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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평점 :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거대한 지식을
만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대부분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서재를
갖고 싶어 한다.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다. 서재를 갖고자 한다면 빌딩 한채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이런일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다. 우리가 도서관이나 책방, 대형 서점에 갔다고 생각해보자. 그 곳의 수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도 없을거다. 그런데 한 사람의 서재가 이런 도서관, 대형 서점의 규모를 넘어선다면?
고양이가 그려진 빌딩, 20만권의 책이 가득한 서재이다. 이 하나의 빌딩이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서재다. 지하2층 지상 3층 그리고 옥상까지 6개층에 가득찬 책들, 빌딩 하나로도 부족했다. 산초메 서고와 릿쿄대학에도 그의 책이
있다. 20만권이란 책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어렵다.
차분히 고양이 빌딩의 1층부터 옥상까지 서재를 둘러본다. 빌딩 주인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친절한 설명이 함께 한다. 책은 다양한 주제와 끝 없는 그의 지식 탐구의 과정이 담겨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을 아래에
적어봤다.

사람의 죽음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
사람의 죽음이란 무엇인가(p50), 시작은
'죽음'이었다. '죽음'에 대한 관심은 의학, 종교, 뇌사, 죽음의 판정, 안락사, 바이오에식스, 출산, 마취학, 약학, 병리학 등 마치 거미가
거미줄로 자신의 집을 넓혀 가듯 지식의 범주를 쭉쭉 넓혀간다. 하나의 관심사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으로 연결되었다. 자신의
관심을 지식으로 연결시킨다는 점, 그 축적된 지식에서 끝나지 않고 정리해 새로운 책으로 출간한다는 점에서 가히 놀랍다. 그가 낸 책
'뇌사(1996)'에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뇌는
인간의 육체 안에 있는 우주라고도 합니다만,
실제로는 우주에 대해서보다
더 모릅니다. (p100)
"원숭이와 수화를 할 수 있다?" 굉장히 흥미롭고 그 가능성에 대해 궁금하다.
하지만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수화하는 원숭이를 만나러 미국으로 날아가는 이는 드물다. 그저 책을 읽고 지식을 쌓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궁금한
분야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수화가 가능한 사람을 대동해 미국을 찾아가는 그 열정이 참 대단하다.
원숭이에 대한 연구는 결국 사람의 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람의 뇌와
가장 닮아 있는 원숭이 뇌에 대한 연구는 컴퓨터, 인공지능의 기술과 연결된다. 인간의 감각과 연결해 뇌의 신호로 움직이는 하드웨어 개발은
결국 인간을 위한 노력이다.

책이 필요할 때
보이지 않으면 예전에 산 책이라도 또 사고 또 사고 그럽니다.
시간이
아까우니까요. (p94)
우리는 보통 대형 서점을 방문해 책을 찾을 때 컴퓨터 검색을 활용한다. 찾고자
하는 책을 비치된 컴퓨터로 검색하면 쉽게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고양이 빌딩 서재에 그런 시스템이 있을리 만무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예전에 분명히 구매해서 가지고 있는 책을 책을 찾다가 못찾으면 이내 포기하고 새로 책을 구입한다고 한다. 같은 책을 구매하기에
우리에게는 낭비로 보일 수 있다. 그에게는 책을 찾기 위해 허비하는 시간이 더 아까운 것이다. 빌딩 규모의 서재를 가져보지 않은 우리로서는 쉽게
공감할 수는 없으나 서재의 책들을 보니 그럴 법 하다.
철학에 관해서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입문서를 설렁설렁 읽어치운
사람과
주석이 많이 달린 전집 들을 가지고 진정 깊이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은
이해
수준이 전혀 다릅니다. (p210)
참 놀라웠다.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지식을 가져도 되는걸까? 한 분야의
전문가가 전문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은 사실 놀랍지 않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분야에 집중해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두 분야에 대한 지식이 아닌 수 가지 혹은 수 십가지, 그 이상의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면? 지식인에도 클라스가 있다면
'다치바나 다카시'는 탑 클라스다.

그렇다면 '다치바나 다카시'가 학문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떠할까?
3층의 서재를 훑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학문 접근 방식을 엿볼 수 있다.
3층 서재는 성서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그가 성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이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한 이유 중 하나의 이유는 바로 성서가 서양을
이해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성서의 원전은 히브리어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공부한다. 히브리어 성서를 읽고 이해하고 독해의 오류까지 짚어낸다.
우리의 접근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깊이 읽는다는 수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수준이 매우 높다. 그저 가볍게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으나 큰 오산이었다. 그를 잘
모르는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다양한 분야에 그의 관심사가 있다. 의학, 컴퓨터, 인공지능, 테러와 부시, 핵발전소, 태양광 발전, 성서,
그리스도, 요셉, 성모 마리아부터 코란, 한문, 장자, 철학, 신비주의 바이오에식스, 우주, 초끈이론, 레이저, 양자역학,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생리학, 비행기, 중동, 미디어, 러시아 공산주의, 현대학, 미술, 음악, 춘화까지... 책을 읽으며 기억나는 것들만 나열한
것들이다. 이 나열은 그저 일부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지식에 대한 열정은 각종 언어를 섭렵하기까지 이른다. 영어, 한문, 히브리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그의 지식에 대한 갈망과 열정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의 서재를 둘러 보면서
그의 서재를 둘러 보면서 참 부끄러웠다. 겨우 세 개의 책장이 전부인 나의
서재를 보면서 한숨을 막을 수 없다. 중학교부터 책을 모았다던 그에게는 한참 못 미치지만 지금부터라도 책을 더 많이 읽으리라 결심한다. 2년
전부터 책을 읽고 서평 쓰기를 시작한 다짐을 지속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 내 머리가 백발이 되었을 즈음, 그처럼 빌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책방
규모의 서재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수 많은 책들과 범접할 수 없는 규모의 서재는 사실 꿈과도 같다. 그 무엇보다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열정이 우리가 본 받을만한 덕목이라 생각된다. 열정을 갖고 책 읽기를 즐겨한다면 나도 모르게 지식인의 반열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서재를 꼼꼼하게 찍은 사진들을 통해 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본어를 모른다. 일본어로 된 책 제목들을 사진만 봐서는 어떤 책인지 바로 알 수가 없다. 물론 사진 옆에 설명이 있고
자세한 내용이 책에 있긴 하지만 못내 아쉽다. 책이 아쉬운게 아니라 일본어를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다.
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거 나도 읽은 책인데! 이 책 서점에서 봤던 책인데 한 번 읽어 봐야겠군... 하는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일본어를 공부해야 할까? 아니다. 더 쉬운 방법이 있다. 한국 지식인들의 서재가 궁금해진다. (웃음)
* 2013년 3월 일본에서 발간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2016년
12월 한국에 번역되어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