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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갈래 길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세 갈래 길
책을 읽는 중에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이 책은 소설이야?"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책을 중반부까지 읽은 나는 이 책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소설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매우 사실적인 내용은 담은 '래티샤 콜롱바니'의 장편소설이다.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바들라푸르의 스미타는 인도에서 가장 하층민 '불가촉천민'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의 팔레르모에 살고 있는 줄리아. 파산 위기의 공방을 살려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리고 캐나다 몬트리올의 사라. 유능한 변호사로 유리천장을 뚫고 전진하는 그녀는 어느 날 유방암 선고를 받는다.
이렇게 세 여인이 등장한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세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무언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원제 <라 트레스>는 프랑스어로 '세 갈래로 나눈 머리카락을 서로 엇걸어 하나로 땋아 내린 머리'를 뜻한다.
어쩌면 이 세 여인 중에서 가장 가진 것이 많은 사라는 이 소설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하층민 스미타로 부터 선물을 받는다. 그 선물은 파산 위기의 공방의 책임자 줄리아의 노력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귀한 물건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기분이 찜찜했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가슴아프고 힘든 일도 없다. 동시에 이러한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음을 감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나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작별하기 전 락슈마마는 한숨 쉬듯 말을 건넸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p184)
세상에서 가장 하층민의 존재로의 삶은 과연 어떠할까. 책에서 다뤄진 '불가촉천민'의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똥을 긁어모아 버리는 일을 하며 제대로된 품삯도 받지 못하며 교육의 기회도 받지 못하는 벌레보다 못한 그들의 삶은 정말 사실인지에 대해 의문일 정도로 비참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줄리아는 파산 위기의 공방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생각한다. 스스로 원하지 않지만 공방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그녀는 자신의 사랑보다 앞서 가족과 공방을 생각한다.
힘겹게 유리 천장을 뚫고 로펌의 최고 자리까지 넘보는 유능한 변호사인 사라는 앞 길이 창창한 40대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아이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그녀는 일에서 최고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그녀에게 유방암 선고는 지금까지 힘겹게 이뤄놓은 유능한 변호사에서 환자노 탈바꿈하게 하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이 고난에서 벗어나려면 기적이 필요해" (p190)
세 여인의 비참하고 고단하고 막막한 현실이 담겨 있다.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처절한 몸부림 없이는 이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하얀 욕조 속에 빠져버린 거미와 같다랄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욕조를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활기차며 희망적이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기적이다. 그 기적은 노력하고 구하는 자에게 온다. 이 세 여인의 공통점은 바로 돌파구를 찾아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 돌파구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쉽지 않다. 방해하는 세력이 강건하고 방해도 한다. 하지만 그 고생을 받아들이고 험난한 길을 헤쳐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앞으로의 그 길이 더욱 험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여인들은 문제 없이 그 험난한 길을 나아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까지 잘 해왔듯이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난 정말 멀리서 왔어. 그렇지만 이런 고생은 당연한 거지.
비슈누 신은 자신에게 오는 길을 험난하게 만들어 놓으셨거든." (p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