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0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민계급에 한정됭ㅆ던 자유. 평등. 우애가 한편에서는 '나'로 응축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모두'에게로 확장해갔다. 자유는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내게 강요하지 말고, 상대가 바라지 ㅇ낳는 것을 상대에게 행하지 않는다"라는 나와 모든 이들의 자유로, 평등은 "누구도 나를 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여서는 안 되고, 또 누구도 자신을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가난해서도 안 된다"라는 나와 모든 이들의 평등으로, 우애는 "내가 바라는 것을 다른 모든 이들에게 베푼다"라는 나와 모든 이들을 향한 사랑으로 응축된다.
프랑스혁명은 정치적으로만 보면 실패한 혁명이다.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냈어도 곧이어 로베스피에르의 독재와 나폴레옹의 왕정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프랑스혁명이 역사에 남은 것은 그것이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상(신념)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과 우애가 시민계급을 넘어 나에게로 응축되고 모든 이들에게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특히 사랑이 시민계급 간의 우애를 넘어 모든 이들을 향한 형제애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그 정신이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랑을 '자비'라 부른다. 그리고 이런 자비에는 다시 '중생연 자비''법연자비''무연자비'라는 세 종류가 있다. 중생연 자비란 공통의 상 즉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태어난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예컨대 같은 친족이나 마을 사람들끼리의 우애가 이에 해당한다. 법연자비란 법 즉 어떤 생각이나 이념을 공유하는 이들 간의 사랑으로, 예컨대 협동조합에서 같은 조합원끼리 서로 사랑하는 우애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무연 자비란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들에 대한 태양이나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위에서 말한 친소관계나 이념적 동질성과 상관없이 펼치는 모든 인간과 생명을 향한 사랑을 말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삼연 자비'가운데 무연자비를 무조건적이고 절대 평등한 아미타불의 자비(=대자비)로 승모한다.
p124
사람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나는 그의 말이 대충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가 믿는 것은 대체로 무지에서 나온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국가를 본 적이 없고 만져본 적도 없다. 이는 국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말(언어)이고, 말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법령이나 제도 같은 말이 있고, 그 말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행위가 쌓여 국가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말과 그 말에 대한 믿음이 국가를 만들고, 그 믿음이 무너지면 국가도 사라진다. 자본도 마찬가지여서, 자본이란 본래 종이 위에 새겨진(최근에는 종이마저 필요 없게 되었지만) 말이고, 그 말에 대한 믿음일 뿐이다. 그 믿음이 흔들리면 자본의 힘도 쇠약해지고(= 인플레이션), 그 믿음이 무너지면 자본의 힘이 사라진다(= 공황).
마르크스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 그가 국가를 '환상의 공동체'라 표현한 것은 국가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강요된 말의 믿음 체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는 분명 우리에게 잘못된 믿음을 깨우쳐준 위대한 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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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엾는 믿음이 환상이라면, 자기 나름의 믿음 없는 삶은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습니다.
p127
...그 말에 거짓이 없는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그 말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는지, 일단은 가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말도 결국에는 나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협동조합을 안다는 것은 그 말을 과학 하는 데서 시작되고, 이는 나도 마르크스로부터 배운 바다.
p128
주문이란 "사람이 입으로 먹는 말"이란 뜻이다. 말을 입으로 먹는다? 밥이나 술 같으면 당연히 입으로 먹겠지만, 말을 입으로 먹는다? 괴상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되뇌고 곱씹는다는 의미다. 밥이나 술을 먹어 내 안에 들이는 것처럼, 누군가의 말을 되뇌고 곱씹는 가운데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p129
..."하쿠나 마타타"는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문제없어.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될 거야"라는 뜻이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없고, 왜 걱정 안 해도 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나무아미타불"은 간단히는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라는 뜻이고, 자세히는 "삼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빛과 생명의 세계로 돌아가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라는 뜻이지만, 그 깊은 일념에 제대로 도달하려면 최소한 대승 경전을 수십 권은 돌파해야 한다.
동학의 주문 또한 마찬가지다."사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는 "(각자가 자기 안에)한울을 모시고, (그 한울의) 조화에 정하니,(이를)영세토록 잊지 않으면, 세상만사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자기 존엄의 극치를 이른 말이지만, 내 안에 모신 내 한울을 제대로 깨달아 그 드러남에 한 치의 거리낌도 없으려면, 이 또한 수많은 수련을 거쳐야만 한다. 한마디로 누구도 그 정확한 뜻을 모른 채로 끝없이 되는 것이 주문이고, 숨은 행간의 뜻을 자기 나름으로 찾아야 하는 것이 주문이다.
또, 이런 주문에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 주문을 되뇌는 가운데 사람들은 자기도 몰랐던 어떤 힘이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하쿠나 마타타"를 되는 가운데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위로 받게 되고, 어떻게든 될 거라고 격려받게 된다.
신비는 결코 미신이 아니다. 미신이란 눈앞의 서로 다른 두 현상을 잘못된 인과관계로 엮는 것이다. 예컨대 '까마귀가 울었다'와 '나쁜 소식을 들었다'를 연결해 "까마귀가 우니 나쁜 소식이 들려 왔다"라고 믿으면 이는 미신이다. 이에 비해 신비란 드러난 현상의 깊은 곳에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을 느끼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 덕에 병이 나았다고 믿으면 이는 미신이지만,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 덕에 마음의 힘을 얻어 병이 나았다고 느낀다면 이는 신비다.
p134
신란: 그럼 왜 내 말을 거역하지 않겠다고 했느냐? 이제 알 것이다.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된다면 내가 정토에 왕생하기 위해 천 명을 죽이라 했을 때(너는) 즉시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생각대로 죽일 수 있는 인연이 없기 때문에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을 뿐이다. 자기 마음이 착해서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한 죽일 의도가 없어도 백 명이고 천 명이고 죽이게 되는 것이다.
p158
...이용자와 운영자를 구분하는 것은 사업체와 결사체를 분리하는 것과 같고, 이는 결국 조합원의 고객화로 이어질 것이다. 상당한 수준으로 원외 이용을 허용하는 우리나라 같은 상황일수록 이용자를 조합원으로 참여시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p157
협동조합이라면 당연히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조합원 가입이 저지당하거나 참여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협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어떤 면에서는 모두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조합원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현실 정치를 향해 발언하는 것은 협동조합이 갖는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다.
물론 같은 정치적 행위라도 정파적인 행위는 삼가야 한다. 특정 정치세력에 개념 없이 끌려다니느니 차라리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하거나 최소한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걷는 게 맞다 금지해야 할 것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별이지 정치적 행위가 아니고, 지양해야할 것은 정파적 정치 행위지 정치적 행위 자체가 아니다. 정권의 향배에 따라 협동조합이 크게 영향받는 우리의 경우에는 특히 이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논란거리로 '원외 이용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협동조합 진영은 지금가지 전면적인 긍정이거나 전면적인 부정, 혹은 그 중간의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적으로는 조합원이어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수준으로 비조합원 이용을 허용해왔다. 운영은 조합원이 하지만 이용은 가능한 한 열어두자는 것이 협동조합 진영과 정책 당국의 암묵적인 합의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