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로운 일입니다. 사별(死別)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게 인생사라지만, 죽음으로 인한 관계의 종언은 우리를 비통하게 합니다. 고대인은 고대인 나름으로, 현대인은 현대인 나름으로 사별의 비통함에 몸을 떱니다. 그 컴컴한 깊이에는 한 치의 차이도 없습니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은 무한하지만, 그 무한함을 받아들이는 색깔과 결은 시대와 문화별로 각각 다릅니다. 인디언의 한 부족은 죽은 이의 시체를 일정 시간 나뭇가지 위에서 말리며 장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부모의 무덤을 3년 동안 지키는 일이 강제적인 규범이었습니다. 인간의 의례는 무척 다채롭습니다.
문학은 그 다채로움 속에서 만인의 본질을 찾는 일이 아닐까요? 시대는 변하더라도, 눈물이 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죽음(혹은 죽음에 가까운 상실)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각국의 소설 작품 3권을 소개합니다.
1. 『지금은 안녕』: 죽음은 바둑과 다르다

영화 <HER>는 2014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각본상을 수상했을 만큼 탄탄한 각본을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주연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가 가상의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는 스토리인데요. (사만다의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죠.) 인간과 인공지능이 격렬한 감정을 공유하는 일의 가능성과 한계를 설득력 있게 묘사해서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뺏은 영화입니다.
<HER>가 사랑과 인공지능의 이야기라면, 『지금은 안녕』은 죽음과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샘은 할머니를 잃고 절망에 빠진 여자친구를 위하여 가상 시뮬레이션인 '리포즈'를 만듭니다. 할머니가 생전 수많은 사람들과 남긴 통화, 메일, 문자, SNS 등등의 기록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할머니가 죽은 후에도 그녀와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인류가 쌓아온 대국들을 철저하게 복기한 인공지능이 수천 년 역사의 바둑계를 완전히 휩쓸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그처럼 최대한 복기한다면, 정말 누군가와 꼭 닮고 그의 '예기치 못한' 행동 패턴까지 구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누군가가 태어나자마자 그의 신경 회로에 칩을 달아서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기록해 놓는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소설은 그 소름 돋는 가정, '인공지능을 통해 죽은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가정을 경쾌하면서도 진중하게 펼쳐내고 있습니다. 웃기면서도, 따뜻하고, 애잔합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읽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는 후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작품의 결말은 <HER>의 결말과도 많이 닮아 있는데요. 인간의 사랑과 죽음은 바둑을 두는 일과는 많이 다르다고 우리에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2. 『엄마를 부탁해』: 엄마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
한국인에게 '엄마'라는 말은 유독 아픈 단어입니다.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또 희생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희생은 너무나 구시대적인데, 그 구시대성은 여전히 우리들의 추억과 영혼 속에 각인되어 마음을 애달프게 만듭니다. 2008년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바로 그 공동체적 기억을 파고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베스트셀러입니다.
신경숙의 문체는 마치 귀신의 기록처럼 독자들을 절묘하게 과거로 돌려놓고, 죄책감으로 가둬 놓습니다. 아직 어머니가 살아계신 이들은 효도를 다짐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들은 먹먹한 슬픔으로 과거를 반추할 뿐입니다. 이것은 물론 대단한 작가적 역량입니다. 결말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저자의 서술에 홀려 벌건 눈시울로 허겁지겁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이 작품이 한국의 어머니 신화, 모성 신화와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소설이라는 비판도 꽤 많았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과거처럼 어머니의 전적인 희생과 침묵으로써 유지되는 가족 형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평생을 통해 그러한 억압적인 삶을 '묵묵히 살아 낸' 어머니들은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사람들은 정말 어머니께 더 효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있었길 바랍니다. 효도라기 보단, ‘인간에 대한 예의’가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 예의를 다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3. 『이별까지 7일』: 하와이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한국에 『엄마를 부탁해』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야미 가즈마사가 쓴 『이별까지 7일』이 있습니다. 일본의 어느 평범한 가족에게 갑작스레 어머니의 뇌종양 판정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날아듭니다. 아니, 사실 어머니가 치매와는 또 다른 묘한 기억력 감퇴를 보일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습니다. 어쨌든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단 7일이라고 합니다. 35년간 유지해 온 한 가정이 끝장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러나 그 가족이 어머니가 건강할 때라고 전혀 '정상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정상적인 가족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이 작품을 영화로 옮긴 이시이 유야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감히 말하겠는데, 크든 작든 모든 가족은 망가져 있다. 이상적인 가족은 없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 사랑하면서도 그만큼 크게 상처를 주는,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이 바로 가족입니다.
『이별까지 7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약하고 생활력 없는 아버지 가쓰아키를 중심으로, 모두 조금씩은 엇나가 있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오랜 분노를 삼키는 생활인이고, 그의 아내인 미유키는 시부모님을 전혀 존경하지 않습니다. 작은아들 슌페이는 낙천적인 성격이지만 어디 한군데 정주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합니다. 이런 가족들이 어머니의 비극을 앞에 두고, 비로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엄마를 부탁해』 만큼 애잔하지 않고, 『지금은 안녕』보단 덜 유쾌하지만, 『이별까지 7일』에는 일본 소설 특유의 웃음기 어린 감동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소설 속 마지막 대사는 이렇습니다. "아아, 여기가 하와이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와이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겐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웃음을 나눌 소중한 기회가 있습니다.
언제라도 또 싸우겠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