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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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흔히 인생에 비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한 1회를 -인생에서 혹은 게임에서- 승리하리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경기의 승패가 쉽게 판가름 나는 경우는 없다. 찬스에서 득점을 하듯 인생의 정점을 향해 달리기도 하지만, 찬스를 살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어김없는 위기 상황이 닥친다. 하지만 그 위기를 잘 넘기면 다시 찬스가 돌아온다. 그것이 야구이고, -아직 많은 세월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아웃 카운트하나 잡지 못하고 실점만 하다가 강판당하는 투수나 타석에 들어서기만 하면 헛스윙을 남발하며 삼진을 먹는 타자같이, 이런 위기와 찬스의 우여곡절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이들이 다시 마음을 추스리는 곳이 홈이자 더그아웃이다 ㅡ. 

 

여기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는 인생 막장들이 모여 있는, 정말 웃기는 집구석을 우리는 한 권의 책에서 만나게 된다. 평균나이 사십구 세의, 이름하야 『고령화 가족』!! 강간과 폭력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다 엄마의 집으로 들어앉는 -실제 이름보다는 오함마라는 별명이 더 잘 어울리는- 큰아들 오한모. 영화 찍는다고 난리치다가, 결국 한편을 만들기는 하지만 쫄딱 망해먹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엄마의 집에 들어앉게 되는 -책에서 ‘나’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둘째아들 오인모. 바람피우고 또 피우다 걸려서 이혼당하고 중학생 딸과 함께 엄마의 집에 들어앉는 막내 딸 미연. 게다가 그 딸도 싸가지 없는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다. TV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해리가 “빵꾸똥구”라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날렸을법한 구질구질한 인생 군상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들이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다시 24평의 엄마 집으로 몰려든다 ㅡ. 

 

 사실, 말이 『고령화 가족』이지, 그냥 「막장 가족」,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각각의 스펙만 봐도 상당한데 그들의 하는 짓을 보면 더 가관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조카라는 사실도, 그 조카의 이름도 모른다거나, 삼촌이 조카가 먹는 피자 좀 먹어보겠다고 난리치는 것 정도는 완전 애교다. 담배피우다 걸린 조카에게 삥 뜯는 삼촌, 조카 팬티 움켜쥐고 자위행위 하다가 걸린 삼촌을 상상이나 해봤는가?! 뭐, 이정도도 상황에 따라서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친형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이 실제로는 배다른 형이라는 사실, 자신의 친동생으로만 생각했던 사람이 실제로는 다른 피를 받은 동생이라는 사실 등은 각각의 스펙을 뛰어넘어 가족의 구성자체에서부터 시작된 막장 가족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막장, 막장 그러는데 이 막장이 오늘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것들은 시청자들의 말초신경을 자극시켜 TV앞으로 끌어들이려는 얄팍한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머리로만 그렸던 좀 더 폭력적인 인간의 모습을 현실에 가깝게 끌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에 점만 하나 찍는다고 다른 사람으로 안다는 것은 좀 심하긴 했지만……) 예전에 성(姓)에 대해서 무조건 덮으려고만 하던 것이 서서히 현실에 가깝게 드러나듯이, 막장도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있던 것을 조금씩 현실에 가깝게 드러내면서 부정을 긍정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다지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생각에 TV에서 보는 막장 이야기의 영향으로 세상이 바뀌어가는 것인지, 세상의 영향으로 온갖 매체가 막장으로 바뀌어가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령화 가족』에서 정말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그래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가족의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을 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가족과 함께 이 책들 돌려보려고 생각했다면, 이 막장 가족의 실체를 파악하자마자 “뭐, 이딴 말도 안 되는 집구석이 있어?!”혹은 “이딴 집구석에서 도대체 뭘 얻으란 말이야?!”라며 책을 집어 던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하고 어려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나, 정말 힘들게 집으로 돌아갔지만 “꺼져!!”라는 말로 문전박대당하고 거리로 휩쓸려가는 사람들의 내일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보다는 낫지 않은가?! 또한 정말 말이 되는 가족인지, 그렇지 않은 가족인지는 직접 확인 해봐야 하지 않을까?! 

 

오랜 시간 따로 살던 가족들이 24평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그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24.5평의 아파트에 증조할머니부터 시작해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나와 내 동생, 두 명의 삼촌과 고모, 그리고 사촌 누나 한명까지…… 누가 봐도 놀랄만한 인원의 사람이 북적북적 모여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던 것인지 놀랍기만 하지만, 그렇게 바글바글하게 있어도 큰 불만 없이-있어도 많이 참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름 잘 살았던 것은 생각해보면 그들의 불편은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집이 좁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그들을 감싸고 있던 공기들이 너무나 달라서 그 공기들의 부딪힘이 그들을 답답하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성만점, 아니 십만 점, 백만 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그들을 감싸고 있던 공기와 시간의 힘은 그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 대단한 공기의 흐름을 깨고 이 가족은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 간다. 물론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시발”은 여전히 담은 채 ㅡ. 

 

보통의 글을 보면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폼 나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아주 사소한 것도 뻥튀기를 해서 미화시킨다거나, 막걸리가 아닌 와인을 등장시킨다거나 하면서 폼만 잡다가 책을 한없이 지루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천명관이라는 작가와 그의 글에서 그런 쓸데없는 힘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멋지고 폼 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그 소재들은 아주 구질구질하더라도, 그 구질구질함을 작가 특유의 재치와 유머로 유쾌, 상쾌, 통쾌하게 승화시켜버린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에 글귀를 써넣음으로써 캐릭터를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해내는 능력이라든가, 필요 없는 말을 괄호 안에 넣어 이제는 없으면 심심할 정도의 글로 표현해내는 능력 같은 것들 ㅡ. 낄낄거리며 웃고 있을 때가 아닌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그랬다. 하지만, 정신없이 한 권의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뭔지 모를 두려움 같은 것들이 가슴 한곳에 남겨졌다. ‘어쩌면, 나도…….’ 라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양산해내는 오늘날의 막막한 현실 때문일까?! 이루어 놓은 것 하나 없고, 눈앞에 찬란한 빛이 마구마구 춤추는 것도 아닌 현재의 꿉꿉한 나의 삶과 오늘날의 현실이 합쳐져 그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두려움만을 던져주는 책이었다면 나 역시도 욕지거리와 함께 책은 먼지 가득한 방의 한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욕할 일도, 책을 집어 던질 일도 없었다. 

 

 이 책에 있어서 무엇보다 재미있으면서, 기억에도 남고, 뭔가 찌릿한 느낌을 안겨주는 대목이 있었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실제 할 일이 그것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대목이다 ㅡ. 이 사람들, 제대로 알지는 못하면서 앞뒤 관계를 얼마나 잘 때려 맞히는지, 그 능력이 실로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그들도 자신에 대한 조그만 오해나, 설령 사실일지라도 듣기에 좋지 않는 말들에는 못 참아 한다. 하지만 상황을 바꾸어 자신의 자리에 타인을 대입시키면 상당히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를 축소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재미있지만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家族)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집단. 또는 그 구성원.

 



가족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렇다. 사전적 정의로 본다면 우리 사회에 가족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는 가족은 또 다른 것이다. 야구의 제일 기본이 되는 룰이 던지고, 치고, 달려서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그런 모습을 『고령화 가족』이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제각기 나름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홈에서 1루로 2루로 달려 나갔던 사람들이 득점을 하든, 아웃이 되던 다시 홈으로 모여드는 모습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가족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모습과 가족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 가족의 중심축이 되는 ‘엄마’라는 존재 ㅡ. 불러들이지만 더 큰 날갯짓을 위해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런 『고령화 가족』에서 뭔가 냄새가 난다 ㅡ. 킁킁 ㅡ. 오해는 마시라 오함마의 뿌웅! 하는 방귀에 뒤따르는 냄새는 아니니까 ㅡ. 인간적인 냄새라고 해야 할까?! (물론 모든 것이 현실적이지만은 않지만…….) 이 냄새를 맡으며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그 어떤 말보다도 완벽하다는 “맘마”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인생은 단지 구십 분의 플롯을 멋지게 꾸미는 일이 아니라 

곳곳에 널려 있는 함정을 피해 평생 동안 도망 다녀야 하는 일이리라.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말이다. - p45

 




그리 많지 않은 삶을 살아온 나로서도 벌써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기억은 수도 없이 많다. 기회가 된다면, 또 가능만 하다면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고령화 가족』의 ‘나’를 통해서 부서진 희망의 흔적만이 남은 인생일지라도 헤밍웨이처럼 자살하지도 않을 것이고, 상처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저 자신의 삶이고 역사이기에 고스란히 받아들일 것이라 한다. 그동안 나는 나를 부정하며 살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가식적인 내가 아닌, 진짜 나로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생각에 바탕이 되어 줄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ㅡ. 하지만 아무리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고, 찾는다고 그 가족 구성원들의 얼굴에 “행복”이라는 말이 둥둥 떠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인생에서 해피엔딩은 불가능한 것일까?! 많은 돈, 큰집, 빠른 차를 가지는 것이 해피엔딩일까?! 아니면 이렇게 후줄근한 모습으로 만났지만, 그 반가움이 “시발”로 먼저 나타나지만, ‘가족’의 재발견이라는 것이 해피엔딩일까?!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해피엔딩도 자신만이 찾고,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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