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73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 잊게 되는데, 안 좋은 일만큼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p353
 1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터무니없이 크다. 그 사이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행복이나 불행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 조용히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15년 전의 과거가 집 안에 흙발로 들이닥친다면 어떻게 될까. 받은 사람은 시공간의 틈새가 억지로 벌어져 불행했을 수도 있는 과거로 되돌려진다.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상자가 찢기고 지난날의 끈적한 고름이 배어난다. 행복한 과거면 괜찮지만 행복한 현재의 생활에 불행한 과거가 쏟아져 들어오면 당연히 불행해진다.
......
행복하게 생활하던 사람은 불행해지고, 불행하게 생활하던 사람은 한층 더 불행해진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적은 편지가 15년 동안에 몬스터처럼 변모하여 평온한 인정사정없이 파괴한다. 당사자로서 나는 그 점을 절실하게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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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캡슐 - 15년 만에 도착한 편지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윤수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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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보내지는 편지. 
받는 사람의 반응, 행동을 제 3자의 눈으로 보고 기록하는 기획.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주된 목적.
추리소설.
반전이 예측이 안된다. 이게 서술 트릭인가.
사건은 그 편지들이 15년 뒤에 도착하기를 바랬던 편지가 아니라는데서 시작한다.
짧은 이야기 여덟개.
왠지 결자해지 분위기다.
이야기마다 편자 후기가 있는데 지켜보는 사람이 더 무섭다.
1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끝까지 뭐지 뭐지 하면서 읽게 된다.
같은 맨션에 사는 사람들이 이리 저리 얽혀있다.
결국 뿌린대로 거두는 건가.
과하긴 하지만 역시 인간이란 참...다양하구나...

2008. 4.18에 배달되었어야 되는 편지들이 ...15년 뒤에 배달되어 생기는 일들이다.
- 재회
프로포즈 편지. 15년 뒤에 편지 받고 나갔더니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쓴이.
각각의 배우자가 찌르고 찔리고 된다...
- 유서
아들의 유서가 ...
- 인사편지
저주편지...인간이란...
-협박편지.
우편배달부를 도와준 사타케 겐스케...
그놈의 용서를 못한다는 ...마음이란...
이것도 반전이...
- 수상작 없음.
헐럴. 당선 알림 편지가 15년 뒤에 도착. 근데 당선인데 자비출판인가? 상금도 없고...
근데 역시 인간이란
-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는다.
할머니, 소녀...와...다행이다.
여기도 참 신기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 마지막 편지
편자의 정체. 아르바이트로 우편물 배달을 했던...
- 고백.
누가 잘못한 걸까.
- 에필로그
그냥 잘못했을땐 바로 바로잡아야...
일본 소설 같다. 그냥 그랬는데...재미있어서 한 번에 후딱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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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로 떠난 공처가 남편의 자발적 고독 살이 냥이문고 5
편성준.윤혜자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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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선물한 제주도 한달 살기로 글쓰러 제주간 남편과 남은 아내의 일기 바탕으로 한 글 모음?
뭐 그 한의원 원장님처럼 물론 부럽다.
출판기획자 아내, 카피라이터 출신 남편. 
서로 대화가 많은 부부여서 가능한 일이였을까?
소소한 일상, 한달 살기건 여행이건 일상은 있으니, 그냥 사는 이야기, 읽은 책, 마주친 사람들, 홈그라운드가 아니라 겪는 불편.
- 공처가의 캘리.
읽다보면 사는 일이 이리 조용조용 소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뭐 대단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고만고만한 중에 배시시, 피식 웃을 일이 가끔 있으면 될 일인데 뭔 욕심들이 그리도 가열찬지.
이들의  글을 읽다보면 살면서 생긴 인연들, 일상에서 늘 겪는 사소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남의 일기장 살짝 구경하는 느낌. 역시 사는 거 별거 없고 그게 재미고 뭐 그런. '가벼운 무거움'?
혼자가 되면 지금까지는 몰랐던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고 선동질? 하는 책. 
자발적 고독이라... 내게는 선동질이 먹혔다.
쉽게 읽히고 따듯하다.
- 여행 싫어하는 남자가 혼자 여행을 하면: 공처가 남편없이 한달 살아보자
- 나도 파전을 먹고 싶었는데: 겨우 이틀째 버스에서 눈물을 훔치다.
남편 없는 이틀째 보고 싶어 눈물이? 어쩔...나는 편안할지도...쿨럭
- 할아버지와 시외버스: 남편 자리에 순자가 누웠다.
제주도 버스가 좀 그렇더라.
- A4용지와 한우 등심: 남편이 없어 좋은 점을 찾아보았다.
부부가 주거니 받거니 책읽는 거 좋으다. 부럽다.
- 외롭고 싶어서가 아니라 고독해지려고 온 것이다.
고독하되 외로워지지 말자.
- 커피 광고 카피를 닮은 고독: 조금 거리를 두고 느긋하게, 부부는 그래도 좋다.
- 행복하려면 항복하라.: 아이 맡기고 외출한 엄마처럼. 
이쁘네, 아내에게 항복. 쿨럭. 자주 씻는 남편, 덜 씻는 아내
- 평균 이하로 태어나도 평균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 이중 외박: 걱정도 out of sight, out of, out of mind.
- 한라산 마시며 소설 읽는 저녁: 아이템도 못쓰는 여자
- 유리는 깨지 않아 다행이에요.
- 압구정동에서 <대부2>를 혼자 보던 정성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수능일: 반가워 마시는 술
여러모로 좋다.
- 술마시다 생긴 인연
비내리는 일요일의 이별주
- 세븐 일레븐 성북점과 성북문화원: 다시 제주로 떠난 남편
- 아내는 서울에서 낮술, 남편은 제주에서 밤술. : 심란함에는 꽃이 최고
공처가의 캘리 찾아보고 싶어지더라. 나는 심심하고 착한 이 작가의 글도 좋다.
- 순자 목욕 사건: 잠 못 드는 밤. 순자는 외출을 하고
- 눈물이 많아졋다.: 우울함의 원인에 대한 고찰
- 숲 속의 영상편지: 내게도 좋은 시간
- 구하라의 명복을 빌며
- 우리는 모두 배우다: 좋아하는 11월
- 평일 대낮 바닷가에서 셀카 찍는 중년 남의 진심: 시끄럽고 추운 하루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24시간: 이 시간의 대가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아무때든 전화할 수 있는 사이
인생의 덧없음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
- 제주도에서 칼럼 연재를 시작하다: 중이염이라니
- 아무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오래된, 그러나 따뜻한 성북동의 어느 병원
-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눈 날.: 김장독립
돈에서 벗어나고 싶어 돈을 버는 아이러니
- 커피와 소설책만 있던 일요일: 남편이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 발사되지 않은 총
- 겨울 선생이 태어난 날, 아내는 불을 뿜고: 화날 땐 수다가 답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
- 아내 없이 혼자 보낸 두 번째 허니문: 하룻밤 아닌 한 밤
- 서른 한 번째 날
남편이랑 한 달 떨어져 있는 거 못할 일이라는 윤혜자님. 정말 사랑하나봐
<에필로그>
- 남자에겐 자발적 고독이 필요하다.
뭐 여자도 마찬가지. 인간에겐 모두들...일정량의? 자발적 고독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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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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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이 재밌대.
미리암의 팔지 참들을 가지고 하는 아서의 여행.
아서에겐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읽는 나에겐 인생, 삶에 대한 생각을 요구한다.
그 여행들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말하는 아서, 그리고 자기가 만난 사람들도 무언가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어른 멋있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아서.
재밌게 읽었다. 따뜻했고.
- 옷장 속의 깜짝 선물
예순 아홉, 홀아비?
미리엄 페퍼. 미리엄 켐프스터. 아내죽고 1년, 팔찌 참들 발견.
- 코끼리
인도의 메라의 아야였던 미리엄. 이제 참들을 추적하기로...
- 대탈출
버나뎃, 네이단과 그레이스톡에 간다.
- 출발
슬프다. 아서의 꿈. 아이들의 순간순간을 즐겨야지. 
- 루시와 거북
딸 루시, 이야기
- 비앤드비
영국 식사후 그레이스톡 영지엔 혼자 갈거래.
- 호랑이
그레이스톡을 만나려다 다치고, 호랑이에 긁힌 아서
- 사진
아내의 또 다른 남자? 드쇼펑을 찾으러 떠나게 되겠네
- 루시와 댄
루시는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야 할까봐 걱정하기 시작.
루시와 댄의 갈등. 아이들이 그런 걸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 이동통신 기술
네이단의 도움으로 드쇼펑의 런던 주소 알게됨
- 런던
바람둥이 남자와의 대화. 아서의 대답들이 맘에 든다.
- 책
드 쇼펑의 마세리라는 시. 세바스티안과의 대화
- 또 하나의 루시
호스텔에서 하루 묵으며 본 독일처녀들. 변한 세상, 아내와 미리엄의 결혼식.
늘 새로운 모험. 지갑도 소매치기 당하고 루시라는 개를 데리고 있는 마이크도 만나고
- 마이크의 아파트
거리에서 생계를 꾸리지만 책을 많이 읽는 마이크, 플루트를 부는 멋진 청년이다.
- 꽃
여행하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미래를 생각하게 된 아서. 미리엄의 어머니 펄.
미리엄이 집을 떠났던 이유
- 새싹
루시와 대화, 파리에 같이 가기로
- 골무
미리엄과 실비의 이야기
- 파리마치
실비랑 삐리리 할 뻔 했는데 아서는 여전히 미리엄을 사랑해. 실비 말대로 신의를 지키는 아서는 고결해
- 북페이스
네이단이 소니 야들리를 찾아준다. 네이단과 버나뎃 이야기
- 팔레트
아내가 모델인 그림 발견
- 버나뎃
여자가 하는 말은 때때로 그 반대 의미. 버나뎃이 유방암일지도
- 반지
소니야들리가 해준 미리엄과 마틴의 이야기. 슬퍼겠다. 아서.
- 거지같은 생일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미리엄에 대한 사랑이 담긴 편지
편지를 전하고 바다에 들어가려다 루시 생각에 그만둔 아서.
- 추억
댄, 루시와 동네 지인들이 해준 서프라이즈파티. 아서와 미리엄의 행복했던 추억. 
- 하트
하트 참은 댄이 선물한 거였어. 알고보면 좋은 가족들이었어.
- 집으로 온 편지
소니 야들리가 보내온 미리엄의 편지들. 미리엄을 이제 놓아주기
- 찾은 사람이 임자
마이크에게 아버지의 시계를 찾아 돌려줌
- 여행의 끝
다시 여행을 떠나는 아서
- 미래
딱 한 사람을 선택하고 행복했지. 라제쉬 메라를 만난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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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그저 겁을 집어먹었을 때만 위험할 뿐이지요.
p135
...사실 아무런 죄도 없었다. 소송이란 그가 종종 은행을 위해 이득을 내면서 마무리지었던 사업고 ㅏ같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 사업에는 늘 그렇듯이 각종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 위험을 막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무슨 죄에 대한 생각 같은 것에 휘말려서는 안 되고 딜 수 있는 대로 자기 이익에 대한 생각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주 빨리, 될 수 있으면 빨리 오늘 저녁에 변호사에게 변호의뢰를 취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
p228
...여자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에 제가 아는 몇몇 여자들을 저를 위해 공동으로 일하도록 움직일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법원은 거의 모두가 난봉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p240
...법원은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이 오면 받아들이고, 당신이 가면 내버려둘 뿐입니다.
p271
...차장으로 하여금 내가 완전히 끝장났다는 믿음을 갖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무실에 편안하게 앉아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해놓아야 한다. 그로 하여금 될 수 잇는 대로 자주 내가 아직 살아 있으며, 비록 지금은 위험하지는 않더라도 살아 있는 모든 인간들처럼 어느 날 새로운 능력으로 그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때때로 카는 이런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오직 자기의 명예를 위한 것뿐이라고 혼잣말을 했따. 왜냐하면 자기가 약한데도 계속 차장에게 맞서봤자 그의 권력에 대한 의식만을 강화시키고 ,그로 하여금 현재의 정세를 관찰하게 하여 그것에 따라 정확히 조치를 취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는 자기 태도를 전혀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으며, 때때로 그는 자기가 이젠 안심하고 차장과 대적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도 있었다. 가장 불행한 경험에서조차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모든게 한결같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그는 열 번 시도해서 실패하면 열한 번째는 관철 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런 대담을 하고 난 후에 그가 지쳐서 담에 젖은 채 멍한 상태로 남게 될 때면, 자신을 차장에게로 급히 가게 만든 것이 희망 때문이었는지 절망 때문이었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번에 그가 차장의 사무실 문으로 서둘러 달려갈 때는 아주 분명하게 희망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p283
 사람들은 카프카의 작품을 꿈같은 환상문학으로, 수수께끼 같은 비유적인 작품으로, 유대교의 카발라 세계를 반영한 작품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의 심리적 갈등 문제로, 아니면 현대 인간의 실존적인 불안과 소외 문제로, 문명 세계의 비판이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 사회의 권력과 욕망의 구조, 해체주의적 형식주의로, 초현실주의 세계의 반영으로, 극단적으로는 '병적인 작가 개인의 망상'을 반영한 작품으로까지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이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독자 개개인의 각기 다른 읽기 방식에 연유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카프카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p284
 예전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들은 언제나 정신과 육체 영혼과 자연, 이념과 물질, 꿈과 현실, 죽음과 삶, 무의식과 의식이 하나로 통일되었던 보편적인 세계 속에 살아 왓고 또한 그것을 꿈꾸어왔다. 그러나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통일된 두 세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꿈과 환상, 정신과 영혼, 그리고 무의식과 상상력이 머물던 정신세계는 멀리 사라져버렸고, 권력과 욕망, 물질과 의식, 그리고 메커니즘화되고 이데올로기화된 현실세계만이 우리 인간을 지배하는 것 같다. 이렇듯 괴리된 정신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모순 관계를 카프카는 자신의 잠언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지상의 시민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지상을 활보할 수 있는 길이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길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역시 자유로우면서도 얽매여 있는 천상의 쇠사슬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제 지상으로 가려 한다면, 천상의 목걸이가 그를 죄어올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느끼고 있다.
p286
...'세인'으로서의 인간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인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들에게는 정신, 영혼, 사랑, 인간다움 등은 거부된다. 즉 '세인'들에게는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일상에 불필요한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 그것들은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뜩한 것, 낯선 것,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신의 지위에 의해 호칭되고, 등급이 매겨지며, 그 등급에 따라 존재 가치가 평가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필연적인 실존방식이 된다.
 그러나 카프카에 따르면 이런 '세인'에게도 가끔은 꿈과 잠을 통해서 혹은 고독한 명상의 순간이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저 망각된 정신세계나 연혼의 세계가 유령처럼 찾아온다. 카프카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그것을 자신의 서술기법에 적용한다. 그는 권력적인 것, 물질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만 집착해 잇는 인간들이 잠이나 꿈, 혹은 순간적으로 방심한 사이에 그들이 망각했던 정신세계와 영혼의 세계를 마술적으로 침투시킴으로써 그들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다.
 카프카에게 있어 꿈이나 잠 혹은 무의식의 세계는 숨어 있던 '정신적인 것', '영혼적인 것'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며, 그로 인해 인간들이 기계적으로 복속되어 있어서 전혀 전망할 수 없는 일상생활의 상태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소송>에 관한 한 유고 단장에서 이것과 연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잠과 꿈속에서, 적어도 깨어 있는 상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무한한 정신이 현존하거나 혹은 영혼에 대해서도 현실에서보다 더 나은 준비태세가 되어 있어서 눈을 활짝 뜨는 순간에도(...) 현재 존재하는 모든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깨어 있는 순간에도 이러한 것들이 하나의 진기한 것으로 다가올 수 있다.
p289
...일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경제적 가치체계에 얽매여 있는 '세인'들에게 무의식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혼적인 것은 낯선 이미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낯선 이미지가 바로 섬뜩한 해충으로 빗대어 표현된 것이다. 한편 변신된 해충의 시각- 무의식적 또는 정신적 시각에서 보면,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이 그에게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잠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직장생활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희생적이었으며 비인간적인 것, 폭력적인 것이었는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가족들이나 직장 상사들은 이제 경제적 기능과 가치를 상실한 채 내면세계에 머물러 있는 '잠자'를 한 개인으로서가 아닌 무가치하고 혐오스러운 동물로 느낄 뿐이다. 개인적인 것, 사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존 자체를 이협할 수 있는 흉측하고 공포스러운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잠자'라는 해충은 이중의 시각으로 조망되고 이중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바로 여기에 카프카 작품의 난해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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