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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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하다.

고작 2장을 읽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쩌면 아직 온기가 다 차지 않은 파주 지지향의 객실의 온도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설의 전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서두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뒤에 내용을 궁금하게 만드는 장치였겠지만, 다소간 우울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초반 챕터는 오히려 으슬으슬한 떨림에 가까운 추위였다. 2시간 남짓 지나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객실의 온도는 27도가 되었고,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초반의 으슬으슬한 떨림은 불편한 두근거림으로 들어 차 있다.

31개월까지의 흔적

30대인 우리 와이프는 이제 31개월 된, 횟수로 네 살 아기를 키우며 살고 있다. 지금에서야 허덕이며 하루 하루를 이겨내 왔던 2년 전의 삶과 지금의 삶은 무척이나 달라졌지만, 그 때의 생활은 내가 함께하고 지켜 보기에도 녹록치 않았다. 경단녀가 될 까봐 전전긍긍하던 때였고, 누구나 겪는다고 치부해 버렸던 산후, 그리고 육아 우울증 같은 상황들도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고, 도와준다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육아 생활의 부산물들을 챙기던 때였다. 직접 모유를 먹이고, 새벽에 깨서 엄마를 찾던 아기를 달래는 것은 대부분 와이프의 일이었다. 지금에서야 아이가 ‘엄마’를 찾으면 엄마가 달려가고, ‘아빠’를 찾으면 아빠가 달려가고는 있지만, 그마저도 나는 자주 투정과 짜증을 함께 부리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서 와이프는 다시 회사라는 우리의 삶을 그것도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게 만들어 주는 돈을 은행에 꽂아주는 곳을 다시 다니고 있고, 아침에 어린이집에 맡기고 저녁에 집에서 고작 2~3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던 일상의 궤적들도 또 다른 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와이프는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낸다. 아이와 관련된 무언가를 늘 찾아 헤메고, 지인과 친인척에게 ‘정답’을 묻고, 그 정답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고, 작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매일 매일 사들이면서 나의 눈치를 본다. 입으로는 늘 아이와 가까운 프렌디라고 말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그나마 근래 사회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아빠의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나이지만, 70년대에 태어나고, 아들이 최고라고 여기는 엄마의 아들이 되었고, 엄마의 형제들은 여전히 가부장적이고, 여자가 남편을 위해, 아니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카로 살아왔다. 우리네 부모의 세대가 그랬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세대 그리고 내 후의 세대들은 여성들이 조금은 더 남자들과 동등한 세상에서 살면 좋겠다고 했던 그런 생각들을 품고 살아간 시간은 막상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딸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생각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아니었을거라 라고 생각했던 그 많은 삶의 에피소드들 중에서 나는 어쩌면, 아니 여전히 70년대에 태어난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불편함을 마음에 두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80년대생, 31개월된 딸의 엄마

지금의 와이프의 생활은 긴 맥락에서 82년생의 김지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엄마이자, 딸이자, 와이프인데, 사회적인 테두리에서는 맡은 또는 맡지 않은 일까지 해내야 하는, 그것도 아주 잘 해내야 하는 불편함과 불합리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직장 생활이라는 패턴을 이미 알고 있지만,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이상 목소리를 내어도 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이제 과거 집안 어른들이 키워주거나, 옆집 아줌마가 키워주거나 하는 세상이 아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하나의 생명을 올곧이 함께 키워주어야 하는데, 과거 보다 지금의 엄마들은 세상이 내려 준 너무 넓은 ‘자유도’에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다. 그 넓은 자유도는 인터넷과 같이 문명이자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정보는 많아졌지만,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버려서 오히려 그 많은 선택지들에 대한 정답에 가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의 병들을 앓고 살아간다. 더 자율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고, 더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로 키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세상이 높은 자유도를 가진 정답의 사회. 그 사회에서 우리는, 와이프는 딸을 키워내고 있다.

몇 주전 와이프는 자부심과 푸념 그 언저리에 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는 어디서나 아이의 밥을 먹일 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절대 밥을 먹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힘들게 지켜내고 있는데, 얼마 전에 결국 아이가 그렇지 않은 상황들을 발견하고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애들은 유튜브 보면서 밥 먹는데 왜 나는 안돼?’ 단어들은 조금 다르지만, 아이는 남들과 다른 환경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런 ‘다름’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했다고 한다. 와이프는 동영상을 보여주자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이제 그런 선택권이 아이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말하고, 주장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는 것 같다.

30대의 엄마는 여전히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만큼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도, 해 줘야 할 것도 많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혹은 남편과의 아이를 키우는 철학만으로는 부딪혀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늘 체감하고 있었고, 어쩌면 남들과 다른 아빠라고 굳게 믿고 주장하며 살고 있는 나는, 오히려 엄마가 부딪히고 있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12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식당에서 ‘맘충 소리 듣지 않으려면 애가 흘린거 다 치우고 가야해’라는 말을 했을 때 버럭 화를 내지도, 그냥 가지도 않고, 와이프와 함께 식당 바닥을 물티슈로 닦아 내며 지냈던 날들이 오버랩되면서 책장을 넘겼지만, ‘그 땐 그랬지’라고 웃으며 넘기고 싶은 날들은 분명 아니었다. 30대의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은 출산이었고, 더 큰 일은 육아임을 우리는 결혼이라는 테두리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우습게도 당장 집에 가서 자주 읽어주는 공주 시리즈 책들을 어딘가에 감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백마 탄 왕자가 악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그래서 82년생 김지영과는 너무나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 딸의 아름다운 동화를 읽어주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단순하고 유치한 발상일 수도 있지만, 물론 앞으로의 세대의 김지영들은 그렇게 크지 않을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있지만, 그저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말해 주고, 생각하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지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러지 않았고, 우리의 세대가 못했지만, 우리의 후배의 세대들에게는 아들이나 딸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gender로써 아주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여자로써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우리 세대와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가정을 위해서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빠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해야겠다. 비단 내 딸만을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내 친구의 딸, 내 조카의 딸이 만나게 될 세상이 82년생 김지영이 만났던 세상은 아니어야하지 않겠다고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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