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7
...'욕망과 욕망의 지속이 어떻게 동경과 충족되지 않은 소망과 좌절된 욕구에 의지하는가'에 관한 대화였다.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던 밤, 우리는 어릴 때 살던 도시를 거닐고 있었다. 최근의 혁명과 뒤이은 내분으로 파손된 건물들이 보였다. 예전에 살던 익숙한 곳이라고 돌아온 도시가 그새 완전히 달라져 낯선 장소가 되어 버린 꼴이었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목적을 이루는 순간 욕망은 죽어. 어떤 사람, 어떤 것에 대한 우리 열정을 살아 있게 해주는 건 달성의 가능성이지."친구가 예의 자신있는 타도로 말을 이었다. 어릴 때는 가끔 견디기 힘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구의 그런 태도가 소중하게 여겨진다. "욕망이 원하는 완전한 정복과 욕망이 계속 존재하는데 필요한 불가사의, 즉 알 수 없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있어. 욕망은 영양실조를 통해서만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이야. 진화적 측면에서 보면, 실패는 욕망의 필요조건이고 좌절은 그 모체지."
.....쏘아 올린 돌멩이가 곧바로, 잘못하면 우리 머리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몇 시간씩 별을 향해 새총을 쏘던 어릴 적에는 늘 이러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람은 늘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진짜 즐거움은 과녁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과녁을 겨냥하는 데에 있으니 말이다....
p44
...다윗이 새로운 진실을 이해하고 그에 저항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복수가 골리앗에게 우위를 주었다는 진실, 우리가 적을 처형하는 순간 적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으로 달아나 버린다는 진실, 또는 내세의 부재 속에서 적의 일대기는 마감되었고, 그러므로 더는 변경될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폭군들이 가장 맹렬한 적을 감금 상태로 살려 두는 쪽을 더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여기 골리앗의 경우처럼 죽은 자의 마지막 주장이 그 침묵이라는 걸 안다. 그러지 않다면 왜 다윗의 얼굴에 후회의 기색이 비치겠는가? 아마도 골리앗을 살해한 것이 그에게 새로운 연민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카르바조의 다윗은 승리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어린 생에서 아마 처음으로 자기 행위의 여파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룬 자기 성취의 규모를 명확하게 가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p48
...우리의 견고한 믿음과 열정 탓에 우리 각자가 저만의 전망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속죄와 관계가 있음을, 우리의 속지 본능은 적에 대한 우리의 명백한 동정심 속에 발견되는 것임을, 사람이 된다는 건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이 두 극단 간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말이다.
극단적인 적 간의 사례가 아니라도, 친구나 연인 간에도 비슷한 욕망이 존재하는데, 아마 오래된 친구나 오래된 연인 간에는 더 강렬할 것이다....창작 행위 안에 내재한 것은 칭송이다. 세계를 발견하고 이름 붙이는 것에 대한, 세계를 알아보는 것에 대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칭송 말이다. 프랑스의 예술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사진 찍는 것을 '응'이라 말하기로, 승인의 '응'이 아니라 알아봄의 '응'으로 묘사한 적이 잇다. 처음에도 그렇지만 결국에도 사랑과 예술의 믿음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가진 제한적인 지식으로 달리 어떻게 기능할 수 있겠는가? 비관론자냐는 질문을 받은 영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희망의 몸짓이 아니라면 내가 왜 당신과 얘기를 하고 있겠소?".....실로 예술사 전체가 그렇게 읽힐 수 있다. 희망의 몸짓이자 욕망의 몸짓으로서,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려는, 아내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려는, 의도와 발화 사이에 존재하는 남모를 비극적 거리를 건너뛰어 마침내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어떤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보이기 위해 인식되기 위해, 다른 누군가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 우리를 제일 잘 아는 이들에게 동일성을 인정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변화하려는, 인간 정신이 품은 비밀스러운 야망의 작용으로서 말이다.
p52
... '현재에 머무르기'나 '지금 살기'담화는 우리 동시대 언어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아무런 선택지도 제시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의 주목을 강요한다. 현재는 냉혹하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안다. 더없이 우연한 방향 틀기나 어떤 사람, 어떤 책, 어떤 그림, 기대치 않았던 어떤 뉴스와의 무고한 마주침, 또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순한 생각이 우리를 아주 조금 바꿔놓을 수 잇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그걸 멈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게 된다. 현재에 관한 한, 우리가 민감한 데다 매료돼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비하면, 과거는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니라면, 어쨌거나 우리는 현재보다 과거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미래는 그게 얼마나 확실하고 불하ㅘㄱ실한지에 상관없이 늘 멀어 보인다. 미래는 영원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이다.
p71
...갑자기 뭔가 알겠다는 기분이 들면서 시에나의 관점에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무한은 밀실 공포증을 일으키는 전망이라는 것, 혼돈이라는 삶의 성질을 고려햇을 때, 우리 자신을 설명해낼 수 있는 영역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특권을 누려야 하고 무엇이 배제되어야 하는지 주요 통행 축들과 그 사이를 잇는 도로망을 어떻게 배치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잇는 영역에 방벽을 둘러치는 일이 지극히 적절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그런 경게는 자연의 힘과 자연이 가진 자유와 확신, 자연의 빛을 향한 열광, 자연의 솔직함에 대한 완곡한 승인이 되는 듯했다. ....
p78
...고비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걸 명심해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p92
...나는 방에 있는 물체가 방의 거주자들이 자신과 관계를 맺든 말든, 조금이라도 주목하든 말든, 그 여부에 상관없이 영향력을 강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책들이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신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책들의 끈질긴 유효성을 높인다고 믿은 점에서 몽테뉴는 옳았다. 피나코테카 미술관 경비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p102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즐거워서, 그 자리에서도 다들 그런 말을 햇지만, 마치 예전부터 알던 친구들이 모여 노하가 표현한 대로,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구구절절 얘기할 필요도 없이"잠시 끊긴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가는 것만 같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서로가 살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서로의 입에서 저절로 술술 풀려 나왓다. 나는 그들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르단에서 살 때의 생활이며, 결혼하게 된 사연, 시에나에서 자력으로 일군 삶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생생하게 남은 것은 그런 사실들이 아니라 그들 삶 전체의 특질, 그들이 집 안에 만들어 놓은 그 분위기, 그들이 보여 준 호기심의 가식 없는 진정성과 그들이 품은 인간적 감정의 상냥함이었다. 나는 그날 밤 선물받은 값진 물건잉 양 그것들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p111
...두 아브라함 신앙 중 어느 하나의 안에서 태어난다는 거, 한 문화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 이 경우엔 지금것 너무나 오래 다른 아브라함 신앙과의 대결에 몰두해 온 다른 문화 안에서 성년에 이른다는 것은, 역사의 요점이 어느 한쪽이 옳다는 걸, 어느 한쪽이 신을 더 사랑하거나 더 참되거나 더 인간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있는 양, 영성이라는 것이 마음의 개인적 영역이 아니라 미소 짓는 신이 메달을 건네줄 결승선까지 가는 경주인 양, 편협한 구별 짓기와 비난과 사악한 동기를 가진 비교와 차별과 공포의 어휘들이 가지는 논리에 너무 밀접하게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피나코테카에 선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요점을 빗나간 듯 보였다.
p130
...어떤 종류든, 얼마나 견고해 보이든, 신앙이란 늘 의심의 공간이라는 문제 말이다. 바르톨로는 페트라르카와 마찬가지로 흑사병을 목격하고 심한 동요를 겪은 페트라르카의 친구이자 서신교환자인 피렌체의 시인 보카치오의 짖궂은 말을 되풀이하는 듯했다. "우리가 무얼 하든, 그게 만물의 창조주셨던 성스럽고 끔찍한 그분의 이름으로 시작된다는 건 (...) 그야말로 적절하다 할 일이지."희미하지만, 아마 의도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냉소적인 반란의 한 요소가 자기표현적인 웅장함이라는 양날의 몸짓을 지나 여기 이 예배당에 와 있다.
p138
...요점은 결혼 생활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거야.
p142
우리한테는 영국 사람들이 '화풀이 방'이라 부르는 것이기도 햇지. 말다툼 같은 걸 하고 나면 잠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 여기로 오는 거야. 아니면, 둘 중 하나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할 때나. 여긴 우리에게 일종의 독립적인 유대감을 주었어.
p152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성공한 사람들 특유의 낙천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둘은 대화 중에 문득 자기 삶과 일에 대한 위로할 길 없는 깊은 실망감과 함께 상대에 대한 강한 비난을 숨긴 듯한 분명치 않은 감정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부들은 능히 휘둘를 줄 아는 조용한 폭력의 기미를 띤 채, 둘은 자신이 놓친 온갖 기회들곽 걷지 않은 길들과 지금에 와서는 만회할 수도 ㅇ벗는 후회들을 열거했다.
p154
....성인 같은 이들은 천사들의 영접을 받는다. 그들은 재회조차 성직자답다. 그러고는 시에나 공동묘지에 함게 묻힌 부부들 같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의 손을 맞잡고 그저 그 눈을 오랫동안, 아니 아마도 영원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방법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다른 쌍들은 인생의 다른 단계에 있는 동일 인물인 듯하다. 나읻 ㅡㄴ 자신이 젊은 자신을 반긴다. 하단 오른쪽에 잇는 상만이 제삼의 인물, 더 나이 든 인물을 만류하는 듯한 젊은 수녀를 동반하고 있다. 젊은 수녀는 다가오는 수도사와 인사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려는 듯이 더 나읻 ㅡㄴ 자신을 팔로 감싸고 있다. 이들이 멀리서만 사랑할 수 있었던 연인,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일 수도 있을까? 그들은 디 파올로보다 세 세기 정도 이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디 파올로가 그들의 편지를 읽었고, 편지 쓰기를 '질병'이라 주장하며 편지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던 아벨라르의 절박한 탄원을 알고 있었으리라 확신했따. 반면에 엘로이즈느느 관습에 대한 위반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타남과 사라짐에 관심을 가졌다.....
알아보고 알아봐지는 일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듣는 일이야말로 모든 재회가 품고 있는 야심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리움과 향수병 뒤에 있는 것도 바로 이 설명을 듣고자 하는 욕구이리라. 여기서 디 파올로는 진정한 지옥이란 불의 지옥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웠떤 이들에게 알아봐지지 못하는 지옥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기를, 그로 인해 우리 기억의 힘을 재발견하고, 마침내는 의도와 표현 사이, 감추어진 감정과 그 외적 형태 사이에 놓인 위안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그 그림은 이걸 안다. 그 그림은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알아봐지는 것임을 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아무리 형태가 변하고 바뀌어도, 우리의 어떤 것이 우리가 그토록 오래 사랑했던 이들에게 지각될 수 있도록 견디어 남는 것 말이다. 아마도 에술사 전체가 이런 야심의 전개이리라. 모든 책, 그림, 교향곡이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낱낱이 알려 주려는 하나의 시도인 것이다.
p159
1. 시에나 화파는 십삼세기부터 십오세기까지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번성한 화파로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피렌체 화파에 비해 장식적이고 색채가 풍부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초상하나 고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시에나 화파의 시조라 불리는 두초 디 부오닌세냐, 고딕 양식을 접목한 피에트로와 암브로조 로렌체티 형제, 타데오 디 바르톨로, 마테오 디조반니 등이 대표적 화가이다. 십오세기에 시에나가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겪으면서 시에나 화파의 입지도 흔들리기 시작해, 결국 십오세기 말에 피렌체 화파의 원근법과 자연주의적 표현, 인간주의적 주제와 철학을 받아들이며 독립적 화파로서의 특성은 사라졋다.
2. 히샴 마타르의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리비아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물로 지목되면서 1979년부터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1990년 3월 카이로에서 납치되어 리비아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996년 6월 29일 이곳 정치범들이 대량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 후 생사불명 상태로 소식이 끊겼다. 히샴 마타르는 카다피 정권 몰락 후인 2012년에 고국을 방문햇으나 아버지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2016년에 이 여정을 담은 회고록 <귀환>을 출간한다.
p161
15.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십구세기 영국의 시인으로 자연과 종교에 관한 많은 작품을 썼다. 여기서 '눈의 단속'이란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을 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징벌하여 참회하게 한다는 뜻이다. 눈으로 본 것이 영혼에 흔적을 남긴다고 여긴 가톨릭 성인들이 무엇을 볼 것인지를 세심하게 통제하는 관행에 따른 표현인데, 여기서 저자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시선을 거둔다는 의미로 달리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