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개 속에 축축하고 끈적이는 긴장이 있다. 팽팽하게 고조되는 공포는 한순간 선홍빛으로 폭발한다. 사방은 붉게 물들고 역한 피비린내가 풍긴다. 안개 속에 무언가 있다.

그러나 실체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왜 인간을 공격하는지. 다만 그런 것을 알아챌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긴박함과 고립만 있을 뿐.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에 들어있는 단편 '안개'의 공포는 제목만큼이나 뚜렷하지 않다. 개념의 불확실성은 두려움을 준다.

마감 시간이 코앞인데 기사가 써지지 않을 때의 조급함은 기자에겐 하나의 공포다. 이런 것들이 붉은 피와 섞이면 극한의 공포로 증폭되는 것처럼 킹은 일상에 숨어있는 공포를 교묘히 들쑤신다.

'안개'에 나오는 각양각색의 괴물들 역시 산발적이고 다양한 공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요소다. 빨판이 있는 촉수괴물, 크기가 70~130cm 정도 되고 마디가 둘인 집파리 모양의 분홍 괴물, 분홍 괴물을 잡아먹기도 하는 알비노 괴물, 거미 괴물….

이들이 안개 속에 파묻혀 온 이유는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괴물들은 인정사정없이 닥치는 대로 인간을 살육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실체를 모르는 불확실한 공포 묘사 탁월

스티븐 킹은 이러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에서 냉정과 광기를 절묘하게 끄집어낸다. 인간의 냉정과 광기는 공포를 부정하는 자기부정 형태란 점에서 같다. 그러나 그 둘은 인간에게 목숨을 건 선택을 강요한다.

또 다른 중단편 '원숭이'에서는 끊임없이 주인공의 동선을 쫓으면서 불행을 예고하는, 심벌즈 치는 원숭이 인형의 집요함을 등골 서늘하게 묘사하고 있다.

상상해 보라. 오래전 버렸던 것이 주위에서 맴돌며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을.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원숭이 인형이 겹쳐진다. 마치 한 녀석이 소설과 영화를 넘나들고 있는 듯.

스티븐 킹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다. 공포 소설의 대가며 그의 작품은 33개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뿌려졌다.

그동안 3억3000만권이 출간됐다고 하니 지구촌 가정 스무 집에 한 집 꼴로 있는 셈이다. 글쓰기로 연간 1000억원 이상 벌어들이는 밀리언셀러 작가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걸어 다니는 기업'이다.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도 크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마일>, <샤이닝> 등 대박을 터뜨린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안개' 역시 <쇼생크 탈출>을 연출한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이 영화로 기획하는 중이라니 팬은 물론 영화 마니아들에겐 희소식이다.

스티븐 킹은 누구?

ⓒ스티븐 킹 홈페이지

1947년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형이 발행하던 동네 신문에 기사를 쓰면서부터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알린 작품은 1974년 스물 여섯 살의 나이로 출간한 <캐리>. 이때부터 지난 20여년간 텔레비전물을 포함한 5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현대 최고의 공포 소설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전 세계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권 이상이 팔린 초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미국 <포브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존 그리샴, 마이클 크라이튼, 톰 클랜시 등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1996년에는 오 헨리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에서 미국 문단에 탁월한 공로를 기여한 작가에게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는 등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단편집에는 두 편의 시를 포함해 스무 편의 단편이 실렸다. 모두 그의 전성기 작품으로 채워져 킹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역자의 설명이다.

킹의 글은 단편임에도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짧은 글도 영화로 쉽게 만들어진다.

'안개', '원숭이', '토드 부인의 지름길', '뗏목', '노나', '고무 탄환의 발라드' 등은 단편이지만 사건의 처음과 끝을 묘사한 완전한 줄거리가 존재한다.

또 시간이 복합적으로 배열돼 있어 장편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짧지만 짜릿한 전율을 전달하는 작품들이다.

또 하나의 재미, 작가 후기

킹은 말한다. 단편 소설의 배경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의 배경은 학자들이나 독서광들과 분석가의 몫이다.

킹에게는 배경보다 이야기가 생산되는 '동기'가 더 중요하다. 킹은 책 말미에 작품이 생산된 배경을 친절히 설명했다.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지름길 찾는 데 미친 아내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글은 여성잡지 세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

두 곳은 여자가 서서 소변보는 장면을 문제 삼았고 한 곳은 주인공이 너무 늙어서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퇴짜를 놓았다.

킹은 이들 세 곳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한마디로 실망감을 나타냈다. 작가의 속내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재미난 부분이다.

킹의 공포는 밀도가 높다. 단편이란 형태를 취해서이기도 하지만 빠른 글쓰기가 밀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얼음같이 서늘한 생각이 녹지 않을 만큼의 시간 안에 작품을 생산해 내는 재주를 지니고 있다. 단편은 장편을 탈고하고 쉬어가는 의미로 며칠 만에 쓰는 글이라는 말도 있다. 대단한 필력이다.

세계적인 작가인 만큼 팬들도 많다. 국내에도 팬클럽이 있고 그를 위한 홈페이지도 만들어져 있는 등 공포소설 마니아들에겐 신화 같은 존재다. 이들과 함께 올 여름엔 킹이 초대한 냉탕으로 한번 빠져보는 게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