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한 줄의 힘! - 이교수의 광고특강
이인구 지음 / 컴온북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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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이자 서울예대 광고창작학과 교수였던 고 이인구 교수의 책.

저자는 1969년 코카콜라 광고로 커리어를 시작한 광고계의 원로다. 2020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고. 가장 유명한 건 “친구는 옛 친구, 맥주는 OB”. 당시 ‘이젠백’이라는 맥주가 새로 출시되어 OB맥주의 아성을 위협했는데, 친구도 오랜 친구가 좋듯 맥주도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OB맥주가 좋다는 메시지를 던져, ‘이젠백’에 빼앗겼던 시장점유율을 되찾았다고 한다. 어렸을 적 라디오로 많이 들었던 방송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도 원래는 대우전자의 기업 PR 캠페인 광고였다고 하는데, 이 캠페인도 이인구 교수의 작품이라고.

광고카피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설득을 위한 메시지라 정의내리고, 좋은 광고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광고의 프로세스는 다음 5단계로 이뤄진다고 한다. AIDMA, 즉 주의(Attention) - 관심(Interest) - 욕망(Desire) - 기억(Memory) - 행동(Action). 그런데 이 과정이 잘 일어나려면 포지셔닝이 잘 되어야 한다고 한다. 알리려는 기업이나 브랜드, 제품이 정확한 자리에 잘 자리잡아야 하고, 누구에게 그것을 알릴지, 즉 타깃이 누구인지, 그 타깃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지셔닝이 잘 이뤄졌다면 그 후엔 어떤 아이디어로 광고할지를 정해야 한다고 한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성되는지, 제임스 웹 영의 ‘아이디어 개발 방법론’을 인용하는데 일전에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다. 그리고 해당 아이디어가 임팩트가 있는지, 제품 혹은 브랜드의 USP, 즉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편익과 아이디어가 잘 엮였는지를 체크해보고 착 달라붙게 보여줘야 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것이 과연 매력적인지,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지, 관심이 갈지, 편익이 있다고 느껴질지를 계속 자문해야 한다고. 이건 헤드라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광고카피가 일러스트레이션이든, 실사든, 아트와 잘 붙으면서도 매력적이고 또 소비자에게 편익이 느껴지게끔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카피 작성의 방법론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사실 카피라이터라면, 누구나 이렇게 할 듯. 이를테면 은유를 써서 무언가에 빗대어 제품의 강점을 보여주거나 환유를 써서 어떤 요소가 기업이나 브랜드 전체를 대표할 수 있게하는 식이다. 대구를 이루게 해서 주목도를 높이는 것도 방법이고, 두운이나 각운을 맞춰서 리듬감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카피가 일종의 시처럼도 생각되지만, 직관적으로 이해돼야하고, 중학생 아니 초등학교 6학년생이 봐도 바로 이해될 정도로 쉬워야 하니, 시랑은 주어진 과제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뒤에 각론으로 ‘헤드’, ‘바디’, ‘슬로건’ 잡는 법이 나와있고, 부록으로는 <카피라이터 이인구가 본 세상>의 에세이 및 칼럼이 몇 편 실려있다. 다 읽는 데 한달 정도 걸렸는데, 나를 나름대로 카피라이터로서 성장시켜준 좋은 책, 알찬 책이라고 생각한다. 잘 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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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9-01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한 줄 쓰는 것보다 카피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워 보이네요. 글 한 편 쓸 때도 그 글을 보는 독자를 염두하고 써야 하잖아요. 그런데 카피는 모든 사람이 다 보는 문구로 알려져야 오래오래 기억되잖아요. ^^

칼리아예프 2023-12-26 12:57   좋아요 0 | URL
ㅋㅋ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예술은 새로워야 하고 미학적으로 완성도를 갖춰야하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가 목적은 아니잖아요? ㅎㅎ 문학 혹은 철학은 새로운 언어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구요. ㅎㅎ 직업인으로선 좋은 카피라이터, 좋은 광고인이고 싶지만, 그 정체성이 저의 전부는 또 아니기에, 제가 쓰고 싶은 독창적인 글은 제 스타일대로 써나가고 싶어요. 물론 문장이 간결하고 이해가 크게 어렵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좋은 카피를 쓰고 싶은 마음’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겠지만요. 😊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
제임스 웹 영 지음, 신인섭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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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광고계의 전설적인 카피라이터(라고 하는) 제임스 웹 양의 책. 1939년에 나왔고 말 그대로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산하는가”를 다뤘다. 또한 45p짜리 책이라 아주아주 얇다.

세계에 존재하는 낡은 것이라 치부되는 것들, 그러니까 기존의 세계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새롭게 배합하는데서 아이디어는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낡은 요소의 새로운 배합'이 아이디어란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낡은 요소라고 부르는, 세상에 존재하는 무언가들을 수집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첫 시작은 자료 수집으로 시작한다.

아이디어 생산은 아래의 다섯가지 단계를 따른다.

1. 자료 수집
- 첫째, 내가 아이디어를 내려고하는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습득한다.
- 둘째, 관련된 자료 외에 일반적인 자료도 필요하다. 이건 평소에 습득한다. '일반 교양'의 습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셋째, 내가 가진 자료들을 분류한다.

2. 소화
- 자료를 수집했으면 마음의 소화가 필요하다. 자료들을 입력시키고 분류했으면 이에 대해 색다르게 조합도 해보고, 다시 해체도 시켜보고, 이야기를 붙여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3. 쉬고, 잠자기
- 말그대로 쉰다. 그리고 잔다. 무의식에서 습득한 자료와 정보들이 재구성되도록 작동시키는 것이다. 깨어있다면 산책을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4. 아이디어 발생
- 생각지 못 한 시간과 장소에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지하철에서 오고가다가, 샤워를 하다가, 산책을 하다가, 자려고 누웠다가, 잠에서 깬 직후에. 이렇게 떠오른 아이디어는 잘 메모해둔다.

5. 현실화 및 다듬기
-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다. 사람들에게 노출시키고, 의견을 들어보고, 다듬는다.

광고 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과학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도 이런 식의 발상이 이뤄지지 않을까. 짧지만 핵심이 간결하고 알차게 잘 담겨있어서, 충분히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좋은 발상을 해내느냐는... 나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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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노래 - 노래와 함께 오래된 사람이 된다 아무튼 시리즈 49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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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아무튼, 노래>를 읽었다. 이 책은 이번에 든 트레바리의 두번째 모임에 선정된 책이었다. 나와 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

정준일이 윤종신의 노래 ‘잘 했어요’를 리메이크해서 부른 적이 있다. 가사가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찌질하다. 이 노래는 2021년 1월 월간 윤종신으로 발표됐는데, 당시에 정준일과 윤종신이 한 대담도 함께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 중에 정말 웃긴 부분이 있어서 발췌.

윤종신: 발라드 하거나 록 하는 애들 보면 중고등학교 때 찌질이들이 많아.
정준일: ㅋㅋㅋㅋㅋㅋㅋ
윤종신: 학창 시절 연애하고 다닌 애들이 드물어
정준일: 그런데 여자를 좋아해
윤종신: 그런데 인기가 없어. 쭈글이들이 많아.
정준일: 맞아요. 제가 그랬어요.
윤종신: 대부분 그래. 나도 그랬고. 차이고 끙끙 앓다가 말고, 고백도 못 해보고 마음 접고, 아니면 고백했다가 멋없게 퇴짜당하고.

그리고 덧붙이길, 힙합은 좀 덜 그런 것 같다고…. (빈지노 이런 친구들은 인기도 많고, 잘 나가지 않았겠냐는 얘길 덧붙인다) 나는 윤종신의 얘기가 너무 내 얘기라 진짜 너무 웃겼다. 😂 생각해보면 발라드를 들을 때의 나의 정서, 마음, 기억은 내가 처연했던 순간에 늘 가 닿아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들을 때, 중학생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버디버디로 고백하고 혼자 침대에 엎드려서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일이 생각난다. 토이의 ‘좋은 사람’을 들으면 고등학생 때 미술학원에서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나보고 “와 너 진짜 웃기다”라고 이름을 물어보던 모습과 함께 고백을 하던 날에 그 아이가 짓던 어색한 표정과, 버스를 놓치고서 집으로 터덜 터덜 돌아오던 나의 처량한 발걸음이 떠오른다. 모든 10대 남자애들이 이렇게 울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마찬가지로 정준일을 들을 땐, 대학교를 졸업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6년 정도 약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낸 시간들이 떠오른다. 감정의 밑바닥과 마음의 어둠, 심연을 본 기억들로 처연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음악들은 귀가 아니라 기억으로 듣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기억들이 한 인간의 취향을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기억이 없으면 노랫말에 공감할 일도, 음악을 듣다가 울 일도 없을테니까. 자신의 기억에 따라 음악을 찾아듣게 되고 선호하게 되고 그 노래와 공명하게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기억은 우리의 음악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재료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다. 가사와 멜로디, 비트, 목소리처럼 뮤지션이 갖고있고 통제하는 요소가 아니라 뮤지션의 바깥에서 음악의 성질과 맥락을 결정하는 음악의 구성물. 하지만 다행인 건 내 기억엔 슬픔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에 이센스의 3집 정규 앨범 <저금통>이 나와서 쭉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이센스의 랩을 듣는 순간, 나는 어느새 내 잘난 맛에 취하기도 하고, 자기애 넘치는 마인드가 되어 인생을 대면해볼 용기를 얻게 되기도 했던 것이다. “사는 게 쉽진 않았지만 난 다 이겨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어쨌건 다 버티고 살아왔잖아? 난 멋있어, 내가 짱이야, 넌 뭐야?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라는 생각을 품었던 기억, 그 기억이 음악을 온전하게 완성해준 거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좋은 음악이란 건, 그저 좋은 음악가가 만드는 걸로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은 듣는이의 몫이다. 좋은 음악을 듣고 완성시킬 수 있는 좋은 기억들이 있어야 한다. 자기 삶을 잘 가꿔야, 음악을 받아들일 기억도 잘 가꿀 수 있는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새삼 성실하게 치열하게 잘 살자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들었던 좋은 음악들이 더 완전해질 수 있게. 나의 기억들이 어떤 노래들에 담긴 응원과 위로와 기쁨과 슬픔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음악은 음악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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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컨셉 - 마음을 흔드는 것들의 비밀
김동욱 지음 / 청림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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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션의 월드와이드 캠페인 기획팀장으로 있다고 하는 (하지만 이 책이 나온 건 2017년이니까 지금은 또 다를 수도 있을 듯, 어쨌건) 컨셉 디렉터로 활약한 광고인 김동욱의 책. 다수의 성공적인 광고 캠페인을 이끈 광고인의 책이니, 읽어보면 일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광고의 컨셉을 잘 벼려서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 광고 사례들을 보여주고, 이어서 자신이 진행했던 캠페인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여준다. 어떤 과제가 주어졌었는지,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결과물은 무엇이었고, 그 결과물을 통한 효과는 어떠했는지 상세히 담아낸 것.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다. 네이쳐리퍼블릭을 상대로 자연주의컨셉을 밀고나가야 했던 이니스프리가 제주를 끌어들여서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연주의이미지를 갖고 온 경우라든지, 네이버나 다음의 웹툰이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웹툰 서비스로 강력하게 포지셔닝을 했던 레진코믹스의 사례도 흥미롭다. 빈폴이나 폴로를 직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인물이 나와 해지스로 갈아입는 광고도 재미있었고, LTE 서비스 초창기 시절에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을 컨셉으로 삼았던 KT 캠페인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세탁기 자체보다 세탁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 즉 고객의 니즈에 포커스를 맞춰서 옷을 오래오래 입고 싶은 마음을 건드린 트롬의 사례도 재미있었다.

 

저자가 직접 진행한 피키캐스트, ‘우주의 얕은 지식캠페인도, 테상트의 러너스 기어캠페인도, 현대캐피탈 집중에 집중하다’, 라네즈 스킨의 힘을 믿으세요’, CJ 앰플닷컴의 적들의 쇼핑법’(이건 요즘의 젠더 감수성이랑은 좀 안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만), 우르오스 스킨워시의 오라 우르오스의 세계로까지, 광고인으로서 좋은 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카피라이터로서 어떤 식으로 접근해 솔루션을 제안하면 좋을지에 대해 힌트를 얻은 것 같기도 하달까.

 

좋은 컨셉을 잡는데 필요한 게 한 두가지는 아니겠고, 또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몇 가지 방법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브랜드의 해리티지를 잘 활용하고 드러내기. 단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기. 제품의 특징, USP를 드러내는 게 과제에 따라선 중요하겠지만, 먼저 고객의 관점, 고객의 니즈에서 출발해서 컨셉이 고객으로하여금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낯선 단어들 간의 조합으로, (혹은 낯선 단어와 이미지의 조합으로) 스파크를 일으키고 임팩트를 주기.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하기 보다 원하는 타깃의 언어를 사용해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뾰족한 컨셉으로 승부보기. 이런 방식의 접근들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컨셉을 만드는데 필요한 접근법이자 생각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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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금정연.정지돈 에세이 필름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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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고 책이라는 매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게 안타깝고 슬픈 이유는, 바로 이런 책들이 여전히 나오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게 웃기고 사실은 약간 정신이 나간 것 같은, 그런 글이 담겨 있는 책. 사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 나와 친분이 있고, 나의 취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서평가 금정연과 소설가 정지돈의 글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들 몇 개는 나의 이런 팬심을 대변해준다. 이들이 전에 함께 쓴 <문학의 기쁨>에 대한 알라딘의 한줄평이다. “전 한국말 못하는데, 이 책 읽으려고 한국말 배웠습니다.”


물론 (이 책 안에도 나와있는데), 금정연의 글도, 정지돈의 글도 싫어하는 사람은 엄청 싫어한다. 금정연의 책에 대한 어떤 서평중엔 “글쓰기를 너무 싫어해서, 읽는 나도 읽기가 싫어졌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고, 정지돈의 책에 대한 어떤 서평엔 “별거 없으면서 뭔가 있는 척 한다”는 악평이 달려있다. 나는 이런 평들에 동의하기가 어렵고, 이들이 쓰는 글의 매력을 1도 음미하지 못 하는 데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야 이렇게 미디어 이론이나 철학 이론, 그리고 예술가들의 각종 인터뷰들과 작품 인용하고, 발췌해서 새롭게 조직하고, 그러다 어느새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고, 어느 문단에선 또 글쓰기 싫다고 징징거리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개성적인 사유를 전개하고, 또 그러다 갑자기 자기 생각과 언어의 토대를 점검하고 성찰하다가, 개인적인 일화 얘기하고 그 일화를 픽션화하고, 트위터와 인터넷에서 본 거 가져다 쓰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도 별로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2년동안 연재한 ‘한국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사람들’을 묶은 이 책은, 이들의 다른 책들처럼,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 때문에 독보적이다. 이들은 한국영화를 비평의 역사에 따라 줄세우지 않고, ‘비천한’ 영화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고,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한국 영화에 대해 코멘트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한국영화라는 ‘장’과 조건, 환경 안에서 살면서 그로부터 끊임없이 영향받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또 사유하게 만든다. 이들이 쓰는 ‘에세이 필름’은 한국영화에 대한 새로운 비평 혹은 영화사, 비평사의 구축을 새롭게 도전하는 글인 척하지만, 사실은 그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결국엔 ‘시작’도 안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게 저자들이 의도한 바든, 아니든) 그 ‘준비’ 자체가 한국영화, 그리고 영화와 함께 우리의 무의식을 이루는 물적, 정신적 토대를 새롭게 사유하게 만든다.


어떤 친구와 가끔 만나면(김민훈임), 우리는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남성성의 얼굴들을 따라하곤 한다. <내부자들>과 <프리즌>, <더 테러 라이브> 속 이경영과 <범죄와의 전쟁>과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타짜>의 김응수가 연기한 곽철용을 성대모사하고, 가끔은 <끝까지 간다>의 이선균과 <암살>과 <관상>의 이정재를 따라한다. 이데아의 복제인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의 복제인 예술은 현실을 재구성하고 깎고, 또 다듬으며 제 3의 이데아가 되는데,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 이데아를 또 다시 반복/수행/재현하는 것이다. 이런 이데아의 반복/수행/재현은 (어쩌면) 현실에 또 다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을 받은 현실은 또 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반복, 그 반복의 토대와 조건을 얼마간 사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올해 단 한 편의 한국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작년엔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이정재의 <헌트>, 변성현의 <킹메이커>를 보았고, 그래서(?) 나는 이따금 박해일의 대사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와 탕웨이의 대사 “제가 그렇게 나쁩니까?” 같은 대사들을 반복/수행/재현했고, 여전히 이정재의 “어이 관상가 양반, 거 참 이상하구만, 나는 이미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될 상이라니 말이야” 같은 대사, 그리고 이선균의 “자, 오늘의 첫번째 주문이다. 봉골레 하나, 알리오 올리오 하나” 같은 대사를 반복/수행/재현한다. 이 반복/수행/재현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무엇이 담겨있긴할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긴 이것이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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