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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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말하는 것이기도 한 글 쓰기는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하면서 그 흐름을 같이 하기도 했다.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는 지루한 명제와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네 세대는 이제 많이 읽을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알라딘 북플에서 우연히 유레카님의 출판 포스트를 읽었고, 가볍게 큰 생각없이 책 선물을 받고나서 며칠을 보냈다. 김규항님의 ‘좋은 글은 불편하며, 좋은 음악은 가슴 아프다’는 말 처럼, 유레카님의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일상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사실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글감’을 찾기도 해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하기도 하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글에만 매몰되어서도 안되는 일이 사실 일상을 담는 일이 아닐까 싶다.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혹은 다른 무언가를 통해 내 삶을 투영해 보며 반추하는 일이 생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붓 가는대로 보이는대로의 생각을 담는 일. 산문집은, 어쩌면 에세이는 그래서 더 가깝게 잘 읽히는 게 아닐까.

그 어느 때 보다도 복잡한 생각들에 엉켜있던 터라, 어찌 보면 쓸데 없는 처세나 경영서적을, 희대의 경영자에 대한 마치 위인전 같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가벼워지라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길 찾는 새가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우선, 길을 잃었다는 것부터 인지하는 순간이다. 문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여기가 어디인가?’라는 질문. 길 찾기에 있어서 첫 질문이어야 하는 이유다… – 길 잃은 새는 길 찾는 새가 된다 중

어차피 나만의 생각을 적는 블로그랍시고 ‘지식을 담고, 아름다운 문체와 온갖 은유들을 뭉친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담는 나의 글에는 분명 그러한 ‘허세’가 있다. 위의 인용문처럼 우리가 모르는 단어가 있을까. 문장이 이해가 안되는 방식을 썼을까. 아니다. 문장이 쉽고, 단어가 쉬워도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하거나, 따뜻하거나, 즐거울 수 있다.

‘그대여. 무얼 보는가’라며 산은 나에게 묻는다. 헐떡거리는 숨찬 가슴에 산이 나에게 주는 질문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점 하나 찍고자 한다. 그것도 눈물겹도록. 그대여. 무슨 점을 원하는가? 잠시 쉬어갈 쉼점 찍고 생의 마무리도 근사하게 마침점도 찍고 내 삶의 시작과 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음점도 찍고 찍어, 그런 점, 점, 점을 찍겠다는 거였다… – 점 찍기 중

나는 헐떡거리고 있지만, 나 역시도 언제나처럼 늘 ‘근사하고, 아름답게’ 쉼표와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나를 바라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또 공감하고 싶은 문장들.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만남으로 뭉쳐진 인연보다 헤어지는 흩어짐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과 같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암시가 점점 현실로 다가옴으로 자기의 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덜어내는 자각의 시계 초침과 같다. 나도 점점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 나이 중

그 어느 때 보다 나이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고, ‘나이 때문에’로 시작되는 핑계와 변명들이 늘어가는 요즈음,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광고에서나 나오는,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고 달리라는 말 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나 역시도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나 즐거움 보다는 헤어지고 잊혀지고 다시 떠나보내는 슬픈 일들을 반복하며 지내는 나이. 그 나이가 주는 큰 중압감에 너무나 겁이 나기도 하는 지금의 나이.

뜻이 맞아야 한다는 것. 거친 세파 불어도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어려워도 마음으로 의지한다는 것. 눈물 한소끔 흘려도 등 토닥여 줄 수 있다는 것. 외롭지만 외로움을 같이 느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 먼저 생이 마지막이 되었을 때 옆을 지켜주며 보내주는 것… – 동행 중

‘함께 행복하자’는 말을 참 좋아했다. 비단 남녀간의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함께 한다는 것은 삶에서 만나는 수 많은 풍파에 함께 견뎌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뜻이 맞아야 하고, 뜻이 맞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저 그런 이유에서 ‘우리’라고 부르던 사람들과의 인연이었다. 인연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번 두번 생각하고, 표현했다가 다시 수정해 보고,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멋진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생각을 말하는 것. 그저 생각을 쓰는 것. 그저 나누고 싶은 것 뿐이다. 그렇게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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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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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0 16: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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