갖은 소란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을 말한다.

 거짓과 허깨비는 다르다. 허깨비는 착시의 결과로, 사라져버리면 후유증이 남지 않는 데 비해, 거짓은 한번 발화되면 끝까지 남아 '총풍'을 '총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우리는 '인간 -어덕서니'를 퇴치해낼 수 있을까?....

 "진실의 빛을 쬐면 어덕서니는 꺼져버린다."(리영희)

p288

 ..."모두가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다."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p290

배웠어야 했다. 제주라는 섬이 1945년 이전부터 일전의 '최후결전 기지'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6만여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진주해 도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착취했다는 사실을. 해방 직후의 유례없는 대기근과 역병(콜레라)으로 수백 명의 제주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 와중에도 미군정이 미곡 공출을 강제햇따는 사실을. 더구나 도민들은 석유 섞인 쌀을 배급받았다는 사실을. 1947년 3.1절 기념대회 당시 6명의 도민이 군정경찰에 살해당한 사실을(부검 결과 그중 5명이 '등'에 총을 맞은 것으로 알려졋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제주도민의 10퍼센트가 들고 일어난 3.10민관 총파업의 기치를. 그럼에도 멈출 줄 몰랐던 서북청년단의 테러와 경찰의 '빨갱이' 색출.검거. 고문을. 1948년 초 20대 제주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고, 그래서 제주가 이렇게 외치고 있엇다는 사실을. "탄압이면 항쟁이다."

p301

 인간은 믿을 수 없는 것에 맞설 수조차 없다. 유일한 선택지는 후퇴뿐이다. 전쟁이 그 자체로 인간성의 패배를 상징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좌절하진 말자. 이러한 후퇴 내지 패배가 전쟁에 대한 인간의 굴종을 의미하진 않는다. 헤밍웨이 역시 헨리가 '혼자서 맺은 평화조약'을 그 단서로 제공한다. 그 정도는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잇지 않을까.

 함께 전쟁에 '불복종'하자는 거다. 전쟁에 대한 불복종을 실천하는 인간만이 전쟁에 반대하는 특권도 가질 수 있다. 한국전쟁 참전군인으로 나중에는 미국 하원의원을 지냈던 피트 매클로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전쟁의 포화 속에 죽어가는 두려움을 느껴보는 특권을 누렸다면, 만약 당신이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을 찢어놓고 그들이 불에 타 죽고 엄청난 부상을 입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당신은 평생 전쟁을 반대하는 특권, 아닌 사명감을 가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을 보았고, 전쟁을 원하는 이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 어느 귀먹은 군인의 고백
최우현 지음 / 돌베개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직 포병장교로 청력 70%소실한 작가.

전쟁 인문학.

체험, 독서, 답사, 사색으로 쓴 책.

평화의 연대 제안.

솔직히 나도 정말 이해가 안된다.

가자전쟁.

전쟁마니아? 근인이 되고 싶었던 퇴역군인.

전쟁은 그냥 나쁜 것이다.

원래도 싫었지만 백선엽 찾아보고 치가 떨렸음.

그 전쟁통에 멀쩡히 살아남고 백수를 누린 전쟁 영웅이라니. 게다가 자식과 몇 천억대 재산싸움. 정상적인 일반인의 삶으로 불가능한거지...

우리나라에선 계엄은 진짜 아니다. 이게 윤석열을 용서해선 안되는 이유. 

4.3도 그렇고....

- 프롤로그. 포성과 비명

이명으로 사격 거부하면 마주하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고통자체에 무감각한 얼굴.

고통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 전쟁 억제할 수 있는 최고의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믿는단다.

힘에 의한 평화.

고통받지 않으려는 자기방어와 죽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으로 뭉친 평화의 연대 제안.

1장. 탄환은 뇌를 파고 들고.: 폭력의 셈법

- 수량화되는 죽음들

아기, 어린이, 노인, 여성, 힘없는 이들이 더 많이 죽음.

- 피와 저주

가자지구에서 일했다가 자살한 이스라엘 여군 사례

- 훼손과 망각

가리려는 언론, 망각

- 덧붙이는 글: 2025년 9월 '가자'의 숫자들

제노사이드, 어떻게 이스라엘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가. 자기들이 당했던 과거를...

누군가의 유대인. 잊지말자.

- 광전사. 불사신, 유령 : 사람을 '죽여본' 군인?

살인과 강함의 연결? : 강한 군이라는 파멸, 모델

군인은 살인자가 아니다. 감정. 이해

- 눈물을 흘리는 군인들: 정신력의 배신

군에서 공황 발작 : 전쟁 신경증. 뇌를 잠식하는 죽음이 속삭임

'겁쟁이'군인을 위한 변명

- 학살 훈련병

 : 매몰당한 존재들

구제역 돼지 매몰. 어쩌면 닭도 거기서 더하면 인간도.

: 포획당한 인간성

- 방아쇠에 걸리는 저항

: 전투현장의 동화적 재구성

: 살인을 거부할 생존적 당위

2장. 야만의 대장간 

-찢어발겨짐에 대하여 

: 강철제국의 신민들

: 환호와 울부짖음의 이중주

:신의 무기 그리고 가짜 신화

- 무기의 정언명령

: 비밀병기의 '비밀'

: 추악한 하늘의 꼽추. 일본의 사쿠라탄기

- 군인의 몸은 기념될 수 있을까

: 잘린 발, 잘린 손가락

: 그로테스크와 진실 사이

전쟁기념물, 평화상징물, 말조차 우습다.

- 고통의 발견과 번역

: 상처와 통증은 언어가 될 수 있는가

:고통에 감응하는 전쟁독법

적나라한 전쟁의 고통을 바라봐야...은유나 비유없이...그래야 전쟁을 안하지.

3장. 폭력적 망상의 그늘

- 가학적 장렬함과 미의식

: 극우- 어린이- 파시스트의 꿈

: 육탄과 산화: '전쟁 신학'의 음험한 부산물

의문없는 복종

- 한국군 '인간 폭탄'에 관한 세 가지 질문

: Q1. 한국군은 왜 인간 폭탄을 '작했는가?

: Q2. 특공대 지원이 강요되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 Q3. 주로 어떤 군인들이 희생되었는가?

그놈의 자살 특공대. 이기자고 죽는?

욱해서 찾아봄. 백선엽도 자식이 있었는지. 

넷이나 있고 재산도 몇 천억대. 그 아들, 사위들은 군대갔다 왓을까. 그 전쟁통에 영웅이 되면서 백세까지 살았다는 것 자체가 또라이지 않을까.

: '자발적 죽음'이라는 레토릭 삶이 증명하지 않을까.

역시 전쟁은 그냥 나쁜 것이다.

- 군인이 된 호전주의자

: 전버의 무사도. 전범에게도 자식이.

: 폭력적 망상의 귀결

호전주의자가 군인이 되면

4장. 무덤과 연옥

- 영령, 죽음을 노래하다

: 신화의 땅

: 제1성역

: 제2성역

젊음을 불태워 나라를 구했다는 문산의 소년병

: 제 3성역

- 불멸의 귀신부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죽은 자의 침묵을 농단하는 말들

- 영원히 끝나지 않을 어머니들의 절규

: 어느 영결식

: '보호'와 '관심'이라는 위선

: 영현 냉동고에 갇힌 아들들

5장. 최후방의 기생자

- 적, 증오의 탄생

: 한국의 사이비 구루들

: 적이라는 편집증

: 남한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남한 국민들의 적은 누구였을끼?

- 총풍이 총상이 될 때

: 전쟁의 어덕서니

: 총화에 기생하는 존재들

나쁜 놈들

- 프로파간다 중독증

: 프로파간다의 프라임 타임

: 세뇌와 중독

- 파멸 세대의 초상

: 전쟁- 게임의 플레이어

: 젊은이들을 파멸시키고 살아남은 세대

6장. 악의 과거와 마주하기

- 삐라 줍던 아이

: 내면화된 레드콤플렉스

: 증오에 물들고 전쟁에 휘감기어

- 평화를 몰랏다

: No WAR! 평화운동의 오래된 미래

: 전쟁을 안다는 착각

- 1948제주 4.3~2024서울 12.3

: '군의 지배'라는 역사적 고질병

: 악마의 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계승된 광기의 역사

: '국군'의 원죄 앞에서

- 나의 적, 적의 적

: 위안받기 위한 위로

적군 묘지

: 단절 너머의 연결

- 에필로그.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82  

...삶의 양식이든 생활이든 나 자신의 육체와 정신이든, 모든 걸 직접 제어할 수 있다는 건 내게 괘 중요한 의미였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되는 예측 가능한 통제 말이다.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자신이 속한 세계가 명확히 자신의 기준 아래에 존재한다는 것. 주차장의 차들을 보며 느끼는 균형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p156

 ..."'우연'이란 건 없습니다. 당신들이 '우연'이라고 손쉽게 단정 짓는 수많은 것들 중 단 한 가지도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먼지만 한 나사와 톱니조차 질서를 수호하고 흐름을 사수하는 거대한 설계의 일부입니다. 치밀하고 예술적으로 짜인 '필연'이죠."

p167

...목적지는 회사 근처 도서관으로 정했다. 도서관에서는 범주를 벗어난 일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 또 제법 오래 머무르기에도 적당한 장소다. ....

p178

...한쪽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았고 다른 한쪽은 모든 걸 갖고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0과100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하지 않나. 축 하나 반대로 뒤집으면 0은 곧 100이 되고 100은 곧 0이 되는 법이니. 모쪼록 뭔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을 철저히 감추는 것 외에 되레 모조리 표출하는 방법도 있다는 걸 깨닫는 참이었다.

p202

 '컵에 담긴 게 뭐든 그것이 속한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컵에 맺힌 투명한 물기는 보석 빛깔의 내용물과는 무관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컵에 담긴 것과 세계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 내 세계에 담긴 것이 그 세계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거대한 우주의 흐름 안에 속한 나 또한 어쩌면 소리 없이 뭔가를 움직이는 중인지도.

p206

 "맞습니다. 전혀 이해가 안 가실 테지만 '우연'이라는 건, 실은 없습니다. 솔직히 조금 부럽기도 합니다. 그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거든요. 불완전하고, 부조리하고, 부조화적인 세계에서나 통용되죠. 하지만 그래서 제법 낭만적이랄까요. 낭만은 미처 채워지지 못한, 이를테면 여백에서 탄생하니까요."

p211

 "어딘가라.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어딘가 다르다는 건 모든 게 다르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요. 이 세계에선 유전자의 염기 서열 하나만 살짝 옮겨져도 전혀 다른 종이 되고 마니까요.".....

p220

 "말씀드렸듯이 우린 파수꾼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변화에 당혹스러울 뿐, 변화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아요. 변화 역시 흐름의 일부니까요. 우리가 가장 위대한 존재가 아닐진대 어찌 사사로이 흐름을 돌리거나 거스르겠습니까. 경로가 바뀌고 동반자가 달라져도 강이 잘 흘러가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이 세계에 갖는 경의이자 신념입니다. 우린 그저 교만한 '그림자'가 흐름에 생긴 초유의 변화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p239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고 반드시 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죠. 지금은 당신과 저도 같은 세계에 있지 않습니까."

p273

 "너희는 나약하고 가볍고 얄팍하고 뻔해. 뭘 모르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하면서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 가엽게도. 그러나 그 어리석음에 녹아 있는 불꽃은 다른 어느 차원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런 건 실로 어리석어야만 존재할 수 있으니까. 아,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난 너희 세계와 그에 속한 너희를 아낄 수밖에 없는 거라고."

p314

 나는 나의 신이 되기로 했다. 오직 내 법칙으로 작동하는 나만의 우주의 신이. 고차원이든 범접할 수 없는 존재든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저울질을 거부하기 위해 저울 밖으로 뛰쳐나간다. 폰으로도 퀸으로도, 어떤 체스 말로도 규정되지 않기 위해 판 자체를 뒤엎는다. 얼굴이 회오리치든 눈이 푸르게 빛나든 이제 그들의 신은 나의 신 앞에서, 주체가 되길 선언한 나라는 존재 앞에서 하염없이 무력하리라.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우주의 구원도 인류의 진화도 아닌, 이기적이고 편협한 지극히 '인간다운' 결말이다. '신'과 '우주'의 관점에서는 한낱 오류일 나의 결단은 그러나, 피조물에 불과했던 미물이 스스로의 질서를 이룩하겠다는 반역의 선포다.

 나는 단 하나의 기회, 단 한톨의 씨앗으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어떤 남자의 운명을 돌이키기를 택했다. '흐름'에 익사한 남자의 운명을. '흐름' 자체를. 살아 있는 것만이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 난 살아 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틔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불꽃, 아니, 있는 힘껏 만개한 타오르는 열화였다.

 p316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한 것임에도, 스스로 신이 된다는 것의 무게는 그러했다. 전능한 군림이 아닌, 자신이 저지른 단 하나의 기적 때문에 가없는 상실을 견뎌야 하는 것. 정답 따위 없는 자신만의 우주에서 그 선택의 종착지가 파멸일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공포를 끌어안은 채,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기도이자 형벌인 내 결정에 다만 후회는 없었다. 내가 길을 돌린 어떤 남자의 흐름이 또 다른 누군가의 무언가와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누가 알 수 있으랴.

......

 이 모든 일의 어디부터가 우연이고 어디까지가 필연이었을까. 온갖 연의 복판에서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내 안의 어떤 부분은 심하게 훼손됐거나 끝내 이탈되었을지 모른다.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동시에 혼자서는 도저히 확보하지 못했을 한계 너머의 뭔가를 얻었을 수도 있다. 그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울지는 재단할 수 없다. 그러나 난 그만한 걸 얻기 위해 그만한 걸 잃은 것이고, 그만한 걸 잃었기에 그만한 걸 얻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렇게 이 세계의 추는 양옆을 묵직하게 오가며 지독히도 고르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거라고. 모든 것이 다 그러하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0시의 새 - 2025 박화성소설상 수상작
윤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에 읽었다. 훅 재미있었네.  


자유의지.

완벽한 톱니에 걸린 티끌 하나와...

오랫만에 홀랑 반한 소설.

마지막 진율의 선택은?

이렇게 등장인물이 번갈아 서술되는 소설이 요즘 자주 잡히네.

SF인듯 아닌듯. 개연성, 상상력, 재미까지 있다.

난 좋았음.

내가 그녀라면 하면서 진율의 마음을 상상해보게 된다.


자다가 죽은 젊은 사람이야기를 듣고 불면이 생겨버린 진율

생선을 잘 바르던 갑자기 죽어버린 도준 옆에 있었던 차수지.

생경함. 분노. 

어렸을때 이상한 일. 꿈 없어진 밤.

잠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수면부족.

천문연구원. 기자.

묘하게 이야기가 재미있다. 얼른 끝까지 읽고 싶게.

차수지. 진율 모두 알과 새를 만난 거네.

평행 세계관인가. 삼체 느낌도 나고.

도준의 죽음.

좀 철학적이기도 하고.

자두에이드컵. 꿈을 잃었던 진율과 도준의 여친 차수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데, 어느 순간 둘이 헷갈리기도 하고.

진율이 새였다가?

'우연'

앎의 격차, 그림자, 흐름을 따르는 쪽, 장악해서 질서를 유지하려는 쪽.

파수꾼.

새, 새알, 거북이, 상징인가.

미리내여행사까지.

도서관, 여백.

하비스커스 차를 마셔야겠다.

입구에 초록색 차양이 있는 좋은 음악을 틀어놓는 카페도 하고 싶네.

새가 선택한 진율이 둥지였나?


한번 읽는 걸로는 안되고 여러번 읽어야 제대로 알게 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펠탑을 폭파하라
구소은 지음 / 검은모래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썼어야 하는데 누락됐었네....

재미있게 읽었다.

보들보들...착해지는 이야기.


여러가지 이야기가 겹친다.

등장인물은 파스칼, 한울. 기타등등.  

문제가 생겼는데도 그냥 두는 에펠탑을 제대로 다시 하기 위해 폭파하는...


그 과정에서 파스칼과 한울의 개인사...그리고 살짝 등장하는 파스칼의 지인들...

그냥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여러가지 생각들을 부른다.


그린 듯한 파리풍경.

파스칼의 생각 빌어 얘기하는 자폐이야기.


검은 모래라는 출판사...페북에서 봤다.


스물셋에 국제 미아가 된 자폐 청년 한울이 12년 노숙자 파스칼을 만나게 된다.

말도 안통하는데도 한울을 데리고 다니는 파스칼.

아버지가 목사였는데...씁슬하다. 가족이 자폐면 힘들긴 하겠지...나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뭐라 할 순 없지만....

식구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는데 파리에서 파스칼, 미루, 자끄를 만난거?

파스칼의 과거, 파스칼이 꾸는 꿈. 한울이 꾸는 꿈....

자꾸만 에펠탑이 무너지는 꿈을 꾸는 파스칼.

에펠탑이 무너질가봐 폭파시키기로 하는건가...

파스칼의 아프고 슬픈 과거.


결국 해내고 해피엔딩.

난 좋았다.

따스한 파스칼, 한울도. 새로운 에펠탑도 보러 가고 싶다.


p53

...자네가 내 친구 파스칼을 만난 건 행운이야. 꽤 섬세하고 지적이면서도 자상한 친구지. 뭐, 예전엔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야. 사람은 늙을 필요가 있어. 대체로 순해지거든. 물론 정반대로 변하는 사람도 있지만.....

p91

 장, 살다 보면 해선 안 되는 말이 있고, 할 수밖에 없는 말도 있어. 그것이 바로 거짓말이라는 거야. 안 하는 게 좋지. 그러나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게 있어. 그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어. 말하자면 좋은 거짓말이라는 뜻이야. 거짓말이 꼭 필요할 때가 있거든. 어떤 위험한 상황이나 어려움에 처한 경우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지. 말하자면,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예를 들면 이래. 어떤 거짓말로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슬픔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또 싸움을 말릴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p102

 살아오는 동안 자폐증을 앓는 사람이 내 주위에 별로 없었다. 오래전 친구의 아들에게서 봤고, 한동네 살던 소년을 가끔 만난 게 전부다. 자폐는 증상이지 결코 병이 아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우리가 소위 일반적이라고 규정한 것들과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일 뿐이다. 장애는 인내심과 시간 그리고 주변의 도움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연유로 이 세상과 사회와 사람을 향한 문이 고장 난 것인지도 모른다. 고장 난 채로 자기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전혀 불편하지 않다면 그런 삶도 있다는 걸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결함이 있는 문은 고치면 된다. 다만 무리하게 고치려다가 오히려 망가뜨릴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고장 났다고 고물 취급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이 정상이고 우리가 심하게 고장 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인 셈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자극만 없으면 전혀 위험하지 않을뿐더러 아주 조용하다는 걸 봐왔다. 게다가 그들이 가진 재주나 재능이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외눈박이 마을에 두 눈을 가진 사람이 들어가면 정상인 취급을 받지 못한다. 말하자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도 어느 순간 비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어쨌든 장애를 가졌다는 것으로 나는 사람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그럴 권리가 내게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p146

 ...이미 결정해서 진행 중인 일에 지나버린 가능성은 무의미하다. 다른 말로 하면 후회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후회는 어리석은 짓이다. 궁하면 통하는 게 세상 이치다. 그러니 계속 직진하는 거다.

p169

 ...자폐란 당사자가 처한 환경이나 심리적 상황에 따라 최악의 상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소위 정상이라고 하는 삶을 순조롭게 살 수도 있다. 정상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상황에 따라 감정기복이 심하거나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폭발했다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자폐로 진단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감정과 행동을 보여줄 뿐인데 환자 취급하는 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결례다.

p253

 제가 용서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운명이 우리 모두에게 불행을 던졌던 거예요. 그것도 한순간에. 그때는 아빠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지만, 살다 보니 세상에는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 아주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운명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 일도 있잖아요.

p285

...굉장히 추운 겨울이 왔어. 얼어 죽지 않으려면 벽난로에 불을 피워야 돼. 그러니까 불을 피워 따뜻해지는 것이 소원이야. 벽난로에 불을 피우려면 장작이 필요할테고, 나는 그 장작을 희망이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하잖아. 소원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희망이 이루어지길 소원한다는 말은 안 하지.

......

 그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 그렇다고 어려운 것만도 아니야. 마음먹기에 달린 일도 충분히 많거든. 아마 나중에라도 소원이 생기면 넌 꼭 이룰 수 있을거야.

p299

...나는 이제 알았다. 행복은 토막토막 느끼던 기쁨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행복한 걸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모르는 게 유감이다.

p374

 내가 진짜로 수호천사면 좋겠네. 참,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장, 한국으로 돌아가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해. 그리고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 하고 싶은 일과 가장 잘하는 일이 일치할 때, 넌 반드시 성공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꼭 합니다. 약속합니다.

p376

 괜찮습니다. 살다 보니 세상에는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 아주 많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운명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일도 있습니다.

p382

 이틀의 자유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작별은 언제나 슬프다. 그렇다고 슬픔만 있는 건 아니다. 작별 속에는 다시 만날 희망도 있다. 희망이 있는 한 소원을 이룰 수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