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마인드 - 전염적 사상은 어떻게 상식을 죽이는가?
가드 사드 지음, 이연수 옮김 / 양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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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적 사상은 어떻게 상식을 파괴하는가.

어쩌면 내 정치적 성향에 반하는 내용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읽어봐야겠다. 

확증편향은 무서우니까. 치우치고 싶지 않으니까.

추천사에 진보 어젠다의 위험성. 상식을 부정당하는 경험. 인종적 배경이나 성적 취향, 정치 학습 혹은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인간은 누구나 자기기만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단다.

그 무엇도 금기가 아니란다.

부도덕한 힘이 이성, 과학, 계몽의 가치에 대한 서구의 헌신을 서서히 침해해왔다는데 저자가 말하는 부도덕한 힘이 무얼까.

음. 피해자 정치, 철회문화, 이성에 대한 공격이 언급되는데...

이런 추천사부터 갈라치기의 느낌이 나쁜 놈이 있다는 전제라...

어쩌면 읽는 내내 분노를?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 우리나라의 젊은(?) 하버드 출신 정치인이 하는 소리들과 같은 형태일 수 있겠다. 저쪽의 문제를 침소봉대하면서 시니컬하고 이성적인 것처럼 지적하고 그래서 거기에 반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선동하는 것,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 만큼이나 나쁘지 않은가.

제목도. 자극적이다.TT

여튼 어느쪽이든 자기 반성이 없는 건 위험한 듯.

나만 맞다는 생각보다 나쁜 건 없다.

어쩌면, 탈북자나 어려웠던 사람들이 왜 극우가 되는지 알 수 있을지도-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일보 읽을 때의 느낌이다. 

똑똑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나쁜 족에 서면 더 많이 나쁜거 같다.

특히,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사람. 어려움에서 벗어난 사람. 내가 해 봤어가 있는 사람.

자유가 진보를 욕하고 보수를 지향하는 건가...

보수로 전체주의인 것과 뭐가 다른지. 떼쟁이 같은 책이다.

역시 난, 설득되지 못하고 보수인게 부끄러워질 듯(진보라고 난 생각하지만 글자 대로 하면 난 옳은 걸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

백번 양보해서 보수에 대한 차별을 안해야 한다고 해도 보수라서 차별 당하는게 아니고 잘못해서 배제되는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난 생각된다.

어디서 지나치게 극단적인 주장을 하나 끌고 와서 그걸 조목조목 이성적인 척 반박함으로써 전체가 틀렸다고 엎어친다.

culture warrier맞는 듯. 비이성적이고 소모적이다. 어떤 선한 영향력도 없는 듯.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믿고 이성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조절해나가는게 민주주의지...이 책은 방종에 가깝고 이런 생각이 제노사이드?를 하는게 아닌가.

욕하면서 읽으려니 스트레스가....


<서문>

이성과 자유ㅡ개인 존엄성의 체계를 갉아먹는 대학가에 퍼진 나쁜 사상들이 주범인 병이 있단다.

사상의 병원체들을 알아내고 대학에서부터 정치, 사업, 대중 문화를 비롯한 사회 각계 각층에 어떻게 퍼지고 있느지, 그 파괴적인 영향을 예방하는 방법을 알아볼거란다.

'사회정의전사들'이라는게 있고 그걸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의 목소리를 낸다는데, 나는 왜 도찐개찐인거 같은지.

일부 맞는 말로 전체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소리높여 강요하는 것. 자극적인 말? 글?로 설득을 시도하는 것. 모두 저자가 반대하는 좌익사상가들이 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이성, 진실이 왜 상대방에겐 없고 이쪽에만 있다고 생각하나.

제1장. 레바논 내전에서 사상의 전투까지

- 레바논에서의 어린 시절

유대인이구나. 그런데 이걸 겪은 사람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하는짓은 이슬람에겐 당연한 건가...

- 내 인생의 이상: 자유와 진리

부모가 부여한게 아니라 유전자에 각인된 개인적 성격 발현이란다.

왜...더 무섭냐...유전자에 의한 성향도 있고 환경에 의한 것도 있는건지.

- 자유라는 이상

음. 제한받지 않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 진리라는 이상

인식론적 겸손이 모두에게 필요하다.(스스로가 옳다고 자신은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다는 이 저자에게도)

- 대학: 진실의 공급자들과 지적 쓰레기들의 생태계

자신은 진실의 공급자이고 반대는 지적 쓰레기인가...

포스트모던은 반과학이고 과학 부정주의가 생물학 혐오라는게 난 받아들여지지 않네...애초에 서로 학계의 페미니스트가 진화심리학을 적대시한다는 것도 좌익이 결과의 평등을 신봉한다는 전제도. 이 저자...참.

- 인간 마음의 기생충과도 같은 사상의 병원체들

저자 본인도 감염되어 있는 듯. 가정 내에서 자유를 억악받았다는 피해의식. 학계에서 환호받지 못한데에 대한 분노에...

- 서구 세계도 천 번을 베이면 죽는다.

PC운동이 자유와 정직에 위협을 가하고 거기에 반대하는 대중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단다.

여기서 의문은 왜 자유를 추구하면서 LGPTQ는 배척하는거지? 

제2장. 생각대 느낌, 진실 대 상처 받은 느낌.

생각- 느낌 - 행동인지, 느낌- 행동- 생각인지.

지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건 문제이긴 한데, 왜 저자는 자기 반대편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지.

- 진리대 상처받은 감정.

의무론적 윤리와 결과주의적 윤리. 음...일부 맞는 말, 맞는 듯하지만 편향되고 강압적이다(어쩌면 물은 100도에 끓는다. 같은 과학적 진실과 인간 사회에서 사회학적 진실은 다르다. 심지어 물도 항상 100도에 끓는 건 아니니까)

- 도널드 트럼프가 세상을 끝낼거야.

트럼프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는 억지는....이 세계의 합리는?

- 브렛 개버노 사태

성추문이 사실일 가능성은 왜 배제되는거지? 사실로 밝혀지지 않아도 논란이 되면 대법관 후보에서 탈락해도 되지 않나?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지도 못했으니까...왜 그는 피해자로 상정되지?

- 나 화났어!.나 기분 상했어!

이 사람이 예로 드는 사건들은 이 사람의 주장을 강조하기위해 평면적으로 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학계에 여성 진출이 차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지속하기에 사회문화적 장벽이 아직 존재하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수치적으로 완벽한 공평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인정하고 같이 힘들어 해달라는게 그리 어려운가....

어디있는지도 모를 개구리가 맞아 죽을만한 농담이라면 안하면 되지. 그런 농담했다고 욕듣는 건 싫은가. 욕 들을 수 있지. 잘못하면 벌 받아야지. 어디 그 정도 벌은 심하다고 잘 못한 쪽에서 하나.

얘들은 꼭 그러더라 화나게 해놓고 너무 화낸다고.

"능력이 있고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각자 원하는 걸 할 수 있어요"라는데 남에게 폐끼치지 않는 선에서다. 그 폐는 본인이 아니고 상대에 의해 정해진다. 그게 상식이지....악~~~

제 3장. 자유현대사회를 이루는 타협불가한 필수 요소들

- 소셜 미디어 기업들과 표현의 자유

나는 반대. 검열해야 한다. 테러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식의 주장은.

개인의 자유라는 탈을 쓰고 분명 공익을 해친다. 혐오와 차별을 당연시하고 꼭 주장을 이렇게 자극적으로 선긋고 반대편을 욕하는 식으로 밖에 못하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주장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건 옳은 쪽에 있지 않다는 사회적 잣대를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 표현의 자유가 나치주의라고?

응!!!!! 표현의 자유, 중요하다. 타인을 해치지 않을때만. 

- 나는 표현의 자유를 믿어요. 하지만.

이 저자의 폭력을 부추기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비방하는 담론들은 표현의 자유로 보장받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조건. 상식적인 제한은 본인에겐 해당되지 않나보다.

근데 왜 그렇게 대해도 되는 대상이 있다고 정해두고 하지?

이스라엘이 욕듣는 건 좌파가 이슬람을 옹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잘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외과의사의 칼날처럼 풍자하라.

풍자와 비아냥을 견디지 못하면 진실이 아닌가? 왜? 굳이? 그리고 비꼼을 지성으로 포장하는 거. 오히려 인간관계를 망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트있는 정도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져야 할 듯. 상대에게 수치와 모멸을 느끼게 하는 식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형태가 왜 지성으로 포장되는지 모르겠다.

진짜 풍자는 하는 자와 대상을 모두 피식하게 하는거지 분노를 자아내진 않는다.

부끄러움을 자아내는 정도가...얼마나 고급 기술인데 풍자가...자기가 하는 걸 풍자라고 생각하나...

이 사람은 여기저기서 공격받았던 자신의 언사를 업적이라 칭하며 으쓱댄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공격이 거셀수록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의 고리가 거기에 어떤 깨달음이 있고 선한 영향력이 잇는가.

싸움을 일으키는게 풍자인가. 풍자의 한계를 정하면 자유 사회가 아니라는 주장은 묘하게 맞는 말 같지만, 어릴 때 자유를 배울 때 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방종이라 했는데, 자유도 사회적 합의 안에 존재하는 게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

- 정체성 정치는 과학의 반테제이다.

과학의 비정치적인 건 맞다. 정체성과 상관없고 하지만 과학을 할 기회가 좀 더 여럿에게 열려야 한느 것도 맞다. 퀴리부인이 왜 힘들었는지만 봐도 왜 여성과학자가 적었는지...

양쪽 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으로 치닫게 한다. 이 사람의 풍자는 공격을 부르고 공격을 서로 목표로 하다가 본질은 사라지는 듯 맞는게 없어진다. 토착민. 인종, 성별에 할당을 두는 것은 참여기회의 문제이지 결과를- 과학적 성과를- 거기에 따라 판단해야만 한다는게 아닌데, 마치 그렇다는 듯 공격하네. 

개인의 생각하는 방식이 그의 사회적 계급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종이 사고 방식을 좌우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는 거지. 그런 요구 아니기 아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행동이 기다는 증거는 당연히 아닌데...

이 사람은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쪽과 똑같은 방식을 취하는듯. 그게 바로 미러링.

양쪽 다 하면 안되는게 맞는 듯.

- 다양성, 포용 및 공정이라는 이념적 순응.

다양성, 포용, 공정은 어쨌든 추구해야할 가치다.

지적하는 문제는 조심하고 고쳐야 하는 것일 뿐, 문제가 있다고 그게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방법에 문제가 있는거지.

제4장. 반과학, 반이성, 반자유적 운동

- 현실로부터의 해방

어허, 유전, 환경 모두 중요하단다. 한 인간의 성장에는.

- 임신하는 남자. 음경 달린 여자

- 포스트모더니즘: 가짜 심오함으로 분장한 지적 테러리즘.

나는 제대로 이해못하는 걸 옳다고 신봉하는 실수를 해서 이런 인간에게 비판받지 말자.

- 불만 연구 프로젝트

상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저렇게 상대를 희화하는 논문을 쓰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게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광기는 테러리즘과 뭐가 다르지?

이념에 부합하지 않은 과학적 사실들이 그저 편견에 가득한 증오일 뿐인 것이 아니라 이런 식의 공격과 표현이 과학적 사실을 증오의 원료로 쓰고 있다.

- 하계 페미니즘이라는 괴상한 세상

제5장. 캠퍼스의 광기: 사회정의 전사들의 부상.

나쁜 일부? 가 있다고 틀린 건 아니다.

- 안전공간과 반향실의 부적응

- 대학은 왜 있는가?

- 피해자학의 항상성

- 집단 뮌하우젠 증후군의 무기화

- 모든 길은 편견으로 통한다- 나는 피해자다. 고로 존재한다.

- 엉큼한 남성 사회정의 전사들

- 진보주의 제단 앞의 채찍질 고행

제6장. 이성으로부터 탈주: 타조 기생충 증후군

- 타조 기생충 증후군

- 가짜 인과관계의 6단계 법칙  

- 국경을 개방하라-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다.

- 이건 이슬람과 아무 관련 없습니다만

- 타조기생충 증후군 환자들은 어떻게 이슬람을 보호하는가.

- 시리아 법은 서구의 법적 기준에 부합하는가?

- 프로파일링은 인종차별이다!

제7장. 진리는 어떻게 추구하는가: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

- 진리를 입증하는 법

반복 연구. 문헌조사. 메타분석

-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게망

- 장난감 기호에 대한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

- 인간 짝찟기의 성별 차이점에 대한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

- 이슬람에 대한 중복 증거의 법칙적 관계망

- 감염성 밈플렉스, 역사적 자료, 종교적 소수자의 역경

- 현재 FBI데이터

이슬람 범죄자 비율이 높다고 이슬람 종교가 문제라고. 다른 이유들도 있다.

범죄자가 아닌 이슬람 종교인 비율도 높을 거라는 반론 가능

- 경전의 내용 분석

- ISIS일원, 개종자가 테러를 행할 성향, 테러집단

이슬람이어서 테러를 한다vs테러하는 사람이 이슬람이다?

- 전 세계적 조사, 전 세계적 유대인 혐오유형. 전세계적 지수

유대인 혐오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를 뺀 이 주장들은 맞는 듯 틀린다. 지금 이 두 나라? 사이 일은 세계가 보고 있고 그것이 이슬람의 유대인 혐오에 영향을 미치는 비율은? 단지, 저자가 주장하듯 감정적이기만 한 건 아닐테고 이성적이지 않고 감정에서 시작한 거라고 해서 매도 당하기만 할 일도 아니다.

제 8장. 콜 투 액션

- 당신의 목소리가 갖는 힘을 믿으라.

행동하라는 이 충동은 반대편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어째서 자기편만 옳다고 생각하는지.

들이대는 증거가 편향되고 해석이 편파적일 수 있다는 생각들은 어쩌면 양쪽 다 당연히 없다.

- 남을 판단하는 것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을 두려워 마라.

- 미덕 과시를 하지 마라.

- 패널티 키커가 되라

- 당신 내면의 벌꿀 오소리를 일깨우라.

- 우리 대학들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 맺는 말

자유를 중시하는 레바논의 유대인이었던 난민의 주장들 일부 맞고 일부 위험하고 이이가 외치는 자유처럼 반대의 주장들도 자유롭게 논의되어야 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발전을 위한 경쟁도 중요하다.

하지만 소수의 약자들 이제는 다수가 약수(?) 가 되는 세상인지도 모를 위험도 대비해야 한다.

<감사의 말>

진실로 과하고가 이상, 개인의 자유, 개인의 존엄성을 위해 싸우는 것이길. 그 개인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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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0  

...부유층 중에서도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자유 전문직은 점차 사라지지만 하위 계층으로 내려갈수록 그들의 비율은 증가한다. 따라서 전문직은 소득과 자산 모두에서 상위 1%보다는 상위 5%에서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p301 

 우리가 '불로소득 사회'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는 19세기 초기에 고전 경제학자들이 표명했던 우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바로 당시에 그들도 불로소득자들이 만연한 사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돈으로 돈을 버는 금융 활동을 통한 부의 축적에 대한 우려는 중세, 심지어 그 이전부터 서구 사회에 팽배해 있던 문제다. 일반적으로 부유층이 사횡에서 차지하는 위치, 혹은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위치에 대한 문제는 서구 사회에서 늘 민감한 주제였으며 상당한 사회적 불안 요인이었다....

p312

 오레스메는 특정 공동체에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해 법적 상한선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으며, 공익을 위해 마땅히 상속 규모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상속 상한선을 초과하는 자산은 같은 혈통의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몰수하거나, 적절한 법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분배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오레스메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의 재정적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명백히 주장하고 있었다.  

p321

15세기 후반 유럽의 경제 상황을 노동자 계층과 하위 중산층의 극심한 빈곤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상인 게층이 만들어낸 교양 있고 세련된 자화상은 문화적.경제적 배타성을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절차의 표현이기도 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업가의 정신과 육체를 이상화하고, 영웅적 혹은 종교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 혹은 '착취당한 사람들'의 노동과 육체, 정신의 가치와 대가를 낮추고 문화적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중세 후기의 거대한 부의 등장으로 촉발된 문화적 변화 과정은 근대 초기까지 계속되었다. 실제로 사업가에 대한 종교적 의미 부여는 종교개혁과 함께 새로운 정점에 도달했다. 막스베서의 유명한 해석에 따르면, 종교개혁은 새로운 경제 윤리를 만들어내며 자본주의 정신의 등장을 촉진했다. 베버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합리성과 부의 축적 추구라는 전레 없는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이것이 종교개혁의 전반적 특징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신학자 장 칼뱅의 추종자들에게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칼뱅의 예정설에 따르면 구원은 오직 은총으로만 얻어질 수 있고, 누가 구원받고 누가 저주받을지는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신자들은 자신이 선택된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328

 ...세금과 정부의 적절한 규모와 기능에 대해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예외적인 시기에 필요한 기여를 회피하려 한다면 부유층은 상당한 부의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역사적 역할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p335

...실제로 구체제 사회는 본질적으로 계급 사회였지만 스스로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인식했다. 다만 그들이 따랐던 정의의 기준은 현대의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미국 철학자 존 롤스의 주장에 따르면, 공정성은 기회의 평등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평등을 전제로 한다. 반면 구체제 사회가 따랐던 정의의 기준은 '형평성'이었다. 형평성은 각자가 자신의 조건과 지위에 따라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는 분배 정의의 원칙을 의미하며, 모두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신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고 믿을 경우 반란이나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러한 사회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을 문화적으로 더 잘 수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기존에 그렇게까지 부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겨졌던 사회 계층 내에서 부의 불평등이 생겨나는 상황이었다....

p369

...결국 재단은 책임을 지지 않고 투명하지 않은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세제 혜택(대개 소득세 면제나 부가가치세 우대 혜택)형태로 공적 지원까지 받게 된다. 정치학자 롭 라이히에 따르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재단은 민주 사회에서 '제도적 이질성'을 갖게 되며, 그들이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뒷받침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상당한 개혁이 필요하다.

p371

...공공 기관이 모든 시민에게 인간다운 생활 조건을 보장하지 못하고 민간의 기여에 의존하는 사회는 가장 부유한 구성원의 선의에 존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선의가 영구적이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답하자면, 사회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부보다는 과세가 더 바람직해 보인다. 이는 또한 현대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권장할 만하다.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클레멘스는 "위대한 미국 민주주의의 시작부터 기부를 받는 것은 의존과 부채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시민적 자선과 민주적 통치의 공존을 관리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으며, 기부는 평등과 개인의 자주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공약과 배치되는 권력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따. 대신 민주주의 사회는 유권자와 그들의 대표가 적합하다고 보는 수준의 과세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경우, 부유층은 오직 법을 위반하지 않고 부과된 세금만 납부하면 된다. 기부로 인한 세금 혜택 역시 시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에 의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웅대한 공적 기부의 개념을 되돌아 볼 때, 후원을 포함한 부유층의 다양한 기부가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추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p406

...간접세는 최소한의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소득을 다 써야 하는 계층에 늘 불리하게 작용했다.

 p412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부자의 선택과 선호는 개인적 신념과 이념에 의해 형성되므로, 그들이 반드시 자신을 더 부유하게 만들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는 자산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명백히 부유층에 유리한 선거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 연합을 지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413

...흥미롭게도, 개인의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는 데는 소득보다 재산이 더 큰 역할을 하며, 전반적으로 초부유층은 정치적으로 우파 또는 중도우파 입장을 나타낸다는 강력한 역사적 증거 또한 확인할 수 있다....21세기에 접어들며 이러한 격차는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서로 다른 정치 진영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는 정치 체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많은 돈을 후원한 기부자의 의견이 일반 유권자의 의견보다 더 크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p415

 세금 회피 및 탈세는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유층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세금을 회피하려 하거나 세제 개편을 추진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 문화에서 부유층이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유 재산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즉, 자선이나 기부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가 추가적인 자원을 필요로 할 때 기거이 거액의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그들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이다. 전쟁, 기근, 심각한 전염병과 같은 주요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들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다.

p462

 ...서구 역사에서 위기는 부유층에게 사적 자원을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함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유용성을 입증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또 그 이전의 2008~2009년 대불황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부유층, 특히 초부유층 전체가 잘해야 '무임승차자', 최악의 경우에는 '폭리업자'로 간주될 위험이 생겨났다. 이것이 21세기의 패턴의 시작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아직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 부유층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뿌리 깊은 문화적 규범이 정말로 사회 전반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21세기 들어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면, '무심하고 냉담한 부자들' 머지 않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가 될 수도 있다.규범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역사학자의 임무는 아니지만, 현재의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서 얻을 수 잇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제공하는 것은 역사가의 책임이다.

p490

"내가 제시하는 명제는 서구의 기술 진보 폭발이 문화적 변화로 인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 세계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켜 직접적으로 그리고 '유용한 지식'의 축적과 확산을 자극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고 육성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기술에 영향을 미쳤다.

p506

...물론 이것은 여러 중요한 변수들은 고려하지 않은 단순화된 모델이지만, 저출산과 인구 감소 자체가 부의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력은 분명하게 드러낸다.

p507

"처칠의 협력과 안정화에 대한 비전은 상속된 부 대신 활동적 부에 대한 세금을 줄이는 것, 중산층 가정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것 그리고 연금 확대에 의존했다."

p527

코로나 19가 흑사병처럼 '평등한 '전염병이 아니었다는 점이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대신 코로나 19는 사망률뿐 아니라 '롱코비드' 같은 더 미묘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증상들에서도 뚜렷한 사회경제적 격차를 드러냇다. 코로나 19는 흑사병처럼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고, 그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실질 임금 상승, 소득 불평등 완화 또는 사회적 상향 이동성 증대 같은 결과를 기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는 1918~1919년의 스페인 독감과 정확히 같은 결과로, 여러 팬데믹 중에서도 역학적으로 코로나 19 와 가장 유사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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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9  

 ...'니커보커'와 '브라민'은 각각 뉴욕과 보스턴의 전통적인 상류층을 나타내는 용어다.

p115

 ...유럽 대륙의 부유한 평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19세기에는 귀족이 되는 게 경제적으로 더 큰 이익이 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프랑스 혁명으로 고취되고 나폴레옹에 의해 법제화된 개혁인 확산된 후라 모든 곳에서 귀족 계층이 전반적으로 쇠퇴한다고 여겨지던 시기였다. 실제로 귀족들은 많은 특권을 상실했지만 동시에 많은 의무에서 해방되기도 했는데, 특히 격에 안 맞는 활동이나 투자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에서 자유로워졌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이제까지 비귀족 엘리트 계층, 특히 미국 귀족주의자들만 누릴 수 있었던 이점을 점차적으로 얻게 되었다. 이는 막스 베버가 완벽하게 설명한 바와 같이, '명문가' 집단에 들어가게 되면 부수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기업과 행정부에서 고위. 고액 연봉의 자리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더욱 중요한 거은 재정적. 경제적 목표를 촉진하는 데 유용한 사회적 인맥을 형성할 수가 있다.

p126

... "봉건제도는 명확하게 구분된 권리와 의무를 통해 전체 경제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부의 분배에도 안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다시 말해, 봉건제도가 고도의 경제적 불평등을 고착시키기는 했지만, 그럼으로써 신흥 집단들의 야망을 속박하여 사회 전반의 경제적 격차가 한층 더 커지지 못하게 방지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베버는 다른 한쪽 면은 보지 못할 것 같다. 평민 부유층은 귀족이 없었다면 생겨날 수 없었다. 상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귀족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p146

 ...어업 산업에서 설명한 것처럼, 기술 혁신은 사업 관행, 노동 조직 및 관련된 제도적 틀 등 추가적인 혁신이 병행되어야 온전히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혁신은 국가의 힘과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고 그에 따라 관료제가 확장되는 근대 초기의 중요한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성공에도 크게 기여했다.

p221

 대부분의 경우, 남성들은 공동 지분을 선호한 반면 여성들은 단독 투자자로 활동했다. 이는 금융 시장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에게 독립성 유지가 이익 추구만큼이나 중요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자본을 투자하는 행위 자체도 그들의 재정적 독립성을 보호하는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동 지분을 피하다 보니 그 직접적인 결과로 투자 다각화가 어려워 위험성이 더 높아지지만 그 직접적인 결과로 투자 다각화가 어려워 위험성이 더 높아지지만 이는 자신의 자본에 대한 결정을 남들에게 맡길 위험이 줄어드는 것으로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았다. 자료를 살펴보면, 여성들이 공동 지분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남자 친척들과 함께 투자하는 것은 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주 투자자가 여성인 거래를 뚜렷이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주식 시장의 발달이 금융 분야에서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더욱 확대한 것은 분명하다....

p230

 대마불사 기업들의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러나 더 장기적 관점에서 포착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도 지닌다. ...서구 사회가 초부유층들의 존재를 용인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절박한 상황이 되면 그들이 개인의 자산으로 공동체를 도울 것이라는 암묵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15세기 피렌체에서 코시모 데 메디치가 그렇게 햇고, 더 최근에는 존피어폰트 모건과 그의 동료들이 1907년 위기에서 미국을 구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대마불사 기업들의 경우, 관련된 개인들은 전례 없는 규모의 금융 자산을 쌓아놓고도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면 공공 자금으로 구제받으니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된 듯하다.....

p298

...이러한 상승 추세는 기대수명 증가보다 훨씬 빠르며, 이는 억만 장자 집단의 고령화가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이들의 부가 그대로 후손들에게 상속된다면 막대한 부가 개인의 능력이나 공로에 대한 보상이라는 견해는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 상황은 많은 서구 국가들이 20세기 초에 겪었던 것과 유사한, 장기적 혁신, 새로운 부의 대규모 창출, 지속적인 상향 이동성이 종식되는 결과로 끝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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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화 이전에서 산업화시대까지의 투자자들

- 근대 초기의 은행가들

로스차일드 가문, JP모건 등

결국 민간 은행가들이 공익에 기여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조성에 큰 역할? 본격이익추구의 길?

- 부유한 여성들

과부들, 남자 허락 없어도 되어서? 근대 초기 제약은 더 강해짐

그라시아 나시 같은 멋진 여성도 있었구나 그 시대에(종교적 박해와 성차별에 직면한 유대인 여성의 성공 사례. 대단, 똑똑했지만 타고난 재산 때문에 가능했겠지. 그래고 인맥도)

자본을 투자하는 행위 자체가 재정적 독립성 보호하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 현대 경제의 점진적 금융화

금융규제 완화가 금융 부문 확장 불러옴

서구 거의 모든 곳에서 가장 일반적인 경제의 '금융화'지표로 사용되는 GDP대비 금융 자산 비율 지속적인 성장세 보인다.

금융자산 집중되는 경향 있어서 금융자산 비율 성장이 소득 및 부의 불평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 있다.

게다가 지난 40년간 금융 부문 불평등 악화의 또 다른 이유는 이 부문 임금 때문이다. 

대마불사 기업들

6. 부자들의 딜레마: 저축과 소비

- 중세 부자들의 소비습관

사치금지법. 과시적 소비. 남다른 삶의 방식

- 부유층의 저축 ㅡ습관

저축은 부 축적을 위한 필수 조건. 부유층은 항상 사회의 다른 집단보다 강한 저축 성향 지녀왔다.

하위층은 논리적으로 저축 여력이 없다.

- 부유층, 경쟁 그리고 유산

- 저축할 것인가, 말 것인가

부자가 적당히 소비하는 것은 필요?

7. 부의 정상을 향하여

재산 출처, 현재의 추세

- 중세 후반에서 19세기까지의 부유층

U자형, 기업가, 금융업자, 귀족, 전문직

- 19세기에서 제 1,2차 세계대전 사이

사업, 이자, 임대료, 배당금 등의 자산 소득, 상속

- 논란의 씨앗: 상속

부의 상속 가능성은 상속세 부과되는 방식(제도적 틀)에 좌우된다.

낮은 출산율은 부를 소수에게 집중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노동력 공백을 비서구 국가의 무산 이민자들이 채우면서 부의 불평등 더욱 심화시키는 양면적 과정으로 이어진다.(최근에 읽은 <오픈 엑시트> 생각난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사회. 계층 간의 갈등 완화하고 사회적 화합 촉진해서 자본주의 보호하려했던 처칠의 사망세.

- 21세기 초의 부

최상위 부유층과 다른 부자계층 간의 격차 커지고 있다(자유 전문직이 상위 부유층 순위에서 사라지고 있다.)

여성 비율 늘고 있지만 경제 체제 전반적으로 여성의 부축적과 성공 가로막는 차별 여전히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가문의 상속자로 딸보다 아들 선택하는 경향 아직 남아있다.

자수성가형 부자들 때문에 부의 계층 구조가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착각, 이미 수십년전 그들의 기업 본질적 성격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 저해하고 젊은 혁신가 열망 저해할 위험 있다.

서구 억만장자 평균 연령 계속 상승 중.

20세기 초와 유사한 장기적 혁신 새로운 부의 대규모 창출. 지속적인 상향 이동성 종식되는 결과 될지도 모른다.

전문직은 최상위 부자보다 5% 안에서 더 큰 비율.

예술, 미디어, 스포츠 분야는 0.1%에서 큰 비율.

3부. 부자의 사회적 역할

8. 부의 집중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유

- 부유층에 대한 본능적 불신

돈으로 돈을 버는 행위가 잠재적 고리대금업으로 의심되던 중세시대.

특정 공동체에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에 대해 법적 상한선 두는 것. 상속규모 제한하는 것 필요하다는 생각이 과거에도 있었구나.

- 부유층의 역할: 죄인에서 선택된 자로 

돈이 도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신경계로 간주되던 시대가 있었구나.

공동체를 위한 역할. 종교개혁. 칼뱅주의와 부의 추구 사이 관계.

중세의 죄인들이 근대초기엔 선택받은 자가 되는 변화

- 역사의 붉은 실

과거와 현재를 놀라운 방식으로 직접 연결해주는, 시대를 초월하는 연속성.

웅대함, 공적기부가 초부유층의 행동 범주여야 한다는.

공공의 입력, 사적 자원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한 경우, 공공의 압력 없이도 한 경우

- 불평등과 부유층에 대한 인식

9. 후원자, 자선가, 기부자

자발적인 개인의 기부가 재산과 상속에 세금 부과해 공공기관이 재분배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한 논의

- 공익과 시익: 메세나 활동과 후원

사회적 용인, 정치적 지지 확보. 영적 보상의 획득, 푸거라이

- 산업화 시대의 후원자와 자선가

자선 재단이 최상위 부유층의 세금 회피 전략도구가 되어 민주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 축소시키는 결과 가져오기도 했다.

- 현대의 딜레마: 기부vs 세금.

부유층의 기부가 정치적 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때문.

상속세를 통한 공공 자원 획득 막는 것은 기부서약의 의도치 않은 부작용.

10. 초부유층과 정치

- 부를 통한 정치 진출

개인의 부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 공동체에 유용하게 쓰이는 것 뿐이라는 주장

- 의회 민주주의와 부를 통한 정계 진출

- 정치적 권력을 이용한 부의 축적

부유층에 유리한 조세제도 등을 만들기 위한 정치

- 정치와 과세

부유층이 세수 중 많은 부분 부담할 때 그들의 경제적 자원 점유율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 간과되거나 은폐되는 경우 많다.

돈이 많으면 정치적 영향력도 큰가.

11. 위기의 시대와 부자? _흑사병에서 코로나 19까지

- 부유층과 흑사병: 번영 아니면 파국?

대규모 상업, 경제, 금융이 재편되는 환경에서는 뭔가 잃을 것이 있는 기존 기득권층이 타격 입는다.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이후 긍정적.

- 근대 초기의 위기: 전염병과 기근

전염병으로는 불평등 일부 해소되기도 하고, 기근시 부자들이 돈곳간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19세기 초 들어서면서 기근은 거의 없어지고.

- 전쟁시기의 부자, 부자들의 전쟁

초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의 재분배

- 금융위기와 부자

금융 자산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자산 항복. 금융 위기시 부유층에 타격 크다.

- 부유층과 코로나 19

위기시 부유층의 사회기여. 

기부와 과세의 차이. 위기 상황에 부유층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문화적 규범

<맺음말>

1. 서구 사회에서 부유층의 위치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2. 서구 역사에서 세금은 부유층이 제도적, 문화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산업화 이전시대보다 더욱 더 그렇다.

기부할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야 한다.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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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일반적으로는 겨울보다는 공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여름에 훨씬 더 많은 터뷸런스가 발생하고, 유럽이나 미주로 향하는 비행보다는 적도의 근방을 통과해야만 하는 동남아 비행이나 대양주 비행일 때 더 많고 심한 터뷸런스에 맞닥뜨리게 된다.

p39

말로 상처를 받기 쉬운 환경에서는 당연하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도 쉽게 받거든.

p42

 그렇다면 삶을 이루는 다양한 장면들도 언뜻 보면 모두 별개이지만, 품고 있는 목표가 같다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되지 않을까.

 거창한 꿈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결코 놓을 수 없는 오랜 취미나 습관 같은 것들이 사람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선택의 방향에 깊숙이 관여한다면 삶의 끝에는 비슷한 장면들로 편집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p57

 하지만 그곳에 살지 못한다고 실패한 인생이 되는 건 아닌데, 어째서 우리는 정답이 아닌 오답을 고른 사람처럼 주눅이 든 표정으로 살아가는 걸까. 선배도 변해가듯이 나도 그렇지 않은 척할 뿐, 결국 이 거대한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선배, 우리가 저런 곳에 살기란 쉽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뭔가를 잘못한 건 아니잖아. 우리도 그들과는 상관없이 우리의 시간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p69

 내가 날마다 거닐던 그 길이 그에게는 망설임과 결심이 필요한 세상에서 가장 멀고 험난한 길이었다.

 세상은 하나라고 배웄지만

 살아보니 세상은 사람만큼 많았다.

p73

 조심하며 걸어도 피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직업에 대한 환상과 이면이 맞물리며 벗겨지는 일. 그것은 승무원뿐만 아닌 모든 직장인에게 서서히 찾아오는 관문 같은 것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성장통이 찾아오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인지 스무 살 서류상으로 어른이 되던 때 첫 번째 성장통이 찾아왔었다면, 이제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드디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방심할 때 비슷하지만 다른 얼굴을 한 두번째 성장통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나를 채우기 위한 통증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비우기 위한 통증이라는 점이 커다란 차이랄까.

 사람들과 조직 생활을 한다는 건 혼자 글을 쓰는 일과는 엄연히 달랐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조금만 맞춰주세요.'라는 태도 대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맞춰볼게요'라는 태도를 익힐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개인의 개성과 역사를 모두 존중해 주는 곳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곳은 아마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글쓰기가 수풀이 무성한 야생의초원을 뛰어노는 일이라면, 조직 생활은 설계도를 따라 조성된 인공 정원에서의 산책에 비유할 수 있을까.

 나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이 느렸다. 살아온 환경, 생각, 성격, 취향 모든 부분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최대한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과정은 모두가 조금씩은 자신을 비워야만 하는 일이었다. 사회생활은 업무적인 협업이기도 하지만 사람 간의 존중과 배려이기도 하니까. 그것이 원활하게만 이뤄진다면 직장인들의 행복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일 테지만, 현실은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그 누구와도 함께 동료가 되어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걸음이 느린 아이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진 않는다. 느린 만큼 스스로 조금 더 빨리 걷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 지체되면 모두의 시야에서 내가 사라진다.

p97

 "가끔은 온갖 근사하고 반짝이는 것들에 흔들릴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건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으로도 괜찮고, 지금으로도 충분하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요."

p106

밥벌이를 갖는 게 나쁜 게 아니라고.

우선 현실을 살아내야 꿈도 꿀 수 있다고.

지금이 아니라도 우회로는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그리고, 

지금 너는 이상과 꿈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p150

 꿈이라는 건 무엇이길래 사람을 구석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게 만드는 걸까. 무엇이길래 남들의 가벼운 말에 흔들리지 않고, 고된 하루의 끝에 기어코 연필을 쥐게 하는 걸까.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지켜내는 데 필요한 건 완벽하게 준비된 환경이나 뛰어난 성과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남들의 시선 같은 것은 아랑곳없이 그 일을 절대 멈추지 않는 것, 그 태도만이 그의 일상을 온전히 대변해 줄 수 있지 아닐까.


p168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괜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낮에는 이렇게 고된 일을 하다가도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일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누군가의 아내이자, 또 누군가의 엄마로서 꿋꿋하게 삶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도 모두에게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 아닐까.


p186

 일이 고되다고 투정을 부리면서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연결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돌아보는 일이고, 서툴던 과거의 마음을 조금씩 정돈하는 일이 아닐까.

 오직 사람 사이에서, 사람만이 가능한 일, 먼 미래의 모든 일이 기계로 대체될지라도 최후까지 살아남을 사람의 일. 나는 그것의 연약하지만 끊이지 않는 힘을 믿는다.    


p209  

 하지만 낭만은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 품고 있던 고유한 분위기를 잃는다. 가난할수록 낭만적일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가난하면 생존이 위태로운 이 시대에는 어디까지나 말뿐인 말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낭만을 만끽하는 이들은 내일의 밥벌이를 걱정하는 예술가가 아닌, 그들을 멀리서 감상하는 여유로운 존재이다. 낭만은 일상의 찰나를 할애해 일탈을 즐기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몫이지, 생존하기 위해 낭만을 제작하는 창작자의 몫은 아니다.


p212

 바닷속 아기 물고기는 바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언젠가 바다를 벗어나 본 적 있는 엄마 물고기만이 멀리서 바다를 디돌아보며 아, 내가 바다에 살고 있었구나 깨닫는다. 그 순간으 늘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언제나 완벽한 선택을 꿈꿨다. 비행이라는 생업과 글쓰기라는 꿈 사이에서 단 하나만 선택해야 그것이 정답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경계에 발을 걸친 채 어느 곳으로도 넘어가지 못하는 태도는 비겁한 외면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선택이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중심도 함께 기울어졌다. 현실에만 몰두할수록, 꿈에만 전념할수록, 예상과는 다르게 한쪽 다리가 부러진 의자처럼 삶이 절룩거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과 마주했지만 온전히 걸음을 걸을 수조차 없었다.

 탁월한 선택이라 믿었던 일이 오히려 불균형이 된 것일까. 그렇다면 가끔은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선택이 될 수 있을까....

 균형 속에서는 균형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균형을 벗어날 때 비로소 균형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날마다 중심이 흔들리는 이 상황 자체가 어쩌면 완벽한 균형일지도 모른다.

 그런 행운이 내 곁에 있다면 부디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사람의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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