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기지개 - 구겨진 감정의 해방 레시피
장훈 지음 / 보민출판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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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마주하는 감정들 속에 깃든 삶의 무게 인정하고 스스로를 이유하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멈춤의 시간.

인간관계 속의 갈등과 오해.

각자의 차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상처 속에서 성장하기.

삶의 무수한 순간들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마음기지개 라는 정리.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에너지 쓰지 말기. 그걸 내게 쓰기.

결국 더 나은 내가 되기.

chapter1. 멈추고 새로고침

- 쉼표, 하나로도 충분하다.

물음표를 쉼표로 바꿔보기

- 남의 인생 살지 않기

눈치, 생존, 눈칫밥, 내눈치. 스스로를 보기.

비교금지. 통일성이나 일치에 대한 민감성.

유행보다 나만의 색깔과 길

- 괜찮다는 미소의 무게

내 감정에 충실하기. 자신을 갱신하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파도는 바다를 삼킬 수 없다.

-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참고 견디지 않아도 된다.

감정 억누르지 말기. 괜찮지 않은 감정 마주하는게 진정한 강함이고 나를 지키는 방법

- 위대한 개츠비의 한숨

갈망, 집착, 이루지 못한 것들 때문에 짓는 한숨.

내면의 결핍 말고 현재를 살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

- 마음을 위한 처방전

아픔 직면하기, 의미적 존재 찾기

chapter2. 너와 나 그 사이

- 어차피 가위바위보

인생은 그 자체로 공평. 누구나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승리나 패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가다.

나만의 리듬, 나의 잣대, 나의 기준.

우리 딸은 동생한테 매일 진다고 가위바위보 싫어했는데.

중요한 건 내가 뭘 보고 그 안에서 뭘 끌어내는가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내가 마주할 세상을 만든다.

- 너를 향한 짧은 한숨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대신

- 전쟁이 슬픈 이유

나는 피해자이기만 할까. 내가 선하다는 착각. 내안에 존재하는 갈등요인 인정

- 마음의 모서리에 스치다.

제대로 깎아진 마음갖기. 둥글게

- 상처가 남긴 흔적들

상처는 말에서 시작된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나의 역사.

어른은 살아온 시간의 숫자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만큼의 성숙이다.

- 손자서도 충분히 빛나는 순간들

chapter3. 다름이라는 무지개

- 여름만 사는 벌레

각자 자신의 경험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서로가 보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 감싸 안는 시간의 무게

나의 단점 아는 것은 최고의 지식, 타인의 장점 아는 것은 최고의 지혜

- 다름을 껴안는 법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 차이 속에 담긴 깊이

성숙은 경험과 지식에 갇히지 않는 것.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해석,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시선과 경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신적 확장.

내가 믿는 진리와 타인의 진리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 속에서 나의 한계 넘어서는 것이 성숙.

나이들수록 조심해야 한다.

고집세고 자기 안에 갇히지 않도록.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의심 안가지는 무지 조심할 것.

성숙은 역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모든 이해는 오해였다.

모든 오해를 다 풀 수는 없다

- 오리는 물로 꿩은 산으로 각자의 자리가 있다.

chapter4. 마음의 주름도 아름답다.

- 구겨진 마음, 그 속의 온기

삶은 결국 한 권의 책이다.

- 마음의 굴곡이 빚어낸 고운 나

삶의 본질은 '적당함'에 있다.

매 순간 선택하고 그 결정 속에서 성장한다

- 상처, 그 시간의 향기

바람이 불어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 내리고 삶의 어려움이 날 더 강하게 만든다.

신중, 자중, 존중의 말하면 살기

- 굳어진 마음 근육 풀기

우울증은 내 마음이 나에게서 멀리 떠나버린 것.

마음 근육 풀어서 마음 이완. 내 마음 붙들고 돌보기

일상 속에서 내 삶의 깊이, 의미 탐구하기

의미있는 경험과 시간. 나만의 의미 찾기

- 상처라는 영양분

내가 가야할 길, 가지 말아야할 길 알기

상처에 휘둘리지 말고 상처가 내 삶을 지배하게 두지 말고, 상처를 통해 배우고 풍유로워지자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해석해야 평안해진다.

- 상실의 학교

지나간 바람은 차지 않다. 어제의 기억으로 오늘을 살지 말자

chapter5. 우리가 다시 마주할 때

- 행복하고 싶은가?

소소한 부산물

-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이미 가진 것들에 감사함과 풍요로움 알고 평온을 찾기. 늘 그자리에, 변함없이

- 인생의 먼 길 걷기

참치는 N속 100Km로 쉬지 않고 헤엄쳐야 산다.

아가미에 근육이 없어서.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 겨울은 봄을 이기지 못한다.

가진 힘은 없어도 존재가 힘이 되는 봄 새싹

- 깊어진 마음 넓어진 시선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 잃어버린 나를 마주하다

자유란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더 이상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는 상대에서 비로소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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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  

...'욕망과 욕망의 지속이 어떻게 동경과 충족되지 않은 소망과 좌절된 욕구에 의지하는가'에 관한 대화였다. 친구가 그런 얘기를 하던 밤, 우리는 어릴 때 살던 도시를 거닐고 있었다. 최근의 혁명과 뒤이은 내분으로 파손된 건물들이 보였다. 예전에 살던 익숙한 곳이라고 돌아온 도시가 그새 완전히 달라져 낯선 장소가 되어 버린 꼴이었다. 친구가 말을 이었다. "목적을 이루는 순간 욕망은 죽어. 어떤 사람, 어떤 것에 대한 우리 열정을 살아 있게 해주는 건 달성의 가능성이지."친구가 예의 자신있는 타도로 말을 이었다. 어릴 때는 가끔 견디기 힘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구의 그런 태도가 소중하게 여겨진다. "욕망이 원하는 완전한 정복과 욕망이 계속 존재하는데 필요한 불가사의, 즉 알 수 없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있어. 욕망은 영양실조를 통해서만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이야. 진화적 측면에서 보면, 실패는 욕망의 필요조건이고 좌절은 그 모체지."

 .....쏘아 올린 돌멩이가 곧바로, 잘못하면 우리 머리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몇 시간씩 별을 향해 새총을 쏘던 어릴 적에는 늘 이러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람은 늘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진짜 즐거움은 과녁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과녁을 겨냥하는 데에 있으니 말이다....

p44

...다윗이 새로운 진실을 이해하고 그에 저항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복수가 골리앗에게 우위를 주었다는 진실, 우리가 적을 처형하는 순간 적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으로 달아나 버린다는 진실, 또는 내세의 부재 속에서 적의 일대기는 마감되었고, 그러므로 더는 변경될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폭군들이 가장 맹렬한 적을 감금 상태로 살려 두는 쪽을 더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은 여기 골리앗의 경우처럼 죽은 자의 마지막 주장이 그 침묵이라는 걸 안다. 그러지 않다면 왜 다윗의 얼굴에 후회의 기색이 비치겠는가? 아마도 골리앗을 살해한 것이 그에게 새로운 연민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카르바조의 다윗은 승리를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의 어린 생에서 아마 처음으로 자기 행위의 여파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룬 자기 성취의 규모를 명확하게 가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p48

...우리의 견고한 믿음과 열정 탓에 우리 각자가 저만의 전망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속죄와 관계가 있음을, 우리의 속지 본능은 적에 대한 우리의 명백한 동정심 속에 발견되는 것임을, 사람이 된다는 건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이 두 극단 간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말이다.

 극단적인 적 간의 사례가 아니라도, 친구나 연인 간에도 비슷한 욕망이 존재하는데, 아마 오래된 친구나 오래된 연인 간에는 더 강렬할 것이다....창작 행위 안에 내재한 것은 칭송이다. 세계를 발견하고 이름 붙이는 것에 대한, 세계를 알아보는 것에 대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한 칭송 말이다. 프랑스의 예술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사진 찍는 것을 '응'이라 말하기로, 승인의 '응'이 아니라 알아봄의 '응'으로 묘사한 적이 잇다. 처음에도 그렇지만 결국에도 사랑과 예술의 믿음의 표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가진 제한적인 지식으로 달리 어떻게 기능할 수 있겠는가? 비관론자냐는 질문을 받은 영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희망의 몸짓이 아니라면 내가 왜 당신과 얘기를 하고 있겠소?".....실로 예술사 전체가 그렇게 읽힐 수 있다. 희망의 몸짓이자 욕망의 몸짓으로서,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려는, 아내의 눈을 통해 세계를 보려는, 의도와 발화 사이에 존재하는 남모를 비극적 거리를 건너뛰어 마침내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될 수 있으리라는,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어떤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보이기 위해 인식되기 위해, 다른 누군가로 오인되지 않기 위해 우리를 제일 잘 아는 이들에게 동일성을 인정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변화하려는, 인간 정신이 품은 비밀스러운 야망의 작용으로서 말이다.

p52

... '현재에 머무르기'나 '지금 살기'담화는 우리 동시대 언어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아무런 선택지도 제시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의 주목을 강요한다. 현재는 냉혹하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안다. 더없이 우연한 방향 틀기나 어떤 사람, 어떤 책, 어떤 그림, 기대치 않았던 어떤 뉴스와의 무고한 마주침, 또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순한 생각이 우리를 아주 조금 바꿔놓을 수 잇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그걸 멈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게 된다. 현재에 관한 한, 우리가 민감한 데다 매료돼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에 비하면, 과거는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니라면, 어쨌거나 우리는 현재보다 과거를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미래는 그게 얼마나 확실하고 불하ㅘㄱ실한지에 상관없이 늘 멀어 보인다. 미래는 영원히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손님이다.

 p71

...갑자기 뭔가 알겠다는 기분이 들면서 시에나의 관점에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무한은 밀실 공포증을 일으키는 전망이라는 것, 혼돈이라는 삶의 성질을 고려햇을 때, 우리 자신을 설명해낼 수 있는 영역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특권을 누려야 하고 무엇이 배제되어야 하는지 주요 통행 축들과 그 사이를 잇는 도로망을 어떻게 배치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잇는 영역에 방벽을 둘러치는 일이 지극히 적절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그런 경게는 자연의 힘과 자연이 가진 자유와 확신, 자연의 빛을 향한 열광, 자연의 솔직함에 대한 완곡한 승인이 되는 듯했다. ....

p78

...고비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걸 명심해야 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p92

...나는 방에 있는 물체가 방의 거주자들이 자신과 관계를 맺든 말든, 조금이라도 주목하든 말든, 그 여부에 상관없이 영향력을 강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 책들이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정신과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책들의 끈질긴 유효성을 높인다고 믿은 점에서 몽테뉴는 옳았다. 피나코테카 미술관 경비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p102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즐거워서, 그 자리에서도 다들 그런 말을 햇지만, 마치 예전부터 알던 친구들이 모여 노하가 표현한 대로,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구구절절 얘기할 필요도 없이"잠시 끊긴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가는 것만 같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서로가 살면서 알게 된 모든 것이 서로의 입에서 저절로 술술 풀려 나왓다. 나는 그들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르단에서 살 때의 생활이며, 결혼하게 된 사연, 시에나에서 자력으로 일군 삶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생생하게 남은 것은 그런 사실들이 아니라 그들 삶 전체의 특질, 그들이 집 안에 만들어 놓은 그 분위기, 그들이 보여 준 호기심의 가식 없는 진정성과 그들이 품은 인간적 감정의 상냥함이었다. 나는 그날 밤 선물받은 값진 물건잉 양 그것들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p111

 ...두 아브라함 신앙 중 어느 하나의 안에서 태어난다는 거, 한 문화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 이 경우엔 지금것 너무나 오래 다른 아브라함 신앙과의 대결에 몰두해 온 다른 문화 안에서 성년에 이른다는 것은, 역사의 요점이 어느 한쪽이 옳다는 걸, 어느 한쪽이 신을 더 사랑하거나 더 참되거나 더 인간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있는 양, 영성이라는 것이 마음의 개인적 영역이 아니라 미소 짓는 신이 메달을 건네줄 결승선까지 가는 경주인 양, 편협한 구별 짓기와 비난과 사악한 동기를 가진 비교와 차별과 공포의 어휘들이 가지는 논리에 너무 밀접하게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피나코테카에 선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요점을 빗나간 듯 보였다.

p130

...어떤 종류든, 얼마나 견고해 보이든, 신앙이란 늘 의심의 공간이라는 문제 말이다. 바르톨로는 페트라르카와 마찬가지로 흑사병을 목격하고 심한 동요를 겪은 페트라르카의 친구이자 서신교환자인 피렌체의 시인 보카치오의 짖궂은 말을 되풀이하는 듯했다. "우리가 무얼 하든, 그게 만물의 창조주셨던 성스럽고 끔찍한 그분의 이름으로 시작된다는 건 (...) 그야말로 적절하다 할 일이지."희미하지만, 아마 의도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냉소적인 반란의 한 요소가 자기표현적인 웅장함이라는 양날의 몸짓을 지나 여기 이 예배당에 와 있다.

p138

...요점은 결혼 생활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거야.

p142

 우리한테는 영국 사람들이 '화풀이 방'이라 부르는 것이기도 햇지. 말다툼 같은 걸 하고 나면 잠시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 여기로 오는 거야. 아니면, 둘 중 하나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할 때나. 여긴 우리에게 일종의 독립적인 유대감을 주었어.

p152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성공한 사람들 특유의 낙천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둘은 대화 중에 문득 자기 삶과 일에 대한 위로할 길 없는 깊은 실망감과 함께 상대에 대한 강한 비난을 숨긴 듯한 분명치 않은 감정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부들은 능히 휘둘를 줄 아는 조용한 폭력의 기미를 띤 채, 둘은 자신이 놓친 온갖 기회들곽 걷지 않은 길들과 지금에 와서는 만회할 수도 ㅇ벗는 후회들을 열거했다.

p154

....성인 같은 이들은 천사들의 영접을 받는다. 그들은 재회조차 성직자답다. 그러고는 시에나 공동묘지에 함게 묻힌 부부들 같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남자들과 여자들이 있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의 손을 맞잡고 그저 그 눈을 오랫동안, 아니 아마도 영원히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방법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다른 쌍들은 인생의 다른 단계에 있는 동일 인물인 듯하다. 나읻 ㅡㄴ 자신이 젊은 자신을 반긴다. 하단 오른쪽에 잇는 상만이 제삼의 인물, 더 나이 든 인물을 만류하는 듯한 젊은 수녀를 동반하고 있다. 젊은 수녀는 다가오는 수도사와 인사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려는 듯이 더 나읻 ㅡㄴ 자신을 팔로 감싸고 있다. 이들이 멀리서만 사랑할 수 있었던 연인,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일 수도 있을까? 그들은 디 파올로보다 세 세기 정도 이른 사람들이었다. 나는 디 파올로가 그들의 편지를 읽었고, 편지 쓰기를 '질병'이라 주장하며 편지를 쓰지 말라고 요구했던 아벨라르의 절박한 탄원을 알고 있었으리라 확신했따. 반면에 엘로이즈느느 관습에 대한 위반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나타남과 사라짐에 관심을 가졌다.....

 알아보고 알아봐지는 일뿐만 아니라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듣는 일이야말로 모든 재회가 품고 있는 야심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리움과 향수병 뒤에 있는 것도 바로 이 설명을 듣고자 하는 욕구이리라. 여기서 디 파올로는 진정한 지옥이란 불의 지옥이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웠떤 이들에게 알아봐지지 못하는 지옥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보이기를, 그로 인해 우리 기억의 힘을 재발견하고, 마침내는 의도와 표현 사이, 감추어진 감정과 그 외적 형태 사이에 놓인 위안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그 그림은 이걸 안다. 그 그림은 우리가 제일 바라는 것,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이 알아봐지는 것임을 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아무리 형태가 변하고 바뀌어도, 우리의 어떤 것이 우리가 그토록 오래 사랑했던 이들에게 지각될 수 있도록 견디어 남는 것 말이다. 아마도 에술사 전체가 이런 야심의 전개이리라. 모든 책, 그림, 교향곡이 우리에 관한 모든 것을 낱낱이 알려 주려는 하나의 시도인 것이다.

 p159

1. 시에나 화파는 십삼세기부터 십오세기까지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번성한 화파로서, 지역적으로 가까운 피렌체 화파에 비해 장식적이고 색채가 풍부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초상하나 고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시에나 화파의 시조라 불리는 두초 디 부오닌세냐, 고딕 양식을 접목한 피에트로와 암브로조  로렌체티 형제, 타데오 디 바르톨로, 마테오 디조반니 등이 대표적 화가이다. 십오세기에 시에나가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겪으면서 시에나 화파의 입지도 흔들리기 시작해, 결국 십오세기 말에 피렌체 화파의 원근법과 자연주의적 표현, 인간주의적 주제와 철학을 받아들이며 독립적 화파로서의 특성은 사라졋다.

2. 히샴 마타르의 아버지 자발라 마타르는 리비아의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물로 지목되면서 1979년부터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1990년 3월 카이로에서 납치되어 리비아 아부살림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1996년 6월 29일 이곳 정치범들이 대량 학살되는 사건이 벌어진 후 생사불명 상태로 소식이 끊겼다. 히샴 마타르는 카다피 정권 몰락 후인 2012년에 고국을 방문햇으나 아버지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2016년에 이 여정을 담은 회고록 <귀환>을 출간한다.

p161

15. 제라드 맨리 홉킨스는 십구세기 영국의 시인으로 자연과 종교에 관한 많은 작품을 썼다. 여기서 '눈의 단속'이란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을 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징벌하여 참회하게 한다는 뜻이다. 눈으로 본 것이 영혼에 흔적을 남긴다고 여긴 가톨릭 성인들이 무엇을 볼 것인지를 세심하게 통제하는 관행에 따른 표현인데, 여기서 저자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시선을 거둔다는 의미로 달리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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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시에나 화파의 그림들과 마주친 때가 그런 버릇이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그 그림들에 ㅇ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 그림들에서 흔히 보이는 대칭적인 구도와 노골적인 시선이 무례하고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그 그림들은 내가 당시에 관심을 두었던 다른 그림들, 예컨대 벨라스케스, 마네, 티치아노, 세잔, 카날레토의 그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낯설었다. 그 시에나파 그림들은 기독교적 관례와 상징이라는 은둔 세계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 그림들이 기쁨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의향을 거스르다시피 하면서 계속 그 그림들을 보러 갔다. 잠간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 그림들을 보면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그리고 해석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잔틴도 아니고 르네상스도 아닌 그 그림들은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욜하는 휴식 시간처럼 악장과 악장 사이의 파격으로서 홀로 서 있었다.

 지난 사반 세기를 지나며 호기심은 더 깊어졌다. 그 그림들의 색, 섬세한 형태, 정지된 드라마가 점차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다...

p19

...그 장소로 인해 새로 만나는 건물이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그때껏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열정을 일깨울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건물이 일으키는 그런 변화를 대체로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런 변화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많은 경우 상호적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듯이, 방의 정취도 우리가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표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라지지만, 아주 작은 그림자 같은 파편이 남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끔직한 일이 일어났던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아름답고 고운 것에 쏟아진 관심을 오래 담았던 방에서 고요하게 고양되는 일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숙소로 돌아갈 때마다 내 마음은 기대로 부풀었다. 시에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시에나 어디를 가든 마치 비밀스러운 노래처러 그 방들이 주는 기쁨을 품고 다녔다.

 장식을 삼간 외부와 장려한 내부, 겉에서 보이는 침착한 초연함과 안에서 보이는 극직한 보살핌과 사려 깊음, 열렬한 심장을 감춘 겸손하고 또 절제하는 얼굴의 장난이 시에나의 관습이자 그 도시가 즐겨 펼치는 마술이다. 시에나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에는 놀래 주려는 욕구도 있지만, 내가 일찌감치 느꼈다시피, 문턱을 넘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변혁적일 수 있는지를 논증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우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축물로 들어가거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가는 것으로 우리의 존재 의식이 얼마나 미묘하게 바뀌는지 같은 건 생각조차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대에 우리는 건축의 실용성을 과장함으로써 건축을 과소평가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건축물을 인간의 삶이 형성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기능과 활동을 위한 장소로 생각한다. 시에나는 이에 저항한다. 띠처럼 이 도시를 둘러싼 방벽은 물리적 경계인 만큼이나 정신적 베일이기도 하다. 방벽은 그 자리에서 침략군을 막는 동시에 시에나의 자기감을 지킨다. 여기서 독립은 그저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이자 자기 본성에 맞게 존재할 권리와 정신의 주권에 결부된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다.

p22

 ...광장을 가로지르는 행위는 몇백 년이나 계속되는 춤에 동참하는 일이다. 완전히 홀로 존재하는 건 좋지 않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모든 고독한 존재에게 일깨워 주는 춤 말이다.

p24

...예술가가 원하는 바, 그 프레스코화를 그린 이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화가와 사진가가 원하는 바는 어쩌면 평면을 물리고 공간을 여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내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글자 그대로 프레스코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리는 사람을 떠올렸다. 우리는 그곳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각기 저만의 고유한 형태를 그렸다. 우리는 이슬람의 신성한 문양에 관해 얘기했다. 흔한 얘기지만, 서로 맞물리는 그 선과 형태에 홀려 바라보고 있으면 꼭 기도하는 기분이라고 말이다. 자주 입에 올리는 주제가 아니어서, 나는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게 되다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 만난, 성품이 섬세하고 온화하셨던 한 선생님 얘기를 했다. 유난히 말이 없는 분이셨는데 어느 날 내게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예컨대 골똘히 바다를 쳐다보는 것이 신을 찬미하는 것과 같다고 일러 주셨다.

p26

 말은 사상이다. 우리는 각 단어가 모순되는 사실들을 단호히 배격한다고, 각각이 제 뜻 그대로를 의미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영어 단어 '데몬스트레이션'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행진, 집회, 의견 천명이나 표현과 같은 공개적인 저항 행위를 지시하고,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드러내기 위한 보여주기, 명백하게 또는 분명하게 만들기와 관련된다. 아랍어 '무사하라', 페르시아어 '타사하라트', 프랑스어 '마니페스타시옹', 이탈리아어 '마니페스타치오네', 스페인어 '마니페스타시온', 언어적 뿌리는 다 달라도, 이 모두는 데몬스트레이션에 적어도 앞서 말한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나는 무언가를 분명하게 만드는 데 관계하고, 다른 하나는 거부에 관계한다. 다른 언어 몇 가지도 똑같은 결론에 다다른다. 너무도 자명한 이치인 듯하다. 무언가를 거부하려면 그것을 분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같은 이유로, 나타내고자 하는 욕구는 망각에 대항하는 행위이자 공에 대한 저항이다. 스펙트럼의 양 끝에 예술과 죽음이 있는 것이다.

 로렌체티의 프레스코화를 읽는 한 가지 방법이 이 두가지 의미의 데몬스트레이션으로 읽는 것이다. 이 그림들은 칭송하고 비난한다.

p32

 ...이 프레스코화는 마치 민주적 통치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혹평하는 지점, 즉 그 기반이라 할 인간 본성에 대한 과장된 믿음과 공공선의 문제를 평범한 개개인이 가진 신뢰할 수 없는 모호한 내적 정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점이야말로 이 체제의 강점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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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에서의 한 달
히샴 마타르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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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출신 작가. 의외로 그림에 관한 이야기였다. 시에나화파.

사전정보 없이 집은 작은 책인데, 내용은 컸다.

옮긴이주가 굉장히 친절하다.

그림 설명들이 꽤나 정치적이다.  

화자가 하는 이야기들을 따라 그림을 살피게 된다. 새로운 경험.

리비아에서 아버지가 실종되고 찾지 못한 작가.

작가가 그림에서 읽어낸 것들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그림 안의 의미들, 이야기들을 알아보는 눈이 생길 수 있을까.

- 두초의 문

시에나로 가는 길이 좀 파란만장하구나.

작가가 보는 시에나화파의 그림들.

두초라는 화가의 그림

- 방의 형태

시에나는 차량진입이 제한된 도시구나.

시에나의 숙소, 광장. 보고 싶다.

- 머무는 곳

자유와 자기표현성

-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햇을 뿐이었던 그림에서 표정을 보고 의미를 찾게 된다.

- 갑옷, 무슨 갑옷?

그림에서 정치를 보네.

리바아출신의 화자에게 이 그림들의 의미는 더 복잡한듯.

아버지가 납치된 작가. 개인의 역사와 그림에서 나쁜 정치, 좋은 정치가 교차된다.

- 벤치

묘지의 벤치

- 흔적

음악, 이탈리아어 선생님. 아내의 목소리, 옛 기억

- 미술관 경비원들

시에나에 그림만 보러 간 게 아니고 홀로 애도하러,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아내려 간 것

- 푸른 리본

콘트라다의 아이, 푸른 리본, 분홍리본, 진정성, 인간적인 감정

- 앉기

신보다 인간의 삶에 큰 관심두는 그림

- 신앙의 문제

흑사병이 인간사회에 가한 변화. 역사, 사회학, 신앙, 의심

- 불

작가에게 시에나에서의 한달은 마침표 같은 쉼표였을까. 그런 시간을 나도 갖고 싶네.

- 터키식 목욕탕

친구 베아트리체의 욕실, 독립적인 유대감

- 천사의 곤경

어쩌면 이 작가가 본 그림들을 이 작가가 얘기한 것들을 떠올리며 다시 보고 싶노.

- 낙원

낙원보다 더 바라는 것은 알아봐지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개인사 때문인 것일까, 보편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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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어긋나 있다면 다른 모든 부분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도널드 F. 페더스톤이 그의 책<dancing without danger>에서 언급한 이야기였다. 자유롭게 춤을 추기 위해서 신체의 정확한 선열 속으로 나를 밀어넣는 것. 그 말에 따라 늘 완벽한 자세 속으로 나를 밀어넣어왔다. 그런데도 나는 왜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p60

 아이들에게는 힘이 없다. 무언가를 똑바로 해내거나 이겨낼 수 있는 힘, 제대로 말하거나 알아들을 수 있는 힘이 매우 약하다. 아이는 어른처럼 제대로 이야기하기 어렵고, 알아듣기 어렵고, 바라보기 어렵다. 차츰 성장해감에 따라 똑바로 들을 수 있게 되고, 똑바로 말할 수 있게 되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사시 증상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의사가 말했다. 어린 시절에 말을 많이 더듬던 아이가 별다른 치료과정 없이도 나이가 들면 말을 더듬지 않게 되듯, 어린 시절 사시였던 아이 또한 자연교정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자연 교정이 되지 않으면 그때 수술을 받는 게 합리적이라는 이야기였다.

p63

 나는 너랑 있으면 마냥 평온해서 좋아. 나는 언제나 불처럼 타오르기만 했거든. 그렇게 위를 향해서만 날아올랐어. 그러려면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어.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야만 했어. 그래야만 내 안에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 있었어. 나는 때때로 너무 힘들어. 너무 지쳐.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시키거나 명령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그랬어. 그런데 너랑 있으면 아주 따스하고 평화로운 물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았어. 세계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어. 그럴 때면 나는 진짜로 실 수 있었어.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 스스로 너를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어. 너에게 상처내지 않으면 좋겠어. 너를 예뻐해주면 좋겠어. 너는 정말 예뻐. 예쁜 사람이야. 그래서 내가 꽃 줬어.

p101

...왜,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 이 모든 진짜와 가짜가 사실은 다 하나일 뿐이야. 한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지. 변한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나는 애초부터 이런 존재였다. 그런데 네가 나를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있었잖아. 그것만이 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 그것이 진실이라고 혼자 믿어버리고 있었잖아.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시에 쓰고, 거칠고, 추악한 존재야. 한데 너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았잖아. 네가 보고 싶은 대로, 네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바라보고 있었잖아. 나의 면에 감춰진 진짜를 보지 않고 있던 건 바로 너잖아. 그러니까 이건 네 잘못이야. 진실을, 대상을, 실상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본 네가 아주 멍청했던 거야. 어리석었던 거야. 이게 '나'야. 진짜'나'야. 손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내 숨통을 조여왔다.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무섭고, 정말 죽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나 자신이,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그대로 죽고 싶다는 바람만 가득 차올랐다.

 p137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여자 중 그러한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자신이 당한 일을 숨겨오기만 하다가,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하자 마치 봇물이라도 터지듯 자기 안에 감춰둔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항상 감추어야 한다고 강요받은 이야기. 그리하여 평생 감춰온 이야기를 왜 이제야 토로하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 봐야만 했다.

.... 스님께서는 자비와 보시가 같으 의미이며, 자비에서 '자'는 사랑을 베푸는 것, '비'는 슬픔을 나누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좀 더 덧붙이자면 자는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어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비는 타인이 슬픔과 곤경에 빠졌을 때 그것을 하께 나누어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햇다. 그리하여 자는 인간에게 행복을 가르쳐주고, 비는 불행을 없애준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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