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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를 위하여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1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황제가 마치 돈끼호떼를 연상하게 한다. 일제강점기를 전후 한 시기에 정감록(鄭鑑錄)에 심취한 정씨일가의 이야기다. 장소는 계룡산 일대의 흰돌머리라는 산촌의 외진 마을의 정씨가 그 아들을 정감록에 등장하는 새로운 왕으로 생각하여 벌이는 돈끼호떼식 이야기다. 내용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벌어지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6.25의 한국전쟁과 격변기의 근대사를 아우르는 기간 동안 황제라 칭하게 되는 정씨의 일대기는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희화화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때는 정감록에 심취한 아버지의 쇄뇌와 주입식 교육에 한학에 통달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억압에 나름의 방법으로 항거하였으며, 해방을 맞아 들어 온 외세에는 나름의 주관으로 바라다 보고있다. 점차 나이가 들어 노쇄해감에 따른 몰락의 모습은 황제라는 거창한 단어를 뺀다고 하면 여느 미치광이 노인의 일대기라고 하겠다. 하지만 중국 고사에 해박한 지식과 현실에 대한 비유는 감탄을 절로나게 한다. 그렇지만 현실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여 고루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 나름 모험담에 속하는 서울 탐험 속에 기차와 배, 비행기에 대한 제작과 그에 따른 실험 정신은 남다르다고 하겠다. 결국은 시대의 교육열이 한학에 치우치다보니 서구과학문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시대의 낙오자가 되었으며, 말년에는 미치광인 노인으로 그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황제」라는 명칭이 일반동사의 의미가 아닌 별명과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 속에는 황제 이외에 그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발산, 두충, 변약유, 이현웅, 김광국, 신기죽, 마숙아, 정 처사, 등의 인물들이 그들이다. 등장인물의 면면은 다양한데 하나같이 황제와 같이 미치거나(?) 아님 미친 황제를 속이고 겉으로는 동조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실속 내지는 현실타협하여 빌붙어 있는 부류의 인물들로 보인다. 이런 인물들 속에 있는 황제는 그 태어남의 위대성(?)이나 인물의 탁월함이 있어도 결국에는 미친늙은이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찌보면 이런 인물들을 전부 황제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본인이 선택하여 받아 들였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현실 인식이라는 부분을 제외하면 탁월한 해학과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과 민족관과 역사의식은 한편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우리 주관으로 바라보는 외세에 대한 생각과 우리의 삶을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황제의 모습은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각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한다. 많은 일상의 사례를 해박한 중국고전을 통해 바라보는 통찰은 탁월하나 현실인식에 대한 몰이해로 결국은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것에는 모습이 씁쓸함을 더해 준다. 주변인물 이나 흰돌머리마을 사람들 또한 「정감록」이라는 예언서에 현혹되어 추종자가 발생하고 같이 미쳐가는(?) 모습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