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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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 가난한 신교도 집안의 딸 그리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카톨릭 신자들이 모여 사는 파펜후크가 한 화가의 집으로 들어가 하녀가 됩니다. 그리트의 아버지가 사고로 눈을 다쳐 평생 일하던 타일 공장에 나가지 못한지 오래됐기 때문에 열여섯의 맏딸 그리트는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야 합니다.
 
신중하고 영민한 그리트는 하녀일에 잘 적응합니다. 주인인 화가이자 화상인 베르메르는 작품을 그리는데 매우 오랜 시간을 들이는 사람으로 장님 아버지를 도와왔던 그리트에게 화실 청소를 맡깁니다. 그리트의 임무는 또 다른 하녀인 타네커를 돕는 일 외에 화실의 물건들을 움직이지 않고 청소하는 일입니다.
 
주인인 베르메르는 원래 신교도였던 사람으로 아내 카타리나와 결혼해 구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아내 카타리나는 마치 아이 낳는 일이 취미인 것 같은 사람으로 늘 임신 상태입니다. 베르메르는 많은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그림을 그려 팔아야만 합니다. 카타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아 틴스는 현명한 수완가로 까탈스런 딸과 과묵한 사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입니다. 마리아 틴스는 그리트를 좋게 보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뒤를 봐 줍니다.
 
그리트는 주인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주인도 그런 그리트의 타고 난 심미안을 알아봅니다. 어느날 그리트는 새로 그림을 그리게 된 주인이 배경처리를 놓고 고민하는 걸 알고 화실을 청소할 때 배경을 살짝 바꿔 놓습니다. 주제넘는 짓이지만 그리트의 심미안은 참고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주인은 아무말 없이 그리트가 바꿔 놓은 대로 그립니다.
 
그 때부터 화가 베르메르와 하녀 그리트는 그림을 통해 사랑을 나눕니다. 까탈스런 집안 사람들과 음흉한 의도로 추근대는 화상 반 라위번, 건실한 푸줏간 청년 피터의 구애 속에 그리트는 베르메르와 위험한 사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한 마디의 밀어도 신체적 접촉도 없는 침묵과 눈빛만의 사랑일 뿐입니다. 베르메르는 마침내 그리트를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여성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17세기 네덜란드를 마치 눈에 본 듯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신비에 싸인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를 소재로 화가 베르메르에 대한 짧은 기록과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소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책속엔 베르메르의 그림들이 나오는데 작가는 이야기를 그 그림들에 맞춰 엮어 나가고 있어서 그림과 이야기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법도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이 책의 얘기는 특별한 사건 없이 차분하게 흘러가지만 독자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한 사려 깊은 소녀가 가난 때문에 하녀가 되고 그림을 알게 되며 주인을 사랑하다 결국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고 떠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있습니다. 섬세한 작가 덕분에 잘 모르던 소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소녀의 내면을 엿본 느낌은 아릿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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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딸들 1 - 양장본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선희 옮김 / 홍익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잔인합니다. 이렇게 잔인한 작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슬프게 끝낼 수 있는지 ! 읽는 내내 가슴을 얼마나 졸였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결말을 내 버리다니 ! 책을 덮고 한동안 슬픔에 젖어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이 먼먼 옛날 한 여인의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가슴을 후벼 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만여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시베리아 남부 아메마스 강의 북쪽 기슭엔 수렵과 채취로 하루하루 연명하는 원시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곳 원시부족 '불의 강' 사람들의 딸들 중 한 명인 '야난'의 일생에 관한 것입니다.
 
하루하루 생존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야난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습니다. 야난은 부족장인 그레이렉의 영도 아래 건실한 아버지 아히와 강인한 어머니 레프윙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느날 야난은 부족어른들과 부모님의 뜻으로 자신이 부족의 청년인 팀과 혼인 하기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만약 아무런 사건도 없이 시간이 흘러 갔다면 야난은 평범한 한 여인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남들처럼 살다 죽었을 테지만 운명은 그녀를 놓아 두지 않습니다. 그레이렉 일족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들의 짝을 찾기 위해 불의 강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일족은 불의 강 주변 초원에서 다른 일족인 맘모스 사냥꾼들을 만납니다.
 
그레이렉은 뛰어난 사냥꾼들인 맘모스 사냥꾼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소한 일로 야난의 아버지 아히가 맘모스 사냥꾼들과 토라져 따로 독립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야난은 만삭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또 다른 아내이자 이모인 요이, 여동생 메리,사촌인 프록과 스틱과 함께 아버지가 태어난 오두막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어머니는 출산하고 야난은 난산의 어머니를 도와 아이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레프윙은 아이를 낳은 직후 죽고 맙니다. 불행은 연이어, 아버지 아히 마저 사냥 중 늑대에게 물린 상처가 덧나 고열에 시달리고 귀신과 대화를 나눕니다. 공포에 질린 이모와 사촌들은 야난과 메리를 두고 불의 강으로 떠나 버립니다. 그 직후 아버지도 어머니를 따라 갑니다.
 
야난과 메리는 사람들을 찾아 혹한을 뚫고 멀고 먼 길을 나섭니다. 두 소녀는 외톨이 어미늑대의 도움을 받는 등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마침내 불의 강에서 그레이렉 일족을 만납니다. 그레이렉 일족은 맘모스 사냥꾼인 스위프트 일족과 함께 협력해 살고 있습니다. 그레이렉의 두 아들인 팀과 에르호가 맘모스 일족의 여자를 아내로 맞는 대신 메리를 스위프트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원래 메리는 일족이었던 화이트폭스와 약혼한 사이입니다. 부모님도 모르게 동생의 혼인이 바뀐 것에 대해 야난은 심한 반발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 와중에도 야난은 첫 생리를 치루고 성인식을 거쳐 팀과 결혼합니다. 행복했던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동생 메리를 따라 다니던 새끼 늑대를 잡은 것으로 오해한 야난이 스위프트의 늑대 가죽을 버리고 그게 빌미가 되어 팀과 심하게 다투게 됩니다.
 
격정을 이기지 못한 야난은 자신의 이혼과 메리의 파혼을 선언하고 메리를 데리고 다른 불의 강 일족을 찾아 그레이렉의 오두막을 떠납니다. 맘모스 사냥꾼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화이트폭스와 에르호가 두 사람을 따라 나섭니다. 홧김에 앞뒤를 잴 수 없었던 야난은 도중 에르호의 유혹을 받고 관계를 가집니다.
 
불의 강 일족에서 요이 이모와 사촌들을 만난 야난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야난은 그제야 남편 팀을 그리워하게 되고 자신의 성급함을 자책하게 됩니다. 뒤늦게 야난은 에르호와 관계를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합니다. 야난은 그레이렉 일족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팀은 야난의 부정을 의심해서 냉랭하게 대합니다. 야난은 아무런 배려와 보호 없이 혼자 아이를 낳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는데....
 
문화인류학자인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는 2만년전 한 여성의 삶을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려 냈습니다.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원시부족의 삶에 대해 손에 잡힐 듯 실감나는 묘사를 하고 있으며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투영해 야난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제목을 "세상의 모든 딸들"이라고 붙였는데 마치 강한 페미니즘 문학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이 책은 여성에게만 국한된 편협한 책이 아닙니다.
 
원시인의 삶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미래를 노래하는 희망의 예언서입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마땅히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직하고 담담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야난이 여성이고 여성이라는 삶의 규정에 반발하다 죽는 것 때문에 페미니즘 문학으로 보는 모양이지만 작가가 야난의 삶에 감정적인 동조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는 소설 속 남성들을 비난하고 있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야난의 어리석음에 대해 책망하는 태도를 보일 정도로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작가는 오히려 과격한 페미니즘을 비롯한 대립위주의 생각들을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야난이 갑작스레 죽는 결말은 분명 그런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작가는 우리 보다 훨씬 어리석을 것이라고 여겨지던 원시인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 서로에 대한 존중과 화합의 정신을 통해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이 책을 읽는다면 아름다운 인류의 미래란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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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바구니회사, 롱거버거 스토리
데이브 롱거버거 지음, 최기철 옮김 / 미래의창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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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기업가 데이브 롱거버거의 자서전은 읽는 내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적시는 책입니다. 미국에서도 낙후된 오하이오주 하고도 시골 벽촌인 드레스덴에서 가난한 부모의 12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데이브는 누가 봐도 '마을에서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아이' 였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간질발작을 앓았던 데이브는 지독한 말더듬이에다 글도 남들만큼 잘 읽지 못했습니다. 데이브는 3년이나 유급을 한 끝에 21살에야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학은 아예 갈 엄두도 못 내봤고 좋은 직장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데이브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구가 많고 가난했기 때문에 데이브는 아주 어려서부터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비록 말을 더듬고 머리도 좋지 않았지만 그는 누구 보다 성실했고 자신이 맡은 일을 사랑했습니다. 잔디를 깎아도 남들 보다 훨씬 빨리 훨씬 깔끔하게 깎아 더 많은 용돈을 벌고 마을의 식료품 가게에서도 어린 나이에 진열을 책임질 정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땐 잡지 정기 구독 모집 대회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더듬이의 판촉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열정에 감탄해 기꺼이 신청서를 써 주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데이브를 "파파이(뽀빠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신뢰했습니다. 데이브는 사람들의 그런 신뢰를 믿고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는 비록 학교 공부는 잘 못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데이브 롱거버거 인생의 최대 자산이 되었습니다.

  가사용품 세일즈맨과 공장직원 빵 배달 영업 사원을 거치며 결혼과 군복무까지 마친 데이브는 마을의 식당을 인수해 처음으로 사업가가 됩니다. 은행에 한 푼의 예금도 없이 오로지 이웃 사람의 신용 보증만으로 은행에 돈을 빌려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데이브는 정직과 친절로 사업을 번창시킵니다. 식당을 확장하고 이웃의 식료품 가게를 인수하고 드럭스토어를 새로 엽니다. 역시 현금 없이 신용만으로 벌인 사업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데이브의 사업은 탄탄대로를 걷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당시 시대의 흐름에 밀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구식 바구니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느날 데이브는 아버지가 한 때 바구니 공장 기술자였던 인연으로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구식바구니를 미국 전역에 팔겠다고 결심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데이브를 미쳤다며 뜯어 말립니다. 플라스틱 제품과 싸구려 외제에 밀려 골동품이 되어 버린 바구니를 팔겠다는 데이브의 발상은 누가 봐도 미친짓이었습니다. 실제로 데이브는 여러번의 난관을 겪고 결국 잘 되던 식당과 식료품 가게, 드럭스토어를 처분하게 됩니다.

  그러나 데이브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마침내 데이브의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물론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데이브는 결국 자신의 말을 실현해 보였습니다. 2000년 현재 롱거버거사는 7천명의 직원과 연매출 10억 달러의 거대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공 스토리가 감동을 주는 건 아닙니다. 감동의 원천은 데이브 롱거버거의 경영철학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그는 사람을 최대의 자산으로 생각하고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했습니다. 회사의 모든 정보를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기쁨과 아픔을 공유했습니다. 말단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며 어울리고 항상 인격적으로 대했습니다. 늘 직원과 고객의 말에 귀를 귀울였습니다. 변화에 순응했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끊임없이 창의력을 발휘했습니다. 어려울수록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1999년 3월17일 데이브 롱거버거는 암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하지만 롱거버거의 정신은 오래오래 남을 것입니다. 인생이 늘 불공평하다고, 늘 누군가가 나를 가로막고 내가 원하는 일을 방해한다고, 늘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불평하고, 늘 패배하고 절망하던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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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
장원재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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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문장으로 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글은 가슴으로 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 우린 좀 특별한 축구전문가 한 사람을 TV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 큰 머리, 짧은 팔다리...아무리 봐도 인상 좋고 머리 좋게는 생겼어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 것 같은 사람, 장원재! 그러나 현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라는 이 사람은 참으로 해박했습니다. 뭐에? 축구에 말입니다.
 
 뭐, 축구 좋아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어도 막상 그의 열정적인 말을 듣거나 글을 읽으면 이건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겁니다. 도대체 나이는 저보다 두 살 밖에 안 많은 사람이 제가 태어나기도 전 축구 시합을 지금 바로 모니터를 보며 생중계하는 아나운서처럼 정확하게 묘사해대니 말입니다. 또 묘사는 얼마나 열정적이며 그 눈빛은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던지요!
 
 다섯 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축구장에 처음 간 후 지금까지 식지 않는 축구사랑으로 축구를 연구해 왔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그 많은 정보들을 알아냈으며, 복습은 또 얼마나 했길래 그렇게 비디오를 돌리 듯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 정말이지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최초로 선수출신도 아니면서 2003년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까지 역임하지 않았겠습니까!
 
 일필휘지! 한 호흡에 쓴다는 건 이 책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책은 불과 한 달 전 상황이 실려 있을 정도로 펄펄 살아 뛰는 신선함이 있습니다. 2006년 월드컵 전에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서 얼마나 서둘렀는지 여기저기 오자 투성이지만 그게 더 장원재 교수의 열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예창작과 교수 답게 과연 명문장을 구사하지만 이 책을 쓸 땐 문장 따윈 신경도 안 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문장이 안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과연 숨은 쉬고 썼을까 싶은 장쾌함이 느껴져서 하는 말입니다.
 
 오가는 출퇴근 만원 버스 안에서 읽다가 몇 번이나 눈물을 글썽글썽이기도 하고 킥킥 미친 놈처럼 웃기도 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땐 저도 모르게 "대~한민국!" 하고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2006년 월드컵은 끝났지만 월드컵은 다시 우리 곁을 찾아오겠죠. 또 한 번 2002년의 감동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월드컵은 봐야죠. 그 전에 이 책 한 번 읽고 보십시오.진짜 축구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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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피치 - 나는 왜 축구와 사랑에 빠졌는가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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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에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 축구장에 갔다 축구와 사랑에 빠져 버린 사나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긋지긋한 팀 아스날과 사랑에 빠져 버린 남자, 닉 혼비! 이 사람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원작 소설을 쓴 영국작가라고 하는데 25년 대책 없는 축구 사랑 아니, 아스날 사랑이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에 빠져 들고 미치곤 하지요. 그게 축구일 수도 바둑일 수도 십자수일 수도 TV드라마일 수도 연애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뭐가 됐던 빠져 들고 미칠 수 있는 일 하나 없이 사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도무지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맹목적인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아닐런지요!
 
경기장 갈 때마다 불량한 애들에게 맞는데도 다음 시합에도 도저히 가지 않곤 못 배기고, 애인이 기절했는데도 축구를 보느라 경기장을 뜨지 못하고, 진정한 아스날 팬이 되고자 런던 교외의 백인중산층 말투 말고 런던 북부 빈민가 말투를 흉내내다 말투가 완전히 고착돼 여동생과 배 다른 남매 사이로 오인받고, 아스날의 경기 결과에 따라 자기 인생의 행.불행 마저도 좌우되는 사람.
 
소심하고 사려 깊고 페미니스트에 인종차별을 혐오하고 평화주의자지만 축구장만 가면 어린애가 되어 욕하고 비난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버리는, 그러나 경기장만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온순해지는 사람. 죽으면 화장해 뼛가루를 아스날 홈구장인 하이버리에 뿌려주길 바라는 사나이....
 
닉 혼비의 지독한 축구사랑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아스날 팬이 아니라도, 프리미어 리그 한 번 안 본 사람이라도, 아니 아예 축구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잘 난 것도 잘 날 일도 없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을 읽고 모두 축구를 사랑하게 되고 삼류 축구팀이라도 응원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아니 축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자신의 못난 인생을, 더 못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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