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실격.사양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절망스럽더라도 그에 너무 빠지지 마세요(환상 비평)
볕이 좋아 지난 토요일 홍대로 갔습니다. 저는 전에 갔던 고풍스런 실내 장식이 좋았던 카페로 들어갔지요. 움츠렸던 마음을 다독여줄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카라멜 라떼를 주문하고 책을 꺼냈습니다. 손창섭의 소설집 『잉여인간』의 중편소설을 마지막으로 읽고 가방에 그 책을 도로 집어넣으며 다른 책을 꺼내려고 할 때였습니다. 낯선 남자가 제 탁자로 다가와 "여기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의 말이라 경계했습니다만 강한 햇빛만 쬐도 그대로 허물어질 것 같은 체구에 아무도 해치지 못할 것 같은 쓸쓸한 표정에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잠시 창 밖을 보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거두며 얘기를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다자이 오사무라고 하며 「인간 실격」이라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성량이 크지는 않았습니다만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다자이 씨의 이야기에 의하면 요우는 아주 많이 섬세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엇갈린 것 같다(16쪽)'라거나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목화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 입을 수도 있는 겁니다(62쪽)'라는 부분이지요.
그는 초등학교 시절 몸이 아파 수업에 많이 빠졌지만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공무원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는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학교에 들어가고 싶어했지요.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잘 적응하지 못하고 미술 학원에서 호리키 마사오라는 미술 학원생에게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그리고 좌익 사상을 배우게(43쪽)' 됩니다. 그러다 학업이나 미술 공부와 멀어지고 좌익 운동을 하는 것도 병약한 체질 때문에 손을 놓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빠지지요.
그는 쯔네코와 함께 강물에 뛰어듭니다만 그는 살고 여자는 죽지요. 그 이후로 그는 삼류만화가로 활동하면서 시게코의 집에서 살기도 하며 요시코와 함께 살게 되는데 요시코가 사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욕을 보게 됩니다. 요우는 요시코에게마저도 실망하게 되자 모르핀에 중독되고 과다한 양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가족에게 편지로 보내자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게 됩니다. '인간, 실격(133쪽)'으로 판정받은 것이지요.
다자이 씨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습니다만 어느덧 저녁시간이 늦어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음 날 같은 시각에 카페로 갔습니다. 곧 다자이 오사무 씨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제 앞에 앉아 『사양』을 들려주었습니다.
사양(斜陽)이란 석양이란 같은 뜻으로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만 '시세의 변천으로 사라지거나 몰락해 가는 일을 비유하는 말'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와 같은 말입니다. 사양은 가즈코란 여자와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 패잔국이 된 일본에 사는 귀족인 가즈코와 그녀의 가족은 '미국으로부터 배급받은 완두콩 통조림(147쪽)'으로 수프를 만들어 먹고 경제 형편이 어려워져 시골로 이사가는 등 생활이 많이 어려워집니다. 가즈코는 건설 현장 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 남으려고 하지만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는 징용돼 전쟁터에 갔다가 돌아오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술독에 빠져 삽니다. 가즈코의 어머니는 결국 병으로 죽고 나오지는 생활력이 부족하고 희망이 없어서 자살합니다. 가즈코는 그녀의 소원을 이루며 살아갈 씨앗을 키워나갑니다.
하지만 이 얘기가 귀족이란 지위가 무의미해진 그 시대에만 통용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살다 보면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대학 입학 실패라거나 입사 불가나 명퇴, 사업 실패, 실연, 친한 이의 죽음 등 어쩔 수 없는 절망에 처하기도 합니다. 나오지의 말처럼 '모든 사상들이 유린되고, 모든 노력은 조롱당하고, 행복은 부정되고, 미모는 모욕당하고, 광영은 땅에 떨어지고(292쪽)'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상태로 죽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가즈코가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251쪽)' 혹은 '이 세상 속에 전쟁이란 것, 평화란 것, 무역이란 것, 조합이란 것, 정치라는 것이(305쪽)' 있는 이유는 '여자들이 좋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예요(306쪽)'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잉태란 곳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허무할 수는 있지만 그에 빠지지 않고 살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