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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가 묻는 말
김미조 지음, 김은혜 그림 / 톡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피노키오가 묻는 말
어른이 되어 만나는 피노키오의 교훈
어렸을 때부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하지만 어떻게 '피노키오'를 알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저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나중에는 해피앤딩인 그저 흔한 동화. 그 이상 알고 있는 부분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피노키오 동화가 가진 교훈이 무엇일까?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 부모님 말을 잘 듣자? 거짓말이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어른들의 설계에 아이들이 걸려든 경우가 아닐까? 좋은 방향을 위한 꾀임이니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어느덧 서른이 지나 어른이 되었다. "서른 둘" 사회가 나름 어른이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 내가 읽는 피노키오는 과연 어떨까? 피노키오는 여전히 그저 순수한 동화책일까? 무언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지는 않을지 괜시리 기대하게 된다.
"북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고 북이 아닌 건 아니잖아." p27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구절이었다. 하지만 이 구절이 나에게는 의미있게 다가왔다. 나를 부정한다고 해서 내 자신이 내가 아닌 건 아니다. 내 스스로의 모습에 자신감, 자존감은 나에게서 온다. 북소리는 소리가 날 때 비로소 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북채로 두드릴 때 비로소 진가가 발휘된다. 지금 북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할 필요가 없다. 소리가 나지 않는 북은 아직 북채를 만나지 못한 탓이다. 혹은 북채로 두드려 줄 적임자를 만나지 못한 까닭이다.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판단하지 말거라. 넌 처음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 하지 않았어. 그냥 괴물로만 여겼지. 그래서 난 네 기대에 응해 줬을 뿐이야." p43
인형 조종사에게 붙잡힌 피노키오는 위험에 처한다. 다른 이가 나쁜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말을 그저 믿었다. 험상 궃게 생긴 인형 조종사의 겉모습만 보고 그를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우리도 그렇다. 그저 사람의 겉모습으로 선입견을 갖는다.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이전에 미리 그 사람을 규정짓는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한다. 어리석은 피노키오와 닮았다.
「 피노키오는 온 세상을 빼앗긴 기분이었어요. 따지고 보면 빼앗긴 건 고작 금화 다섯 개 뿐인데요. p83 」
인형 조종사에게서 금화 다섯 개를 받았다. 여우와 고양이에게 속아 금화 다섯 개를 빼앗기게 된다. 고작 금화 다섯 개에 온 세상을 빼앗긴 기분이 든 피노키오다. 이야기 밖에서 이야기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피노키오가 어리석게만 여겨진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피노키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다름 없다. 지금 내가 빼앗긴 다섯 개의 금화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어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내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심오한 내용이었나 싶다. 그저 거짓말 하지 말아라. 놀기만 좋아하면 당나귀로 변한다. 이런 단순한 교훈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그 시절 미처 알지 못했던 더 깊고 심오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겉모습만 보고 상대를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작은 물건 하나에 집착해 큰 그림은 보고 있지 못하지는 않은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노키오를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해피앤딩의 피노키오가 이렇게 무겁게 다가올 줄은 생각치 못했다.
이 책은 내게 아이가 있다면 선물해 주고 싶다. 초등학생 쯤이면 좋겠다. 예쁜 일러스트 그림과 길지 않은 내용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은 이 책이 가진 의미를 모두 알지 못할 것이다. 당나귀로 변한 피노키오나 사람의 모습이 된 피노키오에 더 관심이 있을 거다. 그 아이가 훗날 어른이 되어 다시 이 책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이 책을 선물해 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