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2  

한때 일부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을 향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대의 민주제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선출되지 않은 공무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도 문제지만, 선출되었다고 해서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마저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이다. 아무리 대의 민주제라도 그 권력은 여전히 선출한 이에게 있다. 대리인을 통한 대의 민주주의가 그럴듯한 대의를 빌미로 전체주의로 변질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p163

... 협동조합에 관한 모든 일을 조합원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이를 통해 조합원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우며, 이런 조합원 판단과 의견이 협동조합 운영에 잘 반영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다시 조합원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이런 연속적 행위의 과정이 바로 선출된 대리인으로서 복무하는 협동조합 임원의 역할이다.

 우리는 보통 제 2원칙에서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에만 관심을 쏟지, 임원의 명칭과 역할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임원의 명칭이 '간부'에서 '대리인'으로 바뀌고, 조합원을 향한 마음가짐과 설명 책임의 역할이 강조된 것은 제2원칙 개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조합원에 의해 선출된 대리인이 그 조합원을 제대로 모시고 조합원과 협동조합 사이를 잘 연결해야 비로소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을 강조한 바로 다음에 임원의 역할을 언급하게 된 이유다.

p165

...다수의 전횡이든 소수에 대한 배려든 이는 모두 숫자의 논리일 뿐이다. 조합원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는 소수를 배려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숫자로 변질된 조합원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이런 숫자에 의해 진짜 사람이 좌지우지되게 놔둬서는 안 된다.

 단위조합이든 연합조직이든 그 주체는 당연히 조합원이어야 하고, 그 조합원이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할 때 다수의 전횡이나 소수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는 진정한 인간의 연대가 싹튼다. 비록 그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이것만이 참 민주주의를 실현해가는 유일한 길이다.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넘어서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이를 향해가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연대다.

p188

 정부의 '사회통합'과 기업의 '사회공헌'이 협동조합에서는 '사회적 책임'과 '타인에 대한 배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회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 것인가""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이가"와는 다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윤택하게 할 것인가"가 협동조합의 특징이고 과제였던 셈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중심의 접근에는 한계가 잇었다. 생명이 살아가는 데는 항상 생명 활동의 시간적 장으로서의 '생활'과 공간적 장으로서의 '지역'이 같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이 가운데서도 특히 시간과 생활에 중점을 두고 관계를 형성해왔지만,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되기 쉽다. 잘 엮인 관게일수록 굳이 확장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실제로도 지난 세기 동안 협동조합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과제와 싸우느라 시간에만 집중해왔지, 공간을 형성할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었다.

p191

..."협동조합은 지역사회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활동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9동시에 조합원) 삶의 기반이 되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활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런 빈약한 해설이 제 7원칙을 새롭게 제정한 진짜 취지라면, 그 문구는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가 아니라 "동조합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해"라고 정했어야 옳다.

....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느 발전으로 정의된다."하지만 이런 해설 역시'발전'에 약간의 조건을 붙이는 정도일 뿐 결국에는 '발전'에 무게를 둔 것이다. 그동안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다음 세대의 필요를 조금은 배려하면서 지금의 필요를 계속 충족해가겠다는 이야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 문제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지속가능'과 '발전'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는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21세기 협동조합의 전략을 구체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진정한 의미는 '지속가능'과 '발전'을 동일선상에 병렬로 놓는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이라는 조건을 조금 붙여 '발전'을 계속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지속 가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지금까지의 '발전'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미래에 비추어 현재를 재검토하자는 것이고,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해 지금 세대의 필요를 양보하자는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밖에서 안을 되돌아보자는 것이고,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합원의 삶도 꾸려가자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바탕이 되어야 조합원이 다음 세대와 이웃을 위해 나설 수 있고, 협동조합도 다가올 21세기에 합당한 자기모습을 찾을 수 있다.

p199

 ...사회적 협동조합은 전통적 협동조합과 비교해서 그 사업목적이 다르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 공통의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기 위해 사업을 전개한다면, 사회적 협동조합은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사업을 전개한다. 이를 두고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 '공통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비해,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적 관심사'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interest'는 좁은 의미의 '이익'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관심사'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추구해온 것은 '공익'이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고, 사회적 협동조합이 추구하고 있ㄴㄴ 것 역시 '공익'이 아니라 '일반적 관심사'다 협동조합을 홍보한답시고 일반기업은 '사익'을 추구하고, 전통적 협동조합은 '공익'을 추구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공익'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협동조합을 이익집단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공익단체로 둔갑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합원 공통의 관심사를 조합원 아닌 이들의 관심사로까지 넓혀 사죄적으로 - 사람과의 관게에서 - 배제된 이들의 필요와 염원을 함께 충족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지, 공익 즉 '불특정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공익'의 추구는 협동조합이 아닌 정부와 공기업이 담당해야 할 당연한 자기 몫이다.

p217

 모든 시대에는 항상 그 시대를 견인해온 말이 있다. 말이 중요한 이유는,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견인하는 것이 결국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견인하는 것이 바로 말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경우, 그 말은 아마도 '자유'와 '평등'일 것이다. 국가나 종교 등 그 어떤 초월적인 것에 의한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신분이나 지위 등 그 어떤 위계적인 것에 의한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평등, 이 두가지야말로 근대를 열고 근대의 오랜 기간을 지배해온 가장 중요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120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민계급에 한정됭ㅆ던 자유. 평등. 우애가 한편에서는 '나'로 응축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모두'에게로 확장해갔다. 자유는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내게 강요하지 말고, 상대가 바라지 ㅇ낳는 것을 상대에게 행하지 않는다"라는 나와 모든 이들의 자유로, 평등은 "누구도 나를 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여서는 안 되고, 또 누구도 자신을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가난해서도 안 된다"라는 나와 모든 이들의 평등으로, 우애는 "내가 바라는 것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베푼다"라는 나와 모든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응축된다. 

 프랑스혁명은 정치적으로만 보면 실패한 혁명이다.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어도 곧이어 로베스피에르의 독재와 나폴레옹의 왕정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프랑스혁명이 역사에 남은 것은 그것이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상(신념)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과 우애가 시민계급을 넘어 나에게로 응축되고 모든 이들에게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특히 사랑이 시민계급 간의 우애를 넘어 모든 이들을 향한 형제애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 정신이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랑을 '자비'라 부른다. 그리고 이런 자비에는 다시 '중생연 자비''법연자비''무연자비'라는 세 종류가 있다. 중생연 자비란 공통의 상 즉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예컨대 같은 친족이나 마을 사람들끼리의 우애가 이에 해당한다. 법연자비란 법 즉 어떤 생각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이들 간의 사랑으로, 예컨대 협동조합에서 같은 조합원끼리 서로 사랑하는 우애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무연 자비란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들에 대한 태양이나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위에서 말한 친소관계나 이념적 동질성과 상관없이 펼치는 모든 인간과 생명을 향한 사랑을 말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삼연 자비'가운데 무연자비를 무조건적이고 절대 평등한 아미타불의 자비(=대자비)로 승모한다.

p124

 사람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나는 그의 말이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가 믿는 것은 대체로 무지에서 나온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국가를 본 적이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 이는 국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말(언어)이고, 말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법령이나 제도 같은 말이 있고, 그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행위가 쌓여 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말과 그 말에 대한 믿음이 국가를 만들고, 그 믿음이 무너지면 국가도 사라진다. 자본도 마찬가지여서, 자본이란 본래 종이 위에 새겨진(최근에는 종이마저 필요 없게 되었지만) 말이고, 그 말에 대한 믿음일 뿐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면 자본의 힘도 쇠약해지고(= 인플레이션), 그 믿음이 무너지면 자본의 힘이 사라진다(= 공황).

 마르크스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 그가 국가를 '환상의 공동체'라 표현한 것은 국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강요된 말의 믿음 체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는 분명 우리에게 잘못된 믿음을 깨우쳐준 위대한 과학자였다.

.....

 ...과학 엾는 믿음이 환상이라면, 자기 나름의 믿음 없는 삶은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습니다.

p127

 ...그 말에 거짓이 없는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 말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는지, 일단은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말도 결국에는 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협동조합을 안다는 것은 그 말을 과학 하는 데서 시작되고, 이는 나도 마르크스로부터 배운 바다.

p128

 주문이란 "사람이 입으로 먹는 말"이란 뜻이다. 말을 입으로 먹는다? 밥이나 술 같으면 당연히 입으로 먹겠지만, 말을 입으로 먹는다? 괴상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되뇌고 곱씹는다는 의미다. 밥이나 술을 먹어 내 안에 들이는 것처럼, 누군가의 말을 되뇌고 곱씹는 가운데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p129

 ..."하쿠나 마타타"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문제없어.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없고, 왜 걱정 안 해도 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나무아미타불"은 간단히는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라는 뜻이고, 자세히는 "삼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빛과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라는 뜻이지만, 그 깊은 일념에 제대로 도달하려면 최소한 대승 경전을 수십 권은 돌파해야 한다.

 동학의 주문 또한 마찬가지다."사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는 "(각자가 자기 안에)한울을 모시고, (그 한울의) 조화에 정하니,(이를)영세토록 잊지 않으면, 세상만사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자기 존엄의 극치를 이른 말이지만, 내 안에 모신 내 한울을 제대로 깨달아 그 드러남에 한 치의 거리낌도 없으려면, 이 또한 수많은 수련을 거쳐야만 한다. 한마디로 누구도 그 정확한 뜻을 모른 채로 끝없이 되는 것이 주문이고, 숨은 행간의 뜻을 자기 나름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 주문이다.

 또, 이런 주문에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 주문을 되뇌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기도 몰랐던 어떤 힘이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하쿠나 마타타"를 되는 가운데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위로 받게 되고, 어떻게든 될 거라고 격려받게 된다.

 신비는 결코 미신이 아니다. 미신이란 눈앞의 서로 다른 두 현상을 잘못된 인과관계로 엮는 것이다. 예컨대 '까마귀가 울었다'와 '나쁜 소식을 들었다'를 연결해 "까마귀가 우니 나쁜 소식이 들려 왔다"라고 믿으면 이는 미신이다. 이에 비해 신비란 드러난 현상의 깊은 곳에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느끼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 덕에 병이 나았다고 믿으면 이는 미신이지만,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 덕에 마음의 힘을 얻어 병이 나았다고 느낀다면 이는 신비다.

p134

신란: 그럼 왜 내 말을 거역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이제 알 것이다.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된다면 내가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 천 명을 죽이라 했을 때(너는) 즉시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생각대로 죽일 수 있는 인연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마음이 착해서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한 죽일 의도가 없어도 백 명이고 천 명이고 죽이게 되는 것이다.

p158

...이용자와 운영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업체와 결사체를 분리하는 것과 같고, 이는 결국 조합원의 고객화로 이어질 것이다. 상당한 수준으로 원외 이용을 허용하는 우리나라 같은 상황일수록 이용자를 조합원으로 참여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p157

 협동조합이라면 당연히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조합원 가입이 저지당하거나 참여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협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조합원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현실 정치를 향해 발언하는 것은 협동조합이 갖는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다.

 물론 같은 정치적 행위라도 정파적인 행위는 삼가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에 개념 없이 끌려다니느니 차라리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거나 최소한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걷는 게 맞다 금지해야 할 것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별이지 정치적 행위가 아니고, 지양해야할 것은 정파적 정치 행위지 정치적 행위 자체가 아니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협동조합이 크게 영향받는 우리의 경우에는 특히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논란거리로 '원외 이용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협동조합 진영은 지금가지 전면적인 긍정이거나 전면적인 부정, 혹은 그 중간의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적으로는 조합원이어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으로 비조합원 이용을 허용해왔다. 운영은 조합원이 하지만 이용은 가능한 한 열어두자는 것이 협동조합 진영과 정책 당국의 암묵적인 합의였던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p31  

 요즘 정보 프로그램 해설자는 인기 높은 일자리다. 본업에서 조금이라도 실적이 있으면, 그걸 내세워 해설자 자리를 얻을 수 있다. 대중은 권위에 약하기 때문에 일단 한번 텔레비전에서 얼굴이 알려지면 권위는 더더욱 쌓인다. 기본적으로는 우물가의 쑥덕공론 수준이라 전문 지식 따윈 없어도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현장 분위기를 읽고, 약간의 본심을 보태서 살짝 재미있게 말한다. 그런 조절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살아남아서 해설자로 녹봉을 받는다. 말하자면 새로운 유형의 텔레비전 예능인인 셈이다.

p90

 그럼, 화를 억누르다 보니 서서히 멀리로 피가 끓어오르고, 과호흡 발작이 일어나고, 공황장애가 나타나는 거네.

P91

 이건 일본 사람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지. 타인의 규칙 위반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봐도 대립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계속 분노가 쌓여서, 결국은 자기 안에서 폭발해버리는 거지.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는 거기에서 온 거야. 그러니 쉽게 고칠 수 있어. 화를 내면 돼.

P99

 ...유튜브만 해도 난폭 운전이나 민폐 행위 동영상이 연일 올라와서 시청자의 분노를 유발하니 말이야. 예전에는 타인과 접촉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따윈 없었는데, 지금은 집에 있어도 스트레스가 제멋대로 날아들지-

 ......

 ...현대사회에는 스트레스가 끊임없이 날아드는 것이다.

  한동안 입원하는 건 어때?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는 병실을 준비할 테니까. 여기 있으면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될텐데.

P104

 그야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인 무리는 늘 있게 마련이니까-. 박멸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P125

 ...저 선생님은 인간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어.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아. 그래서 야쿠자인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게 내게는 신선했던 거지.

P140

 ...애당초 규칙을 지킬 마음이 없는 인간은 규칙을 설명하고 타일러도 듣질 않으니까.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논법밖에 효과가 없어. 일종의 정당방위인 셈이지. 내가 말한 행동요법이란 게 바로 그런 거야.

P173

 요컨대 사회와 얽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하는 행동으로 치면 파치프로(파친코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 랑 똑같네. 다른 점은 운영하는 금액과 리스크의 크기라고 할까.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지. 게다가 머니게임은 골인지점이 없으니, 언제까지고 그만둘 수가 없고

P196

 잘 들어. 인간이란 누군가가 필요로 해야 비로소 열심히 할 수 있는 존재잖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풍족하게 소비할 수 있는 것뿐이면, 너무 쓸쓸하지 않나?

P254

 ...스포츠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사흘을 쉬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 일주일은 걸려요. 그래서 쉬면 오히려 더 효율이 떨어진다고요.

p298

...누구나 다 자기 병을 알아채지는 못하니까. 실제로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기가 발달장애임을 깨닫는 사람도 있어. 뚜렷하게 건강을 해치는 증상이 아닌 한, 인간은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단순한 특징이나 성향으로 받아들이거든. 그래서 주위와 비교해서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알아본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발달장애였다는 걸 깨닫는 거지. 기타노씨도 그럴만한 기질이 있었을지도 몰라.

p330

 ...다시 말해 우습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열 배는 강해서 일상의 모든 면에서 기를 쓴다는 거지. 실패가 두려워서 동아리에도 안 들고,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아. 난 마음만 먹으면 대단하다는 핑계만 대지. 한번 창피를 당하면 편해진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중학생한테는 아직 어렵겠지.

 이라부의 이야기를 듣고 유야는 모든게 이해가 갔다. 마사루가 틈만 나면 유야를 커뮤니케이션 장애라고 놀리는 것은 사실은 자기야말로 커뮤니케이션 장애라 그걸 들킬까 봐 두려워서다. 난폭한 언동은 나약한 마음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어서다.

p348

 때로 진실은 진지함보다 웃음 속에 있다. 상승 욕구, 치열한 경쟁, 자의식과잉, 가면 속 자신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란 속에 허덕이다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우리에게 이라부는 살며시 숨구멍을 열어준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적당히 힘을 빼고 훌훌 털어내라며 넓은 품으로 감싸주고 토닥여준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균형이 깨질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덜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어떤 선입견도 없기에 고압적이지 않고, 타인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도 않는 이라부를 만나 작업하면서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오랜 친구를 재회한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이 책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라부가 선사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앞으로도 나는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의 진료실 문을 두드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럴 때마다 짧은 다리를 무리하게 꼬고 앉은 이라부는 이렇게 말하겠지. "괜찮아, 괜찮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냥 재미있을 거 같은 표지라서 집었는데 작가가 <인더풀> 작가였네. 

기대된다.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 최근 소설이구나

소설 모음? <을요미모노>에 발표한 소설들의 모음.  

인가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상식 밖의 인간 이라부 선생이 주인공?이다.

가볍게 읽을만한 즐거운 이야기. 그렇다고 그냥 재밌기만 하지도 않다.

어쩌면 누구나 각편에 나오는 환자들 같은 문제가 조금씩은 있을...

행동요법을 보다 보면 끄덕이게 된다.


<해설자>

경쟁력있는 미인 정신과 의사를 해설자로 구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신기한 이라부 선생과 미쓰미상이 나오게 되고 그덕에 시청률도 올라서...틱도, 답답증도 사라져...

<라디오체조2>

열 받는 일에 복수하는 상상하면 과호흡 발작하는 가쓰미.

제대로 화를 못내니까 상관없는 일에도 화가 나고 불쾌감 느끼는 거.

이라부선생님 맘에 든다.

참아가며 사느라고 과호흡 발작하는 가쓰미.

라디오체조2로 민폐들을 제압?

<어쩌다 억만장자>

타인과의 교섭이 힘든 야스히코 주식투자로 억만장자가 되었...

돈은 많았지만 외로워?

결국 전액기부하고 마음 편하게 웃었대

<피아노 레슨>

성공한 피아니스트 도모카의 광장공포증

너무 규칙대로 살아서?

마유미밴드에서 같이 공연한 뒤로 나아졌나봐.

미야자토의 고향인 아마미오시마섬에서의 공연

시차가 있는 자유로움. 시간개념이 느슨한 ...그대로 행복한 류큐문화권. 도쿄의 야마토 문화와는 다르다.

<퍼레이드>

코로나 신입생이었던 대학생 유야의 적면증.

고향에선 괜찮은데 도쿄에서만 그래.

사회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이라부의 행동요법으로 결국 고쳐지네.

할로윈에 거리로.

<옮긴이의 말>

작가가 봉인하기로 했던 캐릭터 이라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치 박사의 네 아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브리지트 오베르 지음, 양영란 옮김 / 엘릭시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님이 영화관을 운영했던 사회학 전공한 작가의 첫 장편. 

자기가 읽어도 재밌는 걸 쓴다는 작가. 

미스터리인데...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취향은...살인자는 끊임없이 여성을 죽인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개연성이 없다고 해야 하나...물론 현실성도 없고.

지니의 캐릭터만 재미있었나...

아님...이제 내가 추리소설은 별로인건가...

남극 최초의 살인미수사건이 일어났을때 가해자가 읽고 있던 소설이 이거였단다.

반복된 피해자의 스포 때문이었다고...

앞부분이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얘기 자체는 매우 괴랄.

생각해보면 사이코패스 살인자와 알콜 중독자의 교환일기?

해설에서 서술된 것처럼 호불호가 갈릴듯. 난 굳이 따지자면 불호.

표지만큼 재밌지 못함. 표지는 뭔가 깔끔하게 재밌을것 같았는데...

그리고 결말을 알아도 후련해지지 않았다. 뭔가 쯧-하는 기분.


<경기시작>

마치 박사의 네 쌍둥이 아들.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클라크. 음악학교 다니는 재크, 변호사 사무실 인턴 마크. 전자공학 학위 준비하는 스타크.

넷 중 하나가 쓰는 살인자 일기.

가정부 지니가 쓰는 지니의 일기가 번갈아 배치된다. 

지나가 살인을 알고 있다.

<선수들의 원위치>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네.

도둑질한 과거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지니. 

지니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살인자 일기로 서로 간 보기.

<위협>

<시도>

<랠리>

샤론에게 위험을 알려주고 떠나고 싶은데, 잘 안됨

<스매시>

지니가 막으려했지만 샤론은 결국 살해당했다.

<백핸드>

이 집 형제들의 비밀 발견

<심사숙고>

<휴식시간>

<시합재개>

<반칙>

<제자리에>

<매치포인트>

지니의 탈출준비

<녹아웃>

<에필로그>

기자가 사건을 취재한다.

지니가 죽는 순간 사실을 적은 종이를 넣은 비닐 봉지를 삼켜서 법의학자가...

알고 보니 다섯 쌍둥이였다는...그집 식구들은 알고 있었는데...


p026

...그렇지만 이 모든 걸 마음에 꽁꽁 담아두고만 있을 순 없다. 글로 쓰면 무슨 일이건 훨씬 또렷해지거든. 감옥에서 마사와 지낼 때도 우리에게 생긴 일 전부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상황이 어찌되었는지 몽땅 적어두곤 했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차원에서, 내가 할 일은 생각이란 걸 하는거다.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고, 결론을 끄집어내야 한다. 써놓은 걸 다시 읽어보자.

p202

 술 끊기.

 맨날 똑같은 결심. 벌써 삼 년째 똑같은 결심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p309

...진상이란, 독자가 사건에 관한 모든 단서를 알고 있었음에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때 파괴력을 지닌다. 기분좋게 무릎을 치며 속았다고 외칠 수 있을 때 작가의 속임수는 성공한다. 하지만 작가만 알고 있는 사실로 뒤통수를 친다면 기분이 좋은 독서가 될 리 없다....그러니까 미스터리에서 진상이 '사실 쌍둥이 가운데 한 명이 범인이었다'는 '모든 것이 사실 꿈이었다'라는 구운몽식 결말에 버금가는 반칙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