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관심만큼의 지식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사에 관한 지식이든, 그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든, 그저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ㅡ. ‘덕혜옹주’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 이 책을 통해서라는 이유가 그 부끄러움에 한 몫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조선 말이라는 시기에 대한 무관심(혹은 분노)이 더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나라, 우리의 땅, 우리 민족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음을 원망했었다. 당연히(?) 그 원망의 화살은 왕족으로 향했었다. 만백성이 우러러 본다는 나라님은 나라가 그 꼴이 날 때까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왕족이라는 사실만 내세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들며 자신의 권리만 채우려는 그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더더욱 그랬었다 ㅡ. 그로인해 그 시기에 왕으로 있던 고종, 순종을 비롯한 왕과 왕족이 그저 미워보였다. 그러하니 그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없어질 수밖에 ㅡ. 그런 나의 부족함에 더해서, 나의 생각 자체도 참 많이도 꼬여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딴 생각을 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특히나 더 그렇게 느낀다 ㅡ. 힘든 일이 있을 때, 나의 상황을 남들이 이해해주지 못함을 아쉬워함과 동시에, 상대방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만큼은 그 상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나만의 생각, 혹은 욕심일 뿐이었다. 역사에 몸을 내던진 것도 아니고, 그저 역사에 휩쓸렸을 뿐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왕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미워하고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을 보며,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계기가 되어준 인물, 그저 역사에 휩쓸렸을 뿐인 사람, 바로 『덕혜옹주』이다 ㅡ. 


고종황제의 막내딸이자,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리기까지 했던 인물, 『덕혜옹주』ㅡ.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 화려한 수식과는 정반대에 놓여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이지만, 일생을 피해자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야 했다. 독살로 의심되는 고종의 승하라는 거대한 폭풍이 그녀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견디기도 힘든 폭풍이 되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져야할 고통이지만, 여전히 바람은 잠들지 않았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아니 지금 우리가 다시 그녀를 기억 속에서 현실로 끌어낸 이 순간까지도 말이다 ㅡ.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여러 가지다. 

분노하거나 묵살하거나 체념하거나. - P75

가녀린 한 여인이 그 당시에, 아니 그녀의 일생을 통틀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ㅡ. 분노도 했고, 묵살도 했지만, 차마 자신이 태어난 땅과 사람,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 흐르는 붉은 피에 대한 사랑은 체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이 그녀를 더 큰 비극의 길로 향하게 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 슬픔은 치유할 수 없었다. 

제 상처는 자신이 핥아야 했다. 

덕혜는 그것을 스스로 체득해가고 있었다. - P161

한 나라-이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나라라고 하기도 힘든 나라-의 황녀라는 사실이 그냥 평범한 누군가의 삶보다도 더 초라해보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은 참담함이 눈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담담한 모습으로 나타내는 더 큰 슬픔 ㅡ. 그 가슴속에 깃든 비탄으로, 그저 그 아픔들을 갈무리하는 것에 그치는 삶 ㅡ. 어린나이에 어찌하지 못하는 그 삶에 그 누군가가 끼어 들여 그녀를 일본으로 보내 고국을 등지게 하고, 원치 않던 결혼까지 하게 되는 삶 ㅡ. 그 삶의 상처들, 그녀는 과연 그 스스로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까?! 진정 그랬다면, 아마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텐데.. 

 

 『덕혜옹주』를 보면 크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그 당시의 세상을, 혹은 우리들의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현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ㅡ. 덕혜옹주를 끝까지 모시려고 하는 모습의 ‘복순’의 모습에서 일반 백성의 모습을 찾아본다. 평범한 삶으로 위험의 순간에 놓였으나 덕혜옹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하고, 그녀를 따르게 되는 복순. 어떻게 보면 보통의 백성, 민중들과는 다른 삶이었겠지만, 그녀가 겪었던 가난과 핍박, 방황들은 영락없는 그 시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 때, 옹주를 잊을 정도의 체념 섞인 삶을 살기도 하지만, ‘떨잠’이라는 계기로 다시 가슴에 불을 지피게 되는 모습에서, 잊을 만하면 다시 일어서는 우리 민중의 잡초-일찍이 김수영 시인이 우리 민중을 풀이라고 표현했듯이-같은 삶을 떠올려보게 된다 ㅡ. 그리고 덕혜옹주를 한결 같이 바라보는 ‘박무영’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으로 행동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자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가족보다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지만 왜 그들이라고 고민이 없었을까. 망해가는 나라에 대한 비탄, 매국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끓는 피는 그 속에서도 계속 싸우고 있었으리라 ㅡ. 그래도 결국에는 독립을 이끌어 내고, 마지막에는 덕혜옹주까지 탈출시키는 그들만의 강건함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우러러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덕혜옹주’가 있다. 자신을 끝까지 지키느냐, 아니면 체념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느냐 라는 갈림길에 놓이기도 했다. 그 선택에 따라서는 -후자를 택했다면- 개인적으로는 평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자를 택함으로써 나라를 팔아먹은 -입에 담기도 싫은- 다른 누군가들과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우리가 이토록 『덕혜옹주』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삶에 가슴 아파하는 것은 덕혜옹주, 그녀의 개인적인 모습에서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ㅡ. 그녀가 우리 나라의 바참함을, 그들 모두가 우리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더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ㅡ.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실제 그것을 구분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서 비난을 퍼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조국을 팔아버린 그들에게도 그것이 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 스스로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몸하나 챙기기에도 바쁜 민중의 삶이든, 타인을 위한 삶이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저마다의 고민도 안고 살아간다. 간혹 다른 누군가의 고민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아닌 듯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고민만은 대단해 보인다. 나 역시, 한 인생의 고달픔을 그저 개인의 일로 간주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의 삐뚤어진 시각으로 더더욱 그런 이들을 스쳐지나가기만 했었던 것 같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들에 대한 위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진정 그들을 위로하는 일이 될까?!


조선 마지막 황녀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하게 당연히(?!)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으면 좋겠다. 왜 기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덕혜옹주라는 한 개인이 아닌, 한 개인을 통해 나타나는 우리의 아픈 시대를 생각해야 한다. 그녀 자체가 그 아픈 시대의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게다를 신고, 하오리를 걸친 옹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할 수는 있어도, 두번 다시 하기는 싫을 것이다. 그런 것이 싫다고 그녀를 전부 잊는 것은 다시 우리의 역사를 잊는 것이다. 앞으로, 미래로 나가야 함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미래는 과거로부터 이어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ㅡ. 그로인해 우리 역사 교육의 중요성도 점점 퇴색되어만 간다. 그런 오늘날의 모습에 더없이 좋은 울림을 전해주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ㅡ. 우리 역사에서 사라진 한 여인이 다시 태어나,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할 수 있게 새 숨결을 불어넣어준 책, 『덕혜옹주』 ㅡ.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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