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3  

 '그들'에게 맞서기 위한 좀 더 강력한 평화의 캠페인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통받지 않으려는 자기 방어와, 죽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으로 똘똘 뭉친 그런 평화의 연대를 제안한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일만큼 힘든 여정이겠지만 그것만이 전쟁을 막을 답이라고 생각한다. ....  

p45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유대인이다. 그리고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인들의 유대인이다." 마찬가지의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보 마테- 캐나다 의사인 그는 트라우마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 도 이스라엘이 "20세기와 21세기에 걸친 최장 기간의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잇다고 비판한 바 있다.

p46 

자신의 절대 권력에 사로잡혀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그 절박한 존재는 한때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채찍이나 총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열등한 종족'을 길들이는 일이 조건반사적으로 진행된다고 믿게 된다.(장폴 사르트르)

p66 

...문화 인류학자이자 죽음학의 대가인 어니스트 베커는 신경증이 삶의 진실을 나타내는 증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앞서 미네타가 야전 정신병동에서 만났던 군인들의 절규처럼, 삶의 위기에서 요동치는 우리의 신경줄도 거짓 이나 과장을 연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을 말하고 있는 쪽은 극도의 안정이 요구되는 전쟁신경증 환자들에게 '마약성 각성제'를 투여하면서까지 전쟁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들의 잔혹한 심성이야말로 진정 치료받아야 할, 심각한 정신질환이자 병증이라고 생각한다.

p116

 ...그럼에도 나는, 아주 약간, 의문이다. 전쟁의 어두운 면을 보지 않고서 무려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평화에 대한 진정한 희구는 "전쟁은 지옥이야"로 시작하는 우리의 대화 속에 진심 어린 '혐오'를 담아내는 일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 몰느다. 비록 그 과정이 썩 매끄럽지만은 않겠지만 말이다.

p120

 그러나 전쟁의 언어는 고통이라는 붓과 먹물로 쓰여야할 당위가 있다. 전쟁은 상대방을 "상처 입히는 데" 온 역량을 집중하는 현상이다. 따라서 반대로 온 역량을 다해 고통을 표현한다고 해도 늘,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다. 명백하게도 세계는 전쟁이 제공하는 엄청난 규모의 감각적 고통을 천분의 일, 아니 만분의 일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가끔 새롭게 태어나는 표현이 있지만 대개는 정치적이다. 그래서 일레인 스캐리도 절망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고통이라는 최초의 사실 외에 모든 말은 고통을 사소화한 것이며, 핵심을 놓친 것이고, 고통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p211

..."전쟁은 사악한 인간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사악한 인간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그 말대로다. 일단 적이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면 그 형상은 시간이 갈수록 혐오스럽게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적으로 지목된 인종이나 민족 전체를 절멸해야 한다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해나간다. 저 악명 높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난징 대학살, 관동 대학살, 여타 식민지 종주국들이 제3차세계 민족들을 상대로 자행했던 대량학살은 그러한 망상이 현실화된 비극이라 할 수 있다....

p216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저기 우리를 죽이려 드는 놈들이 있다!""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

p222

...어덕서니가 엄연한 도깨비이면서도 허깨비라는 조롱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운만 있을 뿐, 자기 고유의 실체랄 것이 없기 때문이다.

p227

 이렇게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음에도 어덕서니처럼 타인의 공포를 탐닉하며 이득을 얻는 'ㅇ;ㄴ긴- 어덕서니'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인간과 어덕서니의 관계가 단순한 기생- 숙주의 수준을 넘어 공생관계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이러한 '인간- 어덕서니'들은,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해서 힘을 잃고 사라지는 민담 속 도깨비 어덕서니와 다르다. 이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위협을 끌어들이고 갖은 소란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짓'을 말한다.

 거짓과 허깨비는 다르다. 허깨비는 착시의 결과로, 사라져버리면 후유증이 남지 않는 데 비해, 거짓은 한번 발화되면 끝까지 남아 '총풍'을 '총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우리는 '인간 -어덕서니'를 퇴치해낼 수 있을까?....

 "진실의 빛을 쬐면 어덕서니는 꺼져버린다."(리영희)

p288

 ..."모두가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다."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p290

배웠어야 했다. 제주라는 섬이 1945년 이전부터 일전의 '최후결전 기지'로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6만여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진주해 도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착취했다는 사실을. 해방 직후의 유례없는 대기근과 역병(콜레라)으로 수백 명의 제주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그 와중에도 미군정이 미곡 공출을 강제햇따는 사실을. 더구나 도민들은 석유 섞인 쌀을 배급받았다는 사실을. 1947년 3.1절 기념대회 당시 6명의 도민이 군정경찰에 살해당한 사실을(부검 결과 그중 5명이 '등'에 총을 맞은 것으로 알려졋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제주도민의 10퍼센트가 들고 일어난 3.10민관 총파업의 기치를. 그럼에도 멈출 줄 몰랐던 서북청년단의 테러와 경찰의 '빨갱이' 색출.검거. 고문을. 1948년 초 20대 제주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고, 그래서 제주가 이렇게 외치고 있엇다는 사실을. "탄압이면 항쟁이다."

p301

 인간은 믿을 수 없는 것에 맞설 수조차 없다. 유일한 선택지는 후퇴뿐이다. 전쟁이 그 자체로 인간성의 패배를 상징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좌절하진 말자. 이러한 후퇴 내지 패배가 전쟁에 대한 인간의 굴종을 의미하진 않는다. 헤밍웨이 역시 헨리가 '혼자서 맺은 평화조약'을 그 단서로 제공한다. 그 정도는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잇지 않을까.

 함께 전쟁에 '불복종'하자는 거다. 전쟁에 대한 불복종을 실천하는 인간만이 전쟁에 반대하는 특권도 가질 수 있다. 한국전쟁 참전군인으로 나중에는 미국 하원의원을 지냈던 피트 매클로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전쟁의 포화 속에 죽어가는 두려움을 느껴보는 특권을 누렸다면, 만약 당신이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을 찢어놓고 그들이 불에 타 죽고 엄청난 부상을 입는 광경을 목격했다면, 당신은 평생 전쟁을 반대하는 특권, 아닌 사명감을 가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을 보았고, 전쟁을 원하는 이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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