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1  

 요즘 정보 프로그램 해설자는 인기 높은 일자리다. 본업에서 조금이라도 실적이 있으면, 그걸 내세워 해설자 자리를 얻을 수 있다. 대중은 권위에 약하기 때문에 일단 한번 텔레비전에서 얼굴이 알려지면 권위는 더더욱 쌓인다. 기본적으로는 우물가의 쑥덕공론 수준이라 전문 지식 따윈 없어도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현장 분위기를 읽고, 약간의 본심을 보태서 살짝 재미있게 말한다. 그런 조절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살아남아서 해설자로 녹봉을 받는다. 말하자면 새로운 유형의 텔레비전 예능인인 셈이다.

p90

 그럼, 화를 억누르다 보니 서서히 멀리로 피가 끓어오르고, 과호흡 발작이 일어나고, 공황장애가 나타나는 거네.

P91

 이건 일본 사람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지. 타인의 규칙 위반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봐도 대립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계속 분노가 쌓여서, 결국은 자기 안에서 폭발해버리는 거지.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는 거기에서 온 거야. 그러니 쉽게 고칠 수 있어. 화를 내면 돼.

P99

 ...유튜브만 해도 난폭 운전이나 민폐 행위 동영상이 연일 올라와서 시청자의 분노를 유발하니 말이야. 예전에는 타인과 접촉하지 않으면 스트레스 따윈 없었는데, 지금은 집에 있어도 스트레스가 제멋대로 날아들지-

 ......

 ...현대사회에는 스트레스가 끊임없이 날아드는 것이다.

  한동안 입원하는 건 어때?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는 병실을 준비할 테니까. 여기 있으면 모든 스트레스에서 해방될텐데.

P104

 그야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인 무리는 늘 있게 마련이니까-. 박멸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P125

 ...저 선생님은 인간에 대한 선입견이 전혀 없어.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아. 그래서 야쿠자인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게 내게는 신선했던 거지.

P140

 ...애당초 규칙을 지킬 마음이 없는 인간은 규칙을 설명하고 타일러도 듣질 않으니까.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논법밖에 효과가 없어. 일종의 정당방위인 셈이지. 내가 말한 행동요법이란 게 바로 그런 거야.

P173

 요컨대 사회와 얽히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하는 행동으로 치면 파치프로(파친코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 랑 똑같네. 다른 점은 운영하는 금액과 리스크의 크기라고 할까.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지. 게다가 머니게임은 골인지점이 없으니, 언제까지고 그만둘 수가 없고

P196

 잘 들어. 인간이란 누군가가 필요로 해야 비로소 열심히 할 수 있는 존재잖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풍족하게 소비할 수 있는 것뿐이면, 너무 쓸쓸하지 않나?

P254

 ...스포츠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사흘을 쉬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데 일주일은 걸려요. 그래서 쉬면 오히려 더 효율이 떨어진다고요.

p298

...누구나 다 자기 병을 알아채지는 못하니까. 실제로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기가 발달장애임을 깨닫는 사람도 있어. 뚜렷하게 건강을 해치는 증상이 아닌 한, 인간은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단순한 특징이나 성향으로 받아들이거든. 그래서 주위와 비교해서 나는 왜 이렇게 집중력이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알아본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발달장애였다는 걸 깨닫는 거지. 기타노씨도 그럴만한 기질이 있었을지도 몰라.

p330

 ...다시 말해 우습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열 배는 강해서 일상의 모든 면에서 기를 쓴다는 거지. 실패가 두려워서 동아리에도 안 들고,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아. 난 마음만 먹으면 대단하다는 핑계만 대지. 한번 창피를 당하면 편해진다고 알려주고 싶지만, 중학생한테는 아직 어렵겠지.

 이라부의 이야기를 듣고 유야는 모든게 이해가 갔다. 마사루가 틈만 나면 유야를 커뮤니케이션 장애라고 놀리는 것은 사실은 자기야말로 커뮤니케이션 장애라 그걸 들킬까 봐 두려워서다. 난폭한 언동은 나약한 마음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어서다.

p348

 때로 진실은 진지함보다 웃음 속에 있다. 상승 욕구, 치열한 경쟁, 자의식과잉, 가면 속 자신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란 속에 허덕이다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우리에게 이라부는 살며시 숨구멍을 열어준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한, 적당히 힘을 빼고 훌훌 털어내라며 넓은 품으로 감싸주고 토닥여준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균형이 깨질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덜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어떤 선입견도 없기에 고압적이지 않고, 타인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도 않는 이라부를 만나 작업하면서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오랜 친구를 재회한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꼈다. 이 책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라부가 선사하는 최고의 처방전이다. 앞으로도 나는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의 진료실 문을 두드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럴 때마다 짧은 다리를 무리하게 꼬고 앉은 이라부는 이렇게 말하겠지. "괜찮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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