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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아담이 눈뜰 때'라는 제목은 소설보다는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그때 난 소설보다는 한참 영화에 빠져 있는 때였다. 그 당시 영화에 대한 소개로 어느 재수생의 성 편력기 정도로 기억나며, 영화의 내용 역시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장정일의 다른 책이나 시를 읽은 후 이 책을 접하니 다르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후작인 『보트하우스』보다는 『아담이 눈뜰 때』가 더 나았다.
물론 한국의 재수생으로 살아가는 도중에 성과 퇴폐적인 일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의 양질의 발전으로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 세계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대중매체에 이디오피아 난민들의 굶주림을 아무리 소개해도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
그리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으로 록음악을 옹호하기도 한다. 여성에 탐닉하거나 재수 학원에 다니지 않고 그 돈으로 책을 사거나 음반을 모으는 일도 무기력하거나 무책임한 인생을 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모색이자 방황이었다. 오히려 어설프게 1년 간 재수 준비를 하다가 지쳐 떨어지는 것보다는 몇 달간 마음을 비우다가 맹렬하게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그처럼 98%의 실력을 갖추고 시험만 치르면 된다면.
그리고 1년 동안 비판도 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본 것 역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는 컴퓨터의 발달로 창작의 문외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그것은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고 쉽게 만들고 쉽게 소비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본의 논리에 의한 일회용의 인스턴트 문화라고 하며 고난의 필요성을 피력한다. 이는 단지 문학 창작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스포츠 선수든, 문필가든, 영화계나, 요식업, 정치가 등 자신에게 어떤 꿈이 있든 일회용으로 살지 말고 꿈을 찾아가라는 전언(傳言)이기도 하다.
또한 이 소설에서 놀라운 것은 모든 음악 트랙이 끝까지 돌아간 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음악 재생기가 처음으로 돌아가듯이 끝과 처음을 다시 연결하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해야할까. 1990년에 출간된 소설로는 파격적이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과 내용면 모두 새로움의 끝까지 가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성취한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