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동맹과 같은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사회가 감내할 수있는 ‘손해 감수cost tolerance‘ 수준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손해 감수‘는 전쟁이 일어날 때 한 사회가 견뎌 낼 수 있는 손해의 정도를 이르는 말이다. 손해 감수의 정도가 높은 경우, 즉 교전 상대보다 더 큰 손해를 받아들이고 참을 수 있는 각오가 돼 있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쪽보다 더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다. 베트남전쟁 때 미국은 군사력에서는 북베트남을 앞섰지만, 손해 감수를 둘러싼 경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 P212

태평양전쟁 때 최고전쟁지도회의 (총리대신, 외무대신, 육군대신, 해군대신, 참모총장, 군령부장으로 구성)는 종적으로 나뉜 조직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지나지 않았고, 그래서 끝내 전쟁을 끝낸다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전쟁을 끝낸다는 의사결정은 천황의 성단이라는 극히 곡예적인(비정상적인) 방식에 의해 이뤄졌다. 여기서 쇼와 천황이 수행한 역할의역사적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단을 통해 종전을 결정했다는 것은 [당시 일본이] 천황의 판단 없이는 [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일본 정부 내에] 거버넌스(통치 기능)가 결여돼 있었음을 드러내 보여 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 P215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를 깊게 해 나가는 것 자체가 억지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서라도 미일동맹의 억지력이 깨진 뒤의 문제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일본적 시점‘을 극복해 갈 필요가 있다. - P216

핵억지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누구를 지키는가‘라는 기준에서 볼 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핵보유국이 자국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상대를 억지하는 경우다. 이를 ‘기본억지‘라고 한다. 그리고 또 핵보유국이 자신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핵으로 상대를 억지할 수 있다. 이를 ‘확장억지‘라고 한다. 핵억지를 통해 지키는 범위를 자국에서 동맹국으로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을 동맹으로 둔 국가는 동맹국으로부터 확장억지를 제공받을 수 있다면, 직접 핵을 갖지 않는 비핵 정책을 취할 수 있게 된다.
확장억지를 [다른 말로] ‘핵우산‘이라고도 부른다.(중략)
미국이 일본에 확장억지를 제공한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들어가 있다"는 표현을 쓴다. - P221

미일동맹이 핵의 위상을 둘러싼 전략적 논의를 충분히 하지못했던 것은 단순히 게을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본이] 애초 그런 논의 자체를 피해 왔기 때문이다. 이를 대신해 논의의 주요 주제가 되어 온 것은, 미국이 일본에 핵을 ‘반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핵을 들여온 적이 있는지 검증하는 것이었다. 한 전직 외교관은 2008년 인터뷰에서 "정치의 초점은 핵전략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일본 내 미군기지에 [정말] 핵무기가 없는지‘ [검증하는 데]에만 맞춰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일본과 일본 밖에 선을 그어 일본 국내에 핵이 없으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핵에 대한 일국평화주의‘라고 부를 수 있진 않을까? - P222

존슨 정권이 방위 의무를 재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확장억지를 제공하겠다고 내밀하게 보장한 것은 일본이 중국의 핵무장에 자극받아 핵보유를 향해 나아가지 않도록 제동을 걸기 위해서였다. - P227

미군이 일본에 핵을 반입하는 것은 1960년 1월허터-기시 교환공문에 따른 ‘장비에 있어 중요한 변경‘에 해당된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와 사전협의를 해야 한다. 미국은 지상 배치 혹은 일본의 육지에 하역하는 형태로는 멋대로 핵을 반입할 수없다.
여기서 논쟁의 초점이 되는 것은 ‘핵을 탑재하고 있는 미 해군함선이 일본에 일시 기항할 때에도 사전협의가 필요한지 여부‘이다. - P233

일본은 사전협의 대상이 되는 핵의 ‘반입‘에 대해 실제 하역이 이뤄지는 경우뿐 아니라, [하역 없는] 일시 기항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미국은 실제 핵을 일본에 하역하는 경우만을 ‘반입‘이라고 인식해 왔다. [미국의 기준에 따르면] 일시기항은 ‘반입‘이 아닌 잠시 들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핵을 탑재한 미 함선이 여러 차례 일본에 기항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전협의는 이뤄지진 않았다. - P235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할 때 미일 모두 핵 ‘반입‘의 정의와 관련해 쌍방 간에 해석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알면서도 굳이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시 기항이 사전협의의 대상인지에 대한 미일의 해석 차가 그대로 방치되게 된다. - P236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핵보유국과 해양을 기반으로 하는 동맹관계를 맺고 있고 확장억지라는 혜택을 향유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항구라는 장소에 동맹국의 핵을 실은 함선이 일시 기항하는 것까지 ‘반입‘의 기준 안에 포함시켜 이를 거절하려 해 온 일본인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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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끝내는 방법에는 크게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과 ‘타협적 평화‘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두교전 세력 가운데 우세한 세력 쪽의 시점을 통해 논의를 진행해 보자.(중략)
우세한 세력 쪽에서 보자면 열세에 몰려 있는 교전 상대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히고 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게 해 두면 이후 이 상대와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장래의 화근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교전 상대에게 완전히 승리해 무조건 항복을 받아 내면 장래의 화근을 없앨 수 있다. 이런 전쟁 종결 방식을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이라고 해 두자.(중략)
하지만 우세한 세력이라 해도 교전 상대를 완전히 타도하려면 그만한 출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인명 손실 등 큰 희생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게 싫다면 장래의 화근을 남겨 놓을지 모르지만, 교전 상대와 타협해 도중에 전쟁을 끝낸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즉, ‘타협적 평화‘라는 전쟁 종결 방식이다. - P184

이렇게 전쟁 종결의 형태는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이냐 ‘타협적 평화‘이냐, 둘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우세한 세력이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 간의 균형을 어떻게 파악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P185

여기서 문제는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이 트레이드 오프(이율배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다. ‘장래의 위험‘을 제거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거꾸로 ‘현재의 희생‘을 회피하려면 장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과 공존해야 한다. 이른바 ‘시소게임‘을 하면서 실제 어떻게 전쟁을 끝낼지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 P186

불리한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가 없는것은 아니다. 전쟁 종결 방식이 조금이라도 ‘타협적 평화‘ 쪽으로옮겨 갈 수 있도록 교전 상대가 느끼는 ‘장래의 위험을 줄이거나, 상대가 감수해야 하는 ‘현재의 희생‘을 키우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불리한 세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세한 세력이 인식하는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 간의 균형이 바뀌게 된다. 우세한 세력은 불리한 세력과 타협할지, 아니면 또 다른 희생을 각오하며 타협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 P187

일본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9조의 문제도 있다. 일본이 ‘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을 시도하려면, 정부의 헌법 해석과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정부 견해는 "적이 공격해 올 경우 [이를 격퇴한 뒤] 적을 계속 몰아붙여, 장래의 화근을 끊어 내기 위해 본국까지도 전부 해치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사토 다쓰오 내각법제국 장관의 1954년 5월 25일 답변)는 것이다. - P191

,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희생‘이 팽팽히 맞서는 경우 미일동맹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3자의 개입(반대의 경우 이쪽 동맹 세력에서 누군가 이탈하는 경우)과 관련한 교전 상대의 희망을 끊는 것이다. 둘째, 상대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려는 빌미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전후에 대한 약속을 제시하는 것이다. 셋째는 적절한 형태로 상황을 고조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P194

문제가 되는 것은 미일 간에 ‘장래의 위험‘과 ‘현재의 희생‘ 간의 균형을 둘러싼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 교전상대는 미일 간에 벌어진 틈을 타고 한쪽을 상대로 단독강화를 하자며 구도를 흔드는 움직임에 나설 수 있다. - P195

대만 사태를 어떻게 끝낼지 논의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 가운데 하나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집단적 자위권 간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지이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명확히 설명한 적이 없지만, 몇 가지 자료에 근거해 추론해 볼 순 있다.
국제법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때는 보호를 받는 대상(요청국)이 국가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기본 전제가 된다.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 쪽의 주장에 대해 ‘인식한다acknowledge‘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견해를 밝혀 왔다. 대만이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면, 대만은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지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제1장에서 살펴본 대로, 미일 양국은 모두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주장을 ‘승인‘한다고 분명히 밝히진 않고 있다. 게다가 미일은 대만해협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
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병합하려 할 경우 ‘이는 중국의 국내 문제‘라는 중국의 주장을 인정하며 수수방관하진 않을 것이다. - P207

일본 혹은 미일동맹이 대만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형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선언하며 대만 사태에 개입한다면, 중국과 휴전에 합의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만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중국은 대만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모양새로 미일과의 휴전에 응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일이 한번 인정한 대만의 ‘국가성‘을 취소하는 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이 경우엔 휴전 교섭 때 대만의 지위가 미묘해진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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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정말 일본스럽다...ㅎ

전후 일본은 전통적인 국가 간 전쟁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일반적 의미의 ‘전쟁종결론‘을 거의 연구하지 않았다. 아마도 전쟁은 [처음부터]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자체는 완전히맞는 말이지만),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어떻게 이성적으로 수습해 갈지 논의하는 것을 마치 ‘전쟁용인론‘인 것처럼 오해해 [관련 연구를] 기피하게 된 게 아닌가 한다. 미일동맹이 전쟁을 억지하고 있기 때문에 균형이 깨진 뒤의 일까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희망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는 의미에서, 이 역시 ‘일본적 시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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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유사사태는 그 이름대로 ‘극동‘이라는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개념이다. 이에 견줘, 주변사태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사태의 성질‘에 관계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동[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태인지보다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태인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따라서 ‘극동‘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한 사태라 해도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면, 자위대가 미군을 후방지원할 수 있다. 즉, 극동유사사태라고 할 때보다 주변사태라고 할 때 일본이 미국에 협력하는 폭이 넓어지게 된다. - P154

‘주변‘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데는 중국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 것이다. ‘극동‘이라고 하면 1960년 일본 정부의 통일 견해에 따라 대만이 포함되지만, ‘주변‘이라고 해 두면 이 점이 애매해진다. 그렇게 되면 중국과 긴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 P155

덧붙여 이보다 약 40여년 전인[1960년대] 미일안전보장조약을 개정할 때도 외무성 내에서는 미국국(현 북미국)과 조약국(현 국제법국) 사이에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후지사키 마사토 조약국 참사관의 증언) 미국국은 "미군이 활동하기 쉽도록" 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조약국은 "(미국) 주둔의 권한을 제약해 (미국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쪽"이었다고 한다.(중략)
이렇게 ‘극동‘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 협력을 지향하는 외무성의 옛 미국국과 ‘극동‘ 개념을 [미일 협력의] 상한선으로 삼으려는 옛 조약국 간의 논쟁이 어떤 의미에선 전후 하나의 패턴처럼 되풀이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 P156

중요영향사태 때 자위대의 활동이 미군 등에 의한 무력행사와 ‘일체화‘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자위대가 후방지원 활동에만 참여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우리를] 공격대상으로 삼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자적 시점‘에 서서 본다면, 여기서도 앞서 다룬 극동유사사태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됨을 알 수 있다.(중략)
 일본은 자위대가 "현재 전투행위를 행하고 있는 지역이 아닌 장소"에서 미군을 후방지원하고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 활동은 미군의 무력행사와 ‘일체화‘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자위대는 상대방의 공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런 주장은 극동유사사태와 사전협의 사이의 관계처럼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국내법적 논리이자, 자국의 의회·국민을 향해 내놓는 헌법 해석이나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즉, ‘일본적 시점‘에 서서 우리 나라는 "말려들지 않는다"는 논리를 아무리 예리하게 만든다고 해도, ‘제3자적 시점‘에 서서 보면 애초에 상대가 이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 P160

 유엔 헌장 제51조에 명기돼 있는 것처럼 국제법상 자위권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국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 대한 자위권을 이르는 개별적 자위권, 다른하나는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 대한 자위권, 즉 집단적 자위권이다. - P163

이 무렵 정부는 새롭게 탄생하게 된 자위대의 합헌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를 위해선 합헌성의근거가 되는 ‘필요최소한‘이라는 개념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정립해 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필요최소한이라는 개념이 국제법상 자위권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과 연결되게 된다.
즉, [일본 정부는] 개별적 자위권만을 행사하는 자위대는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실력 조직이기 때문에 합헌이라고 결론 내고 싶었던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이를 위해 ‘버려진 돌 [버려진 카드]‘이 되고 말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위헌론이란 것은 이런 논리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이른바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않았는데도" "않았음에도"와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은 표현을, 일본이 독자적으로 만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정의 안에 몰래 숨겨 두었다. 이것이 ‘속임수‘의 비결이었다. - P166

이런 주장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되기 앞서 주권국가에게 집단적 자위권을 자위권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국제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잘못이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논의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필요최소한론을 받아들이면서 이에 근거해 자위대의 합헌성을 확보해 온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선 헌법 논쟁 이전에 자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가 공격받을 때에도 자위권을 행사할 수있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는 ‘일본적 시점‘에 기반한 감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제3자적 시점‘, 즉 일본에 적대적인 상대국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약점이라 할 수 있다. - P169

[상황이 완화됐다고 이렇게 대응 수준을 낮추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국내법의 논리에 기초한 ‘일본적 시점‘에 따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변한 게 사실이지만 유사사태 그 자체는 계속되고 있는데도 자위대가 방위 출동을 중지하고 후방지원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3자적 시점‘
에서 본다면, 안보 전문가 니시하라 마사시가 지적하듯 [관계국들은]일본이 ‘전선에서 이탈했다‘고 받아들이진 않을까?(중략)
이처럼 ‘일본적 시점‘에 따른 절차에 따라 사태의 추이에 맞춰 세세하게 대응 방식을 바꾸게 되면, 상황에 따라 상대의 기를 살려 줄 뿐 아니라 동맹국의 불신을 사게 될 수 있다. 또 상대가 ‘인지전‘의 일환으로 이런 사실을 미일동맹에 불리한 모양새로 과장하며 선전할 수도 있다. - P171

미일안전보장조약 제5조 사태에 해당하는 무력공격사태 때도 미국이 자동 참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조약 제5조는 미일 양국이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자국의 헌법상 규정 및 절차"에 따른다고 하고 있다. 즉, 자동 참전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진 않는 것이다. - P172

일본이 ‘일본적 시점‘에 서서, 때로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때로는 필요최소한이란 기준을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것 같은 여러 대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일본의 행동을 의도대로 파악하지 않거나, 애초부터 고려 대상에 넣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를 일본의 약점이라고 인식 [해 적극 활용]하거나 [적대국뿐 아니라] 동맹국까지 포함하는 국제사회가 일본의 의사를 오해하는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유사사태가 발생한다고 해서 미국이 자동 참전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일본적 시점‘에 선다면 사전협의제도를 잘 활용해 극동유사사태에 대응하려는 미국의 군사행동과 [명확한] 선을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제3자적 시점‘에서 보면 미국의 군사행동과 그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은 애초부터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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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이 동맹의 틀에서 유사사태에 대응할 때 일본은 동맹국에게 편의를 제공하거나 자위대가 무력행사를 포함하는 행동에 나서는 등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활동은 조약과 법률에 근거해 이뤄진다.
일본이 지금까지 갖춰 온 동맹 조약을 포함하는 안전보장체제에선 유사사태를 각각의 성격에 따라 여러 가지 ‘사태‘로 구분해법적인 개념화를 하고, 각각의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세밀히 나눠 구분하고 있다. 일본의 안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순서에 따라 열거해 보면 ‘국제평화공동대처사태‘ ‘극동유사사태(6조 사태)‘
‘중요영향사태‘ ‘존립위기사태‘ ‘무력공격사태(5조 사태)‘ 등의 순서가 된다. - P139

분명 일본과 일본 밖 사이에 선을 긋고, 일본 밖의 분쟁에 말려들지 않게 하는 것을 중시하는 일국평화주의 관점에 서면, 극동유사사태 때 주일미군의 직접전투작전행동에 제약을 가하려는 절차를 만드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또 사전협의 결과 주일미군이 어떤 특정한 극동유사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서는 것을 허락한다 해도 일본은 미국의 행동을 묵인한 것일 뿐 자기가 직접 참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 덕에 일본은 이 분쟁에 말려들지 않고 사태를 피할 수 있다. 이것으로 일단 안심할 수 있다. ‘[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P145

일본 정부는 헌법과 자위대의 관계에 대해 이런 사고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자위대는 ‘전력‘이 아닌
‘자위를 위한 최소한의 실력‘이기 때문에 합헌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이 성립하려면 "이보다 안쪽은 필요최소한"이라고 할 수 있는선을 늘 긋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위대와 헌법 9조가 보유를 금지하는 ‘전력‘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무력행사와 일체화론‘도 이 필요최소한론에 근거해 설명할 수있다. 국제평화 협력 등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을 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위대의 활동을 정당화하려면] 무력을 행사하고 있는 외국군의 활동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다. - P148

일본이 미국의 기지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무력행사에 동참한 게 아니라] 이를 묵인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은 자기 편의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일본은 현재 벌어진 극동유사사태와 관련해 실제로는 미군이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편의 제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미군의 공격을 받는 상대, 앞선 예에서 보자면 북한은 이 유사사태와 관련해 일본을 미국 쪽에 가담한 어엿한 참전국이라고 간주할 가능성이 높다. - P149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는 극동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일이 사전협의에서 어떤 결과를 내놓든, 즉일본이 ‘사용 불허‘를 결정한다 해도 주일미군이 [일본 내 기지를 활용한] 직접전투작전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수십년 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기시 총리에게 말한 "일본의 의사에 반해 행동할 의도가 없다"는 약속은 당연히 미국의 적대국의 인식을 바꿀 만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 P150

극동유사사태 때 이뤄지는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해 일본이 사전협의제도를 통해 선을 긋는 게 가능하다는 ‘일본적 시점‘과, 미국의 군사행동과 그에 대한 일본의 편의 제공은 일체화되는 것이라고 보는 ‘제3자적 시점‘. 이 사이에 극동유사사태에 대한 대처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간격이 존재한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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