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욕심 훌훌 털어 버린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는 존재 - 순례자.- 작가의 말 중에서 - P245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 죽는 것이다.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의 병을 범주화하고 일반화해서,동일한 징후에는 동일한 처방을 내린다는 방식으로는이 개별적 징후들과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병과 징후들을 일반화했을 때 의학은 보편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자부심은 앓고 있는 고통의 개별성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우리 남매들은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쇠이유 재단의 설립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자신의 아이는 과잉보호하면서 다른 아이들은 더 억압하라고, 위험한 아이들을 격리시키라고 요구하는 게 프랑스의 현실이다."라고 개탄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 P178
어느 정신과 의사는 엄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분노는해가 가도 옅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따스함과 포근함, 두려움과 분노 등 감성과 관련된 기억은 기억 중에서도가장 질긴 ‘정서기억‘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라고 해요. 비행소년들도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어머니의 가슴을 뜯어먹고 자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되돌리려면방황하며 상처 입은 마음, 눈물로 얼룩진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 P92
우리 동네에서 꼭 만났으면 좋겠는 환자를 존재로 만나는 선생님.그 글에 그 사람이 그려진다면 마주잡은 손이 따뜻할 것 같은 사람입니다.술술 읽히는 문장도 훌륭하고깨알같은 한의약 정보도 쏠쏠합니다.
의사는 마음 쓰기를 정밀히 하고 자세하게 해야 비로소 이것을함께 말할 수 있다. 무릇 큰 의사가 병을 고칠 때는 반드시 정신을편안히 하며 뜻을 일정하게 하여 욕심을 없애고 구하는 바를 없애고 먼저 큰 사랑과 측은지심을 펼쳐야 한다. -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