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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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라크가 이룬 문학적 성취에 영감 받고 고무된 수백 만 인간들 중 하나이다.”

― 닐 암스트롱


“아서 C. 클라크는 지구 너머 존재하게 될 인간 조건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실로 거대한 공헌을 해왔다.”

― 칼 세이건

최근 EBS에서 방영된 미드 <차일드후즈 엔드Childhood’s End>를 알고 계시나요? NBC 유니버셜이 운영하는 SF 전문 채널 SyFy가 2015년에 제작한 3부작 드라마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40개 도시 상공에 나타난 거대한 우주선들”이라는 설정이 이 드라마의 주요한 모티브입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조우하는 외계인!


<닥터 후>와 <셜록>의 연출을 맡았던 닉 후란이 연출하고, <라이프 온 마스>로 유명한 매튜 그레이엄이 극본을 썼습니다. <베이츠 모텔>과 <언더 더 돔>에 출연했던 마이크 보겔이 주인공 릭키 스톰그렌 역을 맡았네요. 특히 <왕좌의 게임>에서 타이윈 라니스터 역으로 인상이 깊었던 찰스 댄스가 우주 생명체의 대표 격인 캐렐런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이 작품은 1부 오버로드(The Overloads), 2부 사기꾼(The Deceivers), 그리고 마지막 3부 아이들(The Children)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한 에피소드가 1시간 30분에 육박할 만큼 그 분량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미드 팬들 사이에서 꼼꼼하고 꽉 찬 구성과, 눈이 호강하는 CG 효과와 영상미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만 말씀드려도, 아니 이 드라마의 제목만 보더라도, SF 문학의 팬 분들은 이 드라마의 원작은 아서 C. 클라크의 대표작 『유년기의 끝Childhood’s End』이라는 사실을 아실 수 있겠죠? 드라마는 1953년에 발표된 작품을 현대를 배경으로 영상에 옮겼습니다. 몇몇 등장인물과 세부 스토리가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주제와 메시지는 아서 클라크가 말하고자 했던 그대로입니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이 불멸의 영화로 옮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이겠지만, 후대에 문화적으로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작품은 바로 이 『유년기의 끝』이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지구를 뒤덮은 거대 우주선이란 착상은 바로 이 작품의 직접적인 재현입니다.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매니아 분들은 이 작품의 ‘인류보완계획’이란 아이디어가 아서 클라크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올해 아카데미 주요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드니 빌뵈브 감독의 <컨택트>는 『유년기의 끝』의 가장 가까운 변주곡입니다. <컨택트>는 ‘21세기 최고의 SF 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옮긴 작품인데, 테드 창은 스스로 아서 클라크의 작품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기도 합니다. 강력한 미지의 존재와 만난 후 벌어지는 인간의 철학적 · 심리학적 원체험을 다루는 점에서 아서 클라크와 테드 창은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사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시간적 배경은 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기입니다. 즉 인류가 어리석게도 스스로를 절멸하려던 그 시절에, 지구 곳곳에는 느닷없이 거대한 비행체들이 당도합니다. 인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입니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과 지혜를 갖춘 생명체는, 이후 50년에 걸쳐 지구를 거의 완전한 유토피아로 바꾸어 놓습니다. 인간의 ‘유년기’는 캐렐런과 오버로드들로 인해 비로소 끝난 것일까요? 이제 인간은 외부의 도움 덕택에 더욱 성숙한 진화의 장을 열어갈 수 있을까요?


책의 내용을 ‘스포’하고 싶진 않습니다. 출간된 지 반 세기가 넘은 책인데도 정말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는 소설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독자 여러분은 아서 클라크가 작품의 제목을 (잔인하게도) “유년기의 끝”이라고 지었던 사실에 질려버릴지도 모릅니다. 


작가이자 방송인인 허지웅은 『유년기의 끝』을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취향의 차이는 있더라도, 아마 많은 SF 팬 분들이 이 작품의 충격적인 의의를 되새기며 허지웅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올해는 아서 클라크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미드 <차일드후즈 엔드>와 함께 원작 『유년기의 끝』(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독자 분들에게 읽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책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유년기의 끝』은 그 책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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