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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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평소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관심만큼의 지식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사에 관한 지식이든, 그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든, 그저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ㅡ. ‘덕혜옹주’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 이 책을 통해서라는 이유가 그 부끄러움에 한 몫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조선 말이라는 시기에 대한 무관심(혹은 분노)이 더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나라, 우리의 땅, 우리 민족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원망했었다. 당연히(?) 그 원망의 화살은 왕족으로 향했었다. 만백성이 우러러 본다는 나라님은 나라가 그 꼴이 날 때까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왕족이라는 사실만 내세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들며 자신의 권리만 채우려는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더더욱 그랬었다 ㅡ. 그로인해 그 시기에 왕으로 있던 고종, 순종을 비롯한 왕과 왕족이 그저 미워보였다. 그러하니 그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없어질 수밖에 ㅡ. 그런 나의 부족함에 더해서, 나의 생각 자체도 참 많이도 꼬여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딴 생각을 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특히나 더 그렇게 느낀다 ㅡ.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의 상황을 남들이 이해해주지 못함을 아쉬워함과 동시에, 상대방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만큼은 그 상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나만의 생각, 혹은 욕심일 뿐이었다. 역사에 몸을 내던진 것도 아니고, 그저 역사에 휩쓸렸을 뿐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왕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미워하고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을 보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계기가 되어준 인물, 그저 역사에 휩쓸렸을 뿐인 사람, 바로 『덕혜옹주』이다 ㅡ. 


고종황제의 막내딸이자,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리기까지 했던 인물, 『덕혜옹주』ㅡ.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 화려한 수식과는 정반대에 놓여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이지만, 일생을 피해자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야 했다. 독살로 의심되는 고종의 승하라는 거대한 폭풍이 그녀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견디기도 힘든 폭풍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져야할 고통이지만, 여전히 바람은 잠들지 않았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아니 지금 우리가 다시 그녀를 기억 속에서 현실로 끌어낸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ㅡ.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여러 가지다. 

분노하거나 묵살하거나 체념하거나. - P75

가녀린 한 여인이 그 당시에, 아니 그녀의 일생을 통틀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ㅡ. 분노도 했고, 묵살도 했지만, 차마 자신이 태어난 땅과 사람,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 흐르는 붉은 피에 대한 사랑은 체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를 더 큰 비극의 길로 향하게 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 슬픔은 치유할 수 없었다. 

제 상처는 자신이 핥아야 했다. 

덕혜는 그것을 스스로 체득해가고 있었다. - P161

한 나라-이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나라라고 하기도 힘든 나라-의 황녀라는 사실이 그냥 평범한 누군가의 삶보다도 더 초라해보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은 참담함이 눈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한 모습으로 나타내는 더 큰 슬픔 ㅡ. 그 가슴속에 깃든 비탄으로, 그저 그 아픔들을 갈무리하는 것에 그치는 삶 ㅡ. 어린나이에 어찌하지 못하는 그 삶에 그 누군가가 끼어 들여 그녀를 일본으로 보내 고국을 등지게 하고, 원치 않던 결혼까지 하게 되는 삶 ㅡ. 그 삶의 상처들, 그녀는 과연 그 스스로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진정 그랬다면, 아마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텐데.. 

 

 『덕혜옹주』를 보면 크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그 당시의 세상을, 혹은 우리들의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ㅡ. 덕혜옹주를 끝까지 모시려고 하는 모습의 ‘복순’의 모습에서 일반 백성의 모습을 찾아본다. 평범한 삶으로 위험의 순간에 놓였으나 덕혜옹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하고, 그녀를 따르게 되는 복순. 어떻게 보면 보통의 백성, 민중들과는 다른 삶이었겠지만, 그녀가 겪었던 가난과 핍박, 방황들은 영락없는 그 시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 때, 옹주를 잊을 정도의 체념 섞인 삶을 살기도 하지만, ‘떨잠’이라는 계기로 다시 가슴에 불을 지피게 되는 모습에서, 잊을 만하면 다시 일어서는 우리 민중의 잡초-일찍이 김수영 시인이 우리 민중을 풀이라고 표현했듯이-같은 삶을 떠올려보게 된다 ㅡ. 그리고 덕혜옹주를 한결 같이 바라보는 ‘박무영’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으로 행동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가족보다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지만 왜 그들이라고 고민이 없었을까.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비탄, 매국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끓는 피는 그 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었으리라 ㅡ. 그래도 결국에는 독립을 이끌어 내고, 마지막에는 덕혜옹주까지 탈출시키는 그들만의 강건함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우러러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덕혜옹주’가 있다. 자신을 끝까지 지키느냐, 아니면 체념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느냐 라는 갈림길에 놓이기도 했다. 그 선택에 따라서는 -후자를 택했다면- 개인적으로는 평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자를 택함으로써 나라를 팔아먹은 -입에 담기도 싫은- 다른 누군가들과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이토록 『덕혜옹주』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삶에 가슴 아파하는 것은 덕혜옹주, 그녀의 개인적인 모습에서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ㅡ. 그녀가 우리 나라의 바참함을, 그들 모두가 우리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더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ㅡ.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실제 그것을 구분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서 비난을 퍼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조국을 팔아버린 그들에게도 그것이 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 스스로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하나 챙기기에도 바쁜 민중의 삶이든, 타인을 위한 삶이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저마다의 고민도 안고 살아간다. 간혹 다른 누군가의 고민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아닌 듯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고민만은 대단해 보인다. 나 역시, 한 인생의 고달픔을 그저 개인의 일로 간주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의 삐뚤어진 시각으로 더더욱 그런 이들을 스쳐지나가기만 했었던 것 같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들에 대한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진정 그들을 위로하는 일이 될까?!


조선 마지막 황녀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하게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으면 좋겠다. 왜 기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덕혜옹주라는 한 개인이 아닌, 한 개인을 통해 나타나는 우리의 아픈 시대를 생각해야 한다. 그녀 자체가 그 아픈 시대의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를 신고, 하오리를 걸친 옹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할 수는 있어도, 두번 다시 하기는 싫을 것이다. 그런 것이 싫다고 그녀를 전부 잊는 것은 다시 우리의 역사를 잊는 것이다. 앞으로, 미래로 나가야 함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미래는 과거로부터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ㅡ. 그로인해 우리 역사 교육의 중요성도 점점 퇴색되어만 간다. 그런 오늘날의 모습에 더없이 좋은 울림을 전해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한 여인이 다시 태어나,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할 수 있게 새 숨결을 불어넣어준 책, 『덕혜옹주』 ㅡ.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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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즈걸 3 : 사인회 편 - 완결 명탐정 홈즈걸 3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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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어 할 서점이야기 ㅡ. 그 서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그것도 13년을 서점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가, ‘오사키 고즈에’의 손을 통해서, 전작인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에 이은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나온 것이다.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라는 제목을 가졌던 책들이 《명탐정 홈즈걸 1, 2》라는 이름으로 바뀜과 동시에 『명탐정 홈즈걸 3』라는 이름으로 ㅡ. 이번에도 역시 교쿄와 다에의 눈부신 활약이 펼쳐진다. 기대하시라 ㅡ. 두둥~!!

 



 

『명탐정 홈즈걸 3』은 《명탐정 홈즈걸 1(명탐정 홈즈걸의 책장)》과 마찬가지로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명에게서 같은 책을 주문 받았는데, 확인을 해보면 그런 책을 주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한 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번 같은 일이 발생한다. 누군가의 장난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미심쩍은 일들, 그 뒤여 숨겨져 있는 내용을 찾아가는 ‘이상한 주문’, 견학하러 서점에 온 초등학생. 그의 행동이 점점 수상해져만 가고, 같은 시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범죄(?!)도 발생한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이 초등학생이 결국에는 사라지고, 그를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되는 ‘너와 이야기하는 영원’, 서점의 아르바이트생이 세후도 서점에서 만난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가나모리 군의 고백’, 유명 작가를 괴롭히는 스토커를 찾기 위한 사인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사인회는 어떠세요?’, 그리고 단골손님의 잃어버린 사진을 두고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는 ‘염소 씨가 잃어버린 물건’ㅡ. 이처럼 『명탐정 홈즈걸 3』는, 잃어버린 사람과 지난 추억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가슴 찡한 이야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다 ㅡ.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사인회는 어떠세요?’이다. 자신에게는 아무렇지 않는 것-그저 어설픈 추리로, 어설프게 마무리 짓는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ㅡ이 상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로 남겨질 수 있는 것인지 ㅡ. 평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사람을 대하던 것들에 세심한 주의와 깊은 생각을 해보게 한다. 깊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고 해서 이야기도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마시라. 『명탐정 홈즈걸 3』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일상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사건들에 추리적 요소를 가미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추리라고 하지만 전혀 복잡하지 않아서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고 말이다 ㅡ.

 



 

즐겁게 만났던 세후도 서점의 교코와 다에 ㅡ.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녀들에게 달려가고 싶어질 것 같다 ㅡ. 음.. 다에는 서점에 관한 일만 취급한다고 했던가!? 그래, 서점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녀들에게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ㅡ. 정말, 교쿄와 다에의 눈부신 활약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 책,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를 조금씩 펼쳐보지 않을까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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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 1001 죽기 전에 꼭 1001가지 시리즈
최정규.박성원.정민용.박정현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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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왜 사람들은 자꾸 외국으로만 여행을 갈까?! 평생을 살면서 우리의 좋은 곳을 모두 둘러보지도 못할 텐데 왜..”라는 생각을 했었다. 꼭 이랬던 생각을 계속해서 간직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잊지는 않았어야 했다. 단 한 번, 외국으로의 배낭여행을 계기(?!)로 내가 했던 생각들을 잊게 될 줄이야.. 나의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 끄집어 내 준 책이자,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국내에 많이 있는 좋은 곳’을 ‘1001’이라는 직접적인 숫자로 읽어낸 책,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이다 ㅡ.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ㅡ. 어떤 새로운 것들을 만날지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만나게 될지 살짝 두렵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설렘과 함께 대부분의 것(물론 모든 것을 대비할 수도 없을뿐더러, 때로는 예상치 못한 것들이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니까, 모든 것이라고 표현하지는 않겠다)이 준비된 여행이라면 설렘과 두려움의 묘한 공존이 결국에는 큰 즐거움으로 느껴질 것이다 ㅡ.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은 그런 설렘과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은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 권으로 모두 7개의 PART로 나누고, 그 속에서 각 시, 도를 구분해서 각각의 장소를 설명한다. 각 장소마다 빠짐없이 담겨있는 사진 하나하나가 인상적이다. 그 어떤 설명보다도 그 장소를 잘 나타내는 것 같고, 그것이 곧 가고 싶게끔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 사진과 더불어 다양한 장소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홈페이지 주소까지 있는 것은 좋은데, 1001이라는 숫자에 맞추려는 노력 때문인지, 보다 세심하고 풍부한 자료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과사전 형식에 더해서 실질적으로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라든가, 1001 곳 중에서도 특히 더 추천할만한 곳을 차이 있게 다루었으면 더 멋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서라도 1001 곳이나 되는 다양한 장소를 한 권을 책(좀 두껍기는 하지만)으로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ㅡ.

우리나라가 좁다고는 하지만, 그건 인구밀도가 그렇다는 것뿐이고, 실제로는 넓다는 것, 그리고 가볼 곳은 상당히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ㅡ.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책 속의 그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ㅡ. 살면서 진짜 1001군데의 여행지를 가볼 수는 없겠지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을 통해서 자신만의 선택 여행지 목록을 만들고, 직접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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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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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길 ㅡ. 함께하는 사람이 벅차할 정도로 나의 걷는 속도가 많이 올라가 있음에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급한 일이 없음에도 자꾸만 속도를 올리게 된다. 그것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버린 것이다. 단지 걸음이 문제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지도 못할 만큼 내가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많은 것들은 금방 스쳐지나가는 배경으로 밖에 남겨지지 않는다는 말은 말해서 뭐할까 ㅡ.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과 내 주변에 놓인 일상들을 보다 느긋하게 둘러보고 그 소중함 들을 찾으라고 소리치지만, 이내 다시 나의 빠른 걸음에 묻혀버린다 ㅡ. 대부분 사람들의 삶도 내 걸음걸이 같은 것일까?!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의 주인공은 반지하 연립주택에 사무실이자 집이기도 한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대필 작가이다 ㅡ. 그저 먹고 살기위해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대신 글로 써주며 살아간다. 그런 직업 때문인지, 그는 삶마저도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 같다. 자신의 삶이 사라졌다고, 아니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그의 삶은 아내를 잃은 이후 줄곧 그랬다. 아내와 함께 걷는 일에 의미를 두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으로 뒤척이며 살아가는 남자 ㅡ. 인생을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사이 아내를 잃고, 아내를 잃어서 또 다시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남자 ㅡ. 그 남자를 후회, 그리움, 한탄, 괴로움으로 표현 했지만, 그가 그려진 책 속의 온도는 예상외로 높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
그 새벽의 마지막 풍경들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 같기만 한 그날 새벽 거리.
바람도, 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 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 P191

 

몽환적인 느낌 때문일까?! 새벽길을 거니는 모습이, 실제 삶을 걷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시 그 모습은 꿈길을 거니는 듯 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가 새벽의 길로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새벽의 거리에서 혼자 처량하게 걷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눈이 가고, 심지어 한 번쯤은 그들 중 하나를 붙잡아 놓고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뜬금없이 가슴 먹먹해지는 순간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나를 갉아먹으며 그 속에 또 다른 것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문득 느꼈다.
죽은 자에겐 욕망이 없다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가장 큰 차이가 그것이라고. - P125

 

그는 죽은 자가 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그 역시도 산 자가 아닌 죽은 자 이기에 그들이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이라는 것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한다면, 그래! 틀림없이 그는 죽은 자이다 ㅡ. 죽은 자이지만, 아직 산 자들의 공간에 있기 때문인지, 그의 삶이 마냥 그렇게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저런 글을 읽다보면 언젠가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아니, 그런 의도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그렇게 흘러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대필 작가로만 살아가는 그가 이제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어 가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내 속에 존재하는 나를 만나면서 말이다 ㅡ.

이 모든 이야기들이 지저분하면서도 뜬금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다 정확하게 하자면, 이 글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말이다. 문득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나고, 그 친구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사과를 하고, 갑자기 눈에 들어온 TV 속 보험광고로 죽음을 생각하고, 다시 그 생각은 아내의 생각으로 옮겨가고, 도가니탕에서는 결국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이야기들 ㅡ. 정말 정리가 안 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실제 사람의 머릿속이 그렇지 않은가 ㅡ.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의 처음 몇 장을 읽고는 역시 그렇고 그런 소설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일상적이고 -물론 간간이 독특한 것(?)들도 등장하지만- 대체로 지리하다고 생각되는 삶에서 또 다시 발견하게 되는 평범하다고 해야 할지, 진부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뭔가가 아닐까 하는..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서는 그런 내 생각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ㅡ. 진부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속도감 있게 읽히는 글이고, 다시 거기에서 끌어내는 따뜻함까지 느껴지는 작품, 그것이 바로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 아닐까 ㅡ.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었거든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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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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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에 보이는 걸 모두 믿으면 안 돼.”
- P32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혹은 ‘내 눈으로 못 보지 못하면 못 믿는다’같은 경우들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도 무조건 믿으면 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생각들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ㅡ. 문제는 그것을 일반화시켜서 다른 이들에게도 강요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본 것만이 진리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절대 진리인 마냥 행동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에 또 다른 생각들을 보여주는 것이, 『9월의 빛』에서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

『9월의 빛』은 노르망디의 작은 해안 마을에 있는 ‘크래븐무어’라는 대저택이 주 배경이 된다.
시몬이 장난감 제작사인 라자루스 얀의 저택 크래븐무어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됨으로써, 그녀와 그녀의 두 아이들인 이레네도리안도 해안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제 책에서는 이스마엘이 이레네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된다.) 크래븐무어의 미묘한 느낌은 수많은 로봇 인형들로 시작된다. 영혼을 가지지 못한 것이기에 더 음산하게 느껴진다. 그 곳의 주인, 라자루스 얀은 그런 크래븐무어에 감도는 음산함만큼이나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그에게는 20년째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아내 알렉산드라가 있는데, 철저히 외부와는 차단된 삶으로 크래븐무어의 음산함에 힘을 더한다. 한편, 이레네는 크래븐무어에서 일하는 한나를 만나게 되고, 그의 사촌 이스마엘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나가 죽게 된다 ㅡ. 사랑의 기운이 감돌던 이야기는 그때부터 다시 음산한, 검은 기운을 드러내게 된다 ㅡ. 도대체 크래븐무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고,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그렇게 독자들을 궁금증의 세계로,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크래븐무어로 안내한다 ㅡ. 크래븐무어에서, 그리고 이 책 속에는 재미있는 요소가 정말 많다. 사랑의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어린 시절의 아픈 경험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 그리고 그로인한 평생의 고통을 미스터리하게 풀어나가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처음 말한 것처럼 개개인의 모르고 지나쳤던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천사의 게임》에 이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과의 두 번째 만남이다. 《천사의 게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 같다. 비슷한 분위기가 감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만의 느낌인가 생각되어 머릿속에 그만의 색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책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읽어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 크래븐무어를 둘러싸고 있는 긴장감으로 저절로 빨라지고, 나를 계속해서 쫓아오는 그 무언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나 역시도 발버둥치는 느낌이 들어서 더더욱 그랬다. 긴박한 느낌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면서도 그 시작을 야기한 슬픈 이야기에는 가슴까지 저며 온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지면서, ‘사랑’을 생각하게 하고, ‘질투, 증오’를 생각하게 하며, 모든 것의 시작인 ‘마음’을 생각해보게 한다 ㅡ. 내가 꿈꾸는 것들에 나의 마음은 담겨있는지, 나의 마음은 나를 어떤 길로 안내하고 있는지.. 『9월의 빛』을 통해서 많은 생각들을 담아보길 바란다 ㅡ.


아, 그렇다면..
제목에서 말하는 ‘9월의 빛’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직접 찾아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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