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프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Stiff(스티프)”, 시체라는 뜻의 책 이름이 약간은 섬뜩한 느낌으로 와 닿는다. 책의 장정으로 그려져 있는 표지의 그림도 누군가의 죽은 시체의 발 바닥 사진과 그에 연결되어 있는 테그는 그냥 스쳐 지나면서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이나 자세히 보면 죽은 자의 발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다시 보게 되는 사진이다.
     책의 뒷면에 나온 이 책에 대한 얘기다. ‘로취는 입담과 유머를 통해 화제의 대상 사체에게 생명을 부여한다. 끔찍하게 재미있다.
     이 책에 대한 단적인 설명이다. 누구든 사체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하면 모두들 터부시 하는 내용이다. 뭔가 엄숙해지고 그 엄숙함 속에 말을 못하게 하고, 갖가지 상상을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자연이 있다. 그런 관습과 터부 속에서도 이 책에 실어 내는 시체에 대한 얘기는 재미있기 까지 하다.

     처음에 나오는 장면이 시체의 머리를 잘라 쭉 늘어 놓고, 그 늘어 놓은 머리 앞에 앉아 안면 성형수술의 새로운 방법에 대한 세미나 장면이 나오면서 작가의 상상과 각종 보고서, 서적에 대한 연관되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어느 의과대학의 실습 내용 중에는 해부학이 기본으로 편성되어 있고, 그 해부학 실습의 내용은 대부분 시체를 두고 하는 실습이고, 이런 실습 속에 비위가 약한 학생들의 구토나 견디지 못하는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의과대 풍경이다. 이런 내용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실체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작가는 그려내고 있다. 표현의 내용도 다양하다.
     시체에 관련된 이야기로 작가가 나열하는 내용은 많다. 처음의 성형외과 실습교제, 의과대의 해부학 실습 교제, 자동차 추돌 실험의 주인공, 낙하실험의 사람 대체물, 사체의 부패 정도에 따른 각종 실험과 연구의 교재로 과학수사의 기틀을 만드는 교재로서 다종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 전에 읽었던 ‘파리가 잡은 범인’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하와이를 주 무대로 죽은 사체에 발생하는 기생충의 시기에 따라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생각이 난다. 작가가 시체를 늘어 놓고 부패되어 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고 연구하는 장소에 가서 겪은 이야기는 실감나게 그려 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상상하는 광경을 생각해 보면 소름 끼치는 모습과 그 악취는 꿈에서도 나타나는 모습일 것이다.
     자동차 추돌 실험의 과정 속에 시체를 통한 살아 있는 사람의 대용물로 활용되는 장면이나, 비행기의 폭발 속에 떨어져 내려온 잔해 속에서 폭발의 원인을 찾는 단초로 활용되는 시체 조각, 총알이나 폭탄의 위력을 측정하는 대용물, 역사의 한 장면인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의 모습을 재현하는 내용, 뇌사냐 심장사냐는 논란 속에서 죽고 난 이후 심장이식이나 장기 이식에 대한 수술 장면이 그려진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에 나오는 부검 장면이 생각난다. Y라로 그려 내려간 절개 장면이나, 몇 일 전에 빌려 본 ‘배드보이 II’의 사체 속에 마약을 밀수 하는 장례업자의 얘기 등이 이런 글을 읽으면서 연상되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는 죽고 나서 화장이다 매장이다 하는 장례문화와 사후 시체처리 방법까지 다종 다양하게 시체에 연관된 내용을 그려 내고 있다. 최근 인체 탐험전이라는 프라스티네이션이라는 최근 보존 방법까지 설명하는 내용을 보니 가족과 같이 혜회동의 과학관에서 있었던 전시회가 생각난다.

     이런 일련의 시체관련 내용은 우리가 터부시하고 얘기하기 꺼려하는 모습들을 잘 설명하면서도 한번은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함을 재삼 보여 주고 있다. 간혹 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한국의 장례 문화에 대한 얘기가 생각난다. 또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로마인의 장례 문화도 생각난다. 화장(火葬)이라는 장례 문화가 최근에는 새롭게 정착되어 가는 모습이지만 이 책을 보면서 자신의 건강한 장기를 이식할 수 있도록 하고 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 소개된 각 부위별 장기의 활용이나 사지절단 등을 통해 실습교재로 활용되는 현실적인 내용을 보면 약간은 섬뜩함이 있지만 결국 죽고 나면 나를 담았던 그릇은 하나의 고기덩어리에 불과 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이런 사체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닌 살아 있는 가족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면 결코 내 만대로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죽고 나면 나의 의지를 지속시키기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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