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0
...현대 학문에서 고도로 전문화단 분야는 거의 불가해한 수준으로까지 발달해서, 그 분야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30대 초반이나 중반까지 교육을 받아야 전문가 반열에 오른다.
그들은 오랫도안 함께 교육을 받지만, 최적의 방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지극히 간단해 보이는 문제에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이제는 과거에 지배적이던 주장이 철회되거나 수그러들었지만, 전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쪽을 선택하고 이런 논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계속되는 불확실성과 논쟁이 현대 세계가 기본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부분의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 지식의 범위가 전문화를 부추기고, 그 반작용으로 기본에 대한 이해가 점점 얕아지거나 기본 자체를 무시하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이해읩 ㅜ족을 모두 설명할 수 있지는 않다.
도시화와 기계화가 이런 이해 부족의 주된 이유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현대 도시인은 식량을 생산하는 곳뿐만 아니라 기계와 기구를 조립하는 곳과도 떨어져 지낸다. 모든 생산 활동이 점차 기계화한다는 것은 세계 인구에서 극히 일부만이 문명을 지탱하는 에너지와 현대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을 전달하는 데 종사한다는 뜻이다.
p16
이 책은 이해 부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결정하는 기본적이고 주요한 문제들을 설명해보려는 시도이다...장기적으로는 개인적 노력이나 집단적 연구를 통해서는 예측할 수 없는 뜻밖의 발전과 복잡한 상호작용이 무수히 많을 테니 말이다. 물론 현실에 대한 특정한(편향된) 해석을 절망의 징조라고, 혹은 무한한 희망의 조짐이라고 옹호할 생각도 없다. 나는 비관론자도 아니고 낙관론자도 아니다.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해보려는 과학자이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답을 근거로, 우리 미래의 한계와 기회를 더 깊이 알아내고 싶을 뿐이다.
p21
...미래가 미리 정해졌을 리는 없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현대 과학자가 구멍을 계속 더 깊이 파는 착암기(요즘에는 명성을 얻는 지름길)이거나 지평선을 드넓게 훑는 스태너(요즘에는 크게 줄어든 부류)라가 생각하는 편이다.
구멍을 끝없이 깊게 파고 눈에 보이는 하늘의 극히 작은 부분을 근원부터 파헤치는 탁월한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나에게 애초부터 없었다. 나는 내 제한된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두루 사면팔방을 훑어보기를 좋아했다. 내 평생의 주된 관심 분야는 에너지였다. 그 방대한 분야를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이해하려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공학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역사는 물론이고 사회. 경제. 정치와 관련한 요인들에도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p38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평생 동안 사용한 일인당 평균 에너지량은 1950~2020년 10기가줄에서 34기가줄로, 3배 이상 증가했다. 34기가줄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크기로 바꿔 표현하면, 평균적인 지구인이 매년 약 800킬로그램(약 6배럴) 의 원유, 혹은 약 1.5톤의 질 좋은 역청탄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육체노동량으로 표현하면, 60명의 성인이 한 명의 평균적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밤낮으로 일하는 것과 같고, 부유한 국가의 주민을 위해서는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200~240명의 성인이 위와 같이 일하는 것과 같다. 평균적으로도 우리 인간은 역사상 전례 없는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p39
에너지는 생물권과 인간 사회 및 경제의 복잡한 구조를 이루는 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상호작용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이 시스템들의 진화를 복잡한 방정식으로 결정하는 한 변수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유효 에너지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추적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과제이다. 에너지 전환은 생명체와 진화의 기반이다. 현대사를 특정 에너지원이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유례없이 급속히 옮겨가는 사례들의 연속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현대 세계는 그런 전환이 누적된 결과이다.
p40
...경제학은 생산이라는 물리적 과정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따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만으로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하면 에너지가 노동과 자본에 의해 추출되는 게 아니라 생산 가능한 인위적 자본의 한 형태에 불과한 것처럼(...) 경제에서 에너지가 분담하는 비용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에너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한다.
p44
...파인먼은 자신의 유명한 저서 <물리학 강의>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이 문제에 뛰어들며 "에너지는 무척 다양한 형태를 띠며, 하나의 에너지에 하나의 공식이 있다. 예컨대 중력에너지, 운동에너지, 열에너지, 탄성에너지, 전기에너지, 화학에너지, 복사에너지, 핵에너지, 질량에너지가 있다고"고 역설햇다. 그러고는 느슨하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결론을 덧붙였다.
노늘날 물리학에서는 우리가 에너지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어떤 그림처럼, 에너지는 일정한 양의 작은 방울들로 오는 게 아니다. 에너지는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어떤 양을 숫자로 계산할 수 있는 공식들이 있고, 그 모든 걸 한꺼번에 더하면(...)항상 동일한 값이 된다. 에너지는 다양한 공식이 존재하는 이유나 매커니즘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p73
이런 에너지 전환은 까다로운 만큼, 기술적으로 꾸준히 개선 가능한 해결책- 예컨대 더 효율적인 태양전지, 육지와 해안지역의 대형 풍력 터빈, 장거리 직류 송전과 고전압 송전- 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비용과 허가 절차 및 님비 현상이 방해하지 않으면 이런 기술은 신속하게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의 간헐성 문제도 원자력발전에 다시 의존하면 해결할 수 있다. 전기를 대규모로 저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가까운 시일 내에 개발하지 못하면, 원자력발전의 부활이 특히 유용할 것이다.
대도시와 메가시티에는 대용량 저장 장치가 필요하지만, 현재까지는 양수 발전이 유일하게 가능한 선택지이다. 양수 발전은 값싼 야간 전기를 사용해 아래쪽 저수지의 물을 위쪽 저수지로 퍼 올려두었다가 전기가 필요할 때 방수해 발전하는 방법이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가 남을 때마다 양수 작업을 하더라도 양수 발전은 적절한 고도 차이가 있는 곳에서만 운영할 수 있고, 높은 쪽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 작업에 발전된 전기의 4분의 1이 쓰인다. 배터리, 압축공기, 슈퍼 축전기 같은 에너지 저장 장치의 용량은 대도시에 필요한 전력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심지어 하루치도 저장하지 못한다.
반면에 요즘의 핵원자로는 제대로 짓고 신중하게 관리하면 지속적으로 안전하고 확실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p76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를 충분히 확실하게 공급할 수 있더라도 강철과 암모니아 그리고 시멘트와 플라스틱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새로운 공정을 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p78
물질적 풍요, 기술 역량, 높은 수준의 일인당 소비와 그에 수반되는 만큼의 폐기물 등을 고려할 때 부유한 세계는 상대적으로 신속하고 인상적인 탈탄소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 모든 종류의 에너지를 덜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50억명이 소비하는 에너지량은 점점 늘어나는 인구에게 먹일 곡물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암모니아가 필요한 세계에서, 그리고 기본적인 기반 시설을 짓기 위해 더 많은 강철과 시멘트와 플라스틱이 필요한 세계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이런 현실에서 위와 같은 이상적안 조치를 적용하기란 불간으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 세계를 만든 에너지, 즉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향후 에너지 전환이 어떻게 전개될지 거의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확석연료를 느닷없이 포기하지 않을테고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석연료는 갑자기 종말을 맞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사용량이 줄어들 것이다.
p95
인력과 축력, 나무나 철제로 만든 단순한 농기구로 이뤄진 산업화 이전의 농상에서는 태양이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태양에 의한 과합성이 없다면 어떤 수확도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화석 에너지의 직간접적 투입이 없었다면 최소한의 노동량을 통해 전례없이 낮은 비용으로 높은 수확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투입한 에너지의 일부는 전기에서 얻은 것이고, 그 전기는 석탄이나 천연가스 혹은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위적 에너지는 기계의 원료와 원자재로 공급된 액체와 기체 상태의 탄화수소이다.
p97
...질소는 매우 풍부하면서 작물의 생산성뿐 아니라 인간의 성장에도 관여하는 중대한 제한 인자이다. 이런 현상은 생물권에서 상당히 모순되는 현실 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질소는 대기에서 비반응성 분자로 존재하고, 소수의 자연 과정을 통해서만 두 질소 원자 간의 결합이 쪼개지는데, 이때에야 반응성 화합물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번개가 엄청난 온도와 압력으로 해내는 일을 '니트로게나제'라는 효소가 정상적인 조건에서 해낼 수 있다. 니트로게나제는 콩과 식물의 뿌리와 관련 있는 박테리아나, 토양 또는 몇몇 식물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박테리아에 의해 만들어진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 들러붙은 박테리아는 자연 상태에서 대부분의 질소고정을 책임진다...
p118
나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의 상대적 부담도 계산해보았다. 현대 농법(운송 포함) 및 어업과 양식에 인위적으로 투입하는 에너지를 모두 합하면, 연간 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약 4퍼센트에 불과하다. 놀랍도록 적은 비율이지만 앞으로도 태양이 식량의 생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고, 외부의 보조 에너지는 식량 생산 체계에서 자연의 제약을 줄이거나 제거함으로써 최대 수익을 거두는 게 목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외부 에너지의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은 복잡계에서 나타나는 의외의 결과가 아니라, 적은 양을 투입하고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가 매일 밀리그램이나 마이크로그램 정도만 복용해도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비타민과 미네랄을 생각해보라.
p124
...식용육을 덜 먹고 식량을 덜 낭비하면 합성 암모니아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겠지만, 합성 화합물에 함유된 110메가톤의 질소를 유기물로 세계 식량 생산에서 대체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상상일 수 있다.
p134
...모든 풍요로운 국가와 현대화를 추구하는 부유한 경제권이 전형적인 식단을 그 양과 종류에서 자발적으로 크게 줄이는 방향을 채택할 가능성이나, 그런 후퇴를 통해 절약한 자원(연료와 비료와 기계류)을 아프리카에 전달해 그곳의 참혹한 영양공급을 개선하는 데 쓰도록 지원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p177
일반적인 건설에 쓰이는 콘크리트는 크게 내구성이 좋은 자재는 아니며, 많은 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노출된 표면은 습기와 추위, (특히 열대 지역에서) 박테리아와 조류, 산성을 띤 비와 눈, 크고 작은 움직임의 공격을 받는다. 지하에 묻힌 콘크리트 구조물은 균열을 유발하는 압력을 견뎌야 하고, 지상에서 스며든 반응성 화합물이 가하는 손상에도 시달려야 한다. 콘크리트는 강한 알칼리성을 띤다. 이런 특성이 철근의 부식을 효과적으로 막는 파수꾼 역할을 하지만, 균열과 박리로 철근이 노출되면 부식은 피할 수 없다. 염화물은 바닷물에 잠긴 콘크리트와 겨울철에 빙판을 녹이려고 소금을 뿌린 도로의 콘크리트를 공격한다.
p183
현대 경제는 앞으로도 위 네 가지 물질의 공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꾸준히 증가하는 세계 인구를 먹이려면 암모니아에 기반한 비료를 공급해야 한다. 또 새로운 기구와 기계를 만들고, 구조물과 기반 시설을 세우려면 플라스틱과 강철과 시멘트가 필요하다. 게다가 태양전지와 풍력 터빈, 전기 자동차와 이차전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물질도 투입해야 한다. 이 물질들을 채굴하고 가공하는 데 쓰이는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얻을 때까지, 현대 문명은 이 필수적인 물질을 생산하는 데 사용하는 화석연료에 기본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애플리케이션, 전자 문서로는 이런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p188
...일반적인 통설과 달리, 세계화 과정은 새로운 게 아니다. '노동의 차익 거래', 즉 임금이 낮은 국가로 공장을 옮기는 행위는 세계화의 여러 동인 중 하나일 뿐이다. 세계화가 미래에 반드시 확대 및 강화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세계화에 대한 가장 큰 착각이라면, 세계화가 사회. 경제적 진화에 의해 미리 예정된 역사의 필연이란 ㅅ냉각일지 모르겠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말했듯 세계화는 "자연에서 바람이나 물과 같은 힘"이 아니다. 세계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여러 면에서 세계화가 지나치게 확산해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요즘 점점 힘을 얻고 있다.
p255
..우리의 위험 지각이 본래 주관적인 데다 특정 위험에 대한 개인적 이해(친숙한 위험인가, 새로운 위험인가)와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객관적 위험'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그들의 심리 측정 연구에 따르면, 위험은 개별적으로 고유한 상관관게를 띤다. 다시 말하면, 비자발적 위험은 새롭고 통제할 수 없으며 알려지지 않은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고,자발적 위험은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핵분열을 통한 전기 발전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폭넓게 인식하는 반면, 엑스선은 용인되는 위험으로 인식한다.
p279
1980년대까지 재난 희생자 수가 늘어난 이유는 대체로 노출 시간이 증가햇기 때문이다. 재난이 잦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하며 이런 추세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수십 년 전부터는 자연재해 자체에도 변화가 있었다. 예컨대 상대적으로 따뜻한 대기가 수증기를 더 많이 품어 극단적으로 많은 비를 쏟아붓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부 지역에는 가뭄이 길어지며 강한 화재가 반복되고, 그마저도 예외적으로 길게 이어졌다. 많은 기상 모델이 앞으로 이런 추세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 예측하지만, 개발 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습지를 복원하는 대책부터 적절한 건축 법규를 제정하는 방법까지 많은 효과적 수단을 취하면 자연재해의 파괴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