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일드 소울 1 ㅣ 블랙 캣(Black Cat) 6
가키네 료스케 지음 / 영림카디널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1961년 일본 큐수의 농부 에토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브라질로 이민을 떠납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모집요강에서 이민 예정지는 농업용지로서 이미 개간이 끝나 있고, 관개용수나 이민자 거주용 주택도 완비되어 있으며 이민 가족에게는 각각 20정보(약19.8헥타르)의 비옥한 토지가 무상 배분된다고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23세였던 에토는 갓 결혼한 아내를 설득하고 총각인 친동생을 꼬드겨 이민자 모집에 응모했던 것입니다.
한 달의 여행 끝에 도착한 브라질, 거기서 또 작은 배를 타고 아마존을 거슬러 올라가길 열흘, 마침내 도착한 그들의 새 보금자리. 하지만 그곳은 기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농지는 커녕 집도 도로도 없는 완전한 밀림. 속은 걸 알았지만 돌아가기엔 너무나 먼 길, 이주자들은 어떻게든 그 땅을 개간해 보려 합니다. 그러나 우기만 되면 토사가 모두 쓸려내려가는 지대인 그곳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성 토양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영사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보냅니다만 아무런 답변도 얻지 못합니다. 이미 돌아갈 수도 없게 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아마존의 자연과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그러나 말라리아와 이질, 황열병으로 사람들은 하나둘씩 쓰러지고 어렵게 지은 농사도 물에 떠내려 갑니다. 이주자들은 대부분 견디지 못하고 몰래 이주지에서 도망갑니다. 에토도 2년을 버텼지만 결국 아내와 동생을 병으로 잃고 맙니다. 자포자기한 에토는 자살을 시도합니다만 동료 노구치의 만류로 결심을 바꿔 죽는 대신 이주지를 떠나기로 합니다. 노구치 가족을 두고 성공하면 데리러 오겠다며 떠난 에토, 그로부터 2년여 눈물겨운 고생 끝에 2천킬로미터 떨어진 일본영사관을 찾아가지만 영사는 만나주지 않습니다. 에토는 비로소 일본정부가 처음부터 이민자들을 버리기로 작정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끓어 오르는 분노!
그 이후 8년여, 에토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 브라질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에토는 한 아랍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극적으로 성공합니다. 이주지를 떠난 지 어언 10년, 에토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이주지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이주지는 폐허로 변해 있고 친구 부부는 이미 고인이 된 뒤였습니다. 비통함을 이길 수 없는 에토의 앞에 짐승처럼 살아 온 한 소년이 나타납니다. 에토는 부모를 잃고 정글 속에서 홀로 살아 온 노구치의 아들 케이를 데리고 도시로 나갑니다.
그로부터 30여년 에토와 케이는 일본정부에 복수하기로 결심합니다. 에토와 케이는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야마모토라는 초로의 남자와 부모를 따라 콜롬비아로 떠났다 강도에게 부모를 잃고 마약조직 두목의 손에 길러진 케이의 어릴 적 친구 마쓰오를 만나 완벽한 시나리오를 짭니다. 일본정부는 이들에게 전대미문의 조롱을 받는 처지가 될 것입니다.
재미있습니다. 화끈합니다. 통쾌합니다. 말 그대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빠르고 시원시원한 문체, 매력적인 캐릭터들, 일본정부와 일본인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 절묘한 사건전개가 어우러져 독자에게 최고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더구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내용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까지 갖추고 있으니 가히 걸작이라 불러도 손색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목적으로 많은 이민을 보냈었죠. 아마 우리의 동포들도 소설 속 일본인들 못지 않은 삶을 살았겠지요. 그나마 일본은 소설로나마 과거를 반성하고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이민사에 대한 제대로된 조명조차 없는 건 아닌지 아쉬웠습니다. 최근에도 자주 우리나라 외교관들의 무성의하고 무력한 자국민 보호조치에 대한 기사를 접하는 걸로 봐선 바랄 수 없는 일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