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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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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보다 책을 읽는 즐거움

근래 어떤 것에 대한 결핍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는 내게 와이프는 하루 정도는 나만의 시간을 갖으면 좋겠다고, 파주 지혜의 숲에 있는 지지향이라는 호텔에 1박을 보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책을 추천해 주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는데, 사야지 사야지 했던 책 몇 권을 후다닥 구매해서 호텔 방에서 내리 2권을 읽었다. 한권은 떨리는 불편함이었고, 다른 한권은 따뜻한 즐거움이었다. 아마 내리 2권을 읽어내려간 경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거의 없던 일이었는데, 와이프 덕분에 너무나 좋아하는 책읽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수 년간 책 보다는 짧은 글을 자연스럽게 자주 접하게 되고,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것 보다는 짧은 글을 쓰는데 익숙해 있었는데, 모처럼 긴 글, 서사 구조를 갖는 책을 읽는다는 즐거움이 몇 시간을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섬에 있는 서점은

아내를 잃고 섬에서 작은 동네 서점을 경영하는 에이제이의 이야기다. 괴팍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성격 묘사가 심한 것 같고,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 주인공은 아내를 잃고, 자신에게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책도 잃어버리고, 어찌보면 엎친데 겹친 격으로 생판 모르는 남의 아이까지 떠 맡아서 키워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게 아이를 서점에서 혼자 키우면서 섬 사람들과의 교류도 복잡해 지고, 자신이 주장하던 여러가지 삶에 대한 관점과 가치관들이 조금씩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영향을 받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책을 읽는 동안 킬킬거리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또 먹먹해지기도 하는 대목들이 많았다. 40대가 되면서 나도 신기하리만큼 감정의 굴곡이 눈에 띄게 굽이치고는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이런 감정은 참 오래간만이어서 고맙게도 읽는 내내 반갑고 즐겁게 읽었다.

타인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책을 통해서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하게 되고, 또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그 책과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게 되고, 다시 또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이유와 해답을 갖고 살아가게 되고.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당연히 아이에게서 ‘우리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 내고, 묘한 동질감과 묘한 이질감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나와 와이프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그리고, 나와 와이프가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 또 어제 오늘 근래 내가 처해 있는 인생에 대한 물음표도 돌아보게 된다. 책 한권이 내가 겪고 있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는 없지만, 나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힘을 내어 다시 일어나게 해 주는 응원의 메시지도 듣게 된다.

따뜻한 결말. 그래서 희망.

모든 책과 모든 소설의 결말이 그렇지는 않지만, ‘또 다른 희망’이라는 판에 박힌 말일지라도 이 책의 마지막이 주는 또 다른 맺음과 이어짐도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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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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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하다.

고작 2장을 읽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쩌면 아직 온기가 다 차지 않은 파주 지지향의 객실의 온도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설의 전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서두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뒤에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였겠지만, 다소간 우울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초반 챕터는 오히려 으슬으슬한 떨림에 가까운 추위였다. 2시간 남짓 지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객실의 온도는 27도가 되었고,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초반의 으슬으슬한 떨림은 불편한 두근거림으로 들어 차 있다.

31개월까지의 흔적

30대인 우리 와이프는 이제 31개월 된, 횟수로 네 살 아기를 키우며 살고 있다. 지금에서야 허덕이며 하루 하루를 이겨내 왔던 2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무척이나 달라졌지만, 그 때의 생활은 내가 함께하고 지켜 보기에도 녹록치 않았다. 경단녀가 될 까봐 전전긍긍하던 때였고, 누구나 겪는다고 치부해 버렸던 산후, 그리고 육아 우울증 같은 상황들도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고, 도와준다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육아 생활의 부산물들을 챙기던 때였다. 직접 모유를 먹이고, 새벽에 깨서 엄마를 찾던 아기를 달래는 것은 대부분 와이프의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아이가 ‘엄마’를 찾으면 엄마가 달려가고, ‘아빠’를 찾으면 아빠가 달려가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나는 자주 투정과 짜증을 함께 부리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서 와이프는 다시 회사라는 우리의 삶을 그것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돈을 은행에 꽂아주는 곳을 다시 다니고 있고, 아침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에 집에서 고작 2~3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던 일상의 궤적들도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와이프는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아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늘 찾아 헤메고, 지인과 친인척에게 ‘정답’을 묻고, 그 정답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고, 작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매일 매일 사들이면서 나의 눈치를 본다. 입으로는 늘 아이와 가까운 프렌디라고 말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그나마 근래 사회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아빠의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나이지만, 70년대에 태어나고, 아들이 최고라고 여기는 엄마의 아들이 되었고, 엄마의 형제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여자가 남편을 위해, 아니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카로 살아왔다. 우리네 부모의 세대가 그랬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세대 그리고 내 후의 세대들은 여성들이 조금은 더 남자들과 동등한 세상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던 그런 생각들을 품고 살아간 시간은 막상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딸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생각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니었을거라 라고 생각했던 그 많은 삶의 에피소드들 중에서 나는 어쩌면, 아니 여전히 70년대에 태어난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불편함을 마음에 두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80년대생, 31개월된 딸의 엄마

지금의 와이프의 생활은 긴 맥락에서 82년생의 김지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엄마이자, 딸이자, 와이프인데, 사회적인 테두리에서는 맡은 또는 맡지 않은 일까지 해내야 하는,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 하는 불편함과 불합리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장 생활이라는 패턴을 이미 알고 있지만,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이상 목소리를 내어도 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제 과거 집안 어른들이 키워주거나, 옆집 아줌마가 키워주거나 하는 세상이 아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하나의 생명을 올곧이 함께 키워주어야 하는데, 과거 보다 지금의 엄마들은 세상이 내려 준 너무 넓은 ‘자유도’에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다. 그 넓은 자유도는 인터넷과 같이 문명이자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정보는 많아졌지만,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버려서 오히려 그 많은 선택지들에 대한 정답에 가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의 병들을 앓고 살아간다. 더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세상이 높은 자유도를 가진 정답의 사회. 그 사회에서 우리는, 와이프는 딸을 키워내고 있다.

몇 주전 와이프는 자부심과 푸념 그 언저리에 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어디서나 아이의 밥을 먹일 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절대 밥을 먹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힘들게 지켜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결국 아이가 그렇지 않은 상황들을 발견하고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애들은 유튜브 보면서 밥 먹는데 왜 나는 안돼?’ 단어들은 조금 다르지만, 아이는 남들과 다른 환경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런 ‘다름’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했다고 한다. 와이프는 동영상을 보여주자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이제 그런 선택권이 아이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말하고, 주장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는 것 같다.

30대의 엄마는 여전히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만큼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해 줘야 할 것도 많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혹은 남편과의 아이를 키우는 철학만으로는 부딪혀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늘 체감하고 있었고, 어쩌면 남들과 다른 아빠라고 굳게 믿고 주장하며 살고 있는 나는, 오히려 엄마가 부딪히고 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12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식당에서 ‘맘충 소리 듣지 않으려면 애가 흘린거 다 치우고 가야해’라는 말을 했을 때 버럭 화를 내지도, 그냥 가지도 않고, 와이프와 함께 식당 바닥을 물티슈로 닦아 내며 지냈던 날들이 오버랩되면서 책장을 넘겼지만, ‘그 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넘기고 싶은 날들은 분명 아니었다. 30대의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은 출산이었고, 더 큰 일은 육아임을 우리는 결혼이라는 테두리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습게도 당장 집에 가서 자주 읽어주는 공주 시리즈 책들을 어딘가에 감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백마 탄 왕자가 악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그래서 82년생 김지영과는 너무나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 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어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단순하고 유치한 발상일 수도 있지만, 물론 앞으로의 세대의 김지영들은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있지만,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말해 주고,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지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지 않았고, 우리의 세대가 못했지만, 우리의 후배의 세대들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gender로써 아주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여자로써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우리 세대와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가정을 위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빠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비단 내 딸만을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내 친구의 딸, 내 조카의 딸이 만나게 될 세상이 82년생 김지영이 만났던 세상은 아니어야하지 않겠다고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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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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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듣던 팟캐스트에서 이 책을 소개했을 때, 서정적인 제목이어서 끌렸고, 딸을 가진 아빠의 이야기여서 끌렸고, 그리고, 성숙한 인격적인 면모의 주인공에 끌렸었다. 책을 구매하고 중간즈음 읽었을까, 당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에 대한 핑계와 고단한 나의 일상에 대한 핑계로 거의 일년 가량 동안에도 완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막 이 책을 덮었다. 그가 케이디를 마지막에 안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뜨겨워졌고, 눈도 함께 달아 올랐다.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는 길지 않지만 하루에 몇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올 것 같지 않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보는 수 십년 후의 이야기들도 나누면서 나는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어느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게 된다면, 남아있는 내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게 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2주 가량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내내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와 내 앞에도 언젠가 놓이게 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퇴근 하는 시간에 와이프와도 무겁게 아니 어쩌면 농담처럼 나누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에게도 갑자기 닥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 두어야 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만든 셈이다.

또한 의사로써,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그리고 남편이자 아빠로써의 그의 삶을 내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현실적인 생각이 깊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남기고 싶은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목록들도 떠올랐다. 늘 혼자 주문처럼 말하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는 일, 남을 위한 보고서나 제안서가 아닌, 나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제’의 아빠와 ‘오늘’의 아빠의 생각과 일상을 궁금하게 될(물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딸을 위한 이야기. 그래서 녀석이 20대가 되었을 때 나의 20대의 생각을 들여다 보고, 녀석이 30대와 40대가 되었을 때 당시의 나의 생각들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왜’를 공곰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매일 매일 수 많은 의미 없는, 의미 있는 단어를 교환하며 일상에 대한 기쁨과 슬픔, 분노, 아쉬움을 나누고 있는 와이프와 나의 이야기들.

커다란 생각이 아니라,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숨결이 바람될 때’가 너무나 고맙다. 사는 것 만큼이나 살지 않는 삶 이후도 생각하게 해 준 이 책이 나에게 오늘의 의미를 어제 보다 더 가치있게 여기고, 더 의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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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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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하는 것이기도 한 글 쓰기는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면서 그 흐름을 같이 하기도 했다.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는 지루한 명제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네 세대는 이제 많이 읽을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알라딘 북플에서 우연히 유레카님의 출판 포스트를 읽었고, 가볍게 큰 생각없이 책 선물을 받고나서 며칠을 보냈다. 김규항님의 ‘좋은 글은 불편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 아프다’는 말 처럼, 유레카님의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일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사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글감’을 찾기도 해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기도 하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글에만 매몰되어서도 안되는 일이 사실 일상을 담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혹은 다른 무언가를 통해 내 삶을 투영해 보며 반추하는 일이 생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붓 가는대로 보이는대로의 생각을 담는 일. 산문집은, 어쩌면 에세이는 그래서 더 가깝게 잘 읽히는 게 아닐까.

그 어느 때 보다도 복잡한 생각들에 엉켜있던 터라, 어찌 보면 쓸데 없는 처세나 경영서적을, 희대의 경영자에 대한 마치 위인전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가벼워지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길 찾는 새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우선, 길을 잃었다는 것부터 인지하는 순간이다. 문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여기가 어디인가?’라는 질문. 길 찾기에 있어서 첫 질문이어야 하는 이유다… – 길 잃은 새는 길 찾는 새가 된다 중

어차피 나만의 생각을 적는 블로그랍시고 ‘지식을 담고, 아름다운 문체와 온갖 은유들을 뭉친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담는 나의 글에는 분명 그러한 ‘허세’가 있다. 위의 인용문처럼 우리가 모르는 단어가 있을까. 문장이 이해가 안되는 방식을 썼을까. 아니다. 문장이 쉽고, 단어가 쉬워도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하거나, 따뜻하거나, 즐거울 수 있다.

‘그대여. 무얼 보는가’라며 산은 나에게 묻는다. 헐떡거리는 숨찬 가슴에 산이 나에게 주는 질문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점 하나 찍고자 한다. 그것도 눈물겹도록. 그대여. 무슨 점을 원하는가? 잠시 쉬어갈 쉼점 찍고 생의 마무리도 근사하게 마침점도 찍고 내 삶의 시작과 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음점도 찍고 찍어, 그런 점, 점, 점을 찍겠다는 거였다… – 점 찍기 중

나는 헐떡거리고 있지만, 나 역시도 언제나처럼 늘 ‘근사하고, 아름답게’ 쉼표와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바라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또 공감하고 싶은 문장들.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만남으로 뭉쳐진 인연보다 헤어지는 흩어짐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과 같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암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옴으로 자기의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는 자각의 시계 초침과 같다. 나도 점점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 나이 중

그 어느 때 보다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고, ‘나이 때문에’로 시작되는 핑계와 변명들이 늘어가는 요즈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광고에서나 나오는,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고 달리라는 말 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나 역시도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나 즐거움 보다는 헤어지고 잊혀지고 다시 떠나보내는 슬픈 일들을 반복하며 지내는 나이. 그 나이가 주는 큰 중압감에 너무나 겁이 나기도 하는 지금의 나이.

뜻이 맞아야 한다는 것. 거친 세파 불어도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어려워도 마음으로 의지한다는 것. 눈물 한소끔 흘려도 등 토닥여 줄 수 있다는 것. 외롭지만 외로움을 같이 느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먼저 생이 마지막이 되었을 때 옆을 지켜주며 보내주는 것… – 동행 중

‘함께 행복하자’는 말을 참 좋아했다. 비단 남녀간의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함께 한다는 것은 삶에서 만나는 수 많은 풍파에 함께 견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뜻이 맞아야 하고, 뜻이 맞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저 그런 이유에서 ‘우리’라고 부르던 사람들과의 인연이었다. 인연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번 두번 생각하고, 표현했다가 다시 수정해 보고,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멋진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각을 말하는 것. 그저 생각을 쓰는 것. 그저 나누고 싶은 것 뿐이다. 그렇게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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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0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판사·검사·변호사가 말하는 법조인 부키 전문직 리포트 8
임수빈 외 지음 / 부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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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검사, 변호사가 말하는 법조인 - 부키 전문직 리포트
★★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꽤 오랜 시간동안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또 읽고도 간단하게나마 리뷰를 쓰지도 못하고 있다. 하고 있는 일에 보람도 느끼며, 피곤도 느끼며, 한계도 느끼며 그리고, 즐거움도 느끼면서 보내는 하루 하루에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이 책은 굉장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 같은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들의 이야기다. 기자가 말하는 기자와 같이 해당 직무분야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수기와 같은 형태의 글이라 딱딱한 칼럼이나 직업소개의 글 보다는 분명 훨씬 읽기에 부담이 없다. 특히나, 법조인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는 자화상으로도 읽기에 좋은 부분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소설 한강을 읽으면서 그리고, 익히 보아왔던 국회의원, 공무원 그리고 판검사들의 어떤 각인된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자부심'에 동의하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판검사들의 이야기 는 그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어서 그런지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느껴지다보니, 더욱이 그들의 직업, 직무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들이 '서민'들과 너무나 멀리 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TV에서, 영화에서 보여지는 판검사들의 '정의로운' 모습과, 뉴스와 귀동냥으로 들이는 판검사들의 '안 정의로운' 모습들이 오버랩되는 것은 차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동경에서 실상으로 보이기 때문일게다. 솔직담백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저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오는 푸념어린 환호성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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