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수개월 전 학생들을 부추겨서 교사에게 반기를 들게 한 것처럼 이제일반 시민들을 부추겨서 그들의 당 지도자를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그들의 뿌리 깊은 분노를 자극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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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혁명은 산업 분야 곳곳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장난감이나 원단, 화장품, 가정용품부터 도자기까지 모든 제품은 상표와 포장, 내용에서 봉건적인 과거의 흔적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 선녀나 금탑 같은 상표가 붙은 양말이나 치약, 유약을 바른 세면대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대한 모욕이었다. - P170

펑전이나 루딩이와 같은 몰락한 지도자들의 저서는 이미 8월부터 파기되어야 했지만 <정치적 실수>를 저질러서 블랙리스트에 추가되는 책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났다. - P171

곧 사람들은 주석 숭배가 유일하게 용인되는 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석 숭배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한 단면은 표어의 남발이었다.
말 그대로 사방이 표어 천지였다. - P173

주석을 숭배하는 데 뒤처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봉건적이라거나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받는 물건이 늘어나면서 일반인은 갈수록 마오쩌둥 사진이나 마오쩌둥 배지, 마오쩌둥 포스터, 마오쩌둥 저서 같은 정치적으로 안전한 상품만 찾게 되었다. - P174

조금이라도 자본주의의 냄새를 풍기면 무조건 비난하던 정부가 어떻게 주석의 얼굴이 담긴 물건에 값을 매길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단순한 철학적 난제 그 이상의 문제였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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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앞서 8월 8일에 문화 대혁명에 관한 지침이 일명 <16조>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방송되었을 때 당은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비롯한 전문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에게 불리한 어떠한 조치도 없을 거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터였다. 홍위병은 <저항은 정당한 행위다>라고 외쳤다. - P153

개는 1950년대 초반에 공중 위생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사냥당해서 전국의 도시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씨가 마른 터였다. 홍위병이 순찰을 돌며 타락한 부르주아의 상징인 고양이를 죽이면서 이제는 고양이를 상대로 한 대대적인 학살이 진행되었다. - P157

희생자들은 상당수가 해방 이후로 진작부터 조직적인 박해에 시달려 오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주 정권에게 비난을 받았고 중요한 정치적 운동이 있을 때마다 길거리에 끌려다녀야 했으며 직장에서 억울하게 쫓겨났고 어떻게든 자신과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가진 것을 팔아야 했다. - P159

공포나 원한이나 야망에 이끌려서 이웃을 밀고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 P161

가장 큰 도둑은 중앙 문화 혁명 소조원들이었다. 헤르만 괴링이 주드폼에서 가장 좋은 물건들만 골라 자신의 개인 소장품으로 삼기 위해 스무 차례나 파리에 들락거렸던 것처럼 캉성은 전국의 주요 창고들을 돌면서 방대한 양의 인상적인 예술품들을 수집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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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혁명 운동에 뒤쳐지지 않고 가장 최근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자보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얼마 안 있어 대자보는 사무실과 공장, 학교 복도에서 벗어나 눈에 띄는 모든 장소를 점령했다. 현관과 주요 건물의 낮은 벽면부터 나중에는 인도와 바닥까지, 종국에는 커다란 표어의 형태로 처마 밑에도 등장했다. 그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자금성을 둘러싼 주홍색 벽까지 호전적인 글들로 뒤덮였다. - P136

마오쩌둥은 학생들에게 직접 다가갔고 그들에게서 가장 신뢰할 수있는 협력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은 쉽게 외부의 영향을 받았고 조종하기가 쉬웠으며 싸우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열망했다. - P137

 어린 학생들일수록 더 악랄했다. 누군가에게는 계급의 적을 늘신하게 패주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되었다. - P145

셰푸즈는 경찰에 <홍위병과 대화하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라. 그들에게 명령하지 말라. 그들에게 악한 사람을 때리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들이 흥분해서 누군가를 때려 죽인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명령했다. 그의 지시는 널리 전파되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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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의 메시지는 당내 고위층 인사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유력한 베이징 시장이 실각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도 이내 그의 뒤를 따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당원들은 주석의 발언을 놓고 회의하는 자리에서 테이블 너머로 서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주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P113

오인소조 대신 마오쩌둥의 심복들로 구성된 중앙 문화 혁명 소조가등장했다. 중앙 문화 혁명 소조는 곧 문화 대혁명의 전 과정을 지휘하면서 모든 상위 결정이 내려지는 가장 중요한 정치 기구가 되었다. 황제가 대신들의 반대를 우회하기 위해 만든 내부 조직처럼 중앙 문화 혁명 소조는 당과 정부와 군대 위에 군림할 터였다. - P113

 이상적인 공산주의자란 군인인 동시에 노동자이며 학생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전문화는 금지되었다. 전쟁에서든 일에서든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학생들은 육체 노동을 통해 혁명에 기여하도록 요구되었고 반대로 군인들은 정치 학습에 매진하도록 요구되었다. - P118

 주석의 계획은 군사 조직과 정치적 세뇌를 맹신하는 광적인 환상에 불과했고 그 안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군인이 되어야 했다. 이제 중국은 과거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 P119

1956년에 당은 사람들에게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으라고 부추기고 불과 1년 뒤 비평가들에게 역공을 가했었다. 이런 대자보를 쓴 사람들이 혁명에 헌신하는 정예 당원일까? 아니면 베이징 외국 어학원에 다닌 어떤 사람의 말처럼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말썽꾼 또는 당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불순분자이거나 자칭 반혁명주의자>일까? - P119

머지않아 교사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고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격렬한 대자보 전쟁이 벌어졌다. 그들은 학생들이 알아낼 수 있는 것보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았다. - P122

자본주의 노선을 선택한 당내 권력자에 대해서는, 다시 말해서 주석이 그토록 관심을 보인 <우리들 사이에 숨은> 적에 대해서는 왜 공격하지 않을까? 중등학교나 대학교에 파견된 공작대는 대부분의 분노가 <흑방 분자>라고 생각되는 교사와 학생을 향하도록 선동했다. 그들을 희생양으로 이용하거나 지역 간부 몇 명을 희생시켜서 고위 관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 P124

어쩌면 가장 의미 있을 충돌이 칭화대학교에서 발생했다. 안경을 쓴 단단한 체격의 화학 공학과 학생 콰이다푸가 <공작대의 손에 든 권력이 과연 우리를 대변하는가>라며 공개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이제 막 공작대에 합류한 왕광메이는 <우경 학생인 콰이다푸가 권력을 잡으려 한다>라고 주장했다. 며칠 뒤 콰이다푸에게 반혁명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운집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다른 수십 명과 함께 굴욕을 당하고 자신의 기숙사에 감금되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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