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역사를 배우면서 한번쯤을 들어보았던 하멜표류기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외국인으로서 조선을 바라본 그들은 도대체 어떤 경험을 했을지 매우 궁금했다. 비슷한 소재로 최부의 표류기를 기록한 “표해록”이나 신유한의 일본 방문기인 “해유록”이 있다. 표해록은 보지 못하였고 해유록은 매우 흥미롭게 보았기에 이 하멜표류기에 대해서는 상당한 기대를 하고 보게 되었다.
이 기록의 당사자인 핸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사람으로 동인도 연합회사의 소속의 서기였다. 일본으로 가는 배에 탔다가 기상악화로 인해서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네덜란드 사람은 표류하여 도착한 제주도를 켈파르트 섬이라고 지칭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제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제주에 도착하고 나서 지칭한 이름이 아니라 경도와 위도를 측정한 후에 켈파르트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서양인들은 제주도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멜이 이 기록을 적은 목적은 조선에서 지내는 동안의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서 였다고 하는 사실은 좀 실망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하멜이 학자였다면 순수하게 학문적 탐구를 위해 조선이란 나라를 기록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하멜은 표류한 네덜란드 인일 뿐이었으니 이런 솔직한 시각으로 기록한 것이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할 듯하다. 이 글을 보노라면 하멜을 비롯한 네덜란드 인들의 상당히 비참한 생활상이 잘 드러난다. 조선에서는 그들을 돌려 보내주지도 않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해서 지방으로 보내지고, 그 지역 관찰사의 인품에 따라 삶이 더 팍팍해지기도 더 편해지기도 했다. 초기에 부식은 전혀 주지 않고 쌀만 주었다는 기록과 후에 먹을 게 없어 구걸까지 했다는 기록은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당시 그들이 가진 지식을 받아들여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수 도 있었을 텐데..
항해를 시작했을 때 64명이던 사람들은 난파당할 때 절반 가까이 죽고 36명이 살아남아 조선에서 13년간 지내다가 겨우 8명만이 탈출에 성공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참 비운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보기 전에 가졌던 생각을 완전히 부셔버린 하멜표류기였다. 이 제목을 듣고 그동안 내가 대략 짐작했던 것은 표류한 그들이 조선에서 적당히 호의호식하며 조선을 살핀후 나중에 고향이 생각나 잘 돌아온 후에 책을 냈다고 본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목숨이 위태롭던 엄청난 사고에다 조선에서는 엄중한 감시를 당하며 뭐만 잘못하면 볼기를 맞기 일쑤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 구걸도 하고 관에서는 노동력을 착취하질 않나 하나둘 사람들은 죽어가고 엄청난 시간을 보낸 후에야 겨우 탈출했다니 참 슬픈 기록이다.
하멜이 기록한 것에는 조선을 여러 가지 분야별로 살펴본 내용도 담겨 있는데 나름 흥미로운 사실이 있었다. “조선인은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들을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고서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영웅적인 행위라고 여긴다. ” 조선인의 국민성에 대해 기술한 것인데 매우 신선한 느낌을 준다. 평가는 박하지만 이런 기록을 접해보지 않았기에 색다르다. 물론 마냥 나쁜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조선인은 성품이 착하고 매우 곧이 잘 듣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나 믿게 할 수 있었다.” 이런 기록도 담겨 있었다. 아마도 대다수는 후자였으나 전자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 곤궁한 까닭에 그런 일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아무튼 외국인의 눈에 조선인들이 거짓말쟁이라는 이미지로 보였다니..
앞서 말했듯이 하멜은 이 기록은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썼다고 했다. 하지만 배를 잃은 탓에 받지 못하고 고생했다는 것을 위로하는 선에서 위로금을 받았다고 한다. 밀린 임금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썼는데 정작 밀린 임금은 못 받고 기록이 역사적인 표류기로 남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