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8  

 그것은 아무도 없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느낌,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느낌,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의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따.

 그러나 홀로코스트 역시 느껴졌따.

 키퍼의 그림들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는 있지만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진중함, 즉 때로는 엄숙하고 때로는 끔찍한 진중함 속으로 우리를 이끄는 듯했다.

 이들을 그린 키퍼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결코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 이름은 단지 하나의 상징으로 그림들이 나온 장소일 뿐이었고, 개성이 부여된 어느 누군가-이를테면 여름날 오후에 반바지 차림으로 잔디를 깎으며 어슬렁거린다거나, 유럽 어딘가의 놀이공원으로 나섰다가 소란스러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시지와 으깬 감자를 먹으며 콜라를 마시는 인물-로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p30

 '집'이란 친밀한 공간으로, 자기 몸에 맞게 설계되어야 한다. 키퍼가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에서, 그는 그런 집을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그는 그런 친밀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36

...모든 예술 작품은 내면으로부터 외부로의 움직임 속에서 탄생하며, 그 움직임은 축적된다. 내면에서의 시작은 극히 미약하며 하나의 작은 아이디어나 상상 또는 그저 충동에 불과하지만, 외부의 물질성을 만나 형태와 색을 갖추면서 크기나 무게가 점점 더해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 안에서 예술을 찾는 것은 소용이 없고, 오직 예술 안에서 예술가를 찾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키퍼는 자신의 예술 속 어디에 있었을까?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작품 속에서 한 세대, 한 시대, 한 시절을 대표하는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개인으로서의 '그'는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예술은 바로 '자아'를 초월하는 것에 있었고, 역사와 철학, 신화가 구성하는 집단적인 형상을 끊임없이 추구해 왓다. 그의 작품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우리가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느껴졌떤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림 앞에서 나 자신의 자아와 신화의 '전체' 사이의 압력이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었다. 신화가 자아의 해방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겠는가?

 키퍼의 예술은 '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p55

 모든 예술은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을 다룬다. 파란색의 붓질 한 번이 강이 되고, 흰 종이 위에 여섯 획을 그어 하늘이 되고, 어느 배우가 오필리아가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을 재현한다는 것이 바로 예술의 기반이다. 눈 결정과 얼음과 곰팡이는 그 자체를 나타낼 뿐, 다른 어떤 것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들은 예술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며 그저 자연이다. 그리고 키퍼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이 구분, 즉 그 자체인 것과 다른 어떤 것의 재현인 것 사이의 경계,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좁혀나갔다. 재료의 재현은 재료 그 자체로 점점 더 깊이 밀려났고, 어떤 경우에는 재현은 완전히 사라졌으며, 그는 더 이상 재를 그리거나 짚을 그리거나 나무를 그리는 대신, 재, 짚, 나무를 그림에 직접 적용했다.

 그러면 무엇이 일어날까?

 그렇게 되면 세상 그 자체가 언어가 되는 것과 같다. 그때는 우리가 세상 그대로를 일게 된다. 재를 읽고, 짚을 읽고, 나무를 읽는 것이다. 재, 짚, 나무 자체는 물리적인 실체로서 중립적이지만, 그 자체만의 물리적 실재에 갇혀 있지 않고 오히려 의미로 가득 차서 충만해진다....

 이 모든 것은 재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는 우리가 규정된 세계에서 산다고, 즉 문화는 변화무쌍하고 자연은 불변하는, 혹은 현재는 변화무쌍하고 역사는 불변하는 세계에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그리고 키퍼는 그 환상을 뒤흔든다. 키퍼의 작품은 주로 일상적인 재료로 구성되며, 그는 작은 손길을 더해 의미를 부여한다....

p57

 신의 이름?

 '나는 나이다.'

 그저 존재하는 그대로인 것, 그것은 의미의 극단이다. 스스로만을 의미하며 다른 어떤 의미도 없는 것, 세상 또한 이와 마찬가지여서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침묵하며 눈을 감는 면은 언제나 있다. 키퍼의 작품 속에서 침묵하고 외면하며 의미가 텅 빈 남은 키퍼에 의해 만들어지니 패턴 위로 흘러넘쳤고, 그 안에서 세상이 재현되었으며, 그리고 그때 발생한 것은 이해할 수 잇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 사이의, 읽을 수 있는 것과 읽을 수 없는 것 사이의, 의미 있는 것과 무의미한 것 사이의, 그리고 우리와 신 사이의 대화였다.

p84

 그렇다고 키퍼가 진정성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왜냐하면 그런 연출과 역할, 반복과 루틴은 외부에 속하고, 그 목적은 바로 내면을 보호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은 더 강해질 시간과 고요함을 얻기 전에는 극히 취약하며, 다름 아닌 그 내면에서 아주 작고 섬세한 무언가로 자라난다. 그렇기 때문에 내 관심은 키퍼의 역할이나 예술계 그 자체가 아니라, 한때 그가 예술계로 가져왔던 무언가, 오직 그것에 있었다. 나는 그가 이따금씩 자신의 작품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충분히 순수한 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러나 결코 승부를 겨냥한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그렇게 된다면 예술은 죽어버린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다른 모든 것은 게임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술가를 인터뷰한다는 것은 예술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며, 예술과는 아무 관련없이 그 자체로만 흥미로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예술로부터 전적으로 단절되기 때문이다.

p91

 그의 연설은 그가 자란 편협하고, 소시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던 한 청년의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 청년은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이고, 내면에 지니고 있는 것이기 구태여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술 학교에 지원하는 대신 법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법학만의 독특한 언어, 즉 그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한'언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 저는 법을 공부해서 갈망과 혼란으로 가득한 제 내면에 질서와 평온을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하고 키퍼는 말했고, 나는 정리되지 않았지만 강렬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는, 그러나 어디에서도 배출구를 찾지 못하는, 혼란스러운 내면을 가진 열여덟 살의 그를 상상했다. 법학과 명확하게 현실을 구분 짓는 엄격한 지적 체계가 그러한 마음에 매려적으로 느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또한 몇 년 후에 그가 법학 공부를 그만두고 자신마의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의 학문에 대한 존경심은 어마어마해 보였다.

p104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즉, 과거 또한 현재인 것이다.

p108

 나는 키퍼가 물성이나 흙과 금속 등의 무겁고 흔들리지 않는 재료를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에게는 이미지 작업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키퍼는 단순히 그림을 오려 붙여 넣은 책 한 권만으로도 문화 전체를 담아낼 수 있고, 놀랍도록 손쉬운 수단만으로도 우리 일상 속에서 고대 신화가 펼쳐지고 살아 숨쉬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벼움에는 '저항'이 따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품고 잇는 것이 바람에 날려 다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예술이 그 이름값을 하려면 예술가는 현실을 한 면 이상 보여 주어야만 한다. 가벼움이란 공기이고, 하늘이며, 상상의 세계이고, 추상이다. 가벼움이란 흐름이고, 가벼움이란 강이다. 가벼움은 우리를 어디로든 데리고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여기, 바로 지금이라는 특정 장소, 특정 시간, 특정한 몸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저항은 숲이고, 땅이며, 또한 죽음이다. 저항은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 우리에게서 등돌리는 것, 문화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p144

 ...나는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을 굳이 찾아가지는 않네. 기억이 현실보다 훨씬 강하니까. 어떤 장소의 기억은 그 장소 자체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하지. 우리가 성장하고, 또 기억도 우리와 함께 성장하니까.  

p158

...그것들은 여전히 과정 중에 있었고, 아직은 완성된 예술 작품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 미완성인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바로 키퍼의 예술이 지향하는 바였다. 현실과 그 안의 모든 것은 미완성이며 늘 변화하기 때문이다. 두 차원의 만남은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예술 작품은 완성되는 순간 그 과정에서 들어올려져 나오지만, 현실은 계속된다. 작업실은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는 장소였고, 그래서 키퍼에게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다.

p169

 세상을 향한 우리 자신의 불확실한 접근 방식, 우리가 사실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미스터리에 대한 답이 아닌, 미스터리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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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강 그리고 안젤름 키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최정애 옮김 / 비트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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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예술가 안젤름 키퍼에 대해서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가 쓴 글.

읽으면 슈바르츠발트, 프라이 부르크. 독일 현대사. 숲과 강에 대해 알고 생각하게 된다.

아...비트윈 출판사 책이었구나 하게 된다.

휴바르츠발트 출신 안젤름 키퍼. 프라이부르트에서 대학을 다녔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안젤름 키퍼가 가진 거대하고 초인적인 표현에 매료되어 그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다.

'내면의 공간을 확장하여 무언가를 숨기는 방법'

안젤름 키퍼를 인터뷰한 기록.

오래된 예술가의 예술성 뿐만아니라 허세? 천진?까지 알게된다.

안젤름 키퍼에 대한 글을 쓰고자 수차례 작업실을 방문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은 오년동안 쓰여진 글들. 

내가 이 글을 읽고 안젤름 키퍼의 예술 세계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언급으로 듣던 그의 그림들이 좀더 친하게 느껴지고 뭔가 더 알 것 같긴 하다.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란다.

2014년 전시회

인간이 부재한데도 인간적인 것으로 가득한 전시장.

직접 찾아간 작업장.

엄격함과 자유분방함이 혼재하는 키퍼.

압도적인 진지함. 잔혹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작품

<발할라> 전시

예술은 우리에게 공간, 시간을 되돌려줘야 한다.

작업현장구경, 완성된 결과를 우연에 맡기는 작업, 재료 그 자체.

존재하는 그대로인 것. 의미의 극단. 에너지와 동력. 키퍼의 고향 숲.

거칠구 우연성 크게 작용하는 키퍼의 작품.

편협하고 소시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환경 벗어나기 위해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던 청년. 모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듯한 법학의 언어.

예술은 예술가 자신을 위해 이루어진다.

천진한 왕같은 모습의 키퍼.

어릴 때 만든 스크랩북들 안에 그의 예술의 핵심이 있고, 이후 오십년간 그것들이 확장되고, 거기서 나온 관념과 상상이 세상으로 물질적 현실로 뻗어 나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법학을 좋아했다는 키퍼, 법이 시적이고 우리가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 건지에 대한 것이 행정법이라고...그토록 복잡한 것이 삶이라고 결함이 있었던 위대한 예술가들, 위대한 사상가들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하이데거에 대한 평가...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치 과거, 일기 전과 후 결국 드러나게 되는 수령 같은 것.

오랜 귀족 가문의 박물관, 역사의 쓰레기 더미.

오래 산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예술가로서의 면모. 

기억이 현실보다 강해서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은 그 장소 자체보다 복잡하단다.

우리는 성장하고 기억도 우리와 함께 성장하니까.

끝없는 공간에 대한 욕망, 일에 대한 욕망을 가진 키퍼.

현실과 그 안의 모든 것은 미완성이며 늘 변화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키퍼의 예술이 지향하는 바였대.

손이 닿는 모든 것을 예술로 바꾸는 키퍼.

키퍼는 타고난 쇼맨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분리되어 있다고 느낀다는 강연.

장인 정신이 깃든 명료함으로 구축된 고흐의 그림. 그럼에도 감동을 느낀다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예술, 언어로 밝힐 수 없는?

만물은 흐른다. 강. 헤라클레이토스.

만물은 움직이지 않고 항상 동일하다. 파르메니데스.  

숲의 철학자 하이데거.

강과 숲 사이에 있는 키퍼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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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명동시일편
박시영 지음 / 프리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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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 특이했다. 태산명동시일편.

바람, 사랑, 이별, 돈 시로 장이 나뉘어 있다.

좀 특이하다. 간결하고 경쾌하다. 가볍고 쉽게 읽힌다. 책제목이 과한듯?

1장. 바람

입춘대길/ 춘심/봄아가씨/ 봄날의 소문/4월/진달래/목련/ 벚꽃/겹볒꽃/ 청포도/ 석류/ 매미/ 

도시와 형용사/비/ 산꽃/ 가을하늘/우문현답/ 낙엽/ 자전거

대부분짧고 뭔가 가볍고 산뜻한 느낌. 계절 느낌

제2장. 사랑

너는 내 우주/ 그대 생각/ 너/ 너의 향기/ 서쪽 하늘/ 나 이제 알아요/ 첫눈이 오면/ 그리움/

AI의 고백/ 고슴도치/ 님 마중/ 말은 쉽지요!/ 조약돌 고백/ 달빛/ 아픔이 사랑에게/ 철학이 사랑에게

사랑과 자유/ 에밀레/ 다시 사랑일/ 줄/ 아버지/

제3장. 이별

사랑과 오해/ 꽃잎/ 잊어야지요/ 이별/ 이름 하나/ 별리/ 강화도 썬셋로드/ 금강의 눈물/ 소쩍새/

텅 빈 자리/ 이제는 모두/ 스른 성인식

제 4장. 돈

돈, 너는/ 새로운 신/ 고차원/ 군상/ 희나리 사랑/ 속보./ 한랭전선/ 예나 지금이나/ 어이없는 나/ 

잔고의 기도/ 인생/ 그 사람/ 돈두뎃!/ 오지랖 넓음죄/ 돈의 패배

제5장. 시

동행/ 악수/ 경배/ 초대/ 한 줄 詩/ 태산명동 詩일편/ 어떤 시인/ 겨울 시인/ 詩의 승리/시인과 원죄/

술잔과 시인/ 詩의 적체/ 詩야 아롱아롱/ 남쪽 바다로 갑시다. 대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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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거울 속의 몸을 '나이가 들어서' 혹은 '사는 게 힘드니까'라는 말로 순순히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몸을 위해 무언가를 시작할 것인지.

 자신의 몸을 바꿀 수 없다면 인생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후자를 선택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그것은 단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p27 

 사회적인 성공은 단지 노력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성공이란 사람 수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의자에 앉기 위한 게임 같은 것이다.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국 누군가는 의자에 앉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왜 이렇게 잘 풀리지 않을까.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할 때마다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아온 Y선배는 "특별한 사람은 없어. 운이 나빴을 뿐이야. 맛있는 밥 정도는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으니까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라고 위로했다.

p29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운동을 하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미 지쳐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강도 높은 운동은 우리의 몸을 더욱 피곤하게 만든다. 매일의 피로를 풀어 주는 간단한 스트레칭만으로도 충분하다. 숩타우다라까르샤나사나는 과도하게 긴장되어 있는 허리 근육을 풀어 주는 아사나다. 오래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에게 꼭 필요한 아사나이기도 하다.

p43 

...운동을 계속해도 효과가 없는 이유는 대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운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적합하지 않는 운동을 선택하는 걸까. 운동에 대한 오류는 다음 두 가지가 가장 흔하다. 자기 만족감을 위해 운동하거나 초보자가 혼자서 운동하거나.

 p64

 그 동안 F스포츠 센터의 구인 광고가 왜 이렇게 자주 올라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합리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한 조직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감정 노동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엇다.

p83

 ...무엇보다 이곳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중요햇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이상은 언제나 내 몫이 아니었다...

p87

 ...뮬라다라는 삶의 짐을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의미한다. 일과 가족이 있고 돈디 지불되는 현장이다. 뮬라다라가 강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 홀로 떨어져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p91 

...정신 승리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문제를 대하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다.

p113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고, 일하면 병들어 죽는다. 삶은 똑같이 의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나는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고와 땀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 밤새워 일했던 시간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 시절에는 내 가능성과 한계를 알고 싶었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냐는, 모두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고 일하는 거라는, 당신이라고 특별하지 않다는 타인의 말에는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이야말로 정상이 아니고 인생에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고 해야 하는 일은 나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내가 아플 때 누구도 대신 아파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p123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모든 일을 잘하려고 애쓰는 대신 잘할 수 없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햇다. 무엇이든 다 하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p126

 ...현대 요가의 큰 스승인 아옌가는 요가를 하는 사람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는 연인과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햇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절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을 되풀이해 생각했다.

p135

 누구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정작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우리는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소위 인사이더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나는 앞으로도 지금의 인류가 구축해 놓은 사회 시스템 전체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가 그 거대한 시스템의 미세한 부품으로 일생을 보내게 되리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p171

 ...열심히 한다는 점에서 차마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잘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는 어딘가 모르게 보기 흉했다. 그녀를 볼 때마다 혹시 나도 저렇게 요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그머니 자신을 돌아본다.

 p178

...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더하기보다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p179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요가였다. 하루하루 연습량을 쌓아가는 과정은 끝없는 기다림이다. 그 과정에서 희망적인 계시 따위는 받지 못한다. 지쳐 버리거나 조바심을 내면 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p180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타인에게 존중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바르게 고삐를 쥐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노력은 갈 길을 잃고 제멋대로 달려 나간다.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면 노력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갈 뿐이다.


 우리의 마차는 가야 할 곳을 향해 제대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마차의 주인은 사라지고 텅 빈 마차만 제멋대로 질주하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자유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다. 본래 그렇게 되어야 하는 나 자신,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 그렇게 본질에 꼭 맞는 형태를 이루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자유는 역설적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을 때 얻을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일은 변함없이 매일 수련하는 것이다. 삶을 동요하지 않는 일정한 무엇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높은 단계의 요가 수련이다.

p204

 나에게 요가와 글쓰기가 그렇듯 선택은 결과가 아니라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과정이 전부다. 지루하고 평범하게 여겼던 작은 것들이 무수하게 쌓여 만들어지는 굳건한 내 자신이다. 고집이나 자존심이 아닌 자신의 근간이 되는 강인함이다.


 어느덧 40대 후반이 된 나에게 진정한 나 자신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만들어질 내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지금은 온전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금을 허비한다. 집에서, 직장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커다란 도시 안에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우리는 그 순간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느끼지 못하고 같은 방향으로 마음이 닿지 않는다. 좀 더 친밀한 관계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보낼 때조차 부모는 그 순간의 자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읨 ㅣ래 혹은 자신의 과거를 본다.

p208

 ...요가에서는 마음의 거친 형태가 몸이고 몸의 섬세한 형태가 마음이라고 말한다.몸과 마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동전이 양면처럼 함께 존재한다. 몸이 병들면 마음도 약해지고 마음이 상처를 받으면 몸도 아프다. 다시 말해 몸을 단련하지 않으면 마음도 단련할 수 없다.

 허리와 골반을 바르게 세우고 근육을 만들기 위해 소비한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마음을 교정하는 일은 몸을 교정하는 것만큼이나 긴 시간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다. 나에게 마음이란 다루기 어려운 예민한 나 자신이었고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마음보다는 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몸에 대한 수련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그 과정이 마음에도 작용할 것이다.

p215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자신에 대한 실망만큼이나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기쁨이 크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그리워하면서 오늘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하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고 싶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영원한 지금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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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 바닷가마을에서 깨달은 지금을 온전하게 사는 법
전지영 지음 / 허밍버드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요가를 하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온전한 지금을 산단다.

나도 그러고 싶네. 

온전한 지금을 사는게 말처럼 글자처럼 쉽지가 않지만.

읽다보니 요가가 왜 수련인지 알 것도 같다.

이제 난 반백살을 넘었다. 어렸을땐 힘이 들었던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좀 사는게 순해진 느낌. 1

주변에 좀 더 휘둘린달까?

환경이 변한 건 아닐테고 스스로의 여유랄까.

그냥 내안의 기준으로 살자. 지금을.

step1. 누구나 흔들리고 넘어질 때가 있다.

01. 도대체 내 몸은 무슨 일을 겪은 것일까

02. 무심함이 나를 망가뜨렸다.

직장생활, 불규칙한 일상, 채소 과일 안먹는 식습관.

(음 나도 한창 바쁘고 힘들댄 김밥, 피자만 먹었던 적이 있다)

그러다 결국 스러짐.

운동 시작했다가 이런 저런 신체적 문제 오히려 겪음.

안하던 사람이 하면 그럴 수도....

03. 내 구두 뒤축은 왜 한쪽만 닳는 것일까

04. 건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로 늙고 싶다.

05. 텅빈 통장과 고양이

두마리, 요가 지도자 자격증. 요가로 생계를 꾸려야 하게 되었는데 최저 임금.

06.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

이혼, 원래 하던 디자인 업무 직장도 그만두고 살던 곳도 옮기고 불안정했겠다.

step2. 잘하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07. 바닷가마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 생각해보면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 땜에 더 힘들수도.있겠다. 그냥 내 기준으로 살면 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게 자유롭게 안되니까. 다들 무리하게 되는듯.

이 사람도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거지.

08. 엉망이 된 나를 마주하는 일.

좋지 않은 습관으로 변형된 신체를 되돌리는 과정은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좌절감 피하기 위한 정신 승리법은 안돼.

스스로 바뀌는 걸 막는 길이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건 자신뿐이다.

잠깐의 부정적인 감정 극복할 수 있을정도의 어른이 되자.

09. 운동할 시간이 있으면 돈을 벌지

10. 나를 상하게 하는 일은 이제 그만

인생에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고 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내가 아플때 아무도 대신 할 수 없으니까.

11. 사랑하면서 동시에 절망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잘하려고 하기보다 할 수 없는 일을 안하기.

12. 오직 나를 위해 시작할 용기

요가도 무리하면 안되는 운동이구나.

요가강사여서 수없이 반복하는 실패를 뒤로하고 오직 자신을 위해 다시 또 시도할 용기를 내었단다.

13. 채식. 나를 위한 선택

몸에 좋은 음식 먹는것보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14. 나는 바닷마을 요가 선생님입니다.

소통은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일

step3. 오늘의 평온을 온전히 누리고 싶다.

15. 추하게 도착하는 것보다 늦게 도착하는 편이 낫다.

무지와 욕심 때문에 다친다. 결과를 염두에 두지 말고 계속하기

16, 삶을 동요하지 않는 일정한 무엇으로 바꾸는 것

올바른 삶. 이성으로 감각 제어하면서 자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자유는 무한하다는 의미도 네 멋대로 한다고 얻을 수 있는 가치도 아니다.

그런 건 오히려 끊임없는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요가. 유즈는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는 마음에 마구를 채우는 일.

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기술을 더하기보다는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먼저다.

올바른 방향의 노력을 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변함없이 매일 수련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데 그것이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의 근본에 도착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뭐든 그래 꾸준히, 계속.

17. 나답게 살기 위한 첫발.

한발짝한발짝. 언제인지 알 수 없지. 그냥 어느 순간, 매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 같은 어쩌면 바로 그날 그 순간.

18. 평범한 것들이 쌓여 굳건한 나를 만든다.

참 다들 글쓰기로 귀결될 수 밖에 없구나.

씨앗이 아니라 정원자 

타고난 나를 발견하는게 아니고 지금의 내가 어떤 선택과 행동에 따라 나 자신이 규정된단다. 

선택은 결과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과정. 지금을 온전히 살자. 역시.

19. 중요한 것은 오직 지금이라는 시간

요가에서 마음은 몸과 마찬가지로 나를 이루는 요소라 단련할 수 있다.

동전의 양만 같이 함께 존재한다.

주어진 것 외에 다른 것을 고민하는 일은 시야를 흐리게 한다.

- epilogue

a읍의 여성들. 가족 부양하고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사람들. 나이가 드니 그래서 어쩌면 마음이 더 건강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민할 짬이 없는게 아닐까. 상처를 알아차릴 새도 없는...

'보통의 삶이란 정상적인 삶 혹은 제대로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니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보통의 삶, 정상적인 삶, 제대로된 삶이 딱 공산품처럼 규격이 있는 건 아닐거다.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도 안되는 잣대들로 쌍방이 힘든 것이다. 타인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따르면 될 일이다.

길이 정해졌는지는 모르겠고 나는 걸어가는 것이 좋다.

그냥, 나아간다. 꾸준히. 길이 있으니가. 때로는 길을 내면서 서두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요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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