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바이러스 H2C
이승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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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 우리의 몸과 그 몸을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이 다양한 위험에 놓여있다. 항상 스스로 방어는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어떤 것’으로 인해 무능력한 상태가 된다면,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불편함은 말도 못할 만큼 심각할 것이다. 그 불편함을 야기하는 ‘어떤 것’이 바로 ‘바이러스’이기에, -얼마 전 많은 이들을 고생하게 했던 Ddos 바이러스부터 시작해서, 우리 몸속에 침투하는 바이러스 등등- 우리는 바이러스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게 된다. 그런 와중에 바이러스라고?! 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창조’라는 말이 붙어있어 일단은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창조 바이러스’ 이건 도대체 뭔가?! 이 역시도 많은 이들을 두려움으로 치를 떨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행복함과 즐거움으로 빠져들게 만들 것인가?! 이제부터 조금씩 알아보기로 하자 ㅡ.

 



 

『창조 바이러스 H2C』는 홈플러스 그룹 ‘이승한’회장의 이야기이다 ㅡ. 시대를 앞서가려면 ‘바보’ 라는 소리나 ‘이상하다’는 소리쯤은 들을 각오도 충분히 되어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사람이며, ‘역사란 인류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온 과정’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창조’를 이야기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안으로 들어가 그를 지금의 자리로 이끈 것이 ‘창조 바이러스’이고, 그 바이러스의 이름을 ‘H2C(How to Create?)’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6가지의 창조 바이러스들을 이야기한다. ‘창의의 씨앗을 뿌려라’를 통해 “긍정”을, ‘스스로를 불태워라’를 통해 “열정”을, ‘보이지 않는 저 너머를 보라’를 통해 “비전”을, ‘상자 밖에서 상상하라’를 통해 “상상”을, ‘거침없이 바꿔라’를 통해 “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를 통해 “집념”을 이야기한다. ㅡ. 그냥 딱딱하게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들려준다. 정말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바이러스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에서는 ‘창조’를 어떻게 이야기할까 궁금했었다. 책을 읽은 후, 지금까지 나는 창조라는 그 말에만 집착해 정작 제대로 된 창조는 바라보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라는 말이 다양한 이름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긍정, 열정, 비전, 상상, 변화, 그리고 집념이라고 표현되는 모든 단어의 합이 ‘창조’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이든 나 스스로에게 ‘창조’적 사고를 원했으나, 그러하지 못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몰랐으니 말이다 ㅡ.

『창조 바이러스 H2C』에서 그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자주 붙는 단어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최초’라는 말이다. 남들이 하지 못한 일, 아직 세상에 없는 일을 만들어내는 것을 그 스스로도 자신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할 만큼 창의적이면서도 활동적인 모습을 ‘최초’라는 말에 담아 보여준다. 나는 지금, 이 시간까지도 새롭게 등장하는 것들을 바라보며 ‘아! 왜 나는 이런 생각들을 못했을까?!’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바라보며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리라는 불타는 도전정신보다는, 그 이상의 새로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내 사고에 한계점을 만들어나갔다. 그런 생각은 정말 나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한계였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어보이던 것들까지 또 다른 새로움으로 나타나는데 말이다 ㅡ. 다르게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긍정, 열정, 비전, 상상, 변화, 그리고 집념까지, 그 어느 것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ㅡ.
이 책을 읽다보니 상대적으로 나의 부족함을 보다 크게 확인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짜증나고 화난다기 보다는 -물론 그런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나의 형편없는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음에 더없이 감사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듯이, -IT영역이든, 의학적 영역이든-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바이러스’이지만, ‘창조 바이러스’ 라는 이런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창조의 다양한 이름을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현실로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창조 바이러스를 서서히 가슴에 침투시키고, -“나 스스로를 불태워야지 남을 불태울 수 있다”는 말처럼- 이제는 나 스스로를 불태우며, 상상을 현실로 바꾸는 세상을 그려본다 ㅡ. 지오네스 시티,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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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미러 - 운명을 훔친 거울이야기
말리스 밀하이저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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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영미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한 책’이라는 문구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아버린 듯하다 ㅡ. 과연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이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이기에 훔칠 수밖에 없는 책이 된 것인가. 6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을 봤을 때, 훔치기가 그리 쉬워보지이도 않는데 말이다 ㅡ. 일단, 이 책 속에 담긴 어떤 시간의 여행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마법에 걸려들게 했는지 보지않을 수 없었다.  

  

『더 미러』에서는 죽음을 앞둔 98세의 브랜디, 결혼을 앞둔 20세의 샤이, 그들의 딸이자 샤이의 엄마였던 여자 레이첼 ㅡ. 그들의 뒤죽박죽스러운 이야기, 그 매혹적인 마법이 펼쳐진다. 오래전부터 떠돌던 신기한(?!) 거울이 샤이에게 전해지게 되고, 단순한 거울로만 생각했던 그것으로 인해 그녀와 브랜디, 그리고 레이첼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뒤죽박죽된 삶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녀들의 뒤바뀐 운명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거울로 인해 운명이 뒤바뀌는 그녀들의 삶. 그 시작부터가 정말 흥미롭다. 역시 책이나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상상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ㅡ.

할머니, 엄마, 딸의 이야기이다보니, 책의 구성 또한 ‘샤이의 이야기’,  ‘레이첼의 이야기’, ‘샤이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꾸미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각자의 운명에 대한 태도들을 엿볼 수 있다.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는 태도, 혹은 자신이 개척해야 겠다는 태도 등을 통해 통해, -비록 뒤바뀐 모습이지만- 각각의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한 타인 혹은 자신들의 인생과 그녀들의 뒤엉킨 관계에 대한 소통의 필요성을 들려주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 스스로를 가감없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거울이고, 오직 스스로의 솔직한 모습만을 떠올리는 것이 거울이었다. 그런 거울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떠올릴수도 있게 된다. 아니 어쩌면 타인을 이해함으로써(혹은 타인이 되어봄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이 거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상상으로만 경험했던 세상을 소설 속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고, 그로인해 ‘거울’의 적나라함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보다 깊게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게 했던 책, 『더 미러』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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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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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라기에, 그 시대에 걸맞은(?) 극적인 뭔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정말 큰 한 획을 긋는, 그런 크나큰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 속에서 정말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만나보기 힘든 세상을 미리 그려봤는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소설을 통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만나는 감동을 기대하며 현실에서 도망치고 있었던 것 같다 ㅡ.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은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고, 그 속에서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으며, 지금의 나와도 마주보게 했다 ㅡ.

『테헤란의 지붕』은 열일곱 살 소년 ‘파샤’가 주인공이다 ㅡ. 1973년 테헤란의 여름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등학교 생활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고, 졸업을 하면 미국으로 유학도 갈 예정이다. 토목을 전공하고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유학을… 물론 자신의 생각은 아니다. 그런 그에게 단짝 친구인 ‘아메드’가 있다. 그들은 지붕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지붕이 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그들은 그들과의 시간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파샤가 좋아하는 옆집에 사는 아름다운 ‘자리’는, 그가 좋아하는 ‘닥터’와 결혼을 하기로 한 사이이다. 성장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년들같이 그 역시도 힘겹고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닥터가 비밀경찰에 잡혀가게 되면서 그들의 주변 상황은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바뀌어 가게 된다 ㅡ.

독재라는 시꺼먼 구름아래 놓여있는 이란을 배경으로 『테헤란의 지붕』은 이야기된다.
독재의 수단으로 정말 유용하게 이용된 것이 ‘사바크’라는 비밀 경찰집단이다. 누군가가 독재에 반하는 행동이나 말만으로도 그 누군가를 얼마든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독재에 저항함으로써 사바크라는 큰 적을 만들어내고, 그들로 인해 죽어간 닥터와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로인해 (책에서는 1974년 테헤란의 정신병원에 있는 파샤의 모습을 중간 중간 그리면서 1973년의 파샤와 묘하게 대조되게 해놓았다.) 정신병원에 놀라우면서도 처참한 모습으로 있는 파샤의 모습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거(혹은 현재?!)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단정 지을 것이 아니라, 독재라는 괴물이 만들어내는 세상이 모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괴물같은 세상 속에서 사랑과 우정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기대하지 못했던 큰 감동과 별과 같은 반짝거림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왜 신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는 거죠?
왜 우린 정의를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만 하죠?” - p245

 

이런 되풀이되는 울부짖음에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어야하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언젠가, 이런 울부짖음에 당당히 대답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까?! 쩝, 씁쓸함만이 남겨진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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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
캐서린 호우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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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마녀사냥”에 대헤 깊게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다 가끔 접하게 되더라도, “음…… 이런 일도 있었군…….” 혹은 “역시, 집단의 광기란 무서운 것이군.” 정도의 단순한 반응뿐이었다. 하지만 『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에 대해서 다른 시선과 생각으로 그에 대해 접근해 나갈 수 있었다 ㅡ.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한 개개인의 모습을 훑고 돌아다닌 기분이랄까?!

 



 

『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은 주인공 ‘코니 굿윈’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과정 자격시험을 치는 순간들로부터 시작된다. 코니는 세일럼의 마녀사냥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고, 다양한 학설을 이야기하며 대답을 한다. 대답을 들은 칠튼 교수는 중요한 학설 하나를 빼먹지 않았냐는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고발당한 사람들이 진짜로 마법을 썼을 가능성은 생각해 보지 않았나요?” 라는 ㅡ. 이것이 이 책의 굵직한 줄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코니는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는데, 외할머니가 살던 집을 정리해달라는 뜻밖의 부탁을 받게 된다. 그녀는 세일럼으로 향하게 되고, 집 정리는 하는 중에 성경책 안에서 우연히 열쇠와 그 안에 숨겨진 양피지를 발견을 하게 된다. 그 양피지에는 ‘딜리버런스 데인’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ㅡ. 이를 시작으로 그녀는 ‘딜리버런스 데인’ 에 대해서, 그리고 세일럼의 마녀재판에 대해서 조사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ㅡ.

“마녀사냥”
이 처음에는 -칠튼 교수의 당황스러운 질문처럼- 정말 악마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마녀’들을 처단하기 위해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광기가 되어, 어느 샌가 지배수단으로써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단어 그대로의 마녀사냥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종교와 사상을 그 이외의 것들로부터 지켜내고자, 민중들의 저항을 ‘마녀’라는 희생양을 사용함으로써 시선을 돌려버리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런 전략 많지 않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건을 또 다른 큰 사건으로 덮으려는 노력과 시도들……. 실제 잘 먹혀들기도 했고 말이다 ㅡ. 어떻게 본다면, 권력자들의 지배수단으로써의 마녀사냥을 방금 이야기 했다면, 이 책에서 야기시킨 마녀사냥은 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마녀 사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상황이 어쨌든, “마녀사냥” 이라는 그 자체는 상당히 잔인하면서도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오늘날에도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를 무의식적-혹은 고의적-으로 혼동하고,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 얻어낼 수 있는 위안에 집중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에게서 “마녀사냥”이라는 것은 영원히 지워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아직도 마녀 사냥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ㅡ.

생각보다 두꺼운 책에, 지나치게 세부적인 묘사까지 더해져서 -빠른 전개에 익숙한- 나를 가끔씩 힘들게도 했지만,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흐름은 꽤 괜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군다나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해가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하나로 녹여들게 만드는 과정은, 어쩌면 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게 표현해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또한 처음에, 이 책은 다양한 시선으로 다양한 개개인을 훑고 돌아다닌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단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각기 다른 인물의 마음으로 이 책을 훑고 돌아다니는 도 꽤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하는 책, 『세일럼의 마녀와 사라진 책』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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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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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흔히 인생에 비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한 1회를 -인생에서 혹은 게임에서- 승리하리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경기의 승패가 쉽게 판가름 나는 경우는 없다. 찬스에서 득점을 하듯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리기도 하지만, 찬스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김없는 위기 상황이 닥친다. 하지만 그 위기를 잘 넘기면 다시 찬스가 돌아온다. 그것이 야구이고, -아직 많은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아웃 카운트하나 잡지 못하고 실점만 하다가 강판당하는 투수나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헛스윙을 남발하며 삼진을 먹는 타자같이, 이런 위기와 찬스의 우여곡절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이들이 다시 마음을 추스리는 곳이 홈이자 더그아웃이다 ㅡ. 

 

여기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는 인생 막장들이 모여 있는, 정말 웃기는 집구석을 우리는 한 권의 책에서 만나게 된다. 평균나이 사십구 세의, 이름하야 『고령화 가족』!! 강간과 폭력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엄마의 집으로 들어앉는 -실제 이름보다는 오함마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는- 큰아들 오한모. 영화 찍는다고 난리치다가, 결국 한편을 만들기는 하지만 쫄딱 망해먹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엄마의 집에 들어앉게 되는 -책에서 ‘나’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둘째아들 오인모. 바람피우고 또 피우다 걸려서 이혼당하고 중학생 딸과 함께 엄마의 집에 들어앉는 막내 딸 미연. 게다가 그 딸도 싸가지 없는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TV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해리가 “빵꾸똥구”라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날렸을법한 구질구질한 인생 군상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들이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다시 24평의 엄마 집으로 몰려든다 ㅡ. 

 

 사실, 말이 『고령화 가족』이지, 그냥 「막장 가족」,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각각의 스펙만 봐도 상당한데 그들의 하는 짓을 보면 더 가관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카라는 사실도, 그 조카의 이름도 모른다거나, 삼촌이 조카가 먹는 피자 좀 먹어보겠다고 난리치는 것 정도는 완전 애교다. 담배피우다 걸린 조카에게 삥 뜯는 삼촌, 조카 팬티 움켜쥐고 자위행위 하다가 걸린 삼촌을 상상이나 해봤는가?! 뭐, 이정도도 상황에 따라서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친형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이 실제로는 배다른 형이라는 사실, 자신의 친동생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이 실제로는 다른 피를 받은 동생이라는 사실 등은 각각의 스펙을 뛰어넘어 가족의 구성자체에서부터 시작된 막장 가족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막장, 막장 그러는데 이 막장이 오늘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것들은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시켜 TV앞으로 끌어들이려는 얄팍한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머리로만 그렸던 좀 더 폭력적인 인간의 모습을 현실에 가깝게 끌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에 점만 하나 찍는다고 다른 사람으로 안다는 것은 좀 심하긴 했지만……) 예전에 성(姓)에 대해서 무조건 덮으려고만 하던 것이 서서히 현실에 가깝게 드러나듯이, 막장도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있던 것을 조금씩 현실에 가깝게 드러내면서 부정을 긍정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다지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TV에서 보는 막장 이야기의 영향으로 세상이 바뀌어가는 것인지, 세상의 영향으로 온갖 매체가 막장으로 바뀌어가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령화 가족』에서 정말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그래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가족과 함께 이 책들 돌려보려고 생각했다면, 이 막장 가족의 실체를 파악하자마자 “뭐, 이딴 말도 안 되는 집구석이 있어?!”혹은 “이딴 집구석에서 도대체 뭘 얻으란 말이야?!”라며 책을 집어 던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하고 어려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나, 정말 힘들게 집으로 돌아갔지만 “꺼져!!”라는 말로 문전박대당하고 거리로 휩쓸려가는 사람들의 내일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보다는 낫지 않은가?! 또한 정말 말이 되는 가족인지, 그렇지 않은 가족인지는 직접 확인 해봐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따로 살던 가족들이 24평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그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24.5평의 아파트에 증조할머니부터 시작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와 내 동생, 두 명의 삼촌과 고모, 그리고 사촌 누나 한명까지…… 누가 봐도 놀랄만한 인원의 사람이 북적북적 모여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던 것인지 놀랍기만 하지만, 그렇게 바글바글하게 있어도 큰 불만 없이-있어도 많이 참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잘 살았던 것은 생각해보면 그들의 불편은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집이 좁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그들을 감싸고 있던 공기들이 너무나 달라서 그 공기들의 부딪힘이 그들을 답답하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성만점, 아니 십만 점, 백만 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그들을 감싸고 있던 공기와 시간의 힘은 그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 대단한 공기의 흐름을 깨고 이 가족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 간다. 물론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시발”은 여전히 담은 채 ㅡ. 

 

보통의 글을 보면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폼 나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아주 사소한 것도 뻥튀기를 해서 미화시킨다거나, 막걸리가 아닌 와인을 등장시킨다거나 하면서 폼만 잡다가 책을 한없이 지루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천명관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에서 그런 쓸데없는 힘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멋지고 폼 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 소재들은 아주 구질구질하더라도, 그 구질구질함을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유쾌, 상쾌, 통쾌하게 승화시켜버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글귀를 써넣음으로써 캐릭터를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이라든가, 필요 없는 말을 괄호 안에 넣어 이제는 없으면 심심할 정도의 글로 표현해내는 능력 같은 것들 ㅡ. 낄낄거리며 웃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정신없이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뭔지 모를 두려움 같은 것들이 가슴 한곳에 남겨졌다. ‘어쩌면, 나도…….’ 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양산해내는 오늘날의 막막한 현실 때문일까?!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고, 눈앞에 찬란한 빛이 마구마구 춤추는 것도 아닌 현재의 꿉꿉한 나의 삶과 오늘날의 현실이 합쳐져 그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두려움만을 던져주는 책이었다면 나 역시도 욕지거리와 함께 책은 먼지 가득한 방의 한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욕할 일도, 책을 집어 던질 일도 없었다. 

 

 이 책에 있어서 무엇보다 재미있으면서, 기억에도 남고, 뭔가 찌릿한 느낌을 안겨주는 대목이 있었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실제 할 일이 그것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대목이다 ㅡ. 이 사람들, 제대로 알지는 못하면서 앞뒤 관계를 얼마나 잘 때려 맞히는지, 그 능력이 실로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그들도 자신에 대한 조그만 오해나, 설령 사실일지라도 듣기에 좋지 않는 말들에는 못 참아 한다. 하지만 상황을 바꾸어 자신의 자리에 타인을 대입시키면 상당히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를 축소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재미있지만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家族)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

 



가족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렇다. 사전적 정의로 본다면 우리 사회에 가족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는 가족은 또 다른 것이다. 야구의 제일 기본이 되는 룰이 던지고, 치고, 달려서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그런 모습을 『고령화 가족』이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제각기 나름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홈에서 1루로 2루로 달려 나갔던 사람들이 득점을 하든, 아웃이 되던 다시 홈으로 모여드는 모습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가족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모습과 가족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 가족의 중심축이 되는 ‘엄마’라는 존재 ㅡ. 불러들이지만 더 큰 날갯짓을 위해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런 『고령화 가족』에서 뭔가 냄새가 난다 ㅡ. 킁킁 ㅡ. 오해는 마시라 오함마의 뿌웅! 하는 방귀에 뒤따르는 냄새는 아니니까 ㅡ. 인간적인 냄새라고 해야 할까?! (물론 모든 것이 현실적이지만은 않지만…….) 이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그 어떤 말보다도 완벽하다는 “맘마”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 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 p45

 




그리 많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나로서도 벌써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은 수도 없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또 가능만 하다면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고령화 가족』의 ‘나’를 통해서 부서진 희망의 흔적만이 남은 인생일지라도 헤밍웨이처럼 자살하지도 않을 것이고, 상처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저 자신의 삶이고 역사이기에 고스란히 받아들일 것이라 한다. 그동안 나는 나를 부정하며 살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식적인 내가 아닌, 진짜 나로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생각에 바탕이 되어 줄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ㅡ. 하지만 아무리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찾는다고 그 가족 구성원들의 얼굴에 “행복”이라는 말이 둥둥 떠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인생에서 해피엔딩은 불가능한 것일까?! 많은 돈, 큰집, 빠른 차를 가지는 것이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이렇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만났지만, 그 반가움이 “시발”로 먼저 나타나지만, ‘가족’의 재발견이라는 것이 해피엔딩일까?!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해피엔딩도 자신만이 찾고,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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