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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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다 읽고, 나는 나의 시선과 욕망부터 점검하게 됐다.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나의 욕망과 시선은 얼마만큼 ‘정의’로울까? 나는 사회적으로 부정의한 것들에 곧 잘 분노하지만 (혹은 그러려고 하지만) 내 욕망엔 한없이 너그럽지 않은가 생각한 것이다.

물론 성적인 욕망과 시선, 그 자체를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으로 나누는 게 넌센스한 일인지도 모른다. 욕망은 그냥 욕망일 뿐 아닌가. 섹슈얼리티라는 욕망,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음란함, 이런 것들을 금기시 하는 사회는 또 얼마나 폭압적인가. 그리고 어떤 인간의 성적 욕망이란 것은 사회적인 동시에, 생물학적으로 형성되는 것 아닌가(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생의 조건에 대해 악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과 욕망은 문제적이다. ’예쁘고, 귀엽고, 섹시하고, 청순한 여성’이라는 상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억압이 되니까. 물론 욕망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억압의 기제로 나타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어떤 욕망이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되는 것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않다.

나는 욕망 그 자체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런 것.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에 대해 과도하게 열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여성으로 태어난 인간의 모든 것인양 이야기하지 않는 것. 물론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이라 불리는 것들이,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여성들에게 필요한 자원일 순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조건이고 기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 ‘존엄을 지키고 삶을 살아내는 것’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못생김, 뚱뚱함, 너무 마름, 키가 너무 큼, 키가 너무 작음, 나이가 너무 많음, 뭐 그 외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 인간들의 자기 긍정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인생샷에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는‘ 여성들의 사례를 보면서 한심해했다. “아니 뭐 이러고 사냐” 같은 생각을 떠올렸으니까. 그와 반대로 기초생활수급자이고, 학교에선 뚱뚱하다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책이라는 세계를 만나며 새로운 준거집단을 모색하고, 자신의 글을 쓰는 한 여성, 즉 인생샷 같은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여성 인간의 사례를 보면서는 열광했다. 이런 평가질은 역시 문제적이다. 물론 나는 살면서 김치녀니 된장녀니 하는 단어들을 입밖에 내본 적은 없다. 누군가를 그렇게 호명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즉 ’사진을 몇백장씩 찍고, 보정하는 데 하루 종일 시간을 쓰며, 더 예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애쓰는 여성’에 대해, ‘인스타충’이라고 뒷담화를 하는 인간들과 내가 얼마나 다를까. 정희진을 읽고, 우에노 지즈코와 벨 훅스와 리베카 솔닛을 읽었음에도 고작 떠올린 게 ‘한심함’이라니….

하지만 이런 문제적인 인간임에도,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들을 이해하고, 또 연대하고, 지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대단히 어른스러운 인간도 못 되고, 바보 같은 농담도 많이 하고, 젠더 감수성 같은 건 좀 모자란 인간이겠지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는 데에는 ‘착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함께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의 방향이 내 자신을 향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욕망이 섹슈얼리티가 어쩌고 하는 욕망보다 중요한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 보다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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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12-12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부정적인 반응을 할 때가 있어요. 저도 그래요. 저는 그런 감정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분으로만 볼 뿐이죠. 문제는 부분을 확대 해석하거나 또 전체 대상의 문제로 섣불리 단정하면 혐오와 차별이 생기는 거죠.

칼리아예프 2023-12-26 12:55   좋아요 0 | URL
ㅎㅎ 예…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겠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