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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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평범함 사람들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들




중국 작가들의 소설들 중에서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작품들이 많다. <9천 반의 아이들>이 나에게는 딱 그러했다. 우리에게 이질적인 중국 문화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국과의 정서가 비슷한 듯한 그들의 문화가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서 공감, 희망, 좌절,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1997년의 일이다. 둥베이 지역의 교육 제도에 변화가 있었다.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략) 초등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받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과 달리 시험에서 1등을 한다 해도 별도로 9000위안을 내야 입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학교를 '9000반'이라 불렀다.

9천 반의 아이들 (p11)

총 10개의 단편이 담겨 있다. 그 중 단연코 책의 첫 번째 소설 <9천 반의 아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의 시각에서 펼쳐지는 중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리모의 시선에서 그러지는 중학생 시절이다. 안더례라는 독특한 친구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뇌가 너무 뛰어나 현실 세계가 받아 들이지 못하는 듯한 안더례의 천재성은 가히 놀랍다. 수학적 사고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축구에는 젬병인 안더례다. 안더례의 도움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한 리모에게 해외 유학의 기회가 찾아온다. 허나 선생은 불법 과외 중인 쑤이페이페이를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1등으로 만들어 해외 유학을 보내려 한다. 이를 눈치 챈 안더례는 리모를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간다.



60페이지 정도 되는 내용이지만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 캐릭터들이 살아 숨쉬고 감정 이입이 되었다. 가장 낮은 시선에서 불의에 대항하고 투쟁하지만 거를 수 없는 모습이 중국 사회의 현 상황을 적절한 비유로 반영한 듯 싶었다. 사회 주의 아래 자본 주의 사항이 결합된 독특한 중국의 모습이 잘 투영되었다.

내가 열한 살 때 신민 지역에서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와 장기를 뒀다. 그는 두 시간 시외버스를 타고 아버지가 자주 가는 커다란 나무 아래까지 아버지를 찾아왔다. "깜장 털 형님, 신민에서 형님 소문을 듣고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그자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서른도 안 돼 보였다. 아직 학생인 듯했다.

대사 (p170)

눈썹 꼬리 부분의 사마귀로 인해 '깜장 털'이란 별명이 있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와 같은 자리의 사마귀를 가진 똑 닮은 아들. 이 부자의와 장기의 이야기를 그린 '대사(大師)'는 읽는 내내 매우 흥미진진했다. 희대의 장기왕 아버지는 뛰어난 장기 실력자다. 대결에서 삼세판을 두며 2판을 이기고 1판을 져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결코 내기 장기를 하지 않으며 선물도 일체 받지 않는다. 이런 확고한 철학으로 장기를 두는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가 기력이 쇠하여 다시는 장기를 두지 않는다 한다. 아버지의 실력을 빼닮은 아들은 다리 한쪽이 없는 낯선 이와의 장기 대결에서 패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서게 된다.



장기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 갈 수 있음에 놀라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연과 필연이 겹치는 만남과 그 운명의 마지막 대결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왔다. '깜장 털'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그 간 얼마나 노력을 하며 장기 실력을 다져 왔을까 싶다. 짧게 이야기가 끝나는 것만 같아 아쉬웠다. 할아버지에게 밤새 옛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마음이랄까.



기차에 올라 옆자리 사람에게 휴대폰을 빌려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 신장 결석이 다 나아 다시 막힐 일이 없으니 내일이면 출근할 수 있다고 했다. (중략) 가방을 샤오미 방에 놓고 왔다. 안에 기차에서 처리할 업무 파일이 들어 있었다. 할 일도 없어졌기에 라오샤오가 내게 남긴 원고를 꺼냈다.

긴 잠, 이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긴 잠'이라고?

긴 잠 ( p232)

굉장히 독특한 소설 '긴 잠'이다. 허무맹랑 하기도 하고 마치 꿈 속에 다녀온 듯하기도 하며 신화의 내용을 담기도 한 듯한 오묘한 스토리가 기억에 남는다. 샤오미는 전 애인이다. 샤오미와 바람난 랴오샤오는 시인이자 내 친구였다. 랴오샤오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친구의 유언에 따라 나는 샤오미에게 가는 길이다. 그리고 랴오샤오가 삼킨 사과를 지키기 위해 총알이 난무하는 샤오미의 집에 있다.



소설 말미에 '긴 잠'이라는 시를 계속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서 알듯 말듯하면서도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시를 나는 계속 읽게 되었다. 엄청난 일을 겪은 와중에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업무와 회사를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여운을 길게 가져가고 싶다.






* '9천 반의 아이들', '대사', '긴 잠' 이외에도 '평원의 모세', '절뚝발이', '건달', '기습', '큰길', '그라드를 나오다', '자유 낙하' 까지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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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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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마음 따뜻해지는 인간미 넘치는 소설'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니 당장 캄보디아의 원더랜드로 떠나고 싶다. 캄보디아의 랜드마크인 앙코르 와트와는 비록 버스로 7시간, 비행기로 1시간이나 떨어진 프롬펜이지만 원더랜드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곳이다. 저자 문은강에서 박지우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가 실제 방문한 캄보디아에서 탄생한 이 소설은 마치 실제 존재하는 원더랜드를 책이 옮겨 놓은 듯 하다.



편견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대할 때 의도하지 않더라도 편견이 작용한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동정심이 발동하고, 무리에 어울리기 위한 내 안의 또 다른 페르소나가 작동한다. 이러한 편견과 가면이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정녕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박지우의 맘도 모른 채 고복희는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간다. 인사도 건네지 않고 쌩하니 지나친다. 걸음도 어찌나 빠른지. 말을 걸 틈도 없다. 정말 생전 처음 보는 캐릭터다. 생긴 것부터 만화 같다. 똑 떨어지는 단발에 눈썹이 진하다. 입가의 주름은 붓펜으로 뚝딱 그려놓은 것 같다. 성격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제껏 경험한 어른들 중 제일 이상하다.

p86

로보트처럼 똑부러지는 무생물같은 캐릭터 고복희는 감정이 메마른 듯 보인다. 이 여인은 어떠한 이유로 이 먼 타국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것인가. 타협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그녀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교민들과의 관계도 그리 원만하지 않으며 그저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는 고복희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증을 더해갔다.



고복희를 중심으로 캄보디아 교민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게 된다. 그들의 삶이 어느 하나 순탄하지 않다. 각자 나름의 고충과 힘든 시기가 있고 그 고행은 현재 진행 중이다. 현지인이면서 한국말이 능숙한 브레인이자 원더랜드의 매니저 린, 무계획으로 캄보디아에 한 달 살기로 원더랜드의 첫 장기 손님 박지우, 김인석 아래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어눌한 안대용 등 각자의 삶에서 살아 숨쉬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큰 공감을 불러왔다.

고복희에게는 비교적 편안한 노후가 남아 있었다. 정년퇴직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직 후에는 다달이 나오는 연금으로 생활하면 됐다. 오전은 수영장에 가고 오후엔 테니스를 즐기며 주말에는 여유롭게 공원을 산책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쩌다 원더랜드라는 골치 아픈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는가.

p161

왜 그녀는 편안한 교직 생활을 정리하고 캄보디아의 원더랜드에 있는 것일까. 장영수와의 이야기는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훌쩍 떠나자 말했던 장영수의 고백은 늘 무뚝뚝한 고복희의 마음을 녹였다. 이 먼 타지에서 장영수를 추억하며 지내고자 했을 것만 같다.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었던 장영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장영수는 미처 오지 못했지만 고복희는 따뜻한 이 곳에서 장영수를 추억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춤을 추지는 않지만 디스코를 좋아하는 고복희는 장영수와의 추억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박지우가 떠난 후 한동안 101호실을 쓰는 손님은 없었다. 그간 손님들을 다른 호실로 안내한 까닭은 그 멍청이가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이토록 오래 원더랜드에 묵었던 손님은 박지우가 처음이었다. 시간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정박했던 공간은 흔적을 남기 마련이니까. 생생한 지문이 마모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충분하지 않지만, 이제 객실 문을 열어야 했다. 내일이면 새로운 손님이 온다.

p252

박지우가 다녀간 원더랜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똑같은 자리에서 우뚝 서있는 원더랜드는 고복희처럼 변함없이 손님들을 대하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고 한다면 박지우가 쓴 블로그를 보고 한국에서 손님들이 찾아 온다는 것? 박지우가 두고 간 원숭이 티가 원더랜의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



화려하거나 멋드러지지는 않지만 원칙을 준수하고 정의가 살아 있는 불의의 사도 고복희의 원더랜드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곳이다. 나도 훌쩍 박지우처럼 캄보디아로 떠나고 싶다. 그리고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편견없는 고복희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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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마커스 버킹엄.애슐리 구달 지음, 이영래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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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일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깨부수는 책





회사원으로 보낸 시간이 9년을 넘어선다.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니며 리더에게 평가를 받고 팀원들과 업무를 수행하며 계획을 짜고 결과를 도출한다. 하루 9시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며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재미를 느끼기도 하며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때로는 불합리한 모습들에 불만이 터지기도 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직면하기도 한다.



회사 생활을 통해 가졌던 생각들과 통념들에 대한 9가지 주제를 통해 일에 대한 실랄한 문제제기를 펼친다. 내용 하나하나 공감되고 실소가 터지기도 했고 감탄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에 감탄했고 크게 공감하면서 책을 읽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나 생각들이 켤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 매력적인 책이다.



특정 경험, 즉 가까운 동료, 테라스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동료, 사무실 구석에서 함께 모이는 동료 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가 회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최소한 우리의 연구 결과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1장 사람들은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지에 신경 쓴다 (p44)

회사 내의 인간 관계가 다른 어떠한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팀 안에서의 사람의 관계가 회사의 이름, 문화 등 다른 어떠한 것보다 중요하다. 매우 공감된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네임 벨류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한다면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조사해 결정해 B사로 이직한 리사의 경우처럼 납득할 수 없는 리더의 행동들에 13일만에 회사를 관두어야 겠다고 결심한다. 6개월 간 회사에 대해 조사하고 알아봤던 기간보다 그만 두기로 결정하는데 13일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은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회사가 아닌 팀이 실상 중요하다는 사실은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자신의 일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며 일에 결코 자부심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다."

4장 최고의 인재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p124)

일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것이다. 드리블을 하는 리오넬 메시, 작곡하고 연주하는 스티비 원더를 볼 때 그들은 그저 그 일을 즐긴다. 메시에게 축구가 일처럼 느껴질까? 스티비 원더에게 연주는 놀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가 일을 할 때 이 일이 재미있다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성과와 성공에 대한 감탄과 행복, 팀원들과 하나되는 즐거움, 기여로 인한 자부심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업무를 함에 있어 그 역량은 측정할 수 없다. 부족한 역량을 습득했을 때 과연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 다재다능하다고 해서 더 낫다는 것 역시 보여줄 수 없다. 리오넬 메시는 양발을 자유 자재로 쓰는 선수가 아닌 왼발 만을 잘 쓰는 선수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재다능함이 아닌 특출한 사람이 최고의 직원이다.

탁월함을 발휘하는 그 소소한 순간을 당신의 경험이라는 렌즈로 재현할 경우, 당신은 그의 마음이 부드러운 휴식 상태에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이때 새로운 정보를 적극 수용하는 그의 두뇌는 새로 발견한 잇풋과 연계하기 때문에 그는 학습하고 성장하고 더 나아진다. 한마디로 이것은 그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형태의 인정이다. 당신은 그를 알아가고 있고 그것을 그에게 재현하고 있는데 그는 내일도 당신이 그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훌륭한 실적을 쌓는다.

5장 사람들은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 (p180)

회사에서는 각종 피드백을 나눈다. 회사에 대한, 상사에 대한 피드백을 주기적으로 원한다. 서로에게 주는 피드백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던 회사의 CEO 강연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며 이 책에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기본적으로 피드백은 오류를 낳는다.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그 어떤 사람이 뭔가 잘못이 있다고 확신하는 '근본 귀인 오류'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난다. 상사의 힘든 질문에 답하느라 늦은 동료에 대해 우리는 그 진실을 모른채 불만을 쌓는다.



사람들은 피드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원한다. 이는 업무 몰입도와 생산성을 높인다. 탁월함을 발휘하는 그 소소한 순간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말함으로써 반응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훌륭한 성과, 대단하다는 말은 필요치 않다. 적절한 반응이 팀이 가져올 높은 실적의 키라고 말한다. 물론 쉽지 않아 보인다. 허나 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것보다 일을 향한 사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중략) 사랑, 특히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당신이 하는 일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기술은 우리를 실용주의의 전형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8장 일과 생활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p267)

'일과 생활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거짓말이라고?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우리는 항상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균형의 척도는 명확하지 않다. 하루 9시간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며 출퇴근에 1시간씩 2시간을 보낸다. 집에서는 7시간의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삶이라는 시간에 우리는 고작 6시간이 남는다. 밥을 먹고 몸을 씻고 집안일을 하면 이 6시간은 반토막이 된다. 이게 과연 균형있는 삶이라 할 수 있는가?



일과 사랑이라는 연결이 매우 꺼려지지만 이를 직시해야 한다.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번아웃을 경험하며 마음의 상처가 깊어진다. 내가 하는 일 안에서 '좋았던 것'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일에 대한 나의 시각을 재정립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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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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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농담

보라보라섬에서의 9년, 그리고 행복





보라보라섬은 남태평양 해에 위치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많은 섬)에 위치한 섬이다. 신혼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방문하며 지상 최고의 낙원, 환상의 섬이라 불리는 곳이다. 모든 이에게 꿈과 같은 낙원의 보라보라섬에 저자 김태연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이 곳에서 8년의 시간을 보냈다. 결혼식 없는 결혼을 올렸고 고양이 쥬드와 내일의 일은 모른 체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삶은 어떠할지 살며시 열어본다.




섬 전체를 통들어 '소비 생활'이 가능한 곳이 손에 꼽을 정도라 불편할 때가 더러 있었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돈 쓸 곳이 없어서 소비생활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소비생활을 안 하니까 파는 곳이 안 생기는 건지 궁금했다. 모아나의 가족들을 만나고 나니 후자가 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제한된 소비생활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더 풍요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소비할수록 우리는 더 결핍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p34

오늘 주문하면 내일 집 앞에 도착하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소비에 최적화 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소비 생활 자체가 어려운 보라보라 섬에서 만난 모아나 가족을 보고 소비하지 않고도 풍요로운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같은 이치가 아닐까. 무언가를 소유함으로 인해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은 괴로움으로 변질된다. 그 집착과 집념은 소유에서 온다. 이 간단한 이치를 우리는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세상은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라더니, 보라보라 섬이 딱 그런 것 같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쁜 일도 생긴다. 행복하다기엔 만만치 않고, 불행하다기엔 공짜로 누리는 것 투성이다. 깨끗한 공기, 따뜻한 바다, 선명한 은하수...

p118

대한민국의 깨끗한 공기는 이제 옛 일이 되어버린 듯 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오는 미세먼지로 그 당연하던 깨끗한 공기가 이제는 사치가 되었다. 당연하게 누리던 것이 사라진 이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우리는 언제나 이런 일상의 행복을 잊고 살아간다. 보라보라 섬에서 살면서 그러한 일상의 소중함을 잘 느끼는 저자다. 더운 날씨, 잦은 정전 등으로 불편함도 있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정전이 된 날 더운 집 안을 피해 노닐다 모기의 공격에 병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때론 나쁜 일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좋은 점이 있기에 그곳에 사는 게 아닌가.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 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p260

글들의 말미에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라며 끝맺는 경우가 많았다. 불확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오늘을 충분히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저자의 엄마가 위암에 걸려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야하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딸에게 신세지기 싫어 눈물을 보였다는 엄마. 이 대목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책을 읽고 행복이라는 단어를 계속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인가. 지루하게 지나가는 이 일상이 진정한 행복이 깃든 삶인가. 훌쩍 보라보라 섬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뛰쳐 나오려한다. 그 언젠가 보라보라 섬으로 떠나고 싶다. 그저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고 말을 툭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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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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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섬세한 심리 스릴러의 매력이 듬뿍 담겨있다.





주인공 세라 헤이우드 박사는 대학 강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세라의 시각에서 그녀의 심리를 세세하게 다루는 심리 스릴러 <29초>는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분명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은 여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라? 책의 작가 'T.M.로건'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전업 작가다.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리얼 라이즈>도 참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기대감도 컸는데 읽으면서 여자 작가로 착각할 정도다.

"내게 이름 하나를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이름을. 내가 그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지. 당신을 위해서."

p135

앨런 러브록은 세라의 상사다. 경험도 많고 능력도 있는 세라는 전임 강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앨런은 세라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으며 호시탐탐 그녀를 넘보고 있다. 가족을 나몰라라 하는 남편은 멀리 떠나있고 두 아이를 책임진 세라는 어떻게서든 전임 강사가 되어야하는데 앨런의 행태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앨런이 세라의 크나 큰 걸림돌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절망의 상황에서 나에게 커다란 제안이 들어온다. 내가 원한다면 한 사람을 사라지게 해주겠다는 제안이다. 세라는 앨런이 떠오르지만 선뜻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사라지게 해준다는 그 말은 그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지 않은가.



"결과에 대한 책임 없이 뭔가를 할 수 있는, 평생 한 번 있을 기회라는 거지." 로라는 잔에 남은 와인을 마저 마셨다. "야, 알게 뭐야 젠장. 나라면 하겠어."

p189

세라의 상황이 매우 이해가 된다. 앨런만 아니라면 무난하게 전임 강사가 되었을테지만 그의 만행으로 인해 자신의 희망이 무산되고 힘든 나날을 보낸다. 앨런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한 또 다시 1년을 기다린다고 될 것 같지 않다. 제안은 아직 유효하다. 무난한 인생을 살았고 무탈하게 지냈다면 이 제안은 당연히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그 제안을 무시했을 것이다. 그런데 앨런만 없다면 자신의 인생은 잘 풀릴 것 같다.

그럴 리가 없어. 목까지 차오르는 당혹감에 세라는 휴대폰의 연락처와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하나의 번호, 한 번의 통화. 어제 오후 5시 27분, 29초간. 세라의 발신 통화였다.

p223

한 통의 전화, 그 29초간의 한 통화로 부터 모든 게 변했다. 화가 치밀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화를 걸었고 이름을 말했다. 29초라는 그 짧은 시간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긴장되며 걱정되며 초초하며 안절부절하는 세라의 두근거림이 내게까지 전해진다. 정말 일처리가 제대로 되는 것일까.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자신과 앨런과의 연결고리는 전혀 드러나지 않겠지.





"만약 이 모든 게 잘못되면, 아빠와 너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고 이 일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을 반박할 휴대폰 기록도 없을 거야. 혹시 몰라서 선불 전화 두 대의 번호를 가지고 있는 거지만, 일이 어떻게 되든 내일이면 이 전화기 두 대는 템스강으로 가는 거야. 다시는 눈에 띄지 않는 거지."

p430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후반부인 3부부터 매우 휘몰아 친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연거푸 일어나면서 좀처럼 진행 방향이 그려지지 않았다. 독자를 철저하게 속이는 작가의 함정 장치가 매우 세밀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철저하게 속았다. 세라가 중심이 되어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이 땀을 쥐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내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들키면 어떻게 하나. 문제가 생기면 안 되는데.. 하면서 세라를 응원하고 있었다. 마지막 통쾌한 반전의 순간은 쾌감을 가져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으면 바로 작가 소개란을 다시 읽는다. 이 책 역시 그러했다. 마음에 드는 작가이기에 기억해두고 싶은 본능적인 행동이다. 'T.M.로건'은 기억해 두고 작가 이름만으로 책을 선택해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리얼 라이즈>와 <29초>에서 이미 그의 능력을 충분히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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