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불편한 역사적 사실『산성일기』

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예로부터 나라가 힘이 없으면 엄청난 국난을 겪었다. 우리 자국의 역사만 하더라도 힘없던 시기에 맞이해야만 했던 그 비참한 현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단 우리나라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역사 속에서도 그러한 이치는 같았다. 국가의 힘이 약하면 강한 나라에 의해 그 운명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산성일기는 그러한 사례가 되는 역사적 기록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비참했던 한 시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인 것이다. 이 산성일기는 그 내용에 따라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남한산성에서 저항했던 48일간의 기록이다. 그 앞으로 해서 도입부와 중심부의 뒷부분인 종결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외교적인 노력이나 오간 서신에 담겨 있는 내용까지도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아 이 글의 저자는 당시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김상헌의 아들 김광찬이나 조카 김광현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하나 옮긴이는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정확한 저자는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당시 상황을 매우 생생하게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아 당시 중신들의 최측근이나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확실한 저자를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산성일기를 보면서 내내 불편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청나라가 침공하지 않을 거라고 계속 주장하다 봉화가 올 리가 그것을 감추려 했던 김자점이나 약한 국력에도 청나라와 화친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척화파 무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중심 잡지 못하는 멍청한 인조까지 온갖 불편한 사실들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나라의 운명은 생각지 않고 자기들 꼴리는 대로 주장하고 헛소리나 해대는 것들이 중신들이라니 정말 한 숨만 나올 뿐이었다. 이러한 과거의 모습이 오늘날 정치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또한 한 몫을 했다. 상황파악 못하고 헛소리하고 자기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모습은 정말 100% 닮았다. 남한산성에 갇혀서도 상황파악 못하고 청나라를 속이려고 하는 모습은 짜증까지 나게 했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그 대가는 더 커진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왕이라니.

『황금 100냥, 사슴가죽100장, 담배1000근, 수달피400장, 다람쥐 가죽 200장, 후추10말, 패도 26자루, 대호지 1000권, 용 무늬 돗자리4채, 무늬 놓은 돗자리 40입, 흰 모시 100필, 색색의 명주 2000필, 삼베400필, 색색의 곱게 짠 베10000필, 베 1000필, 쌀 10000석』

위의 목록은 당시 패한 조선이 매년 바쳐야 했던 조공품목이다.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끌려가고 엄청난 물품을 바쳐야 했다.. 왕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물론이요. 여러 대신들의 자식들도 끌려갔고 자식이 없으면 처까지 끌고 갔다. 훗날 심양 시장에서 팔린 사람만 66만명에 달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뿐이다. 멍청한 지도자와 현실을 모르는 대신들로 인해서 엄청난 비참함을 겪게 되었으니 말이다. 국력이 약하면 와신상담하며 국력을 키우고 보복할 생각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애초에 처음부터 저항하려 했으면 끝까지 저항을 하든가. 어줍잖게 까불다가 백성들만 죽어나가고. 정말 화가 난다. 정말 불편한 기록이다.