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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2disc) : 디지팩
박찬욱 감독, 이영애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영화를 보고 나니 개인적으로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 3부작에 대해 이런 등식이 나왔습니다.

주제:
복수는 나의 것≫친절한 금자씨>올드 보이

완성도:
올드 보이≒복수는 나의 것>친절한 금자씨(친절한 금자씨는 조금 더 묵혔다가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았습니다)

스타일:
친절한 금자씨>올드 보이>복수는 나의 것(친절한 금자씨에서 사람과 개를 합성시킨 초현실적인 장면같은 것 참 좋았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포함한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들을 훑어보려 합니다. 박 감독님의 복수 3부작을 포함한 다른 작품들에서 흐르는 정서는 한이나 울분 보여주기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복수의 3부작 전작(前作)인 'JSA'에서는 의문의 총탄에 서린 한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그 대상에게 복수에 성공하지요(나중에 이병헌은 자살하니까요). 단편 영화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에서도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한국 사람 같은 네팔 여자 찬드라가 정신병원에 6년 4개월 동안 감금당한 한을 보여줍니다. '쓰리 몬스터'의 '증오'에서 단역배우(임원희)는 그가 가족에게 잔인한 일을 하고 친절한 감독(이병헌)에게도 같은 일을 하게 합니다.


한이나 울분이 가득찬 사람들의 울분 터트리기는 폭력적인 복수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박찬욱 감독은 어느 시상식장에서 "내가 폭력을 즐긴다고 하는데 오히려 폭력의 무의미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이런 식으로 말해서 그 부분에 초점을 두며 친절한 금자씨를 보았습니다.
이미 앞의 두 작품에서 폭력적인 복수의 헛된 결과를 보여주긴 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동진(송강호)의 배두나와 류(신하균)에 대한 폭력은 마지막에 보복으로 응징당합니다.


'올드 보이'에서 오대수는 복수를 행하려 하지만 이우진이 "당신은 내가 만든 괴물이야."라고 할 정도로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이었지요(그가 영화 마지막에 스스로 최면에 걸리는 장면 역시 이우진이 의도한 것으로 처리하려 했다더군요). 그가 복수하기 전에 딸부터 먼저 찾았다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야 하는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겁니다.


영화에는 타인에 대한 새디즘적인 폭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조히즘적인 폭력도 있지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배두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동진은 복수를 행합니다. 자신이 파괴돼도 상관없는 것처럼. 올드 보이에서 오대수가 사설 감옥에서 쉐도우 복싱을 할 때 벽을 쳐 굳이 자신의 피를 보지 않고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도 됐지요. 그리고 15년 갇혀 있다는 것을 그냥 머릿속으로 기억하거나 사필귀정 노트에 적기만 해도 될 것을 철사로 자신의 손등에 문신 새기지요.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금자가 속죄를 한다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자르기도 합니다.


이 영화들에서의 복수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복수 3부작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동진(송강호)의 딸입니다. 류의 양심이 괴로워하는 것에 맡기거나 딸의 원혼이 류에게 복수를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죽은 사람이 복수를 원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곁에 있는 가족이 자기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자기불만을 만족으로 바꾸기 위해 복수하는 것이지.


그리고 올드 보이에서 물론 이수아가 죽은 것도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지만 바보 같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동생의 애를 가졌다면(이우진이 상상임신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것이 실제라 하더라도) 지우거나(집도 부자인 것 같던데) 낳아서 길러보거나 하지 왜 죽는지요. 그리고 이수아의 죽음을 왜 이우진이 복수를 하나요.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알려 오대수의 양심을 못살게 굴거나 이수아의 혼령이 오대수를 못살게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죽은 것은 가족이고 자신은 자신일 뿐인데(죽은 사람이 복수를 원하는지 누가 알까요. 복수해 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도 아니고) 자신이 괴로우니 복수하는 거지요.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폭력이 정당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폭력의 역설을 보여준다고 했지만 오히려 폭력은 더 강화됐습니다. 친절한 금자씨의 앞부분이 금자가 복수를 위한 치밀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면 영화의 후반부는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입니다. 경찰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사법(司法)이 아닌 사적(私的)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한편으로는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만약 유괴범이 아이를 죽였을 때 그 유괴범을 사형시킨다면 그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유죄를 주장한 검사일까요, 아니면 사형선고를 내린 재판장일까요, 그도 아니면 우리나라는 교수형에 처하니 손잡이를 당기는 집행관일까요. 그들을 대신해 개인이 복수를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범죄자를 죽인 사람 역시 또 다른 살인자겠지요. 그 또 다른 살인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그래서 그런 식의 처형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한다면 제 인생을 돌아볼 때 살의를 느낄 정도로 누군가에게 화가 난 적도 있었고 그 반대로 저 때문에 제게 살의를 느낀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복수를 해도 된다 안 된다는 것은 인류의 시작 이래 끊임없이 논란거리겠지만. 박 감독님은 아직 속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 듯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흥미로웠던 점은 박 감독님이 유괴에 관한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 착한 유괴라면 '친절한 금자씨'는 나쁜 유괴입니다. 두 작품에 드러나는 유괴의 공통점은 돈 많은 부모의 자녀를 납치해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지요(아이를 원해서 납치하는 것이 아니라). 박 감독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로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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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와 초콜릿 공장 (2disc) - [할인행사]
팀 버튼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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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먹기를 매우 즐기는 나로서는 초콜릿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온 것만으로도 매우 즐거웠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라니 이보다 더 달콤할 순 없으리라 생각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화려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 좋아하는 배우들이 주연(헬레나 본헴 카터, 조니 뎁, 프레디 하이모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황금표를 받은 아우구스투스. 뚱뚱한 사람은 얼굴에 음식을 묻혀가며 먹는다는 편견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부터 서서히 불신감이 들었다(다른 감독도 아니고 팀 버튼이? '빅 피쉬'에서는 북한군을 안 좋게 희화화하더니).


윌리 웡카가 만드는 초콜릿은 독특하기는 했지만 문제점만 보였다. 초콜릿을 왜 텔레비전으로 받아야 할까(커다란 초콜릿이 그만큼 축소되는 것은 얼마나 낭비인가). 텔레비전은 보지 말라면서 바깥에 나가서 사지 않게 하는가(초콜릿 상점 주인들 다 실직자 되겠네). 힘든 엄마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풀코스의 식사를 대신할 껌 개발보다는 남편이나 아이들이 엄마(아내)를 도와줘선 안될까.


찰리를 제외한 나머지 애들이 갖고 있는 단점이라는 것 중 몇몇은 개발해 줘야 할 덕목 같았다. 무술을 즐기는 바이올렛, 얼마나 보기 좋은지, 그런 목표에 대한 성취감이 강한 아이가 뭐가 나쁘단 건지. 잘난 척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조절해 주면 되지 않을까.


황금표를 해킹해서 얻은 마이크, 그 애는 과학과 기술에 능통한 말을 계속 한다. 그런데도 "네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그것만큼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어디 있을까. 이 말은 그 소년의 아버지 뿐만아니라 윌리 웡카까지 똑같은 말을 내뱉는다. 그 아이가 삐뚤어지게 된 계기는 자신의 천부적 재능을 몰이해로 무시하는 어른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텔레비전을 봐서 아이가 그렇게 똑똑해졌다면 애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은 보게 하겠다.


영화 속 아이들은 21세기 어린이들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뚱뚱한 아이, 응석받이(자녀가 하나, 둘밖에 없는 가정의 상당수 애들에게 해당), 지나치게 도전적인 소녀, 똑똑하지만 폭력적인 소년. 그런데도 착한 애만 고집하다니 80%는 포기하고 20%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초등부 학원강사직을 해 보니 착한 애들은 상대적으로 대하기 훨씬 쉬웠다. 문제는 착하지 않은 애들이다.


'윌리 웡카'가 아닌 '니나 웡카'라면 다섯 명의 황금표를 가진 아이들 모두에게 기회를 주겠다.
살찐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저지방, 무설탕에 풍부한 맛과 영양소를 지닌 초콜릿을,
응석부리고 예민한 버루카에게는 정서적으로 안정시켜주며 인내심을 길러주는 초콜릿 개발,
두 아이는 광고 모델로 쓰면 좋을 것 같다.
승부욕이 강한 바이올렛에게는 영업직을 제의,
해킹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마이크는 명예기술자로 초빙할 것 같다. 특히 이 아이는 기술상의 오류를 잘 파악해내는데 특이한 제품에 대한 자문을 맡길 것이다.
그러면 제목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아니라 그냥 '초콜릿 공장'이어야 하겠지.


그러면 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가 어른들만 잘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회성 있고 조직력이 있는 사장이 될 자격이 있는 아이라면 그 황금표 동기들을 최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사장은 아무나 하나).


나머지 애들이 배제된 이유는 다 "하지 말라"는 말을 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모험하며 자라는 것이 아이들 아닐까. 윌리 웡카가 "부모들은 억압만 한다"고 했는데 네 명의 아이들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길고 납작한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쓰레기에 뒤덮인 모습 등을 보면서 정작 자신이 가장 억압하는 인물로 보였다. 다치지도 않는데 초콜릿 강에 빠지면 어떠며, 수백 마리의 다람쥐 중 한 마리 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우며, 텔레포터 하는데 자신을 가지고 실험했다면 대단한 일일 것이고, 신제품을 씹어보는 용기에는 감탄했다.


그런데도 윌리 웡카가 인정한 것은 오직 착한 마음씨일 뿐이다. 주변의 문제점을 간과하고 야단만 치면서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이에 문제점을 지닌 아이들은 더욱 마음의 상처를 받고 어긋나기만 할 것이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난 그 좋아하던 초콜릿에 대한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난 찰리처럼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강하지 않고, 착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완전히 헤어져야 한다는 조건만 아니라면). 팀 버튼의 초콜릿은 겉모습이 기발하기는 했지만 낡고 고루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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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 25주년 기념판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 린다 블레어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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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건이 처음 악령에 대해 감지할 때 "악마가 보여요."나 "내 안에 악마가 있어요." 같은 것이 아니라 "침대가 흔들려요."라는 말은 참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에는 많은 흔들림을 보여주지요. 카톨릭 신부인 데미안은 신부들 사이에서 가장 인정을 받지만 정작 자신은 믿음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예측됩니다. 하나는 영화 처음에 보여주는 유적지 발굴지역에 있던 도깨비를 닮은 조각이나(저는 도깨비를 좋아하는데 좀 불만입니다) 동물들 조각상을 발견합니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카톨릭에서 불교나 이슬람교, 혹은 유교나 샤머니즘의 존재는 그것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할 겁니다.


다른 하나는 데미안 신부에게는 노모가 있는데 그가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면 아픈 어머니를 열악한 노인 보호시설에 있거나 너무 먼거리에 살아서 노모의 임종을 돌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종교가(카톨릭) 과연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 어떤 도움을 줄 수가 있는가의 무력함에 대한 회의겠지요.


악령에 씌인 리건의 가정도 그렇습니다. 남편없이 혼자 딸을 키우는 크리스는 딸의 생일에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고 남편을 타박합니다. 가장의 부재는 가정의 흔들림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건의 어머니 크리스 맥닐이 찍는 영화도 대학생들이 정부가 개입을 하지 자율권을 달라고 합니다. 기존의 권위나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런 흔들림 사이에 악령이 가장 연약한 존재에게 침입합니다.


영화를 보는 초기에 왜 그 악령들린 집에서 이사가지 않고 그 안에서 해결하는가 답답했습니다. 최소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구요. 하지만 이 영화는 문제의 근원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내부에서 찾습니다.


현대 의학을 위시한 과학의 맹점은 너무 해부학적이고 가학적인데 있습니다. 리건의 이상행동에 대해 무조건 뇌의 문제라고 판단해 그 소녀의 목을 뚫고 뇌사진을 찍는 등 고문에 가까운 검사를 합니다.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너무 많은 자연 파괴를 하고 생명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지요.


초자연적인 일에 대해 자연적인 의학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퇴마사인 데미안 신부가 투입되지요.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멀린 신부와 함께 구마활동을 합니다. 그들의 대화에서 데미안 신부가 "소녀에게서 3명을 발견했습니다."라는 말에 멀린 신부는 "한 명이네."라고 말합니다. 악령은 인정하지 않고 유일신을 믿는다는 듯. 카톨릭 사제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한다면 외부는 어떻든 자신의 신념을 밀고 가야겠지요. 그리고 어머니는 딸에게 얻어맞기까지 하지만 믿음을 잃지 않고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요.


리건의 악령이 데미안 신부를 자꾸 유혹하자 자꾸 흔들리던 데미안은 결국 그것을 껴안고 희생합니다. 그저 악령을 쫓아내는 내용이었다면 밋밋했을 텐데 자신을 극복하고 타인을 위하는 부분이 제작된 지 30년이 지나도 영화에 대한 감동을 주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덧붙임. 제가 영화 장르 중 가장 안 보는 장르가 공포물인데 이 영화는 그리 무섭지도 않고 갑자기 악한 존재가 튀어나오는 그런 장면은 없어서 좋습니다. 특히 '링'이나 '주온' 같은 영화에 비하면(링은 친구가 보자고 해서 극장에서 봤는데 1주일간 전등 켜놓고 잤습니다. 주온은 채널 돌리다가 보면 눈을 감고 채널을 바꿉니다) 별로 안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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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 할인행사
정윤철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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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아 판정을 받은 초원에게 엄마 경숙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세상사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동네에서 김밥을 사고 거스름돈을 정확히 받아 온다거나 대형 마트에서 한 번 알려준 십 여 가지 물품을 갖고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시작한 것이 마라톤입니다. 초원이 10km를 3위로 입상하자 잡지사에서 그를 인터뷰하며 알게 된 서브쓰리(42.195km를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를 시도하게 됩니다.

때마침 음주운전으로 200시간 사회 봉사활동을 하기로 한 전 보스톤 마라톤 대회 1위를 한 정욱이, 초원이 다니는 자폐학교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초원과 경숙은 정욱의 집을 청소해 주며 초원의 코치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때 처음으로 마라톤을 '하지 마라'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프 마라톤에서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고 앞사람을 무작정 따라 뛰던 초원을 보며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해줍니다. 게다가 코치가 아무리 관심을 기울여 줘도 초원에게 별 반응이 없자 마라톤 역시 엄마의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인 줄 압니다. 이런 정욱의 의심은 초원이 마라톤을 시작하고 손을 물어뜯는 습관이 없어졌다는 특수교사의 말이나 한강공원에서 한 손으로는 갈대를 손끝으로 스쳐가면서 뛰는 모습에서 엄마에 의해서 만들어진 '뛰는 기계'가 아닌 스스로 원함을 알게 되면서 풀립니다.

코치가 적극적으로 달리기를 권하자 이제는 엄마가 초원에게 '하지 마라'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뛰는 게 좋아, 싫어?"라고 질문할 때마다 "좋아." 혹은 "싫어."를 번복하는 그에게 언제나 좋은 쪽으로 해석한 것이 아닌가, 순수하게 초원의 달리기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자폐아를 키우고 있는 고통과 죄책감을 그가 받아오는 메달로 보상받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 것입니다.

이런 '하지 마라'라는 상황에서 정작 빠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초원 자신입니다. 물론 표현이 미숙하긴 합니다만 아무도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사람은 없고 그저 '하라' 혹은 '하지 마라'라고 말하지요. 결국 그는 자신의 의지로 마라톤에 출전합니다.

감동과 유머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왜 마라톤인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엄마 경숙이 "얘는 당신들과 다를 바가 없어요. 뛰는 동안만큼은."라거나 초원을 세렝게티 초원에서 달리는 얼룩말에 비유하기도 합니다만 그가 뛰는 동안 자유를 느끼는지 같이 달리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있는지는 깊이 있게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폐청년이 42.195km를 달린다는 설정도 그렇게 눈에 띄는 일을 해낸 사람만을 주목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영화를 말할 때 조승우의 연기력이 빠질 수 없겠지요. 그는 자연스러운(?) 자폐청년을 연기했습니다. 대화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무의미해 보이는 끊임없는 손목돌리기나 필요없이 큰 목소리 톤으로 말하는 것 모두 잘 하지요. 게다가 소매 없는 마라톤복에서 보이는 군살 없는 그의 근육을 보는 재미는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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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를 찾아서 - 할인행사
마크 포스터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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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와 고통을 쌓아가는 과정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대문의 자물쇠를 꼭꼭 잠그듯이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지요. 주인공 배리는 유명한 희곡작가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흥행 실패를 하게 되고 아내와의 관계는 나빠집니다. 그런 그가 산책을 하던 도중 실비아와 데이비스와 그의 네 아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아빠가 없는 네 아이에게 그는 네 아이와 함께 서부놀이도 하고 별장으로 놀러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배리는 어렸을 때부터 구상하던 '네버랜드'를 구체화하기 시작합니다. 네 아이들이 침대에서 뛰어 노는 장면에서 나는 피터와 그의 친구들을 구상하며, 네 아이들을 야단치는 할머니의 손은 후크 선장의 갈고리가 되기도 합니다.

네 아이 중 피터 데이비스의 이름으로 피터 팬이 탄생하는 것은 의외이면서도 그럴 듯합니다. 피터 데이비스는 처음부터 배리의 상상세계를 부정하거나 해적놀이를 할 때 잔인한 이름을 지으라고 해도 한사코 '피터'를 고집하면서 놀이의 맥을 끊기도 합니다. 엄마가 심하게 아픈 사실을 알게 되자 피터 자신이 처음으로 쓴 연극 대본을 마구 찢어버리기도 하지요. 그가 그렇게 어린아이답지 않고 반항적인 이유는 건강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거란 엄마의 말과 반대로 아빠가 죽자 그로 인해 어른들은 거짓말만 한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배리가 피터 데이비스와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도 그와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버랜드를 처음 생각한 것은 배리가 어린 피터 데이비스의 나이였을 때입니다. 배리의 형이 죽자 형은 네버랜드로 간 것으로 생각하며 슬픔을 극복하지요. 네버랜드는 작가 배리가 만든 영어 never와 land의 조어(造語)입니다. 여기서 never는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과 동시에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land는 그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더 이상 나이가 들지 않는 것이지요. 네버랜드는 그렇게 슬픔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행복한 곳이라는 설정으로 사람들을 위로해줍니다. 그것을 믿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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