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상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홍대화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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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죄와 벌'이란 제목에서 '죄'란 무엇을 의미할까? 가난한 대학생인 라스꼴리니꼬프는 고리대금업자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인다. 그는 나폴레옹이나 마호메트를 예로 들면서 위대한 공적을 이루는 사람들은 사회의 도덕을 어긴다고 한다. 로쟈는 나폴레옹이나 마호메트처럼 여러 명을 죽이는 대신, 고리대금업자를 죽이고 그녀가 갖고 있는 돈으로 성공을 하여 남을 도우려고 한다. 로지온의 죄는 종교(기독교)에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을 어긴 것인가? 아니면 법으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했는데 죽인 것인가? 살인한 초반에 라스꼴리니꼬프는 살인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 훔친 돈을 자신이 필요한 곳에 쓰지 못했음을 자책하지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서는 자책하지 않는다. 자수하는 계기도 두냐와 라스꼴리니꼬프의 어머니, 소냐에 의해서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벌'이란 무엇인가. 소냐가 그에게 십자가를 주거나 하느님의 가호를 빌지만 그는 진심으로 동요하는 것은 아니다.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그가 온전히 죄를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냐가 라스꼴리니꼬프를 위해서 시베리아 수용소까지 따라오고 그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라스꼴리니꼬프는 죄를 인정하고 8년간의 감옥살이를 하기로 한다. 종교나 법이 개인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인정은 개인의 양심에 따라서 하며, 벌을 받고자 하는 것도 사람의 영향을 받아(소냐에 의해서) 가능함을 보여준다.

소설에 존재하는 고리대금업자와 같이 사람들을 억압하게 하는 현존하는 독점 자본가들이나 폭압 독재자를 타도하는 방법으로 폭력을 써도 좋을까? 즉 소설에서처럼 라스꼴리니꼬프와 같이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여도 되는 것일까? 소설에서 나온 바와 같이 이런 방법은 너무 성급한 것이며, '뿌리 깊은 실천력의 결핍'(p.221)이라고 볼 수 있다. 고리대금업자 알료나 이바노브나가 바뀔 수도 있다는 믿음(인간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그들을 끊임없는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스꼴리니꼬프의 나이는 23살인데, 너무 일찍 사회에 대해 절망했다. 폭력적으로 해결하지 말고, 그가 살아가면서 경제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해 그 문제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이 아직까지는 최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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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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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담이 눈뜰 때'라는 제목은 소설보다는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때 난 소설보다는 한참 영화에 빠져 있는 때였다. 그 당시 영화에 대한 소개로 어느 재수생의 성 편력기 정도로 기억나며, 영화의 내용 역시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장정일의 다른 책이나 시를 읽은 후 이 책을 접하니 다르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후작인 『보트하우스』보다는 『아담이 눈뜰 때』가 더 나았다.

물론 한국의 재수생으로 살아가는 도중에 성과 퇴폐적인 일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의 양질의 발전으로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 세계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대중매체에 이디오피아 난민들의 굶주림을 아무리 소개해도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으로 록음악을 옹호하기도 한다. 여성에 탐닉하거나 재수 학원에 다니지 않고 그 돈으로 책을 사거나 음반을 모으는 일도 무기력하거나 무책임한 인생을 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모색이자 방황이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1년 간 재수 준비를 하다가 지쳐 떨어지는 것보다는 몇 달간 마음을 비우다가 맹렬하게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그처럼 98%의 실력을 갖추고 시험만 치르면 된다면.

그리고 1년 동안 비판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본 것 역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는 컴퓨터의 발달로 창작의 문외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그것은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고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의한 일회용의 인스턴트 문화라고 하며 고난의 필요성을 피력한다. 이는 단지 문학 창작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스포츠 선수든, 문필가든, 영화계나, 요식업, 정치가 등 자신에게 어떤 꿈이 있든 일회용으로 살지 말고 꿈을 찾아가라는 전언(傳言)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에서 놀라운 것은 모든 음악 트랙이 끝까지 돌아간 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음악 재생기가 처음으로 돌아가듯이 끝과 처음을 다시 연결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해야할까. 1990년에 출간된 소설로는 파격적이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과 내용면 모두 새로움의 끝까지 가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성취한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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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사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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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스럽더라도 그에 너무 빠지지 마세요(환상 비평)
 
 
볕이 좋아 지난 토요일 홍대로 갔습니다. 저는 전에 갔던 고풍스런 실내 장식이 좋았던 카페로 들어갔지요. 움츠렸던 마음을 다독여줄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카라멜 라떼를 주문하고 책을 꺼냈습니다. 손창섭의 소설집 『잉여인간』의 중편소설을 마지막으로 읽고 가방에 그 책을 도로 집어넣으며 다른 책을 꺼내려고 할 때였습니다. 낯선 남자가 제 탁자로 다가와 "여기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의 말이라 경계했습니다만 강한 햇빛만 쬐도 그대로 허물어질 것 같은 체구에 아무도 해치지 못할 것 같은 쓸쓸한 표정에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잠시 창 밖을 보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거두며 얘기를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다자이 오사무라고 하며 「인간 실격」이라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성량이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다자이 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요우는 아주 많이 섬세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엇갈린 것 같다(16쪽)'라거나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목화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 입을 수도 있는 겁니다(62쪽)'라는 부분이지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 몸이 아파 수업에 많이 빠졌지만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공무원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학교에 들어가고 싶어했지요.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잘 적응하지 못하고 미술 학원에서 호리키 마사오라는 미술 학원생에게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그리고 좌익 사상을 배우게(43쪽)' 됩니다. 그러다 학업이나 미술 공부와 멀어지고 좌익 운동을 하는 것도 병약한 체질 때문에 손을 놓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빠지지요.

그는 쯔네코와 함께 강물에 뛰어듭니다만 그는 살고 여자는 죽지요. 그 이후로 그는 삼류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시게코의 집에서 살기도 하며 요시코와 함께 살게 되는데 요시코가 사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욕을 보게 됩니다. 요우는 요시코에게마저도 실망하게 되자 모르핀에 중독되고 과다한 양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가족에게 편지로 보내자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게 됩니다. '인간, 실격(133쪽)'으로 판정받은 것이지요.

다자이 씨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만 어느덧 저녁시간이 늦어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같은 시각에 카페로 갔습니다. 곧 다자이 오사무 씨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제 앞에 앉아 『사양』을 들려주었습니다.

사양(斜陽)이란 석양이란 같은 뜻으로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시세의 변천으로 사라지거나 몰락해 가는 일을 비유하는 말'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와 같은 말입니다. 사양은 가즈코란 여자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패잔국이 된 일본에 사는 귀족인 가즈코와 그녀의 가족은 '미국으로부터 배급받은 완두콩 통조림(147쪽)'으로 수프를 만들어 먹고 경제 형편이 어려워져 시골로 이사가는 등 생활이 많이 어려워집니다. 가즈코는 건설 현장 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 남으려고 하지만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는 징용돼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오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독에 빠져 삽니다. 가즈코의 어머니는 결국 병으로 죽고 나오지는 생활력이 부족하고 희망이 없어서 자살합니다. 가즈코는 그녀의 소원을 이루며 살아갈 씨앗을 키워나갑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귀족이란 지위가 무의미해진 그 시대에만 통용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살다 보면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대학 입학 실패라거나 입사 불가나 명퇴, 사업 실패, 실연, 친한 이의 죽음 등 어쩔 수 없는 절망에 처하기도 합니다. 나오지의 말처럼 '모든 사상들이 유린되고, 모든 노력은 조롱당하고, 행복은 부정되고, 미모는 모욕당하고, 광영은 땅에 떨어지고(292쪽)'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상태로 죽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가즈코가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251쪽)' 혹은 '이 세상 속에 전쟁이란 것, 평화란 것, 무역이란 것, 조합이란 것, 정치라는 것이(305쪽)' 있는 이유는 '여자들이 좋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예요(306쪽)'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잉태란 곳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허무할 수는 있지만 그에 빠지지 않고 살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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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연 : 사랑에 관하여 - 세계의 고전 사상 7-003 (구) 문지 스펙트럼 3
플라톤 지음, 박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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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풍성한 대화의 잔치

 
향연(플라톤 지음, 문지스펙트럼)은 술과 음식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잔치가 아닌 풍성한 대화의 잔치를 말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플라톤이지만 플라톤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그가 정리한 것이지요.
 
향연의 내용은 한 친구가 아가톤의 저택에서 열린 향연에서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질문하자 아폴로도로스가 대답을 해줍니다.
 
파이드로스가 '과거의 위대한 시인들이라면 누구나 다른 신들을 위해서는 찬가나 송가들을 지은 반면에, (...) 에로스를 찬양하는 노래를 짓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로 불만 섞인 질문을 던지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면서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하게 말하자고 운을 뗍니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 스스로에게서 용기가 생겨나도록 만들어준다고 하며, 사랑을 하는 순간에는 그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합니다.
 
파우사니아스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랑을 말합니다. 에로스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아름다운 사랑과 그렇지 못한 사랑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래서 육체나 돈과 같은 물질을 사랑하는 사랑으로서 세속적인 사랑이며, 한결같지 않고 변하기 쉽다고 합니다. 반면에 영혼을 사랑하고 비물질적인 순수한 사랑을 하는 것을 더 가치있다고 합니다.
 
에릭시마코스는 의학적인 면에서 신체의 병들어 있는 부분들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게 하고 가장 적대적인 부분들을 서로 친하게 만들어 결국 그 부분들 서로가 사랑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음악적인 면에서 날카로운 음과 둔탁한 음의 경우처럼 처음에 대립된 것들도 나중에는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이를 화음이라 하며, 빠른 음과 느린 음이 나중에 일치하는 것에서 리듬이 발생하며, 이 화음과 리듬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현상들에 관한 지식이 음악입니다. 이것은 천문학과 예견술에도 모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82쪽부터 가장 유명한 아리스토파네스가 말한 사람의 세 종류가 나옵니다. 남자, 여자, 그리고 남녀가 붙어 있는 자웅동성입니다. 대단한 힘과 능력 그리고 오만함까지 지녀 신들을 공격하게 되자 인간들 각각을 둘로 나누어 인간들을 약화시킵니다. 그래서 인간이 본래에서 둘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그 나뉘어진 각각은 자기 자신의 또다른 반쪽을 갈망하면서 그것과의 합일을 원하게 되었답니다.

그 다음부터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적으로 사랑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합니다.
 
에로스는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대상에 대해 밝힙니다. 어떤 사랑할 대상을 욕구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으로 에로스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며, 추함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즉 에로스는 아름다움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라고 하지요.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을 좋은 것으로 환치시켜놓은 다음 계속 이야기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스승 디오티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가장 아름다운 것에 속한 것이 지혜이며,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에로스는 필연적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자일 수밖에 없고, 지혜를 사랑하는 한 그는 지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자가 된다(122쪽)'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디오티마는 남녀간의 결합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것(죽지 않으므로 불사, 즉 신임)으로 불멸하게 된다는 것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남 <--+-- >여 --
         |            |
         |사랑  =    |불멸     남녀간의 사랑으로 자신과 동일한 새로운 존재가
         |            |           태어나므로 곧 삶을 지속되는 것 불멸을 얻게
         | --------           된다고 합니다.
       아이                      곧 사랑 = 불멸
유한한 존재인 사람의 자식보다는 불사적인 어린이, 즉 호메로스나 헤시도오스와 같은 훌륭한 시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영혼의 자식을 남겨놓았고 불사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부모에게도 불후의 영광과 이름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사랑은 매우 다양하게 정의되고 그 가치를 논하게 됩니다. 사람, 의술, 음악, 천문학, 예견술 등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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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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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현대의 원시인 vs. 소심한 관념주의자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문명화된 사회의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태어나 교육받고 직장을 갖고 결혼해서 다시 애를 낳고. 성인이 된 남자는 얼마나 더 많은 월급을 받고 얼마나 좋은 집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어떤 문화적 혜택을 더 잘 받고 있는가의 경쟁 정도 밖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이 있습니다다. 그는 바로 조르바입니다. 조르바는 스무 살에 산투리라는 악기소리에 반해 아버지의 "거지 깡깽이가 되겠다는 것이냐(20쪽)?"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터키 인 레트셉 에펜다를 찾아가 산투리 연주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그는 도자기를 빚을 때 검지손가락이 자꾸 걸려 손가락 마디를 자릅니다. 그리고 여자가 3,000명이라고도 말합니다. 조르바가 말하는 천국이란 것도 참 소박합니다. 벽에는 예쁜 옷이 걸려 있고, 비누 냄새가 나고 물렁물렁한 침대가 있고, 옆에는 암컷이 하나 누워 있는 향긋한 방 말입니다(234쪽).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경험하며 겨우 그가 원하는 것이라야 음악과 춤 정도인 듯 보입니다.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책벌레이자 소설가이며 탄광주인인 조르바칭 '두목'이지요. 그는 불교 서적 읽기를 즐기며 여자가 유혹해서 마음이 흔들려도 소심하게 물리치고 말지요. 그리고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몇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다(429).'라고 합니다.
조르바의 먹고 마시고 춤과 여자를 사랑하는 행동은 어쩌면 '자유'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것인지 모릅니다.(25) 그러나 단지 이렇게 자유롭게 살게 된 이면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내 몸은 상처와 흉터와 옹이투성입니다."로 시작하는 그의 말을 살펴보면 조르바는 불가리아 마을의 신부를 죽였으며, 불가리아 인 마을에서 죽을 뻔한 조르바를 도와준 여자가 사는 마을에 파라핀 통을 들고 들어가 마을에 불을 지르기도 합니다(346~351). 그 이후로 그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이간은 짐승, 그것도 앞 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중략)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햇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251)"라고 말하며 그 이후로 감정에 충실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 살해라는 극단적인 경험 후에 얻은 자유를 얻은 사람과 모든 것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우주에 대해 사색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가치있는 삶을 산 것일까요? 두목이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241).'라는 것처럼 두 존재 다 가치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제 주변에 관념주의자는 많으니 조르바 같은 사람을 만나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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