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1  

 윤리는 도덕이 아니다. 윤리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게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서로가 지켜야 할 약속이고 규범이다. 이에 비해 도덕은 사람 간의 관게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있고, 이로 인해 오히려 사람 간의 자발적인 관게가 훼손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념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념은 사람의 조직이 그 조직을 만든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이데올로기는 반대로 사람에게 떨어져 나간 조직이 그 조직의 구성원을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가 주요 내용이다.

 도덕과 이데올로기는 당연히 극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도덕과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자고 정작 중요한 유리와 이념마저 없애버리면, 이는 뇌물을 없애자고 선물의 문화마저 걷어차는 것과 같다.

 윤리와 더덕의 대표적 사례로 유교의 유명한 '오륜;과 '삼강'이 있다. 오륜은 중국의 맹자가 인간의 관게에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규범을 정리한 것으로, 그 안에는 전국시대라는 혼돈기를 살았던 맹자의 절절한 소망, 즉 인간의 자발적이고 호혜적인 관계의 회복을 통해 끝없는 전란을 끝내고 싶어 하는 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삼강은 중국 최초의 제국인 한나라의 국가이념이 가족관계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임금이 신하의 벼리가 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신하는 임금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자식은 아비를 무조건 따라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황제를 정점으로 사회 전체를 수직적인 구조로 재편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오륜과 삼강을 하나로 합쳐 '삼강오륜'이라 부른다. 하지만 오륜은 윤리고, 삼강은 도덕이다. 오륜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양한 과게에서 수평적인 소통과 공감을 강조한 일종의 윤리라면, 삼강은 제왕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상의 모든 과게까지도 수직화한 일종의 도덕이다. 이런 도덕에서는 당연히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도덕에서 윤리를 분리해낼 수 있어야 하고, 도덕의 지배에서 벗어나 참다운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p89

 예컨대 <가치>에서 '정직'의 주어는 사람 즉 조합원이다. 조합원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에 그 주어를 조합원이 아닌 협동조합으로 하면 '정직'의 의미는 "협동조합은 그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속임이 없어야 한다"라는 뜻의 '품질 본위'가 된다. 마찬가지로 '공개'의 주어를 협동조합으로 하면 협동조합의 투명한 정보공개가 되고, '사회적 책임'의 주어를 협동조합으로 하면 협동조합의 사회 공헌 사업이 되며, '타인에 대한 배려'의 주어를 협동조합으로 하면 "협동조합은 비경제적인 목적, 예컨대 교육 및 문화 활동, 어린이나 노약자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 제 3세계 협동조합에 대한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라는 의미가 된다.

p105

 전진한의 '자유'는 저마다 자기 있을 곳을 얻어 그 본성을 다 발화하는 것이다. 또 '협동'은 이런 과정에서 저마다의 개성이 전체와의 관계에서 연대성과 공존성을 발휘해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이런 자유와 협동의 동시적 추구를 통해 그는 모든 인간이 비로소 자유와 빵을 동시에 얻게 될 거라고 믿었다. 법열, 즉 진리를 깨달아 마음 깊은 곳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에 따르면 "협동이 없는 자유는 방종과 탐욕으로 흐르며, 자유가 없는 협동은 전체주의와 파시즘으로 귀결된다."

 ..."자본주의제도이 결함에서 야기된 각종 사회운동의 한 형태"로서 "경제적 약자가 상호부조의 협력에 의하여 그들의 경제적 향상을 기도하며 자본주의의 곃합을 배제하려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이상'과 동시에 협동조합에는 '사회 이상'이 있다. "경제 이상만을 갖고서 이 운동을 추진한다면 이 운동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니 사회 이상이 반드시 부수되어야 한다."여기서 말하는 사회 이상이 바로 '자유협동사회'다. "정치는 부업이고 참선이 본업"이었던 전진한에게 협동조합은 "이타가 곧 자리가 되며, 자리가 곧 이타가 되는 것"이다. 내면적 깨달음과 외연적 자비, 자유가 갖는 개성. 존엄성. 평등성. 창의성과 협동이 갖는 사회성. 연대성. 공존성이 지양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p108

여럿이 가우데서 될수록 하나인 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 변하는 가운데서 될수록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서 될수록 무슨 차례를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 정신이 어지러운 가운데서 될수록 무슨 차례를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 하나를 찾는 마음, 그것이 뜻이란 것이다. 그 뜻을 찾아 얻을 때, 죽었던 돌과 나무가 미로 살아나고, 떨어졌던 과거와 현재가 진으로 살아나고, 서로 원수되었던 너와 나의 행동이 선으로 살아난다. 그것이 역사를 앎이요, 역사를 봄이다.

p109

21 변증법에 대해 함석헌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변증법을 "역사를 머리, 꼬리는 다 그만두고 

   구름 속에 꿈틀거리는 용의 허리등만 같이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시작이 없다는 것은 

   뜻이 없다는 것이고, 끝이 없다는 것은 나아갈 방향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2 유물사관에 대해서도 함석헌은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에 따르면, "요즘에는 환경을 너무 중요하     게 여기는 사상이 있어서 사람이란 마치 말똥 위에 나는 버섯처럼 순전히 환경의 산물인듯 생각     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주객을 서로 바꾸어놓은 그릇된 생각이다. 사람이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환경이란 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도깨비가 있어서 무서운 것이 아     니라 무서운 생각을 하기 때문에 도깨비가 생긴다." 내 생각도 기본적으로는 같다. 다만 사람의     마음은 환경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고, 따라서 나는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의 말처럼 정     신과 물질을 동시에 개벽- 영육쌍전과 이사병행-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p116

 <가치>의 제1문장에 등장하는 자조, 자기 책임, 민주주의, 평등, 공정, 연대는 모두 이런 한 인간의 자유를 기초로 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그 사업을 진행한다는 '자조'는, 스스로 돕는 자유인으로서의 조합원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협동조합이 그 맡겨진 역할과 책임을 성실히 수행한다는 '자기 책임'은, 자기 책임이 수반되는 자유인의 결합으로서 협동조합이 지녀야 할 당연한 자세다. 협동조합이 조합원에 의해 운영되도록 한다는 '민주주의'와 이런 조합원에 대해 협동조합이 차별하지 않는다는 '평동'은, 조합원이 지닌 전면적이고 보편적인 타고난 자유를 인정하고 이런 조합원이 평등한 주권자일 대나 가능한 이야기다.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 전체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만들어간다는 '공정'과 이를 위해 다른 조직(협동조합)과도 함께한다는 '연대'는, 이런 자유인의 확장과 이를 위한 연대를 염원한 것이다. '협동조합의 가치'는 이렇게 한 사람의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조직의 사명을 표현한 것이고, 최종적으로 자유의 실현과 그 확대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p117

 ...함석헌에 따르면 절대자는 사랑을 통해 만물을 낳았고, 사랑으로 잔신과 만물의 하나됨을 이뤄가는 존재다. 여기서 절대자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고 생명의 근본원리다. 인간은 이런 생명의 근본원리에 따라 지어진 존재고, 따라서 인간 또한 사랑을 통해 다른 생명과 하나됨을 이루어가는 존재다. 이렇듯 같은 자유를 지향하더라도 헤겔은 그 실행원리로 투쟁을 든데 비해, 함석헌은 사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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