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62  

한때 일부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을 향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선출된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대의 민주제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선출되지 않은 공무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도 문제지만, 선출되었다고 해서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마저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큰 위험이다. 아무리 대의 민주제라도 그 권력은 여전히 선출한 이에게 있다. 대리인을 통한 대의 민주주의가 그럴듯한 대의를 빌미로 전체주의로 변질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p163

... 협동조합에 관한 모든 일을 조합원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이를 통해 조합원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우며, 이런 조합원 판단과 의견이 협동조합 운영에 잘 반영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다시 조합원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이런 연속적 행위의 과정이 바로 선출된 대리인으로서 복무하는 협동조합 임원의 역할이다.

 우리는 보통 제 2원칙에서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에만 관심을 쏟지, 임원의 명칭과 역할의 변화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임원의 명칭이 '간부'에서 '대리인'으로 바뀌고, 조합원을 향한 마음가짐과 설명 책임의 역할이 강조된 것은 제2원칙 개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다. 조합원에 의해 선출된 대리인이 그 조합원을 제대로 모시고 조합원과 협동조합 사이를 잘 연결해야 비로소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운영을 강조한 바로 다음에 임원의 역할을 언급하게 된 이유다.

p165

...다수의 전횡이든 소수에 대한 배려든 이는 모두 숫자의 논리일 뿐이다. 조합원을 사람이 아닌 숫자로 보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는 소수를 배려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숫자로 변질된 조합원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이런 숫자에 의해 진짜 사람이 좌지우지되게 놔둬서는 안 된다.

 단위조합이든 연합조직이든 그 주체는 당연히 조합원이어야 하고, 그 조합원이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존재할 때 다수의 전횡이나 소수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는 진정한 인간의 연대가 싹튼다. 비록 그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를지라도 이것만이 참 민주주의를 실현해가는 유일한 길이다. 협동조합에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넘어서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배려이고, 이를 향해가는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연대다.

p188

 정부의 '사회통합'과 기업의 '사회공헌'이 협동조합에서는 '사회적 책임'과 '타인에 대한 배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회를 어떻게 하나로 모을 것인가""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것이가"와는 다르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윤택하게 할 것인가"가 협동조합의 특징이고 과제였던 셈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중심의 접근에는 한계가 잇었다. 생명이 살아가는 데는 항상 생명 활동의 시간적 장으로서의 '생활'과 공간적 장으로서의 '지역'이 같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이 가운데서도 특히 시간과 생활에 중점을 두고 관계를 형성해왔지만,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자칫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되기 쉽다. 잘 엮인 관게일수록 굳이 확장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실제로도 지난 세기 동안 협동조합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과제와 싸우느라 시간에만 집중해왔지, 공간을 형성할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었다.

p191

..."협동조합은 지역사회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활동해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9동시에 조합원) 삶의 기반이 되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활동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런 빈약한 해설이 제 7원칙을 새롭게 제정한 진짜 취지라면, 그 문구는 "협동조합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가 아니라 "동조합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환경보호를 위해"라고 정했어야 옳다.

....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필요를 충족하느 발전으로 정의된다."하지만 이런 해설 역시'발전'에 약간의 조건을 붙이는 정도일 뿐 결국에는 '발전'에 무게를 둔 것이다. 그동안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다음 세대의 필요를 조금은 배려하면서 지금의 필요를 계속 충족해가겠다는 이야기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 문제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지속가능'과 '발전'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지 않고는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21세기 협동조합의 전략을 구체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진정한 의미는 '지속가능'과 '발전'을 동일선상에 병렬로 놓는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이라는 조건을 조금 붙여 '발전'을 계속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지속 가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지금까지의 '발전'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미래에 비추어 현재를 재검토하자는 것이고,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해 지금 세대의 필요를 양보하자는 것이다. 공간적으로는 밖에서 안을 되돌아보자는 것이고,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합원의 삶도 꾸려가자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바탕이 되어야 조합원이 다음 세대와 이웃을 위해 나설 수 있고, 협동조합도 다가올 21세기에 합당한 자기모습을 찾을 수 있다.

p199

 ...사회적 협동조합은 전통적 협동조합과 비교해서 그 사업목적이 다르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 공통의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기 위해 사업을 전개한다면, 사회적 협동조합은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사업을 전개한다. 이를 두고 전통적 협동조합이 조합원 '공통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비해,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적 관심사'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interest'는 좁은 의미의 '이익'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관심사'다. 전통적 협동조합이 추구해온 것은 '공익'이 아니라 '공통의 관심사'고, 사회적 협동조합이 추구하고 있ㄴㄴ 것 역시 '공익'이 아니라 '일반적 관심사'다 협동조합을 홍보한답시고 일반기업은 '사익'을 추구하고, 전통적 협동조합은 '공익'을 추구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공익'을 추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협동조합을 이익집단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공익단체로 둔갑시키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합원 공통의 관심사를 조합원 아닌 이들의 관심사로까지 넓혀 사죄적으로 - 사람과의 관게에서 - 배제된 이들의 필요와 염원을 함께 충족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지, 공익 즉 '불특정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다. '공익'의 추구는 협동조합이 아닌 정부와 공기업이 담당해야 할 당연한 자기 몫이다.

p217

 모든 시대에는 항상 그 시대를 견인해온 말이 있다. 말이 중요한 이유는, 어느 시대든 그 시대를 견인하는 것이 결국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견인하는 것이 바로 말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경우, 그 말은 아마도 '자유'와 '평등'일 것이다. 국가나 종교 등 그 어떤 초월적인 것에 의한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신분이나 지위 등 그 어떤 위계적인 것에 의한 차별에서 벗어나려는 평등, 이 두가지야말로 근대를 열고 근대의 오랜 기간을 지배해온 가장 중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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