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3  

...평범한 하루하루의 생활이 입을 쩍 벌리고 자기 권리를 요구하며, 내가 품고 돌아온 넘치는 자부심을 삼켜버리는 것을 볼 때에는 화도 났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럴 때면 가끔 뢰지를 머릿속에 그려보았지만, 그러한 세계에서는 안심하고 활동할 수 없다는 시골뜨기 같은 비굴한 생각을 혼자서 느끼며 괴로워했다. 그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이나 도리어 시골에 가서 라틴 말과 모든 희망과 그리고 비참한 고향 생활의 가실 수 없는 우울한 압박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잊어버렷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괴로움에 모든 것을 잊어버렷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괴로움에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듯이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몇 주 동안은 견딜 수 없이 지루했다. 불만과 분열이 엇섞인 절망적인 이 기간 때문에 나는 나의 청춘 전부를 잃어버리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행복스러운 나의 꿈을 이렇게도 빨리 통째로 깨쳐버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으며 분개했지만, 지금의 나는 현재 고통을 극복하려는 그 무엇이 뜻밖에도 힘차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또한 놀랐다. 인생은 언제나 어두컴컴한 일상생활의 일면을 나에게 보여주었지만, 이제 갑자기 인생은 한없이 깊은 맛을 보이며 불안한 나의 눈앞에 나타나더니 나의 청춘 시절에 평범하면서도 풍부한 경험을 남겨주었다.

p55

...나는 본시부터 소심한 사람은 아닌다. 너무 딱딱하고 거만한 것뿐이다. 그래서 도시의 이러한 흥성대는 생활을 샅샅이 알아보고, 후일 언제인가 거기에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기에는 누구보다 적합한 남자라는 것을 스스로 의심치 않았다.

 청춘은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빌려 나에게로 가까이 왔다. ...

p62

 ...무엇보다 걷잡을 수 없이 강하고 독특한 본능에 이끌려서 그 주장을 위해서, 또는 반대해서 서로 싸우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상과 정열의 모든 정력을 사회나 국가나 학문이나 교육법의 모든 실정이나 시설에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외부적인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쌓아 올리며 시간과 영원에 대한 개인적 관계를 밝히려는 요구를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같이 생각되었다. 나 자신 역시 이러한 본능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느 정도 혼수상태였다.

 나는 어디까지나 리하르트를 사랑하며, 질투를 느낄 정도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를 사귈 겨를이 없었다....

p79 

...나는 그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데서 어떤 비장한 것을 느꼈다. 그 여자는 살기 위해서 싸우는 여성이며, 조용히 참고 나나가는 요감한 여자였다. 그것은 그렇고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언제나 두고두고 생각하는 것처럼 쓸데없는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은 민요나 군가 같다. 여러 가지 사실이 나타나지만, 마지막 후렴만은 전혀 맞지 않을 때에도 치근치근하게 반복되었다.

p103

 이것이 내가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름철의 하룻밤처럼 짧았다. 약간의 음악과 약간의 정신과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허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름답고 풍족하고 다채로웠으며, 마치 엘로이지스의 축제와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어느 결에 무참히도 꺼지고 말았다. 취리히에서 리하르트는 작별을 했다.

p104

 가혹한 시련을 참고, 별을 따라서 방향을 정하고 새로운 항해에 올라 인생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싸우며 배회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우정과 여자의 사랑과 청춘을 믿고 살아왔지만, 이제 그것이 하나씩하나씩 나를 떠나고 말았다. 왜 나는 신을 믿으며, 좀 더 강한 그의 손에 내 몸을 맡기지 않았을까? 그러나 나는 일생을 두고 어린아이처럼 소심하면서도 한편 꿋꿋한 데가 있었ㄷ. 진정한 생명이 폭풍우처럼 나에게 밀려들며 나를 현명하고 너그럽게 하며, 커다란 날개에 태워 무르익은 행복을 향해서 데려가주려니 하고 나는 언제나 기다렷다.

 그러나 현명하고 경제에 밝은 인생은 아무 말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나를 내버려두었다. 인생은 나에게 별로 폭풍우를 보내지도 않았고, 그저 내가 다시 자신을 죽이고 꾹 참으며, 내 고집을 굽히기를 기다렸다. 나로 하여금 거만하고 아는 체하는 희극을 하도록 시키고는 모르는 척 거들떠보지도 않고, 헤매던 아이들이 다시 어머니를 찾기를 기다렸다.

p107

 죽음은 어질고 착한 우리의 형제며, 적당한 때를 알기 때문에 마음놓고 그것을 기다리면 그만이라는 것을 또한 의외로 깨달았다. 고통과 실망과 근심이 닥쳐 오는 것은, 우리를 불쾌하게 하며 아무 가치도 품위도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를 성숙하게 하며, 앞날을 밝혀주기 위한 것임을 나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

 지칠 대로 지치고, 메마르고, 햇볕에 타고, 마음까지 변해서, 두달 후 바젤에 닿았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었으며, 가장 긴 여행이었다...꿈을 따라 걸었지만, 그 꿈은 아직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p116

 자신의 비애와 무능한 생활의 원인을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소용도 없고 그저 피로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자신이 다되고 쓸모가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도리어 막연한 어떤 충동에 잠기며, 때만 오면 무슨 깊이가 있고 훌륭한 것을 만들어내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한 가닥 행복을 차지할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러한 때가 언제 올 것인가? 내 속에는 여러 가지 힘이 써보지도 못한 채 도사리고 있지만, 신경질적인 현대파 문사들이 자연스럽지 못한 여러 가지 자극을 받으며 예술적인 활동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을 보면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 강하고 팽팽한 내 몸속에 어떤 장해나 마귀가 숨어서 내 마음을 침체시키며, 더욱더 괴롭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나는 특수하고, 실패한 인간이며, 이 괴로움은 아무도 모르고, 이해할 수도 없고, 동정을 살 수도 없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떠올랐다. 우울한 기분은 사람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도취를 길러주고, 근시안적이며, 거만한 태도까지 길러준다. 이것이 우울증의 좋지 못한 점이다. 마치 하이네의 무미건조한 아틀라스처럼 혼자서 세계의 모든 고뇌와 수수께끼를 어깨에 짊어진듯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몇천의 사람들은 그러한 고통을 모르고 살며, 자기와 같이 미로에서 방황하지 않는 줄 안다. 나의 성질이나 여러 가지 버릇이 내 것이라기보다 도리어 카멘친트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 아니 악습이라는 생각은 나처럼 혼자서 지내며 고향을 떠나 있으면 고스란히 다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p137

....피로한 몸으로 침대에 누웠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 생활을 생각했다. 좀 더 행복하고 진실하게 살며, 좀 더 인생의 핵심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모든 선의와 기쁨의 핵심은 사랑이며, 엘리자베트에 대해서는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고민이 있지만, 나는 비로소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면 좋았을까?

p147

 그 밖에도 내가 생각하는 바는 점점 변했다. 나는 별다른 비애도 느끼지 않고 청춘 시절을 벗어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생애를 짧은 과정으로, 나 자신을 방랑객으로 생각했으며, 가령 이 방랑객이 어떠한 길을 걷건, 또는 사라져 없어지건 그렇게 세상을 소란하게 하거나 괴롭히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시기까지 성숙해가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목표나 즐거운 꿈을 놓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가갛지는 않았다. 그리고 도중에 가끔 여가를 즐기며, 종종 샛길로 접어들어 하루하루를 게으르게 보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휘파랑으로 시 구절을 부르며 아무 근심도 없이 즐거운 현재를 만끽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차라투스트라를 숭배한 적은 없지만, 원래 나는 신사적인 인간이며, 자신을 존중하며,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 경멸감을 느끼지 않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인간 사회에 어떤 움직일 수 없는 한계를 두는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사람이나 압박을 받는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사이에서도 생활은 마찬가지로 다채로울 뿐만 안리ㅏ, 도리어 대개는 넉넉한 사람이나 호화로운 사람보다도 한층 더 따스하고 진실하고 모범적인 생활을 누린다는 것을 차츰 더 잘 알게 되었다.

p155

 하여튼 구름이나 파도를 바라보는 게 인간 연구보다 즐거웠다. 인간이란 무엇보다 미끈거리는 허위의 가죽에 싸여서 보호를 받는 것으로, 다른 자연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놀랐다. 머지않아서 나의 모든 친지들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을 찾아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 결과로 제각기 자기의 독특한 정체는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딴에는 한 사람의 인격자, 또는 뒤어난 인물을 가장하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그러한 점을 확실히 인정하고,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사람들의 핵심을 알아보려는 생각은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사람들에게는 대개 이 가죽에 싸인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그러한 점을 어디서나 발견햇으며, 어린아이들한테서까지 발견했다. 어린아이들도 숨김없이 본능적으로 자기를 나타내기보다는 알건 모르건 간에 언제나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얼마 후 나는 조금도 진보가 없고, 한 가지 한 가지 장난거리 같은 일에 그만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 자신의 과실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곧 스스로 환멸을 느끼며, 내 주변에서는 내가 요구하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흥미 있는 이니물이 아니라, 인간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사람들이나 사교계 친구들도 그러한 점을 나에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탈리아가 그리웠다. 가끔 도보 여행을 할 때 유일한 친구고 길동무였던 직공을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나는 그들과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그들 중에서 훌륭한 청년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

p159

 ....여기 잇는 사람들은 점잖은 체하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연극을 할 여가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괴롭고 가난한 살림 그 자체가 교양이나 고등한 취미를 가장하지 않아도 마음에 맞고 매우 즐거웠기 때문에 아름다운 말로 꾸밀 필요가 없었다.

 나는 차츰 자주 그곳을 찾아갔으며, 그 집에서 사교적인 너저분한 일뿐만 아니라, 나의 쓸쓸한 기분이나 괴로움을 다 잊어버렸다. 또 여기서 어린 시절의 한때가 나를 위해서 보존된 것을 발견하고, 신부들이 나를 학교에 보냈을 때 중단되었던 생활이 이곳에서 다시 계속되기나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p185

...환자는 훌륭한 세계관을 지녔다. 구체적으로 인생을 관찰하며, 너그러운 유머로 아늑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세계관이었다. 그 후부터 나는 매일같이 배우는 점이 많았다.

p207

 서랍에는 내가 시작한 커다란 창작품이 들어 있다. 내 생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거창하게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진행과 완성은 확실치 않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해서, 계속하고 완성할 때가 한 번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청춘의 동경은 바른 것이었으며, 나는 역시 시인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마을 회의 의원이나 돌 제방과 같은, 아니면 그보다 큰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늘신한 뢰지 키르타너에서부터 불쌍한 보피에 이르기까지 그리운 모든 사람들의 환상과 함께 흘러간 것과 그리고 아직 내 인생의 잃어버리지 않은 부분만큼 값비싼 것은 아닐 터이다.

p211

 주인공이 구하는 것은 현실 문제의 해결이 아니며, 시간과 영원에 대한 개인의 관계를 밝히려고 했다. 시로써 말 없는 자연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기 마음속의 말 없는 거룩한 소원을 표현하며, 신의 품에 뛰어들어 무한하고 초시간적인 것에 자신의 보잘것없는 생을 결부시키는 데서 시인의 천직을 구하려고 햇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작품에 나타난 중요한 문제는 사랑과 죽음에 대한 태도다. 누구나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지만, 그것은 어떻게 사랑하느냐, 또는 어떻게 죽느냐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남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보다 남을 사랑하는데서 진정한 만족과 생의 보람을 느끼려고 했다. 뜻에 맞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서나 꼽추 보피에 대해서도 그랬다. 일찍이 어머니의 깨끗한 죽음 속에서 그는 한 가닥 광명을 얻었으며, 음악가의 명랑한 최후에서 세속과 자아를 벗어나 영원한 광명 속으로 들어가는 죽음을 알았다. 이 작품은 독일 정신을 발전시킨 것으로 그 당시의 침체된 사람들에게 청신한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p213

 "싱클레어, 알겠지? 나는 가야 해. 아마 내가 필요할 때가 있을거야. 그때 나를 부르면 나는 이미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며 그렇게 번거롭게 나타나지는 않을 거야. 그때 네 마음속에 귀를 기울여봐. 그러면 그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 테니까."

 이 작품에서 헤세는 젊은이들에게 사람의 진정한 사명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헤세 자신은 이때부터 더욱더 예술과 생화의 모순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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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3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 찬찬히 읽으니 참 좋다.

예전엔 페터 카멘친트가 나보다 나이가 많았는데, 이젠 내가 그 나이를 지나왔기 때문인가.

그때랑 읽어지는 느낌이 다르다. 좋은 부분도 다르고 그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달까.

시골 고향을 떠나 뭔가가 되려나...도시, 세상을 탐험하고 자유롭게 인생 경험들을 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었구나...

인생이란 ...이게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였구나. 

많은 것을 겪은 후에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일 그게 인생인가.

어릴 땐 떠나서 살아가는 쪽에 방점이 찍히더니, 반백살에 읽으니 돌아와서 살아내는 쪽에 방점이 찍히는구나.


1. 스위스 산골. 카멘친트 집성촌.

어릴 때 읽을 때 안보이던 것들이 막 보인다.

그리고 묘사가 참 따뜻하고 이쁘다.

2. 어머니의 죽음, 첫사랑

3. 취리히 생활, 청춘. 포부, 희망, 대학생활, 리하르트, 우정.

에르미니아 아리에티. 돌려받을 수 없는 사랑.

4. 사랑 때문에 술꾼이 되어 보고. 직업문필가. 리하르트와의 우정. 북부이탈리아 여행

일주일 동안 움브리아 지방을 걸어다녔구나.

이건 반백살이 되어도 부럽네...해보고 싶다.

5. 방탕한 생활, 파리. 방황, 죽음에 대한 생각.

파리에서 바젤로의 두 달 여행.

아름다운 자연ㅇ네 대한 강하고 애달픈 욕망.

성프란체스코, 아시시의 서인. 술마시기. 술에 대한 사랑.

한참 전에 헤세가 쓴 아시시의 성인 성 프란체스코 를 읽은 적이 있었네...대개 담담했는데...

6. 시인, 방랑자, 술꾼, 독신자. 

사교생활, 사랑, 인간관계. 엘리자베트에 대한 사랑 깨달았는데 약혼 소식 알게되어 아버지에게 돌아감. 

고향의 넋, 청춘 시절의 넋. 

페루지아와 아시시에서 생활. 소박한 사람들과의 소통. 

움브리아에서의 명랑하고 소박한 생활. 성숙이 이런 건가? 나이가 드나?

7. 문필생활

메모장. 기억, 자연, 인간.

흥미있는 인물 말고 인간의 전형찾기.

다섯 살 아그네스의 죽음. 불구자 보피와의 만남.

8. 보피의 죽음

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니미콘으로 돌아감. 술집 인수 계획.

페터의 청춘. 인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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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국제적인 우량주에 해당되는 주식을 몇 종목 산 다음,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사먹고 몇 년 동안 푹 자라"는 것이다. 이 조언을 십분 명심한다면 그의 예언대로 편안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다. 

p11

 "내 심장은 왼쪽에서 뛰고 있소. 그런데 내 머리는 오른쪽에 있고, 내 지갑은 오래 전부터 미국에 있다오."

 그는 수십 년간의 주식시장 경험을 통해 경제 영역에서는 현실과 이론이 따로 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p27

 나는 백만장자를, 자기 자본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데 있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는 애써 일할 필요가 없으며 사장이나 고객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다. 또한 자기와 맞지 않는 것에 맞추어 가며 살아야 하는 불편함 없이 달리 자신의 호사스러움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백망장자이다.....이것은 개인적인 성향과 그에게 주어진 의무(예컨대 가족의 부양 의무 등)에 따라 다르다.  

p46

 그렇지 않아도 독일인들만 고지식하게 "돈을 번다"고 말한다. 프랑스인들은 "돈을 얻는다"고 말한다. 또한, 영국인들은 "돈을 수확한다"고 말하고, 미국인들은 "돈을 만든다"고 말하며, 헝가리인들은 "돈을 찾는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조건이 충족되었더라도 투자자가 되려면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즉, 주식 투자에 뛰어들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정신적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확실한 수익을 보장해 주는 주식시장은 세상 아무 데도 없다. 만약 그런 곳이 있으면 아무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다.

p61

...발자크는 <우아한 인생>이라는 글에서 인간을 일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아무것도 안 하는 인간의 세 종류로 분류했다. 순종투자자는 생각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투자자란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순종투자자라는 직업은 -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약간 우습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자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의사와 비슷하다. 뉴스를 먹고 사는 기자처럼 투자자는 뉴스를 찾아다니며 모은다. 기자는 그것을 기록하고 비평하는 데 비해, 투자자는 의사처럼 분석하고 진단한다. 진단 없이 의사는 처방할 수가 없으므로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의사가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환자를 알아 가듯이 순종투자자는 금리 정책, 재정 정책, 세계 경제 등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총체적인 상을 구상해 최종 진단을 내려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그는 자신의 참여 방식을 결정한다. 만약 의사들이 흔히 하는 말로, 병이 진단한 것과 달리 진행된다면 그는 다른 진단을 내려야 한다.

 세 직업의 종사자 중 실수를 범해도 그 직업에서 계속 남아날 수 있는 사람은 기자뿐이다. ......

p112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뿐이다. 이것이 증권시장을 지배하는 유일한 논리라고 봐야 할 것이다.

p122

 ...경제적 상황과 투표 결과 사이에 긴밀한 상관성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람들의 생존이 심각하게 문제시되면 될수록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커진다.

p156

 그러면 부화뇌동파와 소신파는 어떻게 다른가? 소신파는 옛날 프로이센의 몰트케 원수가 전쟁의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한 네 가지 요소, 즉 4G를 가지고 있다. 4G란 돈gold, 생각gedanken,인내geduld,그리고 행운giuck이다.

p159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난 뒤 주식 거래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믿어야 한다. 만약 충분히 생각한끝에 어떤 전략을 세웠다면 친구나 여론, 일상생활 등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의 천재적인 사고는 아직 쓸모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몰트케의 네 가지 요소'에 또 하나의 요소인 '신념'을 추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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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코스톨라니 투자총서 1
앙드레 코스톨라니 지음, 한윤진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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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미술사 전공하고 피아니스트 되고 싶었는데 증권투자자가 된 사람.  

'인생을 즐기십시오'를 지쳤던 투자자.

하기 싫은 것을 안하겠다고 할 수 있는 제정독립 중요하게 여김.

돈에 대한 욕구를 토대로 형성된 자본주이 경제체제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사기다.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은 케이크의 가장 작은 조각이 공평하게 나누어진 작은 케이크 조각보다 크기에 자본주의가 선택되었다는 비유. 뼈때린다. 

돈: 자유세계의 가치 척도 돈은 건강 다음의 특권인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만장자란 자기 자본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데 있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

개인적인 성향과 그에게 주어진 의무(예컨대 가족 부양 의무)에 따라 다르다.

수전노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백만장자일 수 없다. '독립적'일 수 없으니까.투자로 백만장자가 된 앙드레 코스톨라니

- 가능하면 스스로 살 집을 사기.

절대 빚내서 투자하지 말 것.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소신파 투자자에게는 돈, 생각, 인내, 행운이 필요하다.

코스톨라니의 달걀

내 돈으로 산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시세 하락에도 평안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평안하다.

10가지 권고사항

10가지 금기사항

이 마지막에 있다.


뭔가 체계가 없어보이지만 여러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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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또 한 번 오독하자면, 디킨슨의 고백은 이 시대 딸들의 선언이다.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삶의 한때를 바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마침내 어머니의 뜻대로 살지 않기로 결심한 딸에게는 '어머니가 결코 없다'. 이 선언은 모계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내 안의 '여성적 힘'을 선포하는 것이고, 어머니의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며, 나를 낳은 여자의 분신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 여성에게는 모두 어머니가 없다.

p13  

...사랑에, 연민에, 미움에, 상처에 집착하느라 엄마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엄마의 삶을 미화하거나 비하했을지도, 왜곡하거나 편집했을지도, 지나치게 긍정하거나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 나타난 엄마가 나의 상상과 염원을 뒤섞어 창조한 낯선 여인이라면 그것은 쓰는 사람으로서 나의 한계와 딸로서 나의 애증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계와 애증 속에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노라 말할 수밖에 없다.

p24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차근차근 배우면서 잘하는 거지. 배움의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서투름을 감당하지 않은 대가로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거야. 어리석고 어리석지.

p29

...나는 스스로를 모범생이었다고 말하고 너는 네가 불량했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10대는 어느 정도 닮아있지 않을까? 금지된 걸 원하고 억압받지 않으려 했다는 점에서.

p31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곱으라면 그때인 것 같아. 학생이었던 시절,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

p42 

 나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은 평범함을, 리베카 솔닛의 표현을 빌리면 '소멸하는 방식'을 깨우치는 여정이었다. 집단에서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다.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법,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않는 법,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말하는 법을 배웠다. 자기주장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상냥한 표정을 짓는 법을 배웠고, 눈치를 살피는 법을 배웠다. 중요한 것은 간절히 '싫다'거나 '안된다'고 말하고 싶은 상황에서 부드럽게 거절하거나 어쩔 수 없이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다.(그러나 많은 경우 완곡한 거절은 거절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것은 불운한 사건들로 연결되었으며, 나는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여성이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사회화인지도, 남이 원하는 모습이 됨으로써 자아를 분열시키는 일인지도, 자의식이 결여되는 과정인지도, 자신을 축소하는 방식인지도, 혹은 그 모든 것이거나 그 이상의 것인지도 모른다.

p64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나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어. 시집살이하면서도 선택권도, 결정권도 없었지만 내 정신만은 지킬 줄 알았지.

p75

 ...레베카 솔닛은 말했다. "무언가를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행위는 무대책. 무관심. 망각을 눈감아주고, 완충해주고, 흐리게 하고, 가장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장려하는 거짓말들을 끊어낸다....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다.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일 뿐 전체나 마지막이 아니다. 그러나 명명되지 않은 행위나 현상은 정의되지 않기에, 이름이 없으면 해방의 첫 단계로 진입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설명하기 위해, 표현하기 위해, 연구하기 위해, 아니면 단순히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이름이 필요하다....

p77

..."다시는 하나의 이야기를 마치 유일한 이야기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p84

...감정적인 것을 여성의 영역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무감각하게 사회화된다. 타인에게 침묵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본연이 자아에 대해 침묵한다. 남성다움에 사로잡힌 이가 생각과 감정을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구구절절하게'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나약함, 즉 여성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은 나약함을 통제당하지만, 캐럴 길리건이 간파했다시피 "한때 여성의 것이었던 연약함은 인간의 특성"이다. 약함은 여성다움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다.

p96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 다시 너를 키운다면 네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칭찬해주고, 안아줄 텐데. 잘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북돋워줄 텐데......산다는 건, 세상과 부딪친다는 건 자신감이 점점 꺾이는 일인데......네가 피기도 전에 내가 꺾어버린 것 같아.

p122

...고작 열일고여덟 살 때, '최고가 되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가스라이팅처럼 느꺼진다. 모든 사람이 최고가 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우리가 최고가 아니라도 존중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발레리나가 되지 않았고(못했고) 글을 쓰고 있지만 최고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쓰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쓰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것이 최고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더는 나의 말과 몸을 실패작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랬다면 나의 실패를 엄마의 실패(또는 엄마가 실행한 양육의 실패)로 바꿔치기했을 것이다. 세상은 한 사람의 성패를 자주 어머니의 공과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의미로든 패배했다고 여겨지는 이의 어머니는 이야기할 수 없을뿐더러 실패의 책임을 떠안는다....

p125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작가인 재클린 로즈는 <숭배와 혐오>에서 어머니는 딸이 불리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세상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마음과, 현재의 세상에서도 딸을 무탈하게 키우려면 자녀의 사고와 행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전자는 소망으로 그치는 데 반해 후자는 행위로 나타난다. 우리 관계에서도 이것은 반복되는 행위였다. 엄마가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늦게 다니지 마라', '노출이 많은 옷을 입지 마라', '밤에 남자와 단둘이 있지 마라') 나는 왜 그래야 하냐고 따지는 식으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소망과 딸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어머니에게 "엄마 때문이야"라는 말은 가혹하다. 나아가 어미니의 실패만을 부각함으로써 세상의 실패를 숨긴다.

p126

...나는 덧붙여 묻고 싶다. 끝없이 요구받고 끝없이 책임지는 것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세상의 부조리를 외면한 채 어머니만을 처벌하는 것은 정당한가? 모성에 대한 단일한 주장은 여성이 자기 안의 다양한 정체성과 대면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가? 나아가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한 여성, 모성을 절대적 소명으로 여기지 않는 여성은 언제나 이기적 존재로 묘사되지 않는가?

p135

엄마의 노동은 개인적 포부나 의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기인한 것이었다.

p143

....너그러워질 수도, 여유로워질 수도 없는 거야, 악순환의 반복이었지. 불안하니까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니까 실패하고, 실패하니까 더 초조하고......

p148

 엄마가 생계를 위해 '바깥일'을 할 때도 '집안일'을 대신하거나 함께해준 사람은 없었다. 가족 모두가 가사노동을 엄마의 '일'로, 어쩌면 '역할'로 여겼다. 과거나 지금이나 집 안팎에서 이중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은 나의 엄마만이 아니다. 일하는 여성의 다수가 그렇다. 흔히 성역할을 생계 부양자인 남성과 가사 노동자인 여성으로 이분하지만, 이것은 중산층 가운데에서도 일부일 뿐, 많은 여성이 생계 부양자이자 가사 노동자로서 이중 굴레에 갇힌다.

p153

...장소는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가 범죄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곳에서 누군가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곳에서 해야 하는 본연의 행위만을 생각한다. 배설, 이동, 걷기처럼.

 그러나 어떤 장소보다 내가 빈번하게 폭력을 경험한 곳은 일터였으니, 나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폭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p162

...물리적이거나 성적인 폭력에 비해 언어폭력의 잔혹함은 자주 간과된다. 그러나 언어만으로도 누군가를 미치거나 죽게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데에는 거대한 악이 필요하지 않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모욕과 조롱과 협박으로도 충분하다. 전화, 문자 메시지, 메일함, 음성사서함으로 날아드는 나에 대한 끈질긴 존재 부정. 나를 지워버리고 끝내 사라지게 하려는 말에 나는 질식해갔다.

p203

...엄마는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독서를 자기만의 정신적 공간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 아니었을가?'가두고 싶은 자'와 '자유로워지고 싶은 자'가 평생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p207

..."며느리- 아내- 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공간'에 대한 책을 쓰면서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를 떠올렸다는 것은, 집안에서의 권력관계가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 새삼 깨달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말씀과 노동일 수도, 장소와 장소 상실일 수도 잇다. 장소 상실은 한 사람의 자리를 지워버림으로써, 또는 모든 자리에 그 사람이 머물게 함으로써 누군가를 '있지만 없는 사람', '부재하는 존재'로 만든다. 이 책의 초반에 엄마를 '목소리와 자리가 없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이유다.

p208

 그러나 가사노동은 다른 노동과 마찬가지로 귀하거나 천한 일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누구나'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답게 생활- 생존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더러운 옷을 빨고 먼지를 털어내고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가사노동을 비하하거나("집에 가서 밥이나 하라"거나 '부엌데기'라는 표현처럼) 반대로 상찬하지만(남성들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어머니의 따듯하고 그리운 집밥'같은 말로 음식 만드는 노동을 추켜세우면 나는 채널을 돌려버린다), 두 관점 모두 편의에 따라 덧씌운 이미지일 뿐 가사노동의 본질은 아니다.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원하는 여성이 있다.- 많다는 것 역시 핵심이 아니다. '그 선택'말고 '다른 선택'이 가능했느냐가 핵심이다.

p212

....."사람이든 일이든 떠나는 것에 연연하지마. 더 나은 기회가 오려는 거니까"....그것은 지나가고 다가오는 것들 사이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꼿꼿하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온 이의 조언이었다."어떻게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어?"라고 묻자 엄마는 "책을 읽으면서."라고 대답햇다. 그 말은 나에게 일종의 경구다. 열렬히 읽는 삶이 그녀를 그녀이게 했다면,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사는 한 타인이 나를 훼손해도 나는 훼손당하지 않고, 타인이 나를 모욕해도 나는 모욕당하지 않으며, 타인이 나를 소멸시키려 해도 나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힘든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어?"라는 질문에 "살아가는 거야, 극복하는 게 아니라."라고 대답하는 엄마에게서 상처를 극복하지 않고 살아갈 가능성을 발견한다. 극복의 서사가 승리하는 자, 성공하는 자의 이야기라면 우리의 이야기는 극복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자, 상처에 의해,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p219

 ....언니야, 난 힘들게 살지 않았던 것 같아. 당시에는 힘들다고 느꼈던 일도 사는 게 그런 거지 나만 힘들었나 싶어.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고된 시간을 통과한 지금의 내가 나는 좋아.

p220

...행복이 대단한 건가, 매일매일 평범한 날이 계속되면 그게 행복이겠지.

p239

...걱정거리 없이 "매일매일 평범한 날이 계속되"었다. 엄마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새로운 일을 도모하고 파격적인 일을 시도하는 대신 한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집안 일하고 책 읽고 산책하고 너희와 통화하고 텃밭과 정원을 가꾸"었다. "어머님의 식사"라는 일생일대의 의무에서 벗어난 엄마는 "언니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점촌에 친정 가족도 보러 가"면서 뒤늦게 찾은 자유를 만끽했다. 엄마에게 "자유", "만족", "행복"을 주는 일상이 너무 소소해서 내가 쓰고 싶은 대단한 결말 따위는 오히려 대단하지 않게 느껴진다. 엄마는 창가에 앉아 황혼을 바라보며 삶의 유한성을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지어낸 이야기보다 훨씬 더 '괜찮은'결말, 우리의 '진짜'이야기다.

p247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 위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면 바뀌는 모자를 알아채주는 정도의 일만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p253

...그러나 한편으로 그 말은 스스로를 돌본 적이 없는 남성, 여자 없이는 기본적 생활조차 어려워하는 '영원한 돌봄의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p256

...돌봄의 책무를 가족, 가족 가운데에서도 특정한 사람이 전담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질병 이후에도 계속될 관계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p263

...."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과 말이 세상의 변화를 거드는 걸 보는 것은 작가이자 또한 생존자인 내게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네 덕분에 또 조금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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