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길 ㅡ. 함께하는 사람이 벅차할 정도로 나의 걷는 속도가 많이 올라가 있음에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급한 일이 없음에도 자꾸만 속도를 올리게 된다. 그것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버린 것이다. 단지 걸음이 문제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지도 못할 만큼 내가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주변의 많은 것들은 금방 스쳐지나가는 배경으로 밖에 남겨지지 않는다는 말은 말해서 뭐할까 ㅡ.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과 내 주변에 놓인 일상들을 보다 느긋하게 둘러보고 그 소중함 들을 찾으라고 소리치지만, 이내 다시 나의 빠른 걸음에 묻혀버린다 ㅡ. 대부분 사람들의 삶도 내 걸음걸이 같은 것일까?!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의 주인공은 반지하 연립주택에 사무실이자 집이기도 한 공간을 만들어 살아가는 대필 작가이다 ㅡ. 그저 먹고 살기위해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대신 글로 써주며 살아간다. 그런 직업 때문인지, 그는 삶마저도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 같다. 자신의 삶이 사라졌다고, 아니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까?! 그의 삶은 아내를 잃은 이후 줄곧 그랬다. 아내와 함께 걷는 일에 의미를 두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그리움으로 뒤척이며 살아가는 남자 ㅡ. 인생을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사이 아내를 잃고, 아내를 잃어서 또 다시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남자 ㅡ. 그 남자를 후회, 그리움, 한탄, 괴로움으로 표현 했지만, 그가 그려진 책 속의 온도는 예상외로 높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
그 새벽의 마지막 풍경들이 따뜻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 같기만 한 그날 새벽 거리.
바람도, 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 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 P191

 

몽환적인 느낌 때문일까?! 새벽길을 거니는 모습이, 실제 삶을 걷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시 그 모습은 꿈길을 거니는 듯 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가 새벽의 길로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새벽의 거리에서 혼자 처량하게 걷는 사람들에게 한 번 더 눈이 가고, 심지어 한 번쯤은 그들 중 하나를 붙잡아 놓고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뜬금없는 생각이지만, 그렇게 뜬금없이 가슴 먹먹해지는 순간도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나를 갉아먹으며 그 속에 또 다른 것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문득 느꼈다.
죽은 자에겐 욕망이 없다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가장 큰 차이가 그것이라고. - P125

 

그는 죽은 자가 보인다고 한다. 어쩌면, 그 역시도 산 자가 아닌 죽은 자 이기에 그들이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이라는 것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한다면, 그래! 틀림없이 그는 죽은 자이다 ㅡ. 죽은 자이지만, 아직 산 자들의 공간에 있기 때문인지, 그의 삶이 마냥 그렇게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저런 글을 읽다보면 언젠가는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아니, 그런 의도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이 그렇게 흘러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대필 작가로만 살아가는 그가 이제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더듬어 가게 되는 것이다.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내 속에 존재하는 나를 만나면서 말이다 ㅡ.

이 모든 이야기들이 지저분하면서도 뜬금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다 정확하게 하자면, 이 글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말이다. 문득 어릴 적 친구가 생각나고, 그 친구가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사과를 하고, 갑자기 눈에 들어온 TV 속 보험광고로 죽음을 생각하고, 다시 그 생각은 아내의 생각으로 옮겨가고, 도가니탕에서는 결국 울음을 참을 수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이야기들 ㅡ. 정말 정리가 안 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실제 사람의 머릿속이 그렇지 않은가 ㅡ.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의 처음 몇 장을 읽고는 역시 그렇고 그런 소설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일상적이고 -물론 간간이 독특한 것(?)들도 등장하지만- 대체로 지리하다고 생각되는 삶에서 또 다시 발견하게 되는 평범하다고 해야 할지, 진부하다고 해야 할지 모를 뭔가가 아닐까 하는..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서는 그런 내 생각의 경계를 허물어주는 작품이 되어버렸다 ㅡ. 진부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속도감 있게 읽히는 글이고, 다시 거기에서 끌어내는 따뜻함까지 느껴지는 작품, 그것이 바로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 아닐까 ㅡ.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었거든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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