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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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에 축축하고 끈적이는 긴장이 있다. 팽팽하게 고조되는 공포는 한순간 선홍빛으로 폭발한다. 사방은 붉게 물들고 역한 피비린내가 풍긴다.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

그러나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다만 그런 것을 알아챌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긴박함과 고립만 있을 뿐.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들어있는 단편 '안개'의 공포는 제목만큼이나 뚜렷하지 않다. 개념의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준다.

마감 시간이 코앞인데 기사가 써지지 않을 때의 조급함은 기자에겐 하나의 공포다. 이런 것들이 붉은 피와 섞이면 극한의 공포로 증폭되는 것처럼 킹은 일상에 숨어있는 공포를 교묘히 들쑤신다.

'안개'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괴물들 역시 산발적이고 다양한 공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요소다. 빨판이 있는 촉수괴물, 크기가 70~130cm 정도 되고 마디가 둘인 집파리 모양의 분홍 괴물, 분홍 괴물을 잡아먹기도 하는 알비노 괴물, 거미 괴물….

이들이 안개 속에 파묻혀 온 이유는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괴물들은 인정사정없이 닥치는 대로 인간을 살육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실체를 모르는 불확실한 공포 묘사 탁월

스티븐 킹은 이러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에서 냉정과 광기를 절묘하게 끄집어낸다. 인간의 냉정과 광기는 공포를 부정하는 자기부정 형태란 점에서 같다. 그러나 그 둘은 인간에게 목숨을 건 선택을 강요한다.

또 다른 중단편 '원숭이'에서는 끊임없이 주인공의 동선을 쫓으면서 불행을 예고하는, 심벌즈 치는 원숭이 인형의 집요함을 등골 서늘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상해 보라. 오래전 버렸던 것이 주위에서 맴돌며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을.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원숭이 인형이 겹쳐진다. 마치 한 녀석이 소설과 영화를 넘나들고 있는 듯.

스티븐 킹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다. 공포 소설의 대가며 그의 작품은 33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뿌려졌다.

그동안 3억3000만권이 출간됐다고 하니 지구촌 가정 스무 집에 한 집 꼴로 있는 셈이다. 글쓰기로 연간 1000억원 이상 벌어들이는 밀리언셀러 작가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걸어 다니는 기업'이다.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도 크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샤이닝> 등 대박을 터뜨린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안개' 역시 <쇼생크 탈출>을 연출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영화로 기획하는 중이라니 팬은 물론 영화 마니아들에겐 희소식이다.

스티븐 킹은 누구?

ⓒ스티븐 킹 홈페이지

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형이 발행하던 동네 신문에 기사를 쓰면서부터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알린 작품은 1974년 스물 여섯 살의 나이로 출간한 <캐리>. 이때부터 지난 20여년간 텔레비전물을 포함한 5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현대 최고의 공포 소설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권 이상이 팔린 초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미국 <포브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존 그리샴, 마이클 크라이튼, 톰 클랜시 등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1996년에는 오 헨리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에서 미국 문단에 탁월한 공로를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는 등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단편집에는 두 편의 시를 포함해 스무 편의 단편이 실렸다. 모두 그의 전성기 작품으로 채워져 킹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역자의 설명이다.

킹의 글은 단편임에도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짧은 글도 영화로 쉽게 만들어진다.

'안개', '원숭이', '토드 부인의 지름길', '뗏목', '노나', '고무 탄환의 발라드' 등은 단편이지만 사건의 처음과 끝을 묘사한 완전한 줄거리가 존재한다.

또 시간이 복합적으로 배열돼 있어 장편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짧지만 짜릿한 전율을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또 하나의 재미, 작가 후기

킹은 말한다. 단편 소설의 배경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의 배경은 학자들이나 독서광들과 분석가의 몫이다.

킹에게는 배경보다 이야기가 생산되는 '동기'가 더 중요하다. 킹은 책 말미에 작품이 생산된 배경을 친절히 설명했다.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지름길 찾는 데 미친 아내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글은 여성잡지 세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두 곳은 여자가 서서 소변보는 장면을 문제 삼았고 한 곳은 주인공이 너무 늙어서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퇴짜를 놓았다.

킹은 이들 세 곳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한마디로 실망감을 나타냈다. 작가의 속내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재미난 부분이다.

킹의 공포는 밀도가 높다. 단편이란 형태를 취해서이기도 하지만 빠른 글쓰기가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얼음같이 서늘한 생각이 녹지 않을 만큼의 시간 안에 작품을 생산해 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단편은 장편을 탈고하고 쉬어가는 의미로 며칠 만에 쓰는 글이라는 말도 있다. 대단한 필력이다.

세계적인 작가인 만큼 팬들도 많다. 국내에도 팬클럽이 있고 그를 위한 홈페이지도 만들어져 있는 등 공포소설 마니아들에겐 신화 같은 존재다. 이들과 함께 올 여름엔 킹이 초대한 냉탕으로 한번 빠져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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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의 도깨비가 알려주는 열과 시간의 비밀
한스 크리스찬 폰 베이어 지음, 권영욱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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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의 도깨비'는 열역학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된다. 여기서 도깨비는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이 수수께끼 같은 열역학 법칙을 시험할 목적으로 고안한 상상의 존재다. 실험 불가능한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가설 도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도깨비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에너지의 비가역적 흐름을 나타내는 엔트로피의 개념을 확인시켜주는 도구인데, 안타깝게도 그것을 발견한 맥스웰은 도깨비가 요술 방망이질을 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요술 방망이질이란 도깨비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할 수 있는지 여부다.

에너지보존법칙인 열역학 제1법칙처럼 예외 없이 어느 경우에나 성립하는가, 아니면 거스를 수 있는가가 이 책의 주제다. 동시에 도깨비의 실체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된 E=mc2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다.

E=mc2은 각 나라의 언어마다 다르게 읽히겠지만 값을 나타내는 것은 언어와 상관없이 고유하다. 1905년 스물여섯 살 된 특허국 직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E=mc2이란 공식을 물리학에서 에너지의 양을 계산하는 공식 목록에 올렸다. 20세기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순간이다.

이전까지 에너지는 운동, 위치, 열에너지의 발견으로 공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물리학자들은 압축된 스프링, 궤도를 도는 천체, 대전된 전도체, 전자석, 물결파, 빛, 소리, 전지, 생리화학 등 움직이거나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계에 들어 있는 에너지 양을 찾느라 분주했다. 여기에 E=mc2가 첨가되면서 에너지 공식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정리됐다.

이 공식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극적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유도된 공식이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첫 논문을 발표한 1905년까지 이 공식을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잠재된 중요성은 알아차렸지만 소심증으로 인해 학계에 발표하진 못했다. 자칫 영원히 묻힐 뻔한 '아름다움'은 아인슈타인의 뒤늦은 용기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제럴드 홀턴은 물리학의 궁극이론은 최대의 함축에 있다고 표현했다. 최대한의 함축원리는 최대한의 정보를 최소한의 표현으로 압축시킬 수 있는 이론의 능력을 중요시한다. E=mc2 공식이 명성을 얻은 이유는 간단한 공식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번역서다. 원저자들 모두 미국·영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이다. 우리는 가끔 과학자가 쓴 전문적인 글이 단순 번역가에 의해 비과학적으로 해석되는 오류를 접한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될 듯싶다. 옮긴이가 쟁쟁한 전공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질보증’이 된다. 공학도들 손을 한번쯤은 거쳐야 할 책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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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만든 아름다운 방정식들
그레이엄 파멜로 엮음, 양혜영 옮김 / 소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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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친절한' 물리학 도서가 안방을 찾아왔다. 낯설지만 반갑다. 물리학을 앞세워 안방을 노크한 용기가 반갑고 다 읽고 난 뒤에 한 꺼풀 벗겨지는 시야가 반갑다.

이과(理科)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친근감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오묘함을 전달하기엔 다소 전문적이다. 그래도 반가움이 앞서는 것은 우리 생활 속에 함께 있지만 서먹하던 방정식이란 존재를 친절히 소개시켜 준 탓일 게다.

책은 자연과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가 어떻게 가설이 세워지고 증명되는지를 차분히 쫓아간다. 그 동선을 동행하다보면 우리의 안방 도처에 널려있는 물리학과 방정식을 만날 수 있고 시나브로 우리는 그것과 융합된다.

수학은 물리학의 기초가 되고 물리학은 과학의 초석이 된다. 결국 세상은 가장 함축적으로 E=mc2이 된다. 이 공식은 세상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압축파일인 셈이다.

20세기 수학과 물리학, 넓은 의미에서 과학을 지탱하는 수많은 방정식이 있다. 방정식이란 미지수에 어떤 수를 대입시켜 등식을 성립시키는 것을 말한다. 방정식은 본질적으로 완벽한 균형에 대한 표현이다. 과학을 고려하지 않는 순수 과학자들에게 방정식은 오로지 추상적인 수식일 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방정식들은 자연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과학사상 가장 유명한 방정식은 E=mc2이라는데 대한 이견은 별로 없다. 심지어 우유 광고에도 인용되는 방정식이다. 아인슈타인과 동격으로 쓰인다. 1905년 발견된 이 방정식은 겉으로 보기엔 에너지(E), 질량(m),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c)가 서로 관련 있음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이 방정식을 통해 질량에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은 정확히 그 질량이 가진 에너지와 같다고 예측했다. '예측'은 '추상적인 수식'과 등식을 이룬다. 비록 발표 당시는 예측이었지만 이 방정식은 현대과학에서 한편의 아름다운 시로 비유될 만큼 빼어난 발견으로 기록되고 있다.

E=mc2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불과 몇 개의 기호로 이뤄진 수식이지만 그것으로 지구상의 생명체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부터 까마득히 멀고 광활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폭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에너지 변환을 설명하는 과학 지식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폭탄은 이 공식이 적용방법에 따라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나타낸 지극히 현실적인 표현물이다.

이 같은 방정식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왜 그토록 많은 법칙들이 절대규칙(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왜 상관도 없어 보이는 두 물리량(방정식의 왼쪽과 오른쪽)이 정확히 같을 수 있을까. 도대체 이 법칙들은 어떻게 발견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답은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란 것일 뿐.

과학 방정식에 대한 논란의 시발이 여기에 있다. 과연 발명되는 것인가 아니면 발견되는 것인지. 이에 대해 인도출신 미국인 천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는 "항상 거기 있었으며, 나는 우연히 그것을 찾아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E=mc2 역시 태고적부터 유효한 것이 틀림없다고 저자는 확신한다. 발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방정식을 자연의 일부, 즉 신의 창조물로 보는 프로테스탄트적 과학사관 탓일 것이다. 미국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 미첼은 "자연법칙을 설명하는 모든 공식은 신에게 바치는 찬송가"라고 표현했다. 'E=mc2=아름다운 시=찬송가'라는 공식이 완벽하게 성립한다.

원저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랭크 윌첵(2004), 스티븐 와인버그(1979) 등 영국과 미국의 저명한 학자 13명이 집필했다. '아인슈타인의 영감의 원천은 모차르트'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던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의 아서 밀러(과학사) 교수의 글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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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ohana 2006-07-0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방금 오마이뉴스에서 보고 온 리뷰랑 똑같네요. 동일인물이신지?

연년생아빠 2006-07-0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습니다. 동일인입니다.
 
하류사회 -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
미우라 아츠시 지음, 이화성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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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 장 머리말에서부터 도발적인 물음과 맞닥뜨린다. 당황스럽다. 독자의 하류도(下流度)를 체크해 보잔다.

다음 중 반 이상이 해당되면 상당히 하류적 사람이란다. 몇 개나 해당되는지 독자 여러분도 스스로 평가해 보시라.

1. 연간 수입이 연령의 100배 이하이다.
2. 그날그날 편히 살고 싶다.
3. 자기답게 사는 것이 좋다.
4.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다.
5. 단정치 못하고, 모든 일이 귀찮으며, 외출하기 싫다.
6. 혼자 있는 것이 좋다.
7. 온순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다.
8. 옷 입는 패션은 내 방식대로다.
9. 먹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10. 과자나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는다.
11. 온종일 집에서 비디오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12. 미혼이다(남자 33세 이상, 여자 30세 이상인 경우)


이웃 일본의 이야기다. 그러나 가까운 거리만큼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점도 남다르지 않다. 또 한국경제가 일본경제와 엇비슷하게 연동되는 가운데 책이 정의한 <하류사회>는 우리의 현재 또는 미래의 모습을 대입할 수 있다.

현 일본사회 구성하는 4세대 욕구조사 기록

전후 일본 경제부흥을 통하면서 두텁게 형성됐던 중류벨트. 이들 신 중간층은 주로 샐러리맨이면서 특별히 재산이 많지 않지만 매년 소득이 늘어 생활수준이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계층이었다. 이 시기(1950~70년대)는 하층에서 중층으로, 즉 하류의 중류화가 도드라졌던 때다.

그러던 일본의 계층격차가 근래에 들어 중이 감소하면서 상과 하로 양극화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중산층이 붕괴된 1990년대 우리 사회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일본 역시 우리의 현재처럼 양극화를 맞고 있다. 책 속에는 우리 상황과 아주 흡사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가 꽉 차 있다.

이 책은 '쇼와(昭和) 4세대 욕구비교조사(2004년)'와 '여성계층화 1·2차 조사(2005년)' 결과 등을 기반으로 책으로 엮었다. 논문의 하드커버를 떼고 책 표지를 붙였다고 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때문에 각종 지표를 도표와 그래프 등으로 나타낸 것이 많다. 이들은 본문을 이해하기 쉽게도 하지만 너무 자세한 이해를 구하는 바람에 오히려 독자에겐 과공비례다.

쇼와 4세대는 쇼와 한자리수세대(1931~37년생), 단괴세대(46~50년생), 신인류세대(61~65년생), 단괴주니어세대(71~75년생)를 말한다. 쇼와 한자리수 세대는 일본의 성장을 견인한 중심세대다. 이들의 2세가 신인류세대다.

단괴세대는 종전 직후 제1차 베이비붐 세대와 동의어다. 단괴주니어는 2차 베이비붐 세대다.

이들 계층간 욕구조사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대를 거쳐 현대화하는 과정이 흡사하고 인접국이란 지리적 특성이 한 경제권, 문화권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개성' 고집은 하류사회로 가는 지름길

'하류사회'란 단어는 저자인 미후라 아츠시가 만들었다. 물론 단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새롭게 정의를 내렸다는 표현이 맞다. 일본사회는 그동안 이른바 '1억총중류'라는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었다. 전 국민이 중산층이란 말이다. 그러나 중산층의 붕괴는 사회 계층 분화로 이어지면서 와해를 맞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앞서 하류평가에서 언급됐듯이 자기 방식대로 사는 '자기다움'을 지향한다면 하류족이 되기 십상이다. 욕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만의 개성을 지향하는 사람이 상류의 경우 25%인데 반해 하류는 41.7%나 됐다. 자립과 자기실현을 묻는 질문에서도 상은 16.7%, 하는 29.3%였다.

이는 자기실현을 찾는 사람은 일에 있어서도 자기답게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고수입을 올리기 어려워 결국 생활수준이 저하되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인적 특성은 미혼에 아이가 없고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일본은 '결과악평등 사회'였다. 악평등이란 형식적으로 평등하지만 실제로는 불공평한 상태를 의미한다. 결과악평등이란 열심히 일하나 안하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월급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을 말한다.

젊어서 일을 빨리하고 빨리한 만큼 많이 하지만 나이 먹고 일처리가 느린 사람보다 월급을 적게 받는 현상이 나타난다. 결과악평등을 넘어 결과역차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은 15년 정도 성과주의를 채택했다.

계층격차의 가장 큰 원인은 하류의 '의욕 부족'

그 결과 소득격차가 확대되고 장기적으로 계층격차가 고정될 위기에 몰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회균등이라는 숙제에 부닥치게 된다. 기회균등을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기회악평등 구조'를 도입할 필요성에 도달한다.

기회악평등 구조는 낮은 계층이 우대를 받는 조치다. 저자는 일본 사회의 기회악평등 구조를 몇 가지 제시한다. 흡사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았다.

소득이 낮은 가정의 학생에게는 합격점을 내려준다. 가산점을 주는 것과 같다. 반대로 소득이 높은 집 학생은 합격점을 높이는 방안이다.

부모 계층이 낮은 집은 학력이 낮은 경향이 있다는 것은 강남 출신이 서울대에 많이 합격하는 우리네 현실과 같다. 부와 교육기회는 등가로 성립하는 것이 현대교육의 산물이다.

국립대인 도쿄대학 수업료를 무료화 하는 방법도 제안됐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연간 1000만원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와 많이 빼닮았다. 학비무료와 함께 대학 수업을 인터넷화 하면 가난한 지방 출신도 교육기회를 균등히 가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또 지방에서 대도시로 진학했을 때 보조금을 주는 방안 등 하류 가정을 위한 기회악평등을 구현한다면 양극화를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지적이다. 저자는 그러나 평등을 깨트리면서까지 기회를 주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하류의 '의욕 부족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에 대해 양준호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IMF 이후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 중산층의 몰락, 비정규직 근로자 급증, 청년실업자 양산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오버랩 된다"며 "이미 우리 사회도 하류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는 등 '하류사회'를 미래 한국의 키워드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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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포네 - 암흑가의 대부
루치아노 이오리초 지음, 김영범 옮김 / 아라크네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알 카포네(1899∼1947)만큼 자신과 거리가 먼 학술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도 드물다. 그가 조직폭력배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그를 주제로 책과 논문을 썼고, 영화와 텔레비전 특집물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쏟아지는 물량은 많지만 아쉽게도 그의 마피아적 폭력성을 그린 말초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루치아노 이오리초의 <암흑가의 대부 알 카포네>는 당대 1급 악인으로 낙인찍힌 카포네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미디어에 노출되거나 법정에 기소된 죄목은 물론 때로는 미국 하층민의 희망의 상징이라고까지 불리던 그의 생활사 이면까지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다. 다만 ‘하층민의 희망’은 다소 부풀려진 것이지만.

이탈리아 산(産) 카포네가 유명해지기까지는 미국 미디어가 일등공신이다. 물론 카포네는 이민 2세대지만 마피아라는 이름과 결부해서는 이탈리아 산 꼬리표를 피할 수 없다. 1920년대 미디어는 피의자인 카포네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적 세부사항까지 신경 쓰거나 고려하지 않았다.

카포네의 기소 이유는 잔챙이급 범죄

그때부터 기자들이나 라디오 진행자, 영화제작자들은 카포네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그가 뉴스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인물이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힐 만큼 그의 범죄 혐의가 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현대 미국의 ‘오만과 편견’이 역사성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지난 2002년 부시 대통령은 반테러 전쟁의 제2단계 표적으로 이라크·이란·북한을 지명하면서 그들을 총칭해서 ‘악의 축’이라고 불렀다. 이에 앞서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당시 구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칭하는 등 세계 질서를 지배하려 들었다.

악의 축이라 일컬어지는 이라크에서는 대량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은 6자회담을 위해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초청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 이란 역시 농축 우라늄 관련 ‘이란판 6자회담’ 가능성을 여는 등 미국의 시선과는 달리 세계는 악을 지탱하는 축 따윈 없는 듯 하다.

괜한 편견으로 공공의 적이 된 카포네 역시 최근의 이라크, 이란, 북한과 마찬가지로 뉴스메이커였으며 가끔은 미디어로 인해 슈퍼스타가 되기도 했다. 카포네 역시 과장된 자신에 대한 평가를 알고 있었지만 철저히 그것을 즐겼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미디어에 이어 정부까지 그를 띄운 사례는 1930년 시카고 범죄위원장인 프랭크 뢰시가 카포네를 공공의 적 1호로 지목했을 때였다.

카포네의 죄는 그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의외로 소박(?)해서 그를 1급 악당으로 부르는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탈세, 도박, 금주법 위반 정도로 벌금을 물거나 징역을 살았다. 물론 법정 증거부족으로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갔지만 살인, 매춘, 주류밀매, 도박에 빠진 조직폭력배 두목이라는 데 작가나 기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다. 왜 유독 그만이 미디어에 의해 이렇게 침소봉대 됐는지.

마피아는 미국 미디어가 만든 허상

밀트 힌턴의 회고

금주령 시기 카포네의 고객에게 술을 배달하던 중 배달원 밀트 힌턴은 차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힌턴은 손가락을 포함해 온몸에 유리 조각이 박힌 채 병원으로 실려간다. 재즈클럽에서 베이스 연주를 하기도 하는 그의 손가락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걱정대로 의사는 손가락을 절단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곳에 함께 있던 카포네는 그럴 수 없다며 의사를 설득해 손가락을 접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의사는 카포네의 말에 따라 손가락을 꿰매 붙이는데 성공했다.

힌턴은 그로부터 70년 가까이 연주를 계속할 수 있었고 무수한 밴드에서 베이스를 도맡아 지금도 녹음에 가장 많이 참여한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힌턴은 지난 2000년 9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가락 접합수술과 수술 비용을 전부 대준 카포네의 은혜를 잊지 못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무자비한 평가 이면을 볼 수 있는 작은 일화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밀려오면서 ‘마피아’까지 들어온 것으로 생각한 미국인들의 환상이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된다. 1900년대 초 미국에 이주한 이탈리아인 중 45세 이하가 100만 명 이상 됐다. 이들 중 일부가 자생적 마피아가 된 것이다. 이탈리아 마피아가 직접 건너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이탈리아계 범죄자는 곧 마피아로 인식됐다.

두 번째 잘못 인식된 것은 조직범죄에서 카포네의 역할을 미디어가 과장한 것이다. 카포네는 사실 나폴리 출신이기 때문에 시칠리아 출신만이 가능한 마피아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언론과 작가 등 미디어는 그를 상업용 조폭 두목으로 분장시켜 우려먹기 시작한다. 실제로 법원의 판결기록에는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지만 미디어는 그를 잔인하고 짐승 같은 살인자로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 ‘성 발렌타인 대학살’(1929년 2월 14일 경찰복장을 한 일곱 명의 괴한이 기관총을 들고 벅스 모런(경쟁 밀주업자)의 본부로 알려진 한 차고로 들어가서는 신분을 확인하지도 않고 전원을 사살한 희대의 사건)에서처럼 자신은 플로리다 태양 아래 일광욕을 즐기면서 부하들에게는 비열한 짓을 시키는 악당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직에는 쓴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씁쓸하고 어두운 곳만 알리는 글쟁이들이 있는 반면 달짝지근하고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들은 카포네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를 견제했고 결코 옹호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폭력과 부패의 시대, 대공황의 시대적 산물쯤으로 여긴 것이다.

가정적이면서 하층민의 희망으로 평가되기도

이들은 카포네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과거의 이탈리아적 가치를 신봉하며 부모, 형제, 주변 인물들에게 헌신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첫 감옥살이 1년을 마친 1930년에 석방된 카포네는 자신이 운영하는 시카고 수프키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제공했다. 어떤 이들은 19세기 미국 농촌에서 영웅시됐던 살인자이자 도둑 제시 제임스(은행·열차강도로 서부의 로빈 후드로 불림)를 카포네와 비교했다.

카포네는 분명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유한 생활, 방탄유리와 장갑판 차체를 가진 자동차들,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화려한 여인들을 끼고 도시를 활보하는 모습, 맞춤 양복과 진주색 중절모 등은 그가 가진 부의 상징이며 권력과 등호가 성립되는 재화다. 이러한 요소와 카포네의 작은 선행이 어우러지면서 그는 불황기에 억압받는 하층민의 희망적인 존재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쟁쟁하고 떵떵거리던 그도 20대 풋내기 재무성 요원에 의해 탈세혐의가 입증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언터처블>은 그의 마지막 몰락을 그린 영화로 유명하다. 이후 그는 매독 증세가 심해지면서 1942년 페니실린 치료를 받은 최초의 민간인 중 한사람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병세를 되돌리기엔 상태가 너무 악화돼 있었다. 1947년 1월 시카고 공공의 적 1호 또는 하층민의 희망, 알 카포네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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