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코
정영희 지음 / 실크로드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정, 부부, 남녀 인간관계에 천착하는 작가 정영희가 5년 만에 장편을 펴냈다. 일본인 현지처의 딸로 태어난 명자 이야기 <아키코>를 출판사 실크로드를 통해 6월 말에 선보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족해체와 부부심리를 심도 있게 다뤘다.

특히 본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부계 일본인 피를 담고 사는 명자를 통해 혼혈과 순혈주의, 다문화 가정의 정체성 문제를 들췄다는 점이 또 하나 읽히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중년들의 가슴을 격하게 요동치게 하는 '첫사랑' 이야기란 점에서 흡인력을 갖는다.

40대 중반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첫사랑 운하와 명자. 이들은 이메일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시킨다. 동시에 몸은 떨어져 있지만 늘 한 공간에 함께 있음을 자위하는 수단으로 이메일을 이용한다. 이들이 주고받는 이메일은 진지하고 애잔하고 저릿하다. 때로는 사랑의 속삭임이고 고백이면서 첫사랑의 아련함과 나른함을 담은 종합선물세트다.

금융위기로 인해 구조조정을 당하고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하고 사라진 남편을 둔 명자와 결혼의 경제학에 충실한 섹스리스 부인을 둔 운하의 운명적 만남과 이별을 그린 이 작품에는 한국 사회와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구조조정에 밀려난 가장, 접대문화와 원치 않는 향응과 성(性)을 사는 남성중심의 사회, 이 때문에 서서히 붕괴되는 가정과 여성의 일탈, 결국 치유와 치료과정 없이 파국과 원위치라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사회 구조를 꼬집고 있다.

내용의 상당 부분이 명자와 운하가 주고받은 이메일로 채워져 있다. 남의 편지를 엿보는 관음을 자극 하고 중년들에겐 때론 첫사랑과 나눴던 연애편지의 아스라함을 전달한다. 태풍 매미에 뿌리 뽑힌 오동나무를 베려하자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법정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명자에게서 강한 생의 애착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끝내 작가는 그런 그녀를 어깃장 난 현실을 원위치 시키는 '제물'로 삼는다. 한 마리 나비가 돼 하늘로 날아가 버린 그녀가 과연 해체되는 현실을 얼마나 봉합했느냐에 대한 평가는 읽는 자의 몫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사라진 남편을 베트남에서 만난 명자가 남편의 현지 딸 '란'과 동병상련을 느끼는 대목이다. '란을 한번 안아주고 올 걸' 하는 부분에서 혼혈과 다문화에 상처받은 명자의 깊은 상처를 읽게 한다.

이 작품은 5년 전 펴낸 <낮술>에 들어 있던 단편 <억새꽃>을 장편으로 늘려 엮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완성한 것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수국집 아이, 아키코'란 연애소설을 출간한다고 했는데, 5년 만에 약속을 지킨 셈이다. 가락시장 인근에서 작품 활동과 함께 영희역학연구원을 하는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남은 궁금증을 풀었다.  

-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나?
어릴 때 우리 집이 '아이스케키 공장'을 했다. 가난한 시절의 '아이스케키 공장 집 외동딸'은 질시의 대상이었다. 내가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께끼 지나간다. 께끼'라고 수근 거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 간 동네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늘 외톨이로 자랐다. 요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 당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내 어릴 적 생각이 났고, 자연스럽게 혼혈아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발아(發芽)되었다.

- 아키코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나?
이 소설은 순혈주의에 상처받은 일본 혼혈아, 아키코의 러브스토리다. 아키코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신을 소중히 추억하며 간직해 줄 사람을 인간은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삶이 아무리 누추하게 바닥으로 떨어져도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견딜 수 있는 것이다.

- 아키코의 연인 운하의 부부관계가 흥미롭다.
아키코의 연인, 운하를 통해서는 도시 '중산층 가정의 부부관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한국사회에서 직장생활이란 사슬의 고리처럼 비슷비슷한 일과로 진행된다. 음주가무와 접대 문화. 그것이 비즈니스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기가 힘든 구조다. 남자는 남자끼리 놀고, 여자는 여자끼리 논다. 이혼율이 세계 2위인 나라다. 부부관계는 이미 붕괴되어 있고, 가족관계만 유지하는 가정이 의외로 많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쯤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운하 부부의 파탄은 이미 명자를 만나기 전부터 있었다. 물론 사랑한다고 '착각'해서 결혼을 한 운하와 미옥의 책임이 일차적이긴 하지만, 구조적으로 부부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음주가무'와 '접대문화' 인 우리 사회의 무감각한 도덕성에 더 책임이 있다고 본다. 

- 운하의 부인 미옥의 캐릭터가 아주 파격적인데 모델이 있나?
특정 모델은 없다. 항간에 떠도는 애인이 둘쯤은 돼야 '강남여자'라는 얘기에 상상으로 살을 붙인 거다. 얼굴 되고 돈 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여자지만 붕괴된 가정의 무너진 축을 부여잡고 원죄의식 속에 아파한다. 겉으론 쿨 한 척 하지만 이도저도 못하는 불안한 현대 여성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 '결혼은 비즈니스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미옥이 쿨하다.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길 원하나?
전업주부들의 경우, 결혼은 비즈니스고 생존의 한 방법이라 생각하면 아무리 불행하거나 사랑이 식은 결혼생활이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아이들이 상처 없이 잘 자라게 하는 것이다. 사랑과 비즈니스 어느 것도 영원할 순 없다.

 - 작품집 <낮술>에 실린 <억새꽃>을 장편으로 개작한 이유는?
원래 '수국집 아이, 아키코'로 장편을 쓰고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급하게 청탁을 해 단편으로 줄여준 것이다. 그렇게 '억새꽃'이란 제목의 단편으로 주고 난 후, 이번에 다시 장편으로 쓸 때 매우 힘들었다.

- 40대 중반 남녀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초등학교 동창인 주인공들 대화와 생각이 실감난다. 소재를 어디서 얻나?

재경초등학교 동창들의 산행 모임이 있다. 가끔 산행을 따라가서 듣게 되는 샐러리맨들의 애환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이 시대 남자로 사는 것도 힘들고 일찍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들도 외로움을 견디느라 힘들다. 한 때 '아이러브스쿨'로 연락이 닿은 초등학교 동창들이 첫사랑을 만나 가정을 깨는 일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 이메일 서신을 이용한 실험적 작품이다. 이메일은 소설을 끌어가는 주동력인데 현실의 대화와 이메일을 통한 '속내 드러냄'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좋은 질문이다. 대화란 상대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거다. 그러나 이메일을 통한 대화는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글로 말을 하므로, 일기를 쓰는 것과 같이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자신 속의 외로움에게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과 같이 더욱 내밀하게 느껴지게 된다.

- 젊어서 사랑의 리비도는 유효기간 1년 반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중년 리비도의 실체는 뭔가?
청춘이든 중년이든 '사랑의 리비도'는 1년 반이 맞다. 왜냐하면 사랑의 리비도는 화학작용이니까. 과학적으로 입증된 거다. 그러나 중년의 사랑은 삶의 아픔과 외로움을 아는 나이이므로, 생명 가진 것을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나이이므로 더욱 정신적으로 깊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화학작용이 끝나도 '휴먼적인 사랑'은 계속될 것 같다. 노년의 사랑은 더욱 애절할 것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마음의 푸른 눈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색으로 시작해 푸른색으로 끝을 맺는 함정임의 단편집 <네 마음의 푸른 눈>은 색이 주는 묘함 때문에 몽롱하다. 지극히 세속적인 듯하지만 읽고 나면 어느새 뒤통수부터 저릿해지면서 텅 비어버린다. 그녀의 글 궤적을 좇다보면 시나브로 색채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환상이 느껴진다.

<버스, 지나가다>를 내고 3년 동안 그녀는 낯선 곳을 떠돌며 그곳에서 만난 운명(작가의 말로는 운명이려다 만 것)을 엮었기 때문이다. 미완의 운명에서 완성된 운명보다 뚜렷한 푸른색을 얻어 냈다는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과 환각적 몽환이 겹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11편의 작품이 실린 이번 단편집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학동네> <세계문학> <현대문학> <작가세계>와 같은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모은 것이다. 특히 장편연재를 제외하고 지난해만 중단편을 무려 여덟 편을 발표하는 다작을 했다.

그녀는 '소설'에게 빚 갚음을 위해 쓰고 또 썼다고 한다. 그러나 쓰기는 마음먹기로 되지 않고 언제나 독기를 요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었던 것은 한 가지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내가 진 이 빚은 정녕 무엇인가? 소설가로 데뷔한 이래 나는 늘 소설에게 미안했다."

표제작인 <네 마음의 푸른 눈>에 등장하는 '일산 아이'는 외국 생활에 따른 이중 언어습득 과정에서 오는 유사자폐를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언어장애를 치료받고 있었다. 생각과 삶의 이중구조는 가끔 현실에서 달아나기 좋은 재료다. 작가는 일산 아이의 입을 빌어 이번 단편집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Nothing is real"

주제가 주는 몽롱함과 더불어 단편을 엮은 단편집을 평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작가의 의도된 주제를 한참 비켜가는 결례를 범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의도된 공통의 주제가 없는 것을 억지로 짜내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류를 피해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작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말에서 대부분 작가가 관통하는 세계를 엿볼 수 있지만 이번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작가가 숨겨놓은 '몽환의 덫'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단편집에 대한 평은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주제와 작가의 근황을 엮는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 지난해는 소설에게 진 빚이 정량적으로 단편 여덟 편 정도인 듯하다. 아니면 더 많을지도. 늘 소설에게 미안한 이유에 대해 말해 달라(책 말미 '작가의 말'과 달리).
"소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에게 온 어떤 것이다. 생애 첫 단편으로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소설가를 꿈꿔본 적이 없다(믿기에 어렵겠지만!). 데뷔 이래 늘 소설과 낯가림을 해왔고, 매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심정이었다. 데뷔 때부터 직장생활(문학사상 기자, 작가세계 편집장, 솔출판사 편집부장)과 병행하면서 창작해온 관계로 늘 부족한 시간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전업 작가 생활을 하면서 중·장편도 시도하고, 소설을 본업으로 인접 장르에 대한 글도 쓰게 되었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창작할 당시에는 유럽예술묘지기행서인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와 파리기행서 <인생의 사용>, 미술 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 에세이 작업이 몰려 있어서 소설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작품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지의 소설 청탁을 다음호로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갖게 된 안타까움, 아쉬움의 표출이다. 늘 마음속에는, 언제 한번 제대로 소설을 써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소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소설을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인간)로 섬길 때 가능한 표현이다. 나는 소설 이상의 애인을 둔 적이 없다. "

- 푸른색이 주는 이미지가 여행(또는 여정) 속에서 만난 미지의 인연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설명해 달라.
"<네 마음의 푸른 눈>에서의 푸른 눈은 심안(心眼)의 빛이다. 그것은 순간적인 찰나의 빛으로 영원한 소통이 가능한, 그러니까 훼손된 자아의 치유, 또는 소외된 자아의 만남(환원)의 순간을 의미한다. <푸른 모래>에서의 그는 소설의 여정이 작가의 여정을 이끄는 신비로운, 초월적 인연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소설처럼 일산에서 부산 청사포 바닷가에 살고 있다. 청사포는 푸른 모래의 모티브가 된 지명이다. 실제 청사포의 청은 맑을 청이지만, 이곳 해운대 청사포 사람들은 도로 표지판에서 한자의 '淸'자에서 물 수(水) 변을 지우고 푸를 청(靑) 자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맑은 모래, 푸른 모래, 푸른 뱀(靑蛇)…. 소설을 정밀하게 읽어보면 이러한 이미지와 의미의 변주가 가능할 것이다."

- 작품 속에 참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의 분신으로 숨어 있음직한 등장인물에 대해 귀띔해 줄 수 있는지. 또는 가장 연민을 갖는 인물이 있다면 이유를 설명해 달라.
"<문어에게 물어봐>는 <문학동네> 젊은 작가 특집의 '자전소설'란에 들어간 작품이다. 소설가의 소설치고 자전 소설 아닌 것이 있으랴마는, 자전이라는 타이틀을 비석처럼 거느리고 있으니 가장 흡사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푸른 모래> 또한 그렇다. 가장 연민을 갖는 인물은 <네 마음의 푸른 눈>의 일산 아이다."

- 많은 작품 중에서 11편을 묶은 의도된 주제(또는 의도한 바)가 있으면 설명해 달라.
"의도는 없다. 나는 새로움을 중요시하는 작품 스타일을 갖는 작가지만, 또한 무엇보다 자연스런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이기도 하다. 의도라고 하자면, 원래는 10편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인데, 나중에 <푸른 모래>를 넣었다.

<푸른 모래>와 더불어 같은 시기 발표한 작품은 다음 작품집에 수록할 예정인데, 그러고 보니 딱히 열한 편의 의도라기보다 책 한권의 형상을 위한 의도가 없지 않다. <네 마음의 푸른 눈>에서 <푸른 모래>로의 이행, 그러면서 푸른 빛, 환각의 현상학적 환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 지난해처럼 중·단편 다작인지 아니면 장편인지, 번역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 앞으로 작품 활동에 대해 말해 달라.
"그동안 소설집을 6권 출간했다. 그러니 중단편(거의 단편)을 50편 이상 창작한 셈이다. 장편은 두 권이고, 올해 출간 예정인 연재한 장편이 한 권이니 단편에 상당히 치중된 편이다. 처음에는 시 또는 시적인 것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호흡 면에서 나는 단편에 적합한 작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토리(서사)보다는 의미(시적 이미지)의 창출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현재는 서사와 이미지의 강한 결합을 꿈꾼다. 장편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계간 <작가세계>에 <내 남자의 책>을 연재 중이며 프랑스의 현대 작가 브누아 뒤퇴르트르의 경장편들을 번역중이다. "

- 그간 독자나 문단에 펼쳐 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해달라.
"함께 소설가의 길을 걸으며, 또 그 소설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동지감을 느낀다. 소설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치고, 오직 그것에 전념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싶다. 새처럼."

함정임은 누구?

1990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로 등단. 소설집 <이야기, 덜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 <동행> <당신의 물고기> <버스, 지나가다>, 중편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 <행복> <춘하추동> 등이 있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의 일생을 그린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에릭 바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 동화집 등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여행과 일상을 아우르는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프랑스 기행서인 <인생의 사용>, 유럽 묘지 기행서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미술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을 펴내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64 전북 김제생. 이대 불문과 졸. 한신대 대학원 문창과 졸(2006). 현 동아대 문창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낮술
정영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인터뷰] 2인칭 단편 소설집 <낮술> 펴낸 소설가 정영희

대기업에 근무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지서를 받은 가장, 헤어진 첫사랑을 만났지만 이내 죽음을 목도하는 중년, 거래처 술 접대로 만신창이 인생의 사내…. 소설가 정영희의 두 번째 단편집 <낮술>에 등장하는 군상들의 어깨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과 주변의 경계에 머물면서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투영일지도 모른다.


<낮술>은 중년의 주인공들이 각기 다른 환경에서 겪는 열 가지 ‘서글픔’을 엮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작가는 ‘너’를 앞세운 ‘2인칭’이라는 다소 낯설고 드문 시점으로 인간군상의 삶을 들춘다. 낯설음은 불편하다. 혹자는 2인칭이 등장인물의 내면을 찬찬히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선의 깊이를 준다고 하지만, 차라리 ‘그’라는 3인칭 시점이 아쉽다. 그것이 어쩌면 슬픈 우리의 자화상을 조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낮술>에서 2인칭 시점이 선사하는(?) 중년의 삶은 무겁다. 작가의 집요한 들추기, 정밀한 묘사가 주는 지긋한 가슴 누름 역시 주인공 ‘너’와 읽는 ‘나’를 얽어매면서 아득하게 낮술에 취하게 만든다. 독자들을 흥건히 취하게 만든 작가와 인터뷰를 했다. 소설가의 길로 접어든지 20년, 여전히 무명이라는 작가에게 왜 애이불비한지 속내를 물었다.


“하하하...한 마디로 문학상을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되돌아오는 답은 명쾌하면서 서늘했다. 그 속에서 우리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를 쉽게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인칭 시점을 주로 사용하는데 의도된 의미를 설명하라.

독자들은 대개 1인칭 주인공시점과 관찰자시점, 3인칭 관찰자시점과 전지적 작가시점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과서적 지식일 뿐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하나의 시점을 택한다 하더라도 문장마다 대화마다 미세한 시점의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시점대로만 서술한다면 등장인물의 어법이나 문장이 어색해져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게 된다. 일부러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소설이 아니라면 소설에 있어 자연스러움은 미덕이라 생각한다.


또한 소설에 있어 ‘낯설게 하기 혹은 생소화’야 말로 문학성의 요체라 할 수 있다. 문학이나 예술은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들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2인칭 소설의 성립여부는 문제제기 될 수 있다. 2인칭 소설의 화자가 실체를 갖춘 ‘너’라는 점에서 1인칭 소설의 화자 ‘나’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2인칭 소설의 화자나 1인칭 소설의 화자나 자신이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서술한다. 2인칭은 타인에 관해, 1인칭은 자기 자신에 관해. 그러나 소설이 주는 효과는 전혀 다르다. 2인칭은 3인칭 전지시점 보다 오히려 ‘너’의 내면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낮술>에 나오는 2인칭 소설의 화자는 ‘너’의 또 다른 분신일 수도 있다.


-단편 ‘낮술’에서 광장, 낮술, 능(陵)이 함축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광장은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만이 나무하는 ‘현대 사회’를 의미한다. 광장에 나온 너는 ‘줄서기’를 잘못했고 융통성이 부족해 정리해고 된다. 너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며 ‘낮술’을 먹는다. 여기서 ‘낮술’은 불안과 우울을 잠재우는 매개로 사용된다. 낮술을 먹으면 ‘세상은 다시 꿈속처럼’ 변한다. 다시 말해 낮술에 취해 있는 동안에는 현실을 잊을 수가 있다. ‘낮술’의 의미는 우리가 바라는 ‘피안의 세계’쯤 될 것이다.


능은 아버지를 의미한다. 어린시절의 능은 거대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 찾아간 능은 몹시 작아져 있다. 이 시대 아버지의 권위도 부권도 이 능처럼 작아져 있다. 그 옛날 아버지는 무능했지만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너는 아내에게 실직했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처지다. 단편 ‘낮술’은 얼핏 실직자에 관한 소설 같지만 사실 실직자를 소재로 야성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남성에 관한 소설이다.

 

-도시인의 비극적인 삶을 유년과 결식시켜 풀어간 글이 많은데, 그 이유는. 유년은 현재의 운명론적인 연장인가 아니면 삶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뜻인가.

아마 상처받은 영혼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설들 이야기인 것 같다. 유년, 다시 말해 세상과 처음으로 만날 때의 ‘첫 인식’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첫 사랑’이 우리의 평생을 따라 다니듯이. 그러므로 유년은 현재의 운명론적인 연장일 수도 있다.


삶에 있어 태생적 한계란 없다. 지금은 계급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받지 못한 혹은 상처 받은 영혼은 습자지처럼 얇아져 있어 조그마한 빗방울에도 구멍이 ‘펑펑’ 뚫린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는데 ‘성격장애아’처럼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도시에서의 삶에 이음새 없이 합류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상처 받지 않도록 잘 키워야 한다.


-글 속에서 현대인의 삶의 고단함 속에 포기 되어지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나 어린시절 혹은 청소년 시절에 꿈을 가진다. 그 꿈이란 매우 비현실적일 경우가 많다. 그런 꿈을 실현시키기엔 현대사회는 너무나 척박하다. 유명 화가가 되기까지 호구지책이 막연하며, 유명 작가(시인)가 된다 해도 직업으로 하기엔 불가능하다. 직업이란 밥이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꿈을 가슴에 안은 채 묵묵히 거대한 사회의 톱니바퀴의 한 나사못이 되어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못은 녹이 슬고 급기야 바닥에 버려지게 된다. 그 순간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돌아본다. 그때서야 잃어버린 꿈에 대해 가슴 아파할 수 있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근원적인 것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고 그 내면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러나 삶은 우리를 그렇게 진정으로 살아가도록 구조적으로 잘 돼 있지 않다.


-이번 단편집에 대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대 사회는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가정은 이미 증발하고 없고, 가족관계만 유지 되고 있다. 언젠가는 서로 사랑하는 남녀끼리 살고, 아이들은 사회가 키우는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이 단편집에는 현재 한국 가정의 균열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서서히 진행되는 대화 단절과 섹스리스 가정이 늘어나고, 여자들에게 애인이 생긴다.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는 걸 알지만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남편들은 모르는 척 한다. 모르는 척 못하면 이혼한다. 이혼율 세계 2위인 나라다. 한국 사회의 이 비인간화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춰봤다.


-좋은 작품을 내고도 ‘무명 20년’이라고 했는데, 우리 문단의 문제점과 대안은.

어느 집단이든 인간이 모이는 곳은 똑 같은 문제점이 있다. 현시욕과 공명심이 강한 이들끼리 ‘장’ 자리를 놓고 이전투구를 하기도 한다. 패거리문학이 성행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것만이라도 문학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곧 문학이 동호인 모임으로 전락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대안이란 없다. 그냥 그렇게 가는 거다.


중요한 것은 문학인들이 ‘재미있는 글’을 써서 외국 작가들과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나도 노력하고 있다. 또한 유명세를 한번 타면 계속 언론에서 그 소수의 작가만 확대재생산하고, 출판사가 또 거기에 춤을 추니, 신인들의 우수한 작품이 사장되는 것이 안타깝다.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해 줬으면 하는 것은 일정한 심사를 거쳐 작품집에 한해서는 전국의 도서관에 배포한 책을 사 주면 좋겠다.


-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실직자, 분단, 이데올로기니 하는 것들은 내 문학의 수단이나 배경일 뿐이다. 진정 내가 다루고자하는 것은 인간의 외로움, 그리움, 사랑, 희망 에 관한 것들이다. 생명 가진 것들에 관한 측은지심이라든가, 인간이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같은 것들이다. 다음 작품은 장편 소설 <수국집 아이, 아키코>라는 연애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한 봄날의 장례식 시평시인선 8
강정숙 지음 / 시평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소녀,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가슴팍에 켜켜이 쌓였던 분노와 그리움이 용암반죽처럼 들끓어 올랐다. 참을 수 없었던 소녀는 스승 몰래 맺힌 어혈을 토했다. 선홍빛 토악질을 들킬 새라 손가락을 깨물었다. 허공으로 퍼진 선혈이 낙하하면서 활자가 되어 박혔다. 당선이다.

지난 2002년 <흔들의자>로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시조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늦깎이로 등단한 강정숙 시인이 그간의 글을 묶어 첫 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을 펴냈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뼈아픈 과거사를 풀었다', '시집의 제목처럼 가벼움 속에 녹아든 무거움, 무거움이 밀어 올리는 가벼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곱씹다보니 단순하게 평할 글이 아니다. 개인사를 꼬깃꼬깃 담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냈다는 것은 비평시장의 '상품'이 되고자 한 것이기에 취사(取捨)의 몫은 시인의 손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천이 된 시인의 굴곡을 논하기엔 평면적인 평자(評者)의 불혹살이가 다소 가소롭다.

게다가 '비린내와 함께 찾아 온' 초경에 시인은 죽어있었고 외려 '배도 오지 않을' 폐경기에 비로소 많은 것을 비우고 새롭게 태어남을 그린 두개의 시, 두 줄의 시어를 맞닥트리고 서평 쓰는 것을 대략 접었다.

그 대신 시인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책에 있는 이메일을 이용 했지만 좀체 회신이 없다. 그래서 시인이 이끌고 있는 인터넷 시동인 카페를 수소문해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덕분에 시인과 채팅도 하고 이메일 인터뷰도 가능했다. 책에 있는 이메일 주소가 잘못된 것이란 것도 알게 됐다.

- 첫 시집을 펴낸 소감은.
"처음 책을 펴내는 사람들의 공통 심리가 대체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바로 부끄러움이죠. 내 속을 까발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 잘 쓰지 못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겠지요. 그리고 다소 막막해 지기도 합니다. 어떤 평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물론 욕심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문단에도 참 여러 계층이 존재하는 게 염연한 사실이고 보면 그 중심부에 들지 못하는 99%의 시인들, 혹은 시인 지망생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로 말해서 다 글 잘 쓰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은 오히려 재미없을지도 모릅니다."

- 유년을 거쳐 장년에 이르는 현재까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시어인 성(性, 또는 정체성)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글을 쓸 땐 크게 의식하지 못한 점이지만 막상 책으로 묶고 보니까 제게 일관되게 부닥쳐온 것들이 정체성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도 유독 외톨이(시인은 유년기를 시골에서 할머니와 고모랑 셋이 보냈다) 생활을 했던 유년기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했던 사춘기며 이후 폭력적 남성과 억압된 여성 모두에게 연민 내지 저항적 의식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내면이 결국 알게 모르게 정체성 찾기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전반적으로 은유적인 표현이 많은데 직설법을 쓰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T. S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메타포 안에서 이성과 감성은 통합된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날(膾)것이나 인접성 보다는 유사성에 바탕을 둔 은유체계 속에서 감성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좋은 글이란 진정성과 새로움을 동시에 갖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조로 등단했는데 시와 차이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차이가 크다고 봅니다. 자유시는 행보가 자유로운 대신에 자칫 개인적 사념이나 사유의 방만에 빠질 수 있고 시조는 율격의 엄격함 때문에 사유가 갇히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시의 자유로운 사유를 어떻게 정형의 틀 안에 잘 담을 것인가가 시조인의 숙제입니다.

결국은 자유시와 시조는 한 몸인데 그것을 발현해 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두 가지를 다 잘해보고 싶습니다. 시조로 입문하였으니 시조 사랑엔 변함이 없습니다. 제 다음 목표는 좋은 시조시집을 엮는 것입니다."

- 현재 동인 활동과 근황에 대해 소개해 달라.
"두 곳에서 동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2004년 첫 동인집 <이 위험한 경계>를 펴낸 '시와 색' 이라는 동인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음카페 'e시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 근황은 불교적 사유 안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애착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되도록 많은 것을 놓아주고, 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하루 중 주로 창작하는 시간과 1인3역(女婦母)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시간을 정해놓고 하진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즉석에서 적습니다. 살짝 귀띔해드리면 사실은 책을 내고 나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제 책이 혼신을 다한 열정의 산물이라 해도 많은 부분이 개인적 차원에서 머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바깥을 바라보며 시대의 아픔이나 나 아닌 타인, 혹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꺼내어 위무해주거나 다독여주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아주 유쾌한 어조로 써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 잘 키우느라 남달리 늦게 입문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써야하는 한 인격체이면서 또한 아내로서 엄마로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글로써 인정받고 싶습니다.

시인은 인터뷰 내용과 관계없이 자신의 소회를 밝힌 글에서 한발 재길 틈 없는 문단의 척박함을 슬퍼했다. 문단의 현실과 시인의 안타까움이 뒤범벅되어 다른 이의 마음까지 무겁게 한다."

"소수를 제외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각 학교의 문창과나 사회교원의 시창작반, 혹은 문화센터 회원들이 오로지 좋은 글을 쓰겠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입문도 하기 전에 지치고 좌절하고 맙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