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2  

 '몸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어긋나 있다면 다른 모든 부분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도널드 F. 페더스톤이 그의 책<dancing without danger>에서 언급한 이야기였다. 자유롭게 춤을 추기 위해서 신체의 정확한 선열 속으로 나를 밀어넣는 것. 그 말에 따라 늘 완벽한 자세 속으로 나를 밀어넣어왔다. 그런데도 나는 왜 춤을 추지 못하는 것일까?...  

p60

 아이들에게는 힘이 없다. 무언가를 똑바로 해내거나 이겨낼 수 있는 힘, 제대로 말하거나 알아들을 수 있는 힘이 매우 약하다. 아이는 어른처럼 제대로 이야기하기 어렵고, 알아듣기 어렵고, 바라보기 어렵다. 차츰 성장해감에 따라 똑바로 들을 수 있게 되고, 똑바로 말할 수 있게 되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사시 증상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의사가 말했다. 어린 시절에 말을 많이 더듬던 아이가 별다른 치료과정 없이도 나이가 들면 말을 더듬지 않게 되듯, 어린 시절 사시였던 아이 또한 자연교정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자연 교정이 되지 않으면 그때 수술을 받는 게 합리적이라는 이야기였다.

p63

 나는 너랑 있으면 마냥 평온해서 좋아. 나는 언제나 불처럼 타오르기만 했거든. 그렇게 위를 향해서만 날아올랐어. 그러려면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어. 잠시도 쉬지 않고 뛰어야만 했어. 그래야만 내 안에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를 수 있었어. 나는 때때로 너무 힘들어. 너무 지쳐.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시키거나 명령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그랬어. 그런데 너랑 있으면 아주 따스하고 평화로운 물속에 잠겨 있는 것만 같았어. 세계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어. 그럴 때면 나는 진짜로 실 수 있었어. 나에게는 네가 필요해. 스스로 너를 괴롭히지 않으면 좋겠어. 너에게 상처내지 않으면 좋겠어. 너를 예뻐해주면 좋겠어. 너는 정말 예뻐. 예쁜 사람이야. 그래서 내가 꽃 줬어.

p101

...왜,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일까? 이 모든 진짜와 가짜가 사실은 다 하나일 뿐이야. 한 가지에서 나오는 것이지. 변한 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야. 나는 애초부터 이런 존재였다. 그런데 네가 나를 아름답게만 바라보고 있었잖아. 그것만이 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잖아. 그것이 진실이라고 혼자 믿어버리고 있었잖아.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달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동시에 쓰고, 거칠고, 추악한 존재야. 한데 너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았잖아. 네가 보고 싶은 대로, 네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바라보고 있었잖아. 나의 면에 감춰진 진짜를 보지 않고 있던 건 바로 너잖아. 그러니까 이건 네 잘못이야. 진실을, 대상을, 실상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본 네가 아주 멍청했던 거야. 어리석었던 거야. 이게 '나'야. 진짜'나'야. 손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내 숨통을 조여왔다.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무섭고, 정말 죽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었다. 내 몸이, 나 자신이,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그대로 죽고 싶다는 바람만 가득 차올랐다.

 p137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여자 중 그러한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모두 자신이 당한 일을 숨겨오기만 하다가,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하자 마치 봇물이라도 터지듯 자기 안에 감춰둔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항상 감추어야 한다고 강요받은 이야기. 그리하여 평생 감춰온 이야기를 왜 이제야 토로하는지에 대해 오래 생각해 봐야만 했다.

.... 스님께서는 자비와 보시가 같으 의미이며, 자비에서 '자'는 사랑을 베푸는 것, '비'는 슬픔을 나누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좀 더 덧붙이자면 자는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어 타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비는 타인이 슬픔과 곤경에 빠졌을 때 그것을 하께 나누어 극복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햇다. 그리하여 자는 인간에게 행복을 가르쳐주고, 비는 불행을 없애준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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