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사별(死別)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게 인생사라지만, 죽음으로 인한 관계의 종언은 우리를 비통하게 합니다. 고대인은 고대인 나름으로, 현대인은 현대인 나름으로 사별의 비통함에 몸을 떱니다. 그 컴컴한 깊이에는 한 치의 차이도 없습니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은 무한하지만, 그 무한함을 받아들이는 색깔과 결은 시대와 문화별로 각각 다릅니다. 인디언의 한 부족은 죽은 이의 시체를 일정 시간 나뭇가지 위에서 말리며 장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부모의 무덤을 3년 동안 지키는 일이 강제적인 규범이었습니다. 인간의 의례는 무척 다채롭습니다. 


문학은 그 다채로움 속에서 만인의 본질을 찾는 일이 아닐까요? 시대는 변하더라도, 눈물이 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죽음(혹은 죽음에 가까운 상실)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각국의 소설 작품 3권을 소개합니다.



1. 『지금은 안녕』: 죽음은 바둑과 다르다



영화 <HER>는 2014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각본상을 수상했을 만큼 탄탄한 각본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가상의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인데요. (사만다의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죠.) 인간과 인공지능이 격렬한 감정을 공유하는 일의 가능성과 한계를 설득력 있게 묘사해서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뺏은 영화입니다.


<HER>가 사랑과 인공지능의 이야기라면, 『지금은 안녕』은 죽음과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샘은 할머니를 잃고 절망에 빠진 여자친구를 위하여 가상 시뮬레이션인 '리포즈'를 만듭니다. 할머니가 생전 수많은 사람들과 남긴 통화, 메일, 문자, SNS 등등의 기록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할머니가 죽은 후에도 그녀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인류가 쌓아온 대국들을 철저하게 복기한 인공지능이 수천 년 역사의 바둑계를 완전히 휩쓸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그처럼 최대한 복기한다면, 정말 누군가와 꼭 닮고 그의 '예기치 못한' 행동 패턴까지 구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누군가가 태어나자마자 그의 신경 회로에 칩을 달아서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기록해 놓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소설은 그 소름 돋는 가정, '인공지능을 통해 죽은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가정을 경쾌하면서도 진중하게 펼쳐내고 있습니다. 웃기면서도, 따뜻하고, 애잔합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읽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후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작품의 결말은 <HER>의 결말과도 많이 닮아 있는데요. 인간의 사랑과 죽음은 바둑을 두는 일과는 많이 다르다고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2. 『엄마를 부탁해』: 엄마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


한국인에게 '엄마'라는 말은 유독 아픈 단어입니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또 희생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희생은 너무나 구시대적인데, 그 구시대성은 여전히 우리들의 추억과 영혼 속에 각인되어 마음을 애달프게 만듭니다. 2008년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바로 그 공동체적 기억을 파고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베스트셀러입니다.


신경숙의 문체는 마치 귀신의 기록처럼 독자들을 절묘하게 과거로 돌려놓고, 죄책감으로 가둬 놓습니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신 이들은 효도를 다짐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들은 먹먹한 슬픔으로 과거를 반추할 뿐입니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작가적 역량입니다. 결말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저자의 서술에 홀려 벌건 눈시울로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이 작품이 한국의 어머니 신화, 모성 신화와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소설이라는 비판도 꽤 많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과거처럼 어머니의 전적인 희생과 침묵으로써 유지되는 가족 형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평생을 통해 그러한 억압적인 삶을 '묵묵히 살아 낸' 어머니들은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사람들은 정말 어머니께 더 효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있었길 바랍니다. 효도라기 보단, ‘인간에 대한 예의’가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 예의를 다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3. 『이별까지 7일』: 하와이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한국에 『엄마를 부탁해』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야미 가즈마사가 쓴 『이별까지 7일』이 있습니다. 일본의 어느 평범한 가족에게 갑작스레 어머니의 뇌종양 판정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날아듭니다. 아니, 사실 어머니가 치매와는 또 다른 묘한 기억력 감퇴를 보일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단 7일이라고 합니다. 35년간 유지해 온 한 가정이 끝장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러나 그 가족이 어머니가 건강할 때라고 전혀 '정상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정상적인 가족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이 작품을 영화로 옮긴 이시이 유야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감히 말하겠는데, 크든 작든 모든 가족은 망가져 있다. 이상적인 가족은 없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사랑하면서도 그만큼 크게 상처를 주는,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이 바로 가족입니다.


『이별까지 7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약하고 생활력 없는 아버지 가쓰아키를 중심으로, 모두 조금씩은 엇나가 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오랜 분노를 삼키는 생활인이고, 그의 아내인 미유키는 시부모님을 전혀 존경하지 않습니다. 작은아들 슌페이는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어디 한군데 정주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합니다. 이런 가족들이 어머니의 비극을 앞에 두고,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엄마를 부탁해』 만큼 애잔하지 않고, 『지금은 안녕』보단 덜 유쾌하지만, 『이별까지 7일』에는 일본 소설 특유의 웃음기 어린 감동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소설 속 마지막 대사는 이렇습니다. "아아, 여기가 하와이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와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웃음을 나눌 소중한 기회가 있습니다. 


언제라도 또 싸우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결같이 흘러가는 시간
저스틴 고 지음, 김목인 옮김 / 시공사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유려한 솜씨로 쓰인

야심찬 데뷔작 

한결같이 흘러가는 시간



흔히들, 첫 작품에서는 작가의 패기가 강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작가 저스틴 고의 데뷔작인 이 소설이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다. 소재만 놓고 보면 무려 6개국을 오가는 주인공의 유산 찾기에 제1차 세계대전과 에베레스트 등반까지 등장한다. 소설 여덟 편을 쓸 소재로 한 권을 쓴 셈이랄까. 그럼에도 작가는 산만한 구석 하나 없이 인생의 순환에 대한 진중하고도 매끄러운 이야기 한 편을 엮어낸다. 또한 그는 장인의 기질을 지닌 사람인 듯하다. 쉬운 방법보다는 꽤 공이 드는 방식들을 써가며 그 진가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르포처럼 발로 뛰며 취재한 자료들이 가득하다. 각 장은 화자의 목소리 외에도 옛 신문기사, 제품 홍보문구, 포스터, 편지글과 전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다 보면 독자 역시 주인공 트리스탄처럼 유산 찾기를 잠시 잊고 다양한 문물과 지식에 빠져들게 된다. 정해진 양식에서 필요한 문장만 남기고 지우는 방식의 야전엽서, 20세기 초 유럽의 보관 우편물 서비스 등이 이야기 안에서 생생히 활용되고 있다.


인물이나 배경도 실제의 사료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소설 속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원 중 노엘, 소머벨, 브루스 대장 등은 1924년 영국 원정대의 실존 인물들이다. 이 해는 전설적인 산악인 조지 맬러리가 정상 공격을 시도하다 실종된 해로 허구의 인물인 애슐리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모젠과 애슐리가 몰래 숨어들어갔던 성당이나 베를린 거리의 옛 명칭, 웨일스의 산장 등도 모두 실제의 장소를 모델로 한 것이라 번역 중에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실제와 허구를 섞는 이러한 역사 다큐식 기법은 과거의 장면들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우리는 런던의 지명뿐 아니라 1920년대 택시의 미터기에 달렸던 빨간 깃발까지, 1차 대전의 참호뿐 아니라 독일군 포의 사양까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문장 역시 주로 회상보다는 현재시제를 유지한 채 시간만 과거로 옮기는 정공법을 쓰고 있다. 출간 직후의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메소드 연기자들처럼 한동안 1930년 이전 작품들만 읽으며 감각을 유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장별로 과거와 현대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되는 구성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다. 마치 푸가 음악에서 같은 선율을 시차를 두고 진행시켜 무수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두 이야기는 포개어지고 멀어지며 여러 가지 섬세한 주제들을 던져준다.


첫 번째는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지는 과거이다. 소설은 상속 추정자가 자신의 직계를 확인하는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점차 과거의 이야기 전체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서류 한 장만 찾으면 된다고 강조하는 법무사와 막연한 단서를 따라 아이슬란드까지 여행을 감행하는 트리스탄은 각기 다른 관점— 효율의 세계, 이야기와 공감의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애슐리와 이모젠의 이야기는 첫머리에 이미 완료된 과거로등장한다. 하지만 법무사와 트리스탄이 그 빈틈을 채우는 방식은 다르다. 트리스탄 초점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목록을 만들고 자료들을 점검하지만, 이 가족 이야기의 당사자이고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을 통해 추리를 하는 사람이다. 반면, 법무사는 소설 말미에 가면서 오히려 목적만을 위해 흐지부지한 결말을 내리려한다. 점점 거대해지는 과거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는 트리스탄은 현실의 목적을 넘어 이야기의 퍼즐을 끝까지 맞춰보려고 한다.


두 번째 주제는 주인공의 행동 안에 숨겨진 결핍과 욕구이다. 트리스탄은 조사를 진행해나갈수록 자신을 방해하는 근본 원인이 법무사나 시간 제한이 아닌, 자신의 조사 방식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죽은 어머니의 안쓰러운 삶으로부터 비롯된 결핍이 있다. 그것을 메우려는 욕망은 조사의 원동력이자 방해물로 작용한다. 과거의 흩어진 조각들을 좇아 갈수록 본래의 목적으로부터 멀어지는 트리스탄의 모순된 상황은 작품 속에 인용된 아이슬란드 사가 속의 영웅들과 닮아있다.


트리스탄은 자신을 유럽 한복판으로 데려온 것이 결국 자신의 욕망이었다는 것, 하지만 거기에서 삶을 마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욕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슬란드의 외곽도로 한복판에서 그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 길을 가는 듯한 자신과 애슐리를 생각한다. 그렇게 소설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운명이 곧 각자 안에 있는 결핍과 욕망의 다른 이름임을 보여준다.


세 번째 주제는 사랑에 대한 관점이다. 과거와 현대 이야기 모두에서 불길함을 알아보고 현실적인 판단을 재촉하는 것은 여주인공들이다. 이에 반해 남자 주인공들은 늦게 깨닫고 갈팡질팡하는 존재들이다. 애슐리의 이별은 외형상 전쟁이라는 시대의 비극 때문으로 보여지지만, 구체적으로는 이모젠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해 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우울한 서사를 따라 케냐와 아라비아 반도, 에베레스트까지 활동 폭을 넓히지만 그럴수록 운명적 사랑은 현실에서 멀어져 추상적으로 변해간다.


트리스탄의 계속되는 여정에서 심리적 결핍을 감지하는 것은 여러 모로 이모젠을 닮은 미레유다. 미레유는 자신은 결코 트리스탄이 조사 중에 얻게 된 경험의 일부로 남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삶 자체가 아닌 이야기에 빠져드는 트리스탄에게 경고를 던진다. 닮은꼴로 유전되는 운명을 보여주던 이야기는 트리스탄이 한 발짝 더 용기를 내어 삶으로 돌아올지의 문제를 향해 나아간다.


작가 저스틴 고는 대학에서 역사와 영문학을 공부했고, 20대 초반을 뉴욕의 로펌에서 근무하며 안정된 삶과 자기주도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한다. 결국 유럽으로 떠난 뒤 6,7년 동안 베를린, 파리, 런던 등지에 머물며 쓴 작품이 이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트리스탄의 이야기는 작가가 선택해왔을 삶의 과정들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서류와 효율의 세계, 이야기와 공감의 세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문제까지. 


재치와 도발로 무장한 작품들이 젊은 소설의 한 축에 있다면, 이 작품은 고풍스럽고 우아한 장인적 전통을 잇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 저스틴 고의 젊은 감각으로 고풍스러운 것들을 재해석해냈다는 점에서 ‘신고전주의’와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관객들을 만나는 중입니다. 감독의 전작들처럼, 귀여운 하마돼지 <옥자>는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일찌감치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의 한 자리를 예약했습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전혀 상영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극장에서도 <옥자>의 600석 표가 5분 만에 동이 났다고 하니 과연 봉준호입니다. 


봉준호의 <옥자>는 육식에 관한 영화입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일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각본이 결국 고기를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창 끝을 겨누고 있을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옥자>는 정확히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해 먹는 공장식 축산'의 윤리적 문제를 다룹니다. 


고기가 아무리 맛있을지라도,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일에 대해 사람들 마음에 미안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강경한 동물 권익 보호주의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말에 <동물농장>을 즐겨 보면서 적당히 육식을 즐기는, 그러니깐 봉준호 같은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이런 딜레마에 걸쳐 있습니다. 


전 세계를 뒤덮은 공장식 축산의 폐해 


논쟁적인 윤리적 딜레마와 연결돼 있는 만큼, 육식과 채식에 관한 논란은 다소 공격적으로 변하기 쉬운 이슈입니다. 육식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소식마다 많은 누리꾼들은 "고기를 먹을 자유"와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란 사실을 날카롭게 언급합니다. 죄책감을 강제하는 일은 어느 누구라도 짜증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구도 타인에게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육식을 즐기는 모두가 '난 내가 먹은 고기가 어떻게 식탁 위로 올라왔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하기엔 전 세계의 공장식 축산으로 발생하는 타인의 피해, 지구 환경의 피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육식의 폐해'를 집대성한 책이 바로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입니다. 많은 언론에서 <옥자>와 함께 이 책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채식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육식을 하지 말라는 책이라기 보단, 육식 문화가 인간의 환경과 생태계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공장식 축산업은 명백히 제3세계 주민들의 식수와 농경 용지를 빼앗고, 가뭄과 사막화를 촉진합니다. 또한 명백하게 지구 온난화를 악화시킵니다. 육류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수십 년 사이에 치명적인 환경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은 이 책 출간 이후 한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옥자>와 『육식의 종말』이 겹치는 지점 


인간에게 먹힐 날을 기다리며, 좁디좁은 공간에서 끔찍한 일생을 보내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일은 다큐멘터리의 몫입니다. 귀여운 하마돼지 옥자와 미자의 아름다운 교감과 동화 같은 모험을 이야기로 풀어내서 멋진 영상에 담는 일은 영화의 몫입니다. 


책은? 책은 솔직히 재미없습니다.  『육식의 종말』은 리프킨의 말처럼,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제도적 폭력에 가까운 '차가운 악'(cold evil)을 수백 개의 주석과 참고 문헌으로 산산이 분해합니다. 책은 왜 햄버거를 먹는 일이 지구 저편의 수백만 사람들에겐 재앙이 될 수 있는지를 논증합니다. 옥자의 비극 이전에, 미란도 기업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재미가 없지만, 그래서 사람을 더 깨어 있게 합니다. 책은 영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루한’, 그러나 ‘근본적인’ 인과 관계들을 꿋꿋하게 파헤치니까요. 봉준호 감독은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현재 상태를 폭로하거나 간명하게 드러내는 정도”(조선비즈 2017. 7. 인터뷰)고 말했습니다. 리프킨은 단언컨대 『육식의 종말』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 썼습니다. 둘 다 자신들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옥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시골의 50대 여성 관객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간이 남아 <옥자>를 봤는데 ‘이상한 동물이 나오는데 정말 귀엽더라’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 옥자가 실제로 있는 동물인 줄 알고 ‘어느 나라 종이야?’라고 묻는다면 더없이 좋을 테고.”

(한국일보 2017. 6. 인터뷰)


여기에 덧붙여 이 영화를 본 관객이 『육식의 종말』을 펴드는 일도 기대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고기를 끊겠다’는 결심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옥자의 고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공장식 축산업의 한계를 더 똑바로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 


우리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1-10-1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고전 중의 고전, 돈키호테 명장면 BEST 5

독자를 사로잡는 세르반테스의 문장들


스페인 마드리드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동상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어보셨나요? 17세기에 탄생한 이 스페인 소설의 문학적 가치에 대해선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2002년, 노벨문학상의 본거지 스웨덴의 작가연맹은 전 세계 100여 명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 100편을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1위는? 바로 『돈키호테』였습니다.


1위도 그냥 1위가 아니었습니다. 2위를 차지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보다 50퍼센트 이상이나 많은 표를 얻은 압도적인 1위였다고 하는군요. 그 뒤를 이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3위를 차지했습니다.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넘치는 픽션은 없다"고 평했던 작품. 시대를 풍미했던 인문학자 르네 지라르가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쓰는 것이나 그 일부를 쓰는 것"이라고까지 칭송했던 바로 그 작품.


바로 초등학생들도 그 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돈키호테』입니다. 늙고 야윈 말 로시난테, 뚱뚱한 산초 판사와 함께 풍자를 향해 달려가고, 둘시네아 공주를 찬양하는!


스페인 라만차 평원의 풍차


그렇지만 막상 이 책의 완역본을 읽어 본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무엇보다도 1,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부터가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이미 돈키호테의 주요 등장인물과 큰 줄거리를 다 알고 있는데 왜 굳이 그 두꺼운 책을 다시 읽어야 되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습니다. 소설을 무대로 옮긴 인기 뮤지컬 「맨 오브 라 만차」로 돈키호테의 세계를 다시 만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소설 『돈키호테』는 원전 소설만이 줄 수 있는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세르반테스가 ‘모험에 미친 편력기사’ 돈키호테를 통해서 풍자하고 비판하려 했던 당시 스페인 사회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돈키호테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400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우리에게 주는 울림 또한 여전합니다. 동시에 돈키호테와 산초의 모험에는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순수한 에너지와 흥미진진함이 가득합니다.


더욱이 저희 출판사에서 펴낸 『돈키호테』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전(前) 총장이자 한국 세르반테스 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박철 교수가 번역을 도맡았습니다. 스페인 왕립한림원 종심회원으로, 국내에선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만하죠. 꼼꼼한 주석도 주석이지만, 박철 교수의 스페인어 번역은 유려하고 자연스러워, ‘읽는 맛’이 살아 있습니다. 덕분에 돈키호테의 장광설을 물 흐르듯 편안하게 곱씹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도 『돈키호테』 완역본의 독파를 추천 드리며, 여기선 『돈키호테』 1권과 2권의 대표적인 명장면과 그 장면을 상징하는 문장들 BEST 5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돈키호테를 익살스런 동화로만 알고 계시던 분들, 깜짝 놀라실 수도 있어요!



1. 자유로운 여성을 변호하는 돈키호테


“나의 진노가 있을지니, 신분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아름다운 마르셀라를 쫓아가서는 안 될 것이오. 그녀는 명확하고 충분한 이유를 댐으로써 그리소스토모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도 없음을 보여주었소. 어느 누구의 연인이 되겠단 마음 없이 초연히 살아왔으니, 쫓기고 추적당하기보다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찬탄 받는 것이 마땅하오. 이 세상에서 그녀만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일한 사람임을 보여주었소.”

― 『돈키호테』 1권, 192~193페이지


아름다운 산양치기 마르셀라를 사모하다가 비탄에 빠져 죽은 젊은 남성 그리소스토모. 많은 남성들이 그의 장례식에서 그를 추모하며 마르셀라의 잔인한 마음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홀연히 나타난 마르셀라는 왜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자신도 반드시 그를 사랑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은 오직 자유롭고 구속당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곤 다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죠.


여전히 그녀를 뒤쫓으려는 몇몇 남자들에게 돈키호테가 위와 같이 으름장을 놓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춥니다. 그는 곤경에 빠진 한 여인을 구했습니다. 돈키호테는 결코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는 그야말로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나요!


귀스타브 도레의 돈키호테 삽화


2. 죄수들에게 자유를 안겨준 돈키호테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들려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분명히 알았소. 비록 자신들이 지은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긴 하지만, 그 형벌이 기꺼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아주 내키지 않을뿐더러 여러분의 의지에도 어긋난다는 것을 말이오. 어떤 이는 그저 고문 속에서 용기가 좀 부족했고, 어떤 이는 돈이 좀 부족하고 다른 사람의 호의가 부족했던 것뿐인데, 결국 재판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여러분의 신세가 이렇게 된 것이니, 각자 정당한 판결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겠소. (…) 호송관님들. 이 가엾은 자들은 당신들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힌 것도 아닙니다. 각자 죗값은 알아서 치르게 될 것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악한 자는 징계하시고 선한 자에겐 상을 내리실 것이니, 어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죄를 묻는 사형 집행인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돈키호테』 1권, 301~302페이지


돈키호테와 산초는 거리에서 두툼한 쇠사슬과 수갑을 찬 열두 명의 죄수들을 마주칩니다. 그들은 국왕 폐하의 명으로 갤리선 노젓기 노역을 가는데요. 돈키호테는 그들 중 여럿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차근차근 얘기를 듣습니다. 돈이 없어서 노역을 하는 사람, ‘고문을 받고’ 가축을 훔친 죄를 고했던 사람, 그리고 교회와 성직자를 비판했던 사상범까지….


돈키호테는 다양한 사연들을 듣고는, 위와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힘 있는 자에게 탄압받는 약자를 돕겠다는 맹세를 되새기면서 말이죠. 그리곤 그들을 풀어주죠! 세르반테스가 이 장면에서 그리는 ‘힘 있는 자’란 정확히 스페인의 정치적/종교적 통치 권력이었습니다. 이제, 작가가 돈키호테를 왜 그런 희극적인 미치광이로 그려야 했는지 이해하실 수 있겠죠?



3. (맞아서) 죽기 일보 직전의 돈키호테를 두고 산초가 통곡하며


“오, 여덟 달 만의 모험으로 저에게 바다로 둘러싸인 훌륭한 섬을 주시니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도 더 대범한 분이시여! 오, 오만한 자에게는 겸손하게, 겸손한 자에게는 오만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고, 모욕을 견디며, 이유 없는 사랑을 하시고, 선한 자들을 따르고, 악한 자들을 매질하시며, 천박한 자들의 원수이자, 결론적으로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의 편력기사여!”

― 『돈키호테』 1권, 756페이지


『돈키호테』 1권이 마무리되는 시점입니다. 성모상을 보고 핍박 받는 여인이라고 착각한 돈키호테가 그녀(?)를 구하러 돌진하고, 결국 종교 의식을 집행하던 사람들에게 맞아서 거의 빈사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죽어버린 줄만 알았던 산초가 통곡하면서 하는 말들입니다.


한 마디로, 돈키호테 사상의 근본정신이 아름답게 압축된 말입니다. 돈키호테의 이상주의와 산초의 현실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모호하게 뒤섞이는데, 산초가 점점 더 ‘진심으로’ 돈키호테를 뒤좇게 되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4. 돈키호테, 다시금 여행을 떠나려 결심한다


“가문들이란 엉망으로 뒤엉켜 있기 때문에 오직 그 주인이 덕과 부를 갖추고 관대함을 보일 수 있는 가문들만이 위대함과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야. 내가 덕과 부와 관대함을 말한 것은, 고귀한 신분의 사람일지라도 사악하면 사악한 귀족일 뿐이고, 관대하지 못한 부자는 욕심 많은 거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를 가진 자는 그 부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아. 그 부를 쓸 때 행복을 느끼는 건데,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낭비해서는 안 되고, 유용하게 잘 써야 비로소 행복해지는 거지. 가난한 기사가 자기가 기사라는 걸 증명하는 방법은 덕을 통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 『돈키호테』 2권, 98페이지


1권의 끝,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 패배한 뒤 고향으로 돌아오는 돈키호테. 그러나 2권에선 다시금 몸을 추스르고 새로운 편력을 준비합니다. 그를 걱정하는 가정부를 앞에 두고 ‘편력기사의 정체성’에 관하여 되새기는 장면입니다. 세르반테스 자신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하는 부분인데요.


신분과 혈통이 무조건적으로 우선시 되는 세상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세르반테스의 사회적 인식이 절실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고귀함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뤄내고, 타인에게 헌신함으로써만 고귀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겠죠. 말하자면, 중세의 한복판에서 ‘근대적 지평’을 열어젖혔던 세르반테스의 혜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산초, 한 섬을 통치하는 총독이 되다


“제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머리를 긁을 틈도 없으며 심지어는 손톱을 깎을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손톱이 얼마나 자랐는지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정도이지요. 제 영혼의 주인이시여,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까지 여기 총독직을 수행하면서 좋고 나쁜 일들을 주인님께 알리지 못했더라도 놀라지 마시라는 겁니다. 이 자리에 있으면서 저는 주인님과 둘이서 숲 속과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돌아다닐 때보다 더 심한 배고픔을 겪고 있답니다. (…)

지금까지 세금에는 손도 대지 않고 뇌물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말하기로는, 이 섬에 오는 총독들이 섬에 들어오기 전에 주민들이 보통 총독에게 많은 돈을 주거나 빌려주었답니다. 이게 이 섬뿐만 아니라 통치하러 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반적인 관례라고 합니다.“

― 『돈키호테』 2권, 626~627페이지


『돈키호테』 2권을 읽으시면, 흔히 이 소설과 등장인물에 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많이 깨어지게 됩니다. 그만큼 세르반테스가 더욱 성찰적으로 여러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요. 산초가 (1권에서 염원하던 그대로) 정말 한 섬을 다스리는 일도 벌어집니다! 


주민들이 지배자에게 많은 돈을 주거나 빌려주는 게 당대 통치자들의 일반적인 관례라니…. 세르반테스는 산초의 입을 빌려 아예 작정하고 당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군요. 책 한 권을 내기 위해서도 국왕 폐하의 ‘윤허’가 있어야 했던 그 시절에 말이죠. 『돈키호테』는 실로 놀라운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클라크가 이룬 문학적 성취에 영감 받고 고무된 수백 만 인간들 중 하나이다.”

― 닐 암스트롱


“아서 C. 클라크는 지구 너머 존재하게 될 인간 조건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실로 거대한 공헌을 해왔다.”

― 칼 세이건

최근 EBS에서 방영된 미드 <차일드후즈 엔드Childhood’s End>를 알고 계시나요? NBC 유니버셜이 운영하는 SF 전문 채널 SyFy가 2015년에 제작한 3부작 드라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40개 도시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우주선들”이라는 설정이 이 드라마의 주요한 모티브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조우하는 외계인!


<닥터 후>와 <셜록>의 연출을 맡았던 닉 후란이 연출하고, <라이프 온 마스>로 유명한 매튜 그레이엄이 극본을 썼습니다. <베이츠 모텔>과 <언더 더 돔>에 출연했던 마이크 보겔이 주인공 릭키 스톰그렌 역을 맡았네요. 특히 <왕좌의 게임>에서 타이윈 라니스터 역으로 인상이 깊었던 찰스 댄스가 우주 생명체의 대표 격인 캐렐런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이 작품은 1부 오버로드(The Overloads), 2부 사기꾼(The Deceivers), 그리고 마지막 3부 아이들(The Children)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한 에피소드가 1시간 30분에 육박할 만큼 그 분량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미드 팬들 사이에서 꼼꼼하고 꽉 찬 구성과, 눈이 호강하는 CG 효과와 영상미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말씀드려도, 아니 이 드라마의 제목만 보더라도, SF 문학의 팬 분들은 이 드라마의 원작은 아서 C. 클라크의 대표작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이라는 사실을 아실 수 있겠죠? 드라마는 1953년에 발표된 작품을 현대를 배경으로 영상에 옮겼습니다. 몇몇 등장인물과 세부 스토리가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주제와 메시지는 아서 클라크가 말하고자 했던 그대로입니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이 불멸의 영화로 옮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겠지만, 후대에 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작품은 바로 이 『유년기의 끝』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지구를 뒤덮은 거대 우주선이란 착상은 바로 이 작품의 직접적인 재현입니다.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매니아 분들은 이 작품의 ‘인류보완계획’이란 아이디어가 아서 클라크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올해 아카데미 주요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드니 빌뵈브 감독의 <컨택트>는 『유년기의 끝』의 가장 가까운 변주곡입니다. <컨택트>는 ‘21세기 최고의 SF 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옮긴 작품인데, 테드 창은 스스로 아서 클라크의 작품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기도 합니다. 강력한 미지의 존재와 만난 후 벌어지는 인간의 철학적 · 심리학적 원체험을 다루는 점에서 아서 클라크와 테드 창은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사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시간적 배경은 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기입니다. 즉 인류가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절멸하려던 그 시절에, 지구 곳곳에는 느닷없이 거대한 비행체들이 당도합니다. 인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과 지혜를 갖춘 생명체는, 이후 50년에 걸쳐 지구를 거의 완전한 유토피아로 바꾸어 놓습니다. 인간의 ‘유년기’는 캐렐런과 오버로드들로 인해 비로소 끝난 것일까요? 이제 인간은 외부의 도움 덕택에 더욱 성숙한 진화의 장을 열어갈 수 있을까요?


책의 내용을 ‘스포’하고 싶진 않습니다. 출간된 지 반 세기가 넘은 책인데도 정말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는 소설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독자 여러분은 아서 클라크가 작품의 제목을 (잔인하게도) “유년기의 끝”이라고 지었던 사실에 질려버릴지도 모릅니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허지웅은 『유년기의 끝』을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취향의 차이는 있더라도, 아마 많은 SF 팬 분들이 이 작품의 충격적인 의의를 되새기며 허지웅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올해는 아서 클라크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미드 <차일드후즈 엔드>와 함께 원작 『유년기의 끝』(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독자 분들에게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책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유년기의 끝』은 그 책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