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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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도어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포브스,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선정한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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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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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과학 시간의 생물은 우리에게 그저 하나의 수능 과목이었다. 즐기는 대상이 아닌 익혀야 하는 학문의 일종이었고, 문제를 풀기 위해 외워야 하는 암기 과목이었다. 최근 과학 분야에서 유튜버 궤도님은 과학을 쉽고 재미있는 입담으로 알려주시는 분인데 이 책의 서두에 궤도님의 추천사로 시작된다. "유전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인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든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미공개 악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p6)" 라고 핵심이 되는 내용을 짚어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는 거다. 부담이 전혀 없다. 생물, 과학이 점수를 받기 위해 이해하고 외워야 하는 학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듯 마음 편히 즐기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나 싶다. 물론 과학이라는 게 일반인의 입장에서 깊이 파고 들수록 어렵지만 또 그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이 과학이다. 뇌 과학, 즉 우리가 흔히 지능을 측정하는 IQ 검사와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정도의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부담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할 뇌과학 도서"라며 포브스에서는 추천한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잘 키울까를 고민한다. 아이들마다 키우는 환경은 비슷한데 타고난 기질이나 생각이 판이하게 달라 많은 부분 유전적 영향이 있음을 실감한다. 나를 똑닮은 아이가 내 성격까지 닮은 듯 하여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씩 궁금증이 생겨났다. 아이의 가능성을 어떻게 활짝 열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유전적으로 얼마나 나를 닮았을까, 더 좋은 환경으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방법은 무엇일지, 어떠한 경험을 하게 할 때 아이에게 좋을지 등 아이를 바르고 현명하게 키우고 싶은 한 부모의 심정에서 이 책의 내용이 심히 궁금했다.


책이 많은 집에서 자란 아이의 IQ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렇다면 독서량에 따라 IQ도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독서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편이다. 이와 별개로 그러한 상관관계는 단순히 IQ가 높은 부모의 집에는 많은 책이 있을 테고, 그들이 높은 IQ를 자녀에게 물려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반영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사회학적 상관관계는 유전적일 수 있는, 사실상 유전적일 확률이 높은 요인과 얽혀 있어서 해석이 매우 복잡하다.

제 2장 유전의 세계 (p60)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책에 언급되어 참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해서 집에 책이 많은 편인데, 어린 시절에 집에 책이 많지 않았고 많이 읽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의 환경이 책을 좋아하는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알기가 어렵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책에 대한 갈증이 발현된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주자는 결심때문에 원하는 책을 사주어 집안 어디에서든 책이 손에 닿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완벽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다. 유전적 요인이냐 환경적 요인이냐를 두고 확실하게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수는 없다. 두 가지 모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가 IQ가 낮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높은지도 잘 모르겠고, 아이의 IQ는 아직 측정할 단계의 나이도 아니기에 어린 시기에 책을 많이 접해 IQ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한 사람의 손잡이 성향을 보여 주는 두 가지 결과를 상상해 보자. 누군가에게는 오른손잡이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매우 깊고 입구도 넓어서 공이 거의 항상 그쪽으로 빠질 것이다. 이때 돌덩이를 100번 굴린다면, 왼손잡이 쪽 골짜기로 빠지는 횟수는 고작 한두 번뿐일 것이다. 반면 실제로 왼손잡이인 사람이라면 지형이 다르게 형성되어 왼손잡이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로 향하기가 더욱 쉬워지면서 10~20번은 그쪽으로 굴러갈 것이다.

이는 손잡이 성향 외에도 뇌전증이나 자폐증, 조현병과 같은 임상 결과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들 질환의 유전 역시 확률적으로...

제 4장 똑같은 것은 없다 (p127)




수정란에서부터 사람의 뇌가 만들어지는 과정, 몸의 세세한 부분들이 만들어지고 결정되는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일들이 발생한다. DNA에 돌연변이가 생겨날 수도 있고, 어떠한 잡음에 의해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유전적 성향, 질병 역시 공을 던져 어떠한 한쪽 골짜기로 빠지는 것처럼 결정되어 지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공이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다.

문득 지금 이렇게 한 사람의 몫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골짜기를 굴러가는 공이 예상되는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참 운이 좋게도 유전 질환이 없는 골짜기로 갔다는 것이 새삼 경이롭기도 하다. 내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그깟 IQ 점수가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IQ 검사는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니며, 그동안 다양한 인구 집단의 수행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중략) 평균 점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꾸준히 상승한 것이다. ...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행 능력이 향상된 덕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최초 발견자인 제임스 필린의 이름을 따 '플린 효과'라고 부른다. ... 더 나은 영양 상태, 전반적으로 향상된 산모 및 아동 건강 등이 포함된다. 이 모든 요인이 두뇌 발달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고 본다.

제 8장 사고의 진화 (p265)

플린 효과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매우 흥미롭다. 영양 및 건강 상태, 교육 수준의 차이가 IQ 점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볼 때 환경적 영향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가 경쟁력은 사회의 교육 수준과도 연결이 되기에 교육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국가 전반적 IQ가 올라가는 현상을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적인 부분이 영향력이 적다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으로 잠재력이 내재하고 있고 환경적인 여건이 마련된다면 그 지능은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아닐까.

알면 알수록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유전적 요인이 큰 것 같으면서도 환경적 요인이 더 중요한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유전적 요인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참 복잡하고도 아리송하다. 그렇기에 이 뇌과학 분야가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과학자들이 궁금해 하는 게 아닐까.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천재성이 돌연변이의 효과라고 보는 측면이다. 천재가 나온 친척들이 모두 높은 IQ를 가지지 않고, 가족들이 대부분 평범하다. 일부 자폐성, 서번트 능력 등으로 보아 천재성은 일반적이지 않은 형질의 발현으로 보는 것이다. 뛰어난 인물이 일란성 쌍둥이어야 같은 천재성을 보이는지 검증이 어느 정도 가능한데 이런 사례가 없으니 검증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란성 쌍둥이가 서로 다른 성별일 때, 한 명이 동성애자라도 다른 쌍둥이의 성적 지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뇌의 남성화와 여성화가 서로 별개인 유전자 집합에 따라 조절되는 능동적 과정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다시 말하면 이성애가 기본값이 아니며, 독립적인 두 가지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경로에 영향을 주는 돌연변이는 대부분 다른 경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제9장 그와 그녀 (p312)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다. XX염색체와 XY염색체로 구분되어 진다. 남성과 여성이 뇌가 형성되는 과정부터 그 차이가 확연하며 발달되는 부위도 상당 부분 다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의 작용으로 남자는 더욱 남성스럽게 여자는 더욱 여성스럽게 성장한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부분이 흥미로웠다. 결론적으로 성적 지향의 차이를 유발하는 유전적 변이 대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몇몇 이론적인 가정은 존재하지만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 유전적 영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초기 단계서 호르몬 신호 변화로 인한 영향일 것이란 부분에 높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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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열린책들 세계문학 295
허먼 멜빌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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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BBC 선정 가장 영량력 있는 소설 100선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중단편집



작가 허먼 멜빌(1819~1891)의 대표작 <모비 딕>(1851)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다른 소설들에 대해서는 아는 정보가 없었다. 미국의 대문호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출간 당시 외면 받았으나 뒤늦게 인정 받으며 걸작으로 평가된다. (나는 아직 읽지 못했는데 꼭 읽고 싶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찾아봤고 <모비 딕> 이외에 한글로 번역된 다른 책들이 많지 않다.

<필경사 바틀비>는 허먼 멜빌의 대표 단편소설이다. 허먼 멜빌의 작품 스타일은 은유적, 비판적, 철학적, 모호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 작가 허먼 멜빌의 작품 스타일을 미리 만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모비 딕>과는 그 결이 살짝 다르다고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고 또한 이 <필경사 바틀비>만의 매력과 그 가치가 충분히 있기에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열린책들의 <필경사 바틀비>는 총 5편의 중단편 소설들이 담겨있다. 필경사 바틀비는 80여 페이지, 빌리 버드는 약 180페이지의 분량으로 중편의 분량이며, 나머지 3편은 약 20~30페이지 정도의 단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단편들은 <모비 딕>이 세상에 나온 이후의 작품들이며 짧지만 결코 그 무게감과 작품성은 가볍지 않다.

  • 필경사 바틀비 (1853) - 82페이지

  • 총각들의 천국, 처녀들의 지옥(1855) - 32페이지

  •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1854) - 32페이지

  • 행복한 실패 (1854) - 18페이지

  • 빌리 버드 (1924) - 176페이지



필경사 바틀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바로는 필경사들에 관해 쓴 글이 아직 하나도 없는 것 같다.

p9

제목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면 좋다. 필경사는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사람을 뜻하며, 바틀비는 변호사 사무실에 필경사 업무를 위해 고용된 인물이다. <필경사 바틀비> 소설을 읽고 좀 당혹스러웠다. 무슨 내용인지 단번에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틀비의 행동이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고 소설을 다 읽어도 어렴풋하게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기에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상상을 할 뿐이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기에 검색을 해보았고, 바틀비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 개인의 소외 및 무력감에 대해 다루고 있고, 비폭력 저항의 인물로써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우울증에 걸린 한 청년으로도 볼 수 있는데, 무기력하고 삶의 의미를 상실해 스스로 사회적 단절을 선택하고 있다.

바틀비가 자신의 그 은밀한 처소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채,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온화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어이가 없고 황당해서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한번 상상해 보라.

p27

조금 이상한 혹은 내가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사람에게 더러 4차원이라는 표현을 쓰곤한다. 일반적이지 않고 그 행동이나 말을 이해하기 힘들기에 엉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4차원이라 말하는데, 나는 이런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바틀비에 대한 분석의 내용을 접하고 다시금 바라본 바틀비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이전에는 단순히 이상해서 멀리하고 싶은 사람으로만 느꼈다면, 이제는 우리가 보듬어 주고 보살펴야하는 대상으로 여겨졌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바틀비가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근무하다 해고되었다는 부분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죽어가는 편지들을 처리하는 업무가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을지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마지막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p87)"의 탄식에서 강한 연민과 깊은 여운을 느낀다.


빈자의 푸딩, 부자의 빵 부스러기

행복이란 무엇인가

<빈자의 푸딩>이 어찌나 쓰고 곰팡내 나는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한 입 떠서 조금 먹었을 뿐인데도 목에 턱 걸려 삼킬 수 없을 정도였다.

p159

상황 1 빈자의 푸딩 역시 처음 한 번 읽었을 때는 좀처럼 무슨 내용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 번 더 읽으면서 내용과 상황과 대화에 숨은 뜻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해가 되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짧은 단편이 이런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

화자가 가난한 시골 집에 방문해 콜터 부부의 환대를 받는다. "아이들을 먼저 떠나 보낸 어머니의 창백함이었다(p150)" 을 통해 아이들을 잃은 가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정에서 부부는 서로를 위하고, 슬픔보다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그토록 고대하던 빈자의 푸딩을 맛 보고 상당히 실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주 환경이나 음식이 소박하나 그들의 모습은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인다.

"앞으로 누구든 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잘난 체하며 나한테 <빈자> 어쩌고저쩌고하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걸세 ─ 나는 절대 그런 말을 쓰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야.(p161)" 단지 가난하다고 해서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환기가 되지 않아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지만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얼마나 인심 넉넉한, 정말 관대하게 베풀어 주는 고귀한 자선 행사인지! 영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하는 광경 아닌가요? 영국은 걸인들에게도 황금빛 젤리를 먹이는 나라인 거죠.

p170

상황 2 부자의 빵 부스러기는 풍자의 극치를 보여준다. 풍족하고 세련된 곳이지만 무언가 쓸쓸하고 배려가 없는 '풍요 속의 빈곤'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걸인들에게 황금빛 젤리를 먹인다는 것에 우리는 이상함을 느끼지만 그들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정말 빈곤한 이들을 위한 자선이 아닌 자신들이 그들에게 나눈다는 행위에 만족을 느끼는 모습을 보인다.

전체적으로 두 이야기를 대비시키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끔 현실을 보여주는 형태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행복을 진정으로 알고 정말 행복하다 말하기도 애매하고, 부자들의 모습이 그렇다고 엄청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다. 각자 자신의 상황 안에서 그저 살아간다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감정, 생각 등이 혼란스럽게 섞이는 느낌이다. 내 스스로 무언가 결론을 지으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빌리 버드

멋쟁이 배꾼, 베이비 버드

단단한 체격과 도덕적 품성, ... 그 <멋쟁이 배꾼>은 달랐다. ...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기에, 그보다 능력이 뒤처지는 동료들에게서 진정한 찬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 그 인물이 바로 18세기 마지막 10년이 끝나갈 무렵 영국 함대의 앞 돛대 망루꾼이었던 스물한 살의 빌리 버드,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서는 더 친숙하게 <베이비 버드>라고 불리던, 눈이 하늘을 닮은 빌리 버드였다.

p200

"영국인이었던 잭 체이스, 그 사람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p195)"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멜빌이 군함에서 직접 겪을 일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처음엔 이 문구를 보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다 읽고난 후 다시 본 이 첫 문장이 주는 감흥이 남달랐다. 멜빌이 실제 비슷한 경험을 했다하니 더 다르게 느껴진다.

누구보다 바르고 품성이 곧은 어린 청년 <빌리 버드>는 우연히 군함에 오르게 된다. 바른 행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던 빌리 버드는 심성이 곧고 바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으나 오히려 그런 면이 심성이 뒤틀린 부사관 클래거트의 눈에 거슬리게 된다. 그 작은 거슬림이 점차 커지면서 빌리가 반란을 모의한다는 거짓을 함장에게 고하기에 이른다. 거짓 모함에 당혹스러운 빌리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분노와 당황에 의해 글래거트를 한 대 치는데, 클래거트는 쓰리지고 죽음에 이른다. 군법에 회부된 빌리, 군법과 양심에 갈등하는 함장, 이런 상황에서의 주변인들. 결국 빌리는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교수형당한다.

「비어 함장님께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로 그 순간 그들의 가슴속에는 오직 빌리만 존재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빌리 한 사람만 보였을 것이다. (중략) 그와 동시에 모든 사람이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선 채 얼굴을 들어 바라보는 가운데 빌리의 몸이 공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활짝 핀 장미꽃처럼 붉은 여명의 빛줄기를 한 몸에 받으며, 그렇게 공중으로 올라갔다.

p350

비극적 결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순수하고 바르게 살았던 빌리의 단 한 번의 실수, 거짓 선동으로 죽음에 이른 클래거트, 법과 정의 사이에서 무엇을 따르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함장의 고민 등 다양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소설 속에서도 모두가 고민한다. 그럼에도 법을 어긴 사람에게 얼마나 관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쉽사리 답을 하기가 힘들다.

바르게 살아온 <빌리 버드>에 대한 희망찬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그 내용은 완전히 반대였다. 마지막까지 나에게 던지는 이런 질문이 상당히 무겁고도 세련되어 멜빌에게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렇기에 더욱 <모비 딕>이 궁금해진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만나게 해준 멜빌에게 경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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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그럼에도, 나는 말했습니다 - 직장맘·대디 11인의 인터뷰집
서울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 서울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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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말했습니다>는 알라딘에서 e북을 무료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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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대디 11인의 인터뷰집"

그럼에도, 나는 말했습니다

-서울특별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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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기준 0.55명으로 세게 최하위 수준입니다.

펴내는 글 (p4)

참으로 불편하지만 명확한 사실로 책의 내용은 시작된다. 이 책은 수익을 목적으로 펴낸 책이 아니다. 오로지 직장맘, 직장대디를 위해 서울특별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에서 펼쳐낸 무료 책이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육아휴직 혹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의 권리를 사용하면서 실제 겪었던 부당한 일들과 이를 헤쳐나갔던 11명의 실제 사례들을 인터뷰 내용을 통해 담고 있다. 육아 휴직 제도를 사용함에 있어 법적으로나 인식으로나 확실히 과거에 비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길이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제도는 마련되었지만 인식은 아직 멀었다


나 역시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책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했다. 나의 아내는 둘째의 육아휴직 후 복귀시 15분 거리의 본사로의 복귀가 아닌 2시간 거리의 타지역, 다른 부서, 전혀 다른 업무로 전근을 권유받았고 고심 끝에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었다. 사실 이런 부당한 상황에 처해도 회사는 교묘하게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육아휴직 복귀자의 실질적인 사직을 유도한다.

각기 다른 11인의 이야기는 실제로 나와 내 주변에서 쉽사리 만나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대부분 육아 휴직 제도를 이용한 후 부당한 불이익들을 받지만 감내해야만 한다. 분명 그런 불이익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었나 싶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법적으로 보장 받는 제도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회사와의 갈등을 감내해야 하며 눈치를 봐야만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암담하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람들의 인식이다. 제도가 뒷받침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견고해질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점차적으로 개선이 되어야할 부분이며 지속적인 노력이 이루어 질 것이라 믿는다. 다만 기업을 운영하는 운영진들의 인식의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대기업이 그나마 여건이 낫다고 할지라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육아 휴직 혹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근무를 사용함에 있어 눈치를 봐야하고 노는 사람 취급을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조차 과거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에 두고 각자의 육아 환경은 무시한채 육아 휴직을 하는 사람들이 놀러간다는 인식을 갖는 오해를 일삼는다. 육아를 함에 있어 주변의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맞벌이로 인해 아이의 등하원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또한 고위험군 산모의 경우도 있기에 각기 다른 상황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일과 육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거의 잘못된 문화와 인식을 벗고 좀 더 나은 아이를 키우기에 문제가 없는 대한민국으로 더 발전해야 한다.





어느 직장대디의 가족돌봄제도 도장 깨기

직장대디 김원철(가명) 외국계 대기업 종사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사례 (p28)

해당 내용을 통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6개월 이상 재직한 근로자가 초등학교 6학년 이하 자녀가 있는 경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신청할 수 있다. 엄마, 아빠 모두 사용이 가능하며 특별 사유가 없는 한 회사는 승인을 해야 한다. 단축 근무의 방법은 근로자가 정할 수 있으며, 사업 운영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1주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의 범위에서 출퇴근 시간 및 근무 시간 조정을 근무자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주5일이 아닌 주 2일 혹은 주 3일과 같은 방식으로도 출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살짝 놀랍기도 했다. 물론 단축 근무에 따라 급여가 그만큼 줄어든다. 급여가 줄어들더라도 어린 시절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원철님은 판단했다. 이런 부분만 보더라도 법이 상당히 근로자의 편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제도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부서 변경, 승진 누락과 같은 불이익이 뒤따랐지만 부당함 속에서도 아빠의 자리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일과 공동체가 우선시되는 사회다. 가정과 아이가 있는 가족의 삶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하는 대한민국의 과거 성장 동력이 오히려 현재 우리 삶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의 공동체보다 가족을 보살피는 공동체로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쌍둥이 직장맘의 죽거나 혹은 버티거나

직장맘 박민지(가명) 공공기관 행정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사용 사례 (p104)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승인 받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승인을 받은 이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공공기관 행정직으로 쌍둥이를 키우는 직장맘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했으나 업무량이 줄어들지 않아 실질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다.

줄어들지 않은 업무량으로 인해 연장근로까지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서류상의 근무시간은 줄어들었고 임금도 줄었지만, 업무량은 그대로이며 연장근로수당을 신청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제대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상급자에게 시정 요청을 했으나 모른채하고 도움을 주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업무를 적절히 분배하고 관리 감독해야하는 상급자가 모르쇠로 관리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답답하고 피해를 보는 것은 그저 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인 것이다.

그럼에도 힘든 과정이었으나 부당한 상황에서 센터의 도움을 받아 불이익을 해결해 나갔다.






고위험군 외국인 직장맘의 출산휴가·육아휴직 분투기

직장맘 왕희(가명) 무역회사 무역업무 사무직

육아 휴직 사용기 (p157)

출산전후휴가를 사용함에 있어 회사는 자진퇴사를 권유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는 퇴직의 위험을 감수하고 제도를 사용하겠다고 말해야하는 현실인 것이다. 무역회사의 특성상 중국어, 영어, 한국어에 능통한 직원이 필요했기에 나름 인정 받은 직원임이도 불구하고 회사는 차갑게 돌변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체인력으로 들어온 새 직원이 업무가 힘들다고 그만두면서 출산휴가 후 복직한 왕희님을 회사에서는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이래저래 회사에 실망해 이직하려 마음 먹은 왕희님은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근로자가 관련 법에 대해 미리 잘 알고 있었던 부분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회사는 육아 휴직 관련 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알고 있다고 해도 색안경을 끼고 제도 이용자를 바라본다. 인식과 관련된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관련 법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근로자의 권리를 챙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의 도움

직장 내 고충, 노동법 상담, 일반 법률 상담, 심리 상담 프로그램 운영 등

이 책에서는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다양한 육아로 인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안내하고 설명하고 있다. 관련 법령들도 정리해서 인터뷰 및 사례를 통해 이해가 쉽도록 돕는다.

좋은 선례를 남긴다는 표현이 멋있기도 하고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려면 근로자가 회사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정부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실제 근로자는 아이를 키우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심지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궁지로 내몰리는 현실이다.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근로자를 돕는다. 온라인 상담, 전화 상담, 카카오톡 상담, 방문 상당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직장맘, 직장대디들을 돕는다. 관련 법과 판례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를 제공하고 안내한다.

임신, 출산, 육아기 노동법 전문가의 1:1 상황별 맞춤 상담, 변호사, 노무사의 상담 및 소승 등 사권 지원까지 도움을 준다.

센터는 모든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도록 함께하겠습니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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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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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헤르만 헤세 선집


WOLKEN [(독일어)볼켄 - 구름들]




'선집'은 여러 작품을 골라 모은 모음집이란 뜻으로 앤솔로지(Anthology)라고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선집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연구하고 편집하는 데 몰두하는 '폴커 미헬스'가 헤세의 글을 엮어 펼쳐낸 책이다. 헤세의 시, 에세이, 작품 속의 일부 글들을 발췌해서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의 주제는 바로 '구름'이다. 헤세는 구름을 통해 많은 영감을 이끌어 냈다. 헤세가 지끔까지 펼쳐낸 작품들 중에서 구름과 관련된 내용들이 엄선되어 이 책에 담겼다. 하늘에 떠 있는 저 구름이 이토록 다양한 이름과 이토록 다채로운 색의 구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구름의 여러 형태와 색이 묘사된다. 

"이 넓은 세상에서 나보다 구름을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헤르만 헤세의 첫 장편소설『페터 카멘친트Peter Camenzind』에서 어쩌면 가장 인상적인 대목일지도 모를 한 대목은 이 외침으로 시작한다.

후기 (p155)

사실 우리에게 구름은 그저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얗고 동그란 것에 불과하다. 푸른 하늘과 함께 떠 있는 구름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사실 그뿐이다. 그런데 구름을 정말 좋아하고 구름에 많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니. 헤세에게는 이 구름이 정말 신비하고도 아름다우며 동시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샘솟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 구름을 사랑했다는 표현이 맞다.

구름은 오랜 세월 헤르만 헤세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중략) 종잡을 수 없는 구름의 비행은 방향에도 지속에도 구속되지 않으며, 손으로 잡을 수 없고 그저 눈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은 그런 구름을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으면서도 그 이미지를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으로 만든다.

파울 튀러 (p5)

작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선집은 매우 흥미로울 수 있다. 구름은 헤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헤세는 구름에 대해 정말 다양한 지식을 가졌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구름의 모양과 색을 표현한다. 때로는 멈춰있고, 시시각각 움직이는 구름을 통해 그 감정을 투영시켜 그 상황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순간 태양의 어둡게 타오르는 시선이 그리움을 담은 구름에 닿았다. 환한 깃털 같은 구름이 뜨거운 전율 속에서 불타올랐는데, 어찌나 붉고 또 붉은지 제노바의 언덕 위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걸려 있는 듯 했다.

아름다운 구름 / 1902년 (p54)

노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태양에 의해 붉은 노을이 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횃불이 걸려 있다는 표현과 그리움을 담은 구름에 닿았다는 이 표현. 시적이고 감성적이며 다채로운 이 표현들은 헤세의 방식으로 하늘 위 마법 현상을 표현하고 해석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헤세의 자연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자연 경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헤세의 표현들을 음미하다보면 그 자연 경관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것과 예술만큼 그 자체로 명랑하고 사람을 명랑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우리가 아름다움과 에술에 푹 빠져 그것들을 통해 자기 자신은 물론 세상의 온갖 시름을 말끔히 잊는다면.

굳이 바흐의 푸가나 조르조네의 그림일 필요는 없다. 흰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한 조각이나 부채처럼 펼쳐진 유연한 갈매기 꽁지깃이면 충분하고, 아스팔트 위 기름 얼룩에 비친 무지갯빛이면 족하다. 아니, 그보다 더 사소한 것도 상관없다.

아름다움의 지속 / 1951년 (p99)

이 구절을 읽고 한동안 감탄했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여행 중에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이제는 내 마음에 들어 온다. 푸르른 하늘과 뭉게 구름, 울창한 나무들이 특히나 그렇다. 이 셋이 조화롭게 차창 밖으로 내 앞에 펼쳐지는 경우, 나는 감탄하고 그 여행이 충만해진다. 아름다운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는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여행을 떠나고 싶은가 보다.


헤세는 조금 더 사소한 것에도 아름다운 것, 예술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오늘 하루 하늘을 바라보며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도 참으로 갚진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구절을 통해 깨닫는다.






때때로 저녁 무렵, 나는 그렇게 앉아 저 위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떠가는 저녁 구름을 바라볼 때면 행복에 가까운 감정에 젖는다. (중략) 세상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눈으로 조용히 주의 깊게 관찰하기만 하더라도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사실이지. 세상이 총애하는 성공한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세상을 구경할 줄 아는 기술은 훌륭한 예술이야. 그것도 정교하고 치유적이면서 종종 무척 즐겁기까지 한 예술이지!

저녁 구름 / 1926년 (p132)

어쩌면 가난한 시인의 자기 위로일지도 모르겠으나 헤세는 저녁 구름에서 이 예술을 배웠다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 말하건만 그들도 모를 특별한 이유도 없기에... 여기에서도 우리는 헤세가 허름하지만 훌륭한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석조 발코니에서 저녁 구름을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뷰가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일과 후에 잠시나마 유유자적 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을 즐기며 행복에 가까운 감정에 젖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무척이나 즐거고도 훌륭한 예술과도 같은 일일테니 말이다. 






헤르만 헤세 작품들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은 필독서로 여겨지는 그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한글로 번역되어 만나볼 수 있으며 다양한 번역본이 존재한다. 헤세의 작품을 하나씩 읽어봐야 겠다.


1904년 페터 카멘찐트 Peter Camenzind

1906년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1910년 게르트루트 (봄의 폭풍우 or 사랑의 3중주) - 음악소설

1914년 로스할데 (Rosshalde) - 화가소설

1915년 크눌프 (향수)

1916년 단편 청춘은 아름다워라

1919년 데미안 Demian -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1920년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 Klingsors Letzter Sommer

1922년 싯다르타 Siddhartha

1927년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

1930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ß und Goldmund (지와 사랑)

1932년 동방 여행 Journey to the East

1943년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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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 우리말로 노래하는 식물도감
최종규.숲노래 지음, 사름벼리 그림 / 세나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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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나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어른도 어린이도 모두 볼 수 있는 동시집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요즘 제법 책을 읽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의 추천 책을 읽고 재미있다며 같은 작가의 다른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읽곤 합니다. 얼마 전 딸은 안녕달 그림책을 읽고 안녕달 그림책 시리즈를 사고 싶다고 말했고, 저는 안녕달 그림책 5권 세트를 딸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저 책에 조금씩 관심을 갖는 딸의 모습에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얼마 전 딸은 책장 한 켠에 있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을 펼쳐 읽더군요. 익숙치 않은 단어들이 제법 많이 나오지만 그 뜻을 저에게 물으며 시를 읽는 모습이 정말 대견해 보였습니다. 아이가 읽기 좋은 동시집 하나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는 딸과 함께 읽고 싶은 동시집입니다. 자연에서 만날 수 있는 나무와 식물들이 시의 제목이며, 아름다운 한글의 맛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어른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단어지만 막상 설명하라면 설명하기 쉽지 않은 우리말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이 동시집은 아이가 읽어도 좋고 어른이 읽어도 좋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기에 아주 좋은 동시집입니다.



동시집, 시집은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빨리 읽거나 많이 읽는 것이 목표가 아닌 글을 느끼는 것이 주요 목표이니까요. 어렸을 때 시가 참 어렵게 느껴졌어요. 시험을 볼 때면 그 정해져 있는 정답과 같은 느낌이 저에겐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아이에게 동시는 그저 동시였으면 좋겠어요.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풀기 위해 읽는 시가 아닌 문학의 감수성을 건드려 주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책의 왼편에는 시 본문이 나오고, 오른편에는 직접 동시를 따라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시에 나온 어려운 단어에 대한 뜻풀이 혹은 작품 해설이 같이 있어 좋았습니다. '토끼풀'이 이웃나라에서 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어요. '네잎클로버'라고 하지 않고 '네잎풀'이라 말하고 있네요. 외래어가 아닌 우리 말을 사용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동시집이라고 해서 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낯선 단어들이 많이 등장해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시를 읽어 나가면 마치 들판에서 들꽃과 이슬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싸르랑싸르랑 우는 들벌레 소리를 듣고 싶어집니다.




씨앗의 신비함을 느껴볼 수 있는 동시라 기억에 남습니다. 씨앗이 자라 줄기가 오르고, 나비가 앉으며, 참새 딱새 박새가 쉬어가며,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람이 타고 올라간다니 낭만이 가득합니다. 아이와 함께 씨앗을 보면 이 동시가 떠올라 이 페이지를 펼쳐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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